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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베노- 몽골'센베노'는 한국어로 '안녕'이라는 뜻이다.
  • 유희진 기자
  • 승인 2016.09.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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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은 원래 ‘용감한’이란 뜻을 지닌 부족명이었다. 그런데 몽골 부족이 칭기즈칸에 의해 통일된 이후 계속 발전해 나가자 부족명 자체가 민족명이 됐다. 몽골의 표준시는 한국보다 1시간 느리고, 인천공항에서 울란바토르 공항까지는 비행기로 약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대표적인 축제로는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나담축제’가 있다. 몽골의 수도는 울란바토르인데 몽골어로는 ‘붉은 영웅’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는 몽골인의 전통적인 주거지인 ‘게르’를 거의 찾아 볼 수 없고 근대적인 대건축물, 포장도로 등이 건설돼 청결한 도시로 변모했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해외봉사, 대학생 때 한 번쯤은 가봐야 하는 것이라고 주위에서 말한다. 그래서인지 나 또한 남들처럼 막연하게 ‘가고싶다’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확실한 동기가 없었던 나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공부 때문에 ‘나중에’라며 여러 번의 기회를 미루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1년 전, 하계 해외봉사를 지원하게 됐다. 지원한 이유는 단순히 시기가 적절하다고 생각했고 봉사보다는 외국을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었다. 그런 본심을 숨기고 지원서에는 내가 조금이라도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꽉꽉 채워 적었고, 솔직하게 적기보다는 과장하고 덧붙여서 적었다.

그 때 나는 서류는 당연히 합격하고 면접만 잘 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합격 연락은 없었고, 나는 서류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떨어진 거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왜 떨어진 건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해외봉사는 금방 내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그렇게 하계방학이 끝나고 학교를 다니던 나는 우연찮게 해외봉사를 다녀온 선배의 사진을 보게 됐다. 사진에 선배는 봉사지역의 아이들과 같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정말 개구쟁이처럼 웃고 있는 선배를 보고 순간 ‘얼마나 행복해야 저렇게 웃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진정한 봉사는 남을 도와주는 것을 넘어 그것을 통해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 나는 해외봉사를 꼭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됐고 1년 후 다시 지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1년 전 나는 정말 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부족해서 떨어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 더 행복해지기 위해 몽골로 해외봉사를 떠나게 됐다.

몽골로 가는 비행기 안, 나는 우연찮게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몽골인과 나란히 앉게 됐다. 그분은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나에게 몽골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줬다. 허르헉(몽골의 전통음식인 양고기 요리), 나담축제 등 외에도 몽골 사람들은 성격이 급하다는 등의 인터넷에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나는 그제야 몽골에 가는구나라는 실감이 났다. 새벽이 돼서야 몽골에 도착한 우리는 바로 버스를 타고 호텔로 갔다. 나는 피곤함도 느끼지 못한 채 버스 창문에 붙어 어떻게든 캄캄한 울란바토르의 거리를 볼 거라고 애썼다. 그렇게 몽골에서 첫날은 설렘으로 가득찼다.

 

본격적인 교육봉사
교육봉사 첫날, 우리는 아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서둘러 학교로 갔다. 아이들의 첫인상은 한국 아이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외모도 그렇고 옷 입는 것도 그렇고 그리 다르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통역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모든 팀의 소개가 이루어졌고 미디어팀인 나는 열심히 그 모습들을 영상으로 담았다. 아이들은 체육팀, 태권도팀, 음악팀, 벽화팀, 만들기팀 중 자기가 흥미 있는 팀으로 가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영상을 찍으며 나는 모든 팀들이 정말 준비를 열심히 했다는 것을 느꼈다. 체육팀은 줄넘기를 가져와 아이들과 함께 단체 줄넘기를 했는데 역시 몸으로 움직이는 활동이라 그런지 남자아이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줄넘기를 꼭 넘어보겠다고 끊임없이 도전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카메라를 놓지 못 했던 것 같다. 열심히 뛰는 아이들, 그것을 흥미롭게, 숨죽여 지켜보는 아이들, 줄넘기를 하려고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여러가지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태권도 팀에서 아랫막기와 돌려차기를 가르쳤는데 우리나라의 전통 운동이라 그런지 아 이들이 열심히 하는걸 보니 뿌듯했다.

