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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소유물이 될 수 없다

우리는 각자 소유물을 갖고 있다. 내 지갑, 내 책, 내 가방 등......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소유관계에 익숙하게 된 나머지 실수를 범한다. 바로 사람까지 소유관계의 범주에 넣어서 내 사람이라고 규정짓는 것이다.
가족, 친구, 연인, 그리고 회사에서까지 그러한 소유관계는 이미 우리 사회에 은연중에 깊이 자리한다. 이를테면 사랑노래 중에서도 ‘내꺼 중에 최고’, ‘내 사람이라서’ 등 사람을 소유물로 두는 예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람을 소유물로 두는 심리를 내 나름대로 정의하면, 그 사람을 자신의 소유물로 둠으로써 그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규정한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소유물이 된 그를 내 맘대로 쉽게 부리면서 발생한다.
내 편이라고 생각한다는 게 물건처럼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이해심까지 기반에 두어진다고 착각해서 일까?
가까운 사람일수록 조심하라는 충고는 사람을 소유물로 둔다는 것이 오해되어 퇴색되고 만다.
앞서 말한 소유관계의 예들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면 우선 가족은 혈연관계라는 전제 아래 나의 소유물로 두고 타인보다 더 막중한 이해심을 기대한다. 서로에게 소유물로 얽힌 만큼 더 많은 기대와 또 그에 따른 더 큰 실망이 공존 한다.
이와 같은 성격으로는 친구, 연인도 비슷한 예로 풀이 될 수 있다.
위의 예 중 회사는 또 다른 차원의 소유 개념으로 문제점이 발생한다. 회사란 일한 대가로 보상을 받는 이해관계가 전제 하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회사라는 거대한 이익집단에서 소유물이 된 노동자의 운명을 어쩔 수 없다고만 봐야할까?
어떠한 예든 한 가지 계속 놓치고 있는 점은 그 소유물의 대상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른 동물·사물과는 다르게 사람은 고차원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는 점을 우리가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는 계속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성자가 아닌 이상 일반 사람들은 그 사고의 차이로 인해 오해가 생기고 나중에는 관계의 전반까지 흔들어 버리는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노릇인 것이다.
사람들은 사람을 네꺼, 내꺼, 소유물, 즉 물건으로 다루기보다 사고할 줄 아는 인격체로 존중함으로써 너무 과한 기대와 집착으로 비롯되는 오해와 실망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그 존중 방법으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사고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더 넓은 아량의 틀로 인간관계를 제고하는 것이 현대 사회에 만연하는 인간관계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가장 기초적인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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