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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1 위안부 86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
  • 유희진 기자
  • 승인 2016.09.26 09:00
  • 호수 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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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목), ‘12·28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치유재단’에 출연금 10억 엔(약 108억 원)을 송금한 게 알려지며 국내가 떠들썩했다.

이날 오전 외교부는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화해치유재단’ 관련 일본 정부의 10억 엔 송금에 대해 알려드린다”며 “재단측에 따르면 오전 국내 거래 은행에 입금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지난달 24일(수), 각의 결정을 통해 10억엔 출연을 최종적으로 확정한 지 1주일 만에 송금 절차가 완료된 것이다.

일본 측의 출연금 송금에 따라 ‘화해·치유재단’은 피해자들에게 현금을 지급하기 위한 후속 절차에 들어갈 전망이다. 현금지급 대상 피해자는 지난해 12월 28일(금)을 기준으로 생존 피해자 46명에게는 1억원, 사망 피해자 199명에게는 2,000만원이 지급된다. 피해자들의 사정을 최대한 반영해 현금을 분할 지급한다는 방침인데, 개별 상황에 따라 분할 지급 기간과 액수 등을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단은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45명에게 지급하고 남은 출연금 20억원 가량은 전체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사업에 사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에 대한 국내 여론은 여전히 비판적이며 피해자들의 반발도 여전하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한·일 정부의 ‘12·28 합의’ 강행을 성토하며 수령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야당과 국민들은 “왜 이 정부는 108억 원에 역사와 자존심을 판 것인가”라며 “사과와 반성 대신에 돈으로 때우겠다는 일본의 행태에 왜 할 말을 못하는가”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키웠다.

 

‘위안부’
일본 제국주의 점령기에 일본에 의해 군위안소로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 (출처/두산백과)

1930년부터 시작된 우리의 아픈 기억은 2016년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86년 동안 해결되지 못한 채 있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사건을 연도별로 정리해보았다.

 

 

1990. 5. 25

노태우 대통령, 일본정부에게 강제연행자 명부 작성에 대한 협력을 요청.

노태우 대통령은 일본 방문 중에 열린 한·일 외무장관회담에서 일본 측에 강제징병 또는 징용된 한국인의 명단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28일 일본의 국회에서는 사회당 의원의 질문에 대해 나카야마 다로 외상이 이 명단을 조사하고 보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29일 각의에서 2차 세계대전 이전과 전쟁 중에 한반도에서 강제징병 또는 징용당한 사람들을 기록한 명단의 소재를 다시 조사하여 빠른 시일 안에 전모를 밝히기로 결정했다.

사카모토 미소지 관방 장관은 29일 각의가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조사대상에 대해 “한반도로부터 연행된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고 밝혀 북한지역에서 연행된 사람을 비롯하여 위안부 또한 조사대상에 포함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1991. 8. 14
김학순(당시 67세) 할머니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밝히는 기자회견.

일제에 의해 위안부로 끌려가 온갖 치욕을 겪어온 김학순 할머니가 국내 위안부 생존자로는 처음으로 자신의 한 맺힌 삶을 공개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관여 사실을 부인할 뿐 아니라 관련 자료와 증거들을 은폐하고 파기한 상태에서 국내에서의 진상조사는 생존자들의 출현과 증언을 고대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그 당시 16세 때 강제로 구속당한 상태에서 당한 치욕적인 경험을 기자회견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했다.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할머니는 “당시 당했던 일이 하도 기가 막히고 끔찍해 평생 가슴 속에만 묻어두고 살아왔지만… 국민 모두가 과거를 잊은 채 일본에 매달리는 것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내가 눈을 감기 전에 한을 풀어 달라”고 호소했다.

그 해 12월, 김학순 할머니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이어 공식적으로 총 238명의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신고하면서 문제가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1993. 8. 4
일본정부, 2차 ‘위안부’에 관한 조사결과 발표. ‘위안부’모집 이송, 관리 등에 부분적 강제성 인정.

제2차 조사 결과의 발표와 함께 고노 요헤이 前 관방 장관이 담화를 발표했다. 일본군 위안소가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운영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및 관리와 위안부의 이송에 대해서는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여한 사실을 인정했다. 제2차 발표에서는 일본 방위청, 법무성, 외무성, 문부성에서 발견된 자료를 비롯하여 일본 국립공문서관, 국회도서관, 미국 국립공문서관에서 발견된 자료들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장관은 담화에서 위안부로서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히는 한편 옛 위안부들에 대한 대응문제에 대해서는 “식견 있는 분들의 의견을 들어가며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하면서 법적인 책임 부분에 대해서는 답변을 회피했다.