음악팀에서는 ‘over the rainbow’, ‘작은별’ 등의 악보를 다 준비해와 핸드벨을 가르쳐줬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순서대로 줄지어 앉아 알록달록한 핸드벨을 들고 있는 아이들은 정말 천사 같았다. 절대음감을 가진 것처럼 핸드벨을 잘 흔드는 아이가 있는 반면, 모든 음에 핸드벨을 울리는 아이도 있었다. 맞는 듯 안 맞듯 한 그 모습이 순수하면서도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음악팀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쪼그려 앉아 한 명 한 명 개인지도도 해주며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그렇게 첫 교육봉사가 끝나고 모든 팀들은 노력봉사를 위해 밖으로 나갔다. 노력봉사는 달리기 트랙을 만드는 일이었는데 만들기에 앞서 트랙 모양을 잡고 벽돌을 옮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카메라만 들고 있던 나도 조금이라도 도와주기위해 벽돌을 옮겼다. 몽골 아이들도 그 모습을 지켜보고 고사리 같은 맨손으로 벽돌을 나르는 것을 도왔다. 혹여나 벽돌을 놓쳐서 발이 다칠까, 맨손이라 손이 까지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씩씩하게 옮기는 것을 보고 놀랐다. 벽돌을 다 옮긴 후 곡괭이와 삽으로 땅을 파고 벽돌을 넣으며 트랙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음 날부터 우리는 본격적인 봉사에 나섰다. 체육팀은 링 던지기를 아이들에게 가르쳤고, 태권도팀은 얼굴막기와 앞차기 등을 가르쳐줬다. 만들기팀은 첫날 이름표 만들기부터 해서 몽골국기와 한국국기가 그려진 모자 만들기, 한지로 여우, 토끼 가면 만들기, 자기 집 그리기 등 아이들이 정말 하기 쉬운 활동들을 잘 준비해왔다. 음악팀 또한 한 명 한 명 정성을 다 해 가르친 보람이 있는지 아이들의 핸드벨 실력이 점점 늘어가는 듯했다. 벽화팀도 쉴 틈 없이 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하며 벽을 채워나갔다. 그렇게 하루하루 모든 팀들은 봉사를 통해 아이들과 더 가까워지며 추억을 쌓아나갔다.

매일 교육봉사와 노력봉사가 끝난 후에는 모든 팀들이 모여 마지막 날 있을 클로징 세레모니를 위해 단체군무 연습도 했다.

 

아이들과의 작별
교육봉사 마지막 날, 우리는 몇 명의 팀원들을 모아 떡볶이와 김밥을 준비했다. 각자 역할을 맡아 음식준비를 도왔고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상상을 하며 즐겁게 만들었다. 떡볶이는 매운 음식이지만 양념된 것을 거의 못 먹는 몽골아이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최대한 맵지않게 만들었다. 아이들의 수업이 끝날 때쯤 음식이 다 완성됐고, 모여서 함께 음식을 먹었다. 아이들은 그래도 떡볶이가 맵다는 듯이 헥헥거리고 손을 부채질을 하며 먹었다. 하지만 김밥은 정말 나오기가 무섭게 맛있게 먹어치웠다. 식사가 끝난 후 아이들은 한국말로 ‘잘 먹었습니다’라며 우리에게 감사를 표했고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뿌듯하며 뭉클했다.

드디어 기숙사에서 마지막 날, 우리는 준비한 클로징 세레모니를 보여줬다. 태권도팀은 아이들과 함께 격파를 했고, 음악팀은 핸드벨 공연을 했다. 몽골아이들도 노래와 춤을 추며 우리에게 많은 공연들을 보여줬다. ‘붉은 노을’의 단체군무를 끝으로 몽골아이들과 작별을 해야 했다. 아이들도 마지막인 걸 아는지 쉽게 학교를 떠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같이 사진도 찍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작별 인사도 했다. 막상 정말 끝이라고 하니까 더 많이 못 놀아 준 게 아쉬웠고 더 잘해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서로 웃으면서 작별 인사를 해서 다행이었다. 

 

진정한 봉사의 의미
나는 미디어팀으로 가서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 봉사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팀들이 하는 것을 눈으로, 카메라로 다 담으며 많은 것들을 마음속에 새기고 왔다. 나에게 몽골에서 제일 좋았던 순간을 꼽아보라고 하면, 수많은 메뚜기 떼를 뚫고 제일 높은 언덕에 올라가 전경을 봤을 때도 아닌, 테를지 국립공원에서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별똥별을 봤을 때도 아닌, 학교에서 아이들과 소소하게 장난치고 웃으며 놀았을 때라고 말할 것이다.

누가 말을 걸 때 까지 절대 먼저 말을 건네지 않을 정도로 낯을 많이 가리는 나는 처음에 아이들이 약간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어색하게 있으면 아이들도 다가오지 못 할 거라는 생각에 용기 내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서로 말은 안 통했지만 내가 웃으면 쑥스럽게 따라 웃는 순수한 아이들이 너무 예뻤다. 아이들의 수첩에 얼굴을 그려주기도 하고 같이 웃긴 표정으로 셀카도 찍기도 하며 나는 내 나름대로 아이들을 놀아주려고 노력했다.

내가 뭘 하든 항상 호기심 가득하게 쳐다보고, 그러다 눈 마주치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거 같다. 아이들이 우리 덕분에 즐거웠다면 나는 아이들 덕분에 정말 행복했다.
나는 이번 봉사를 통해 진정한 봉사는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혹시 지금까지 봉사를 봉사시간만 채우기 위해 한 학생이나 봉사의 의미를 모르는 학생들이 있다면 앞으로 남은 학교생활 중 한 번쯤은 해외봉사를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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