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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밥상

 

지난 학기의 나는 집에서 밥을 자주 걸렀다. 입맛도 없고,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가 오후 늦게야 집에 돌아오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9시 수업인데도 늦게 일어나 무척 서둘렀던 적이 있었다. 정신없이 씻고 옷을 갈아입고 있는 내 뒷모습을 바라보며 할머니가 “밥은 묵고 가지” 했다. 속상함이 잔뜩 묻어난 목소리에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올랐지만, 당최 표현할 줄 모르던 못난 나는 무뚝뚝하게 “바쁘다”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도 평소와 같이 저녁을 먹기엔 늦은 시간에 집 대문을 열었다. 할머니는 신을 벗는 내게 어제도, 그제도 했던 질문을 똑같이 했다. “밥은?” 기대감이 서린 할머니의 눈을 보니 아침에 들었던 물기 있는 목소리가 떠올랐다. 밥 생각이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배고파” 했다. 할머니는 내 얘기를 듣고 반색을 하며 부엌으로 가 순식간에 푸짐한 한 상을 차렸다.

고슬고슬한 밥알을 입으로 밀어 넣으며 열심히 턱을 움직이고 있는데 할머니가 “맞다” 하더니 가지나물을 멀리 치웠다. 근처에 사는 이웃 할머니네 가족이 진주에 있는 작은 밭에 심은 가지를 수확 했다며, 우리 집에도 그 수확물을 보내왔다고 했다. 그렇게 가지 할머니가 선물한 것으로 나물을 했다는 이야기에 멀리 치워진 접시로 젓가락을 들이미는데 할머니가 걸쭉하게 한마디 했다.

“근데 가지가 우예 이리 소~철거지 같이 찔기노!” 넌더리를 치며 말하는 할머니의 모습과 처음 들어보는 ‘소철거지’라는 단어의 어감이 웃겨 밥을 먹다 한참을 깔깔거렸다. 조별과제와 서서히 다가오는 기말고사 준비에 날이 서 있던 마음이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밥상에 올라온 가지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웃의 근황까지 들을 수 있었다. 길을 오가면서 몇 번 부딪힌 가지 할머니의 몸에 커다란 문신이 있다는 것도, 햇빛 때문에 눈이 시려 요즘은 늘 선글라스를 끼고 다닌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날 이후로 집에서 밥을 먹을 때는 밥상이 어떻게 차려졌는지 꼭 묻는다. 그렇게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숟가락질을 하다 보면 배가 불러오는 것은 물론이고 찬거리 안에 스며들어 있는 할머니의 하루, 이웃들의 안부와 같은 사소한 소식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에게 할머니의 밥상은 단순히 배만 불려주는 존재가 아니다.

내게 할머니의 밥상은 맛깔 나는 손맛으로 허기를 채워주는 존재이면서 할머니의 하루, 이웃들의 안부를 전해주는 소통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 잘 차려진 밥상을 사이에 두고 할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해야 할 일들에 치여 뾰족하던 속이 다시 맨들맨들 해지는 게 느껴진다. 이렇게 굳어 있던 얼굴에 다시 은은한 미소를 안겨주는 할머니의 밥상은 지쳐서 식어 있던 마음을 다시금 따땃하게 데워주는 한 겨울날의 난로 같은 소중한 존재다.

 

김무경/사회과학대·신문방송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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