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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무관심은 암묵적 동의다
  • 서영진 기자
  • 승인 2016.04.0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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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일 이 되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뽑을 사람이 없어서 투표 안 해”, “변화는 필요한 것 같지만 나 하나 투표한다고 바뀌겠어?”, “정치? 머리아파. 높으신 양반들이 알아서 하겠지”.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가 치러지는 날 그저 귀찮다는 이유로, 뽑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참정권을 포기하는 이들이 있다. 또 누군가는 정치에 환멸을 느껴 투표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부의 정책과 일부 국회의원들의 작태에는 신랄한 비판과 비난을 가한다. 그런데 국민의 ‘주인 된 권리’인 선거권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않는 이들에게 국정운영에 대해 욕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오늘날 민주주의에서 선거권은 아주 중요한 권리다. 중·고교시절 사회시간에 배웠다시피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사회의 다원화, 의사결정의 효율성, 전문성을 위해 간접민주정치를 선택한 우리사회는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대표자를 선출한다. 유권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내건 공약들을 보고 어떤 공약들이 우리의 의견을 반영하는지 살펴본 뒤 가장 적합한 인사에게 표를 준다. 이 과정이 우리가 의견을 표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헬조선’을 외치며 현재 상황에 불만을 표하면서도 귀찮거나,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선거권을 행사하지 않고 무관심한 태도를 일삼는다면 생각이 짧은 것이다. 정치적 무관심은 결국 현재의 상황에 대한 암묵적 동의로 보아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OECD국가들의 평균 투표율은 71.4%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56.9%로 전체유권자 중 절반 조금 넘는 인원이 투표를 한다. 한국 최초의 투표인 1948년 5월 10일 제헌국회 총선 투표율은 95.5%로 오늘날의 두 배에 가깝다.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선거권 획득의 역사를 살펴보면 민주주의가 일찍이 확립된 국가들의 국민들은 성별, 신분의 차별 없이 선거권을 얻기까지 여성참정권운동, 차티스트 운동 등의 피의 투쟁을 경험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1948년의 제헌국회 총선 투표 때 남녀 모두 선거권을 얻었다. 투쟁은 없었다. 너무도 쉽게 평등한 선거권을 얻게 된 것이다. 쉽게 얻은 권리는 어느덧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무관심의 지경에 이르렀다.

현 정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투표하라. 후보들의 과거와 공약을 철저하게 살펴보고 가장 적합한 인사에게 표를 던져라. 적합한 인사가 없다면 무효표로 의사를 표현하라. 투표하지 않는 것보다 무효표를 던지는 것이 덜 비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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