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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 허물어진 벽
 어릴 적 아버지의 직업은 기관사였다. 출퇴근 시간이 불규칙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며칠 동안 못 보는 일도 많았다. 특히 남들이 바다로, 강으로 떠나는 여름 휴가철이면 더 바쁜 아버지 덕분에 놀이 공원은 물론 근처 공원에 한 번 가보지 못했다. 그저 휴가철이 끝날 때 쯤, 할머니 집에 하루 가는 것이 휴가의 전부였다. 당시 너무 어렸던 나는 놀러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주 입이 삐죽 나와 있었고, 가끔은 떼를 쓰며 울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아버지는 부서를 옮겼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했다. 이제 여름 휴가철에도 바쁘지 않았고 마음만 먹으면 우리 가족은 놀러갈 수 있었다. 하지만 사춘기였던 나는, 어릴 적 기억이 반항심으로 바뀌어 가지 않겠다고 짜증을 부렸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잦은 아버지와의 다툼이 있었고 나와 아버지의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다. 이런 이유로 우리 가족끼리의 여행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아빠, 어디가’를 보면서 우리 가족은 크게 웃었다. 부모님도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하셨고 그 추억에 행복해 하셨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 쯤 아버지께서 나에게 한 마디 꺼냈다. 어릴 때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고. 아버지의 도움없이 바르게 자라줘서 고맙다고. 솔직히 그 말을 듣는 당시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진심으로 느껴지지도 않았고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방으로 돌아와 누웠다.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아버지의 미안하단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이제야 미안하다고 하는 걸까, 그땐 미안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온갖 생각이 더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 새 눈가가 촉촉해졌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보단 죄송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유도 모를 눈물이 흘렀다. 옆에 있던 폰을 들어 문자 메시지 창에 몇 글자를 적었다. 죄송해요 아버지.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 보내는 것일지도 모르는 문자 메시지. 그러고 보니 아버지와 통화를 한 적이 언젠지 기억도 안난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에 무관심한 딸이었다.
 난 다음날, 굳게 마음을 먹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반갑게 받아주셨다. 몇 마디를 주고 받았고 아버지와 나 사이에 존재했던 벽이 조금은 사라졌다. 숨 막히게 어색한 아버지와의 통화가 끝났다. 그러곤 학교를 갔다. 모처럼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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