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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의거가 일어나기까지...[역사카페] 먼 시간 가까운 역사 ? 3.15 의거 편 (1)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일제강점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만 나와도, 아니,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우리는 집에서, 신문에서, 책, TV를 통해서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가 있었고, 1950년에는 6.25전쟁이 있었다는 사실 즈음은 알고 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배워서 머리가 굵어지면 3.15의거가 뭔지, 4.19혁명이 무엇인지, 5.18민주화 운동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새삼스럽게 기자는 이 지면을 빌려서 역사공부 다 하고 수능치고 대학에 온 대학생들을 상대로 역사를 이야기 하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 여기서 신문을 덮고 이유를 맞추게 된다면 본 기자가 점심 한 끼 정도는 느긋하게 사줄 용의가 있음을 밝힌다. 물론 안보고 맞췄다는 증거자료도 같이 갖고 와야 한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올해는 경술국치 100주년,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6.25전쟁 60주년, 3.15의거 50주년 4.19혁명 50주년 5.18민주화 운동 30주년 등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10년 단위로 돌아오는 뜻깊은 해이다. 이러한 연유로 지금부터 1학기 동안 7차례에 걸쳐 독자 여러분들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그 첫 시작을 3.15의거로 끊고자 한다. 

 3.15의거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 있나? 이승만, 이기붕, 부정선거.. 더 많은 것들을 떠올린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 정도가 3.15의거와 연관되는 대표적인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아, 여기서 돌발퀴즈! 우리나라에서 국민들에 의해 쫓겨난 대통령은 총 몇 명인가? 그리고 그 대통령의 이름을 말해봐라. 정답은 이승만 1명이다. 박정희 (前)대통령은 총격으로 숨졌고, 전두환 (前)대통령은 정권 교체기에 물러났다. 반면 이승만은 국민들에 의해 해외로 하야를 결정했다. 또 하나 내볼까?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령을 기록한 대통령은? 정답은 이승만이다. 3대 대통령에 82세의 나이로 당선되면서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 된다. 또 맞춘 사람 있나? 애석하게도 선물은 없다. 쓸게 없어서 이런 질문을 내 쏟은 게 아니다. 이 질문들은 모두 3.15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3.15의거가 일어난 때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는 건국이후부터 1960년에 이르기까지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건국이후 우리나라의 현대정치 흐름을 파악하고 이해해야 할 필요가 분명 있고, 이 흐름을 이해해야 이들이 당시민중들에게 왜 욕을 먹었고, 왜 3.15부정선거에 국민들이 분노를 터트렸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 이후 '정치 라이벌' 백범 김구가 암살되자 이승만은 1948년 자신이 바라고 바라던 대통령의 직위에 오르고 입지를 단단히 다지게 된다. 6.25 전쟁 통에서는 정치적 반대파들을 견제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입지 확보를 위해 발췌개헌을 강행했으며, 1954년에는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유당이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와중에 1956년 정, 부통령 선거에서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민주당의 장면이 부통령에 당선되어 자유당과 이승만을 크게 압박했다. 일단 여기까지가 정치적인 흐름과 전개 스토리이다.

 당시 정치판은 서로 물고 뜯는 등 지키려는 쪽과 도전하려는 쪽의 싸움이 계속되었는데, 당시 민중들은 이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을 정도로 힘들고 고달팠다. 할아버지나 아버지께 한번쯤은 들어봤을 "우리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이때 이야기이다. 일제강점기 때 가진 거 다 뺏기고, 6.25때는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게 폭격으로 산산조각 났으며, 전 후에는 민생 복구는커녕 원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건 마치 뭐랄까? 집에 무장 괴한이 들어와 집에서 쫓겨났는데, 그나마 갖고 있던 돈은 길거리에 나다니던 깡패들에게 삥 뜯기고, 자신은 한 푼도 없는 빈털터리 신세가 되어버린 것으로 표현해야 할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부분이 농사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당시 미국의 막대한 밀가루 원조로 인해 수익보장이 어려워 진 밀농사가 폭삭 망해버렸고, 쌀이 귀해지자 정부는 쌀값을 일정 정도 위로는 받지 못하게 만들어 농사하는 농민들이 본전도 못 뽑게 만들어 버렸다.
이는 당시 그나마 재활의지가 있던 사람들마저 다시 주저앉게 만들어 버린 꼴이 된 것이다. 때문에 민생은 빈곤의 연속이었고, 이 현상은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은 채 계속 반복되어 갔다. 

- 다음 호에서 계속 -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자 최초로 국민들에 의해 하야를 결정했던 이승만 박사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이승만 박사를 애국자와 건국의 아버지로 보는 사람들은 '이승만 나름의 독립운동 활약, 북진통일 주장, 대한민국 민주공화국 건국의 주역, 뛰어난 외교력'등을 내세우는 반면, '이승만의 무능한 정치력, 미국에게 신탁 통치 요청, 김구 암살, 독재 시도' 등을 내세우며 이승만 박사를 매국자, 무능한 대통령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고등학교 국가교과서에 보면 "만약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으로 시작하는 글이 실려있다. "만약 이승만 박사의 권위가 조금만 달랐더라면"이라는 가정 하에 한국사를 다시 써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왜냐하면, 잘했든 못했든 이승만 박사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가운데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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