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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불행
  • 구연진 기자
  • 승인 2016.03.1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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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행복과 불행이 공존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감정이라는 것을 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얼마 전, 우리대학 후문 쪽에 위치한 경상남도교육연수원 건물 울타리에 이러한 현수막 문구를 봤다. 어떤 공무원 단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국가는 어서 빨리 나서서 자신들의 행복을 책임져달라’는 의미의 문구였다. 그들이 공무원이라는 사실에 의문이 들었고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행복추구권’이라는 것이 있다. 그 뜻을 백과사전을 통해 설명하면 ‘고통이 없는 상태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상태를 실현할 수 있는 권리’이다. 행복의 종류는 수없이 많다. 그 수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 개인마다 행복의 기준은 다르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종류도 한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개인들의 행복을 국가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설령 공무원 단체가 어떠한 공동의 이익이나 만족이 있다고 해도 이는 국가가 나서서 책임질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가 채워야할 일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각 개인들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이다. 예를 들면, 다른 국가로부터의 침략에 굴하지 않으며 힘의 논리에 지배당하지 않고 국민들이 살아가는 터전에 치안 유지를 하는 것이다. 미시적으로 본다면 각 개인이 살아가는 데 있어 그 어떠한 고통 따위나 장애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나는 불행을 면하게 해줘야하는 최소한의 국가의 임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행복을 공통의 하나로 모을 수는 없지만 불행은 하나의 교집합으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의식주가 해결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불행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의식주가 해결되는 상황에서는 불행하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이 또한 하나로 모을 수 없다는 의견도 분분하며, 행복과 불행은 개인의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 의식으로는 의식주가 해결되지 못한 사람을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국가는 그러한 사람들에 한해 불행을 면하게 하는 도와주는 것이 최소한의 임무다. 국가는 우리 국민 모두의 행복을 책임져줄 수 없다. 그것이 설령 천국으로 가는 길일지언정 그것은 지옥으로 포장되어 있기 마련이다.

국가가 나서서 어떤 하나의 집단을 위해 행복을 책임져주는 순간, 또 다른 배부른 사람들의 아우성이 들릴 것이다. 그것은 또 연이은 책임을 낳아주길 기대하게 만들고, 끝없는 책임은 결국 국가의 파산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국가는 국민 모두의 행복을 책임지는 주체가 아님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국가는 보편적 불행을 면하게 하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하는 최소한의 의무를 가질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김태완/사회과학대·신문방송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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