 

1994. 8. 31
일본 무라야마 총리, 평화 우호 교류 계획 및 민간위로기금안에 관한 담화 발표.

무라야마 총리는 사회당의 진보적 입장을 반영하듯 취임 초에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성을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곧 ‘보상에 대신하는 조처’라는 기존의 정부방침을 답습하는 방향을 나타냈다. 그리고 일본 언론들은 국민모금을 통해 ‘아시아 여성평화 우호기금’을 조성하여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불할 것이라는 정보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8월 31일 무라야마 총리는 1995년 전후 50주년을 맞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발표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전후청산의 최대 현안인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여성의 명예와 존경에 큰 상처를 준 것으로 마음으로부터 깊은 반성과 사죄의 뜻을 나타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과거에 수없이 반복되어 온 발언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범죄를 시인하고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그 부담을 떠넘김으로써 문제의 성격을 왜곡했고 법적 책임을 회피했다. 생존자들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는 즉각 이에 대한 공식 항의와 반대성명을 발표했으며 일본에서도 민간단체들의 항의와 반대 행사들이 잇따랐다.

 

1996. 2. 26
유엔인권위 여성폭력문제 특별보고관 라디카 쿠마라스와미씨 ‘군사적 성적 노예제 보고서’와 부속보고서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발표.

유엔은 인권위보고서를 통해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국제법적 책임이 있음을 규정했다. 이 보고서에는 국제법 위반으로서 법적 책임을 다할 것, 피해자에게 개인 배상 할 것, 서면으로 공식 사죄할 것, 진실된 역사 교육을 할 것이라고 권고돼 있었다.

또 유엔은 ‘위안부’(comfort women)라는 용어가 피해자의 고통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군사목적에 의한 제도적 성폭행 피해자’(military sexual slaves)라는 용어를 채택하고 일본 정부의 피해자에 대한 보상 및 공식서면 사죄와 가해자 처벌 등을 권고했다. 앞서 있었던 ICJ(국제법률가협회) 보고서의 권고안이나 민간단체의 운동이 일본 정부에 주장해온 국제법상의 배상책임과 일치하는 권고안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법률적으로 우리나라가 받아들일 여지가 없는 것이다”라고 거부 입장을 표시했다. 또한 일본 정부는 교과서와 여타 교육자료들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협약에 부합할 수 있도록 공정한 방식으로 채택해라는 것에 대해서 “교과서와 여타 교육자료들의 내용이 공정하고 균형되게 유지되고 있다”며 일축했다.

 

2012. 12. 26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시작, 극명하게 갈리는 일본과 우리의 입장

아베 내각은 2012년 2월 말부터 검증팀을 꾸려 고노 담화 작성 과정 시 한일 간에 문안 조정을 했는지 등의 검증을 진행했다. 지난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 장관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다고 했었지만, 아베 내각이 발표된 담화 검증 결과에서는 일본군 위안소가 군의 요청에 의해 설치됐다는 내용과 일본군 위안부 모집 시 강제성이 있었다는 내용 등은 ‘한국과 조율한 것’이라는 설명이 들어갔다.

1993년 고노 담화에서 인정했던 사실을 두고 이토록 애매한 태도로 입장을 번복하는 것은, 마치 고노 담화 내용이 양국 간 정치적 타협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7일(수) 박근혜 대통령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한 정상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의 철거를 원한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는 지난해 ‘12·28 합의’에서 위안부 피해자 합의에 소녀상 철거가 포함돼 있다는 것을 일본 정상이 공식적으로 밝힌 셈인 것이다. 이렇듯 여전히 아베 정부는 전쟁 범죄에 대한 사죄와 배상 등을 요구했던 주변 피해국의 염원을 외면하고 있다.

 

1부에서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사건들을 역사순으로 정리해보았다.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몇십 년 간 똑같은 문제로 논쟁 했지만 우리는 어떠한 사과도, 사죄도 받지 못했다. 다음 2부에서는 10억 엔 출연금과 소녀상 폐지의 초석이 됐던 박근혜 대통령의 ‘12·28 합의’와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 1965년 청구권 협정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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