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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 없는 세상
  • 구연진 편집국장
  • 승인 2016.09.05 13:40
  • 호수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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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어린 소녀의 첫사랑은 담임선생님이었다. 소녀는 오랫동안 선생님을 그리워했고, 추억했다. 하지만 강산이 몇 번 변한 후 선생님과 연락이 닿고, SNS에서 언제든지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사이가 되자 소녀는 더 이상 선생님의 소식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앞의 어린 소녀는 나의 어머니다. 위 사례처럼 현재 세상에선 무엇이든, 누구든 찾을 수 있다. 굳이 찾기도 전에 알기도 쉽다. SNS의 스크롤을 아무 생각 없이 쓱쓱 내리다 보면 궁금하지도 않던 사람들의 안부를 순식간에 알게 된다. 더 이상 우리는 누군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지도, 생기더라도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호기심을 해결하고 나면 언제 궁금했냐는 듯이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다.

요즘 혼자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일지 모른다. 약속을 잡고 만나야 안부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안부의 홍수 속에 갇혀 피곤할 정도이니 말이다. 혼자 있으면서도 혼자 있는 느낌을 받지 못하니 어찌 보면 불쌍한 세대이기도 하다.

고등학생 시절 문학책에 있던 양귀자의 소설 <한계령>을 읽은 후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어린 시절 동무 박은자와 우연히 통화했다.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지는 추억들. 주인공은 동무를 보고 싶어 했다. 어디서 일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주인공은 동무의 일터로 발걸음을 떼지 못 한 걸까. 당시 나는 그 동무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깬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했다. 보고 싶은데 보기 싫다는 그 마음은 어린 내게 아리송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호기심은 무언가를 떠올리는 매개체가 된다. 그것은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고, 곧 그리움이 된다. 소설 속 주인공은 추억 속의 동무를 보고 싶어 하는 동시에 추억과 그리움과 호기심, 이 모든 것을 간직하고 싶었을 것이다. 동무를 보고 싶은 마음보다 자신의 호기심과 그에 파생된 모든 감정이 더 소중했던 것 아니었을까.

2016년, 더는 호기심이 필요치 않은 세상이다. 오늘 하루만큼은 밀물처럼 들어오는 안부의 홍수에 빠지지 않고 옛 추억을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호기심을 가지기도 전에 해결돼 버리는 것은 너무 아쉽지 않은가. 마음껏 상상해보고, 그리워하는 시간을 가지다 보면 더 많은 추억이 가슴 속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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