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론 독자마당
2011 新 독립토사 청년원정대를 다녀와서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국가보훈처와 대학내일이 주관한 新 독립투사 청년원정대는 지난 7월 12일(화)부터 17일(일)까지 5박 6일간 중국의 동북 3성에 위치한 독립운동 유적지를 답사했다. 이번 원정대는 전국의 여러 대학생, 블로그 기자, 초등교사, 학보사 기자 등 모두 22명으로 구성되었다.

원정 첫째날,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목단강 공항에 도착한 원정대는 산시의 김좌진 장군 생가로 향했다. 중국에서는 마오쩌둥이 아니면 흉상을 만들어 세우기가 쉽지 않은데 김좌진 장군의 생가 터에는 장군의 흉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들은 장군에 대해 묵념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41세에 순국한 장군의 젊은 나이를 생각해보았을 때, '만약 그 때 죽지 않고 살아계셨다면 우리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숙소인 한중우의공원에 들어와 잠깐의 짧은 세미나에서 원정대의 답사일정과 각 조의 발표를 들으면서 독립운동에 대한 논의를 나누었는데, 이 논의는 남은 원정동안 많은 도움이 되었다.

둘째날, 도문관광단지에 도착했다. 두만강이다. 많은 조선족들과 중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원정대는 두만강에서 북한 땅을 바라보았다. 강 건너 북한이 보인다. 생각보다는 매우 가까운 거리다. 하지만 갈 수 없는 곳이다. 그 곳에서 사진을 찍어 보니 정말 멀게만 느껴졌다. 우리는 현대사의 뼈아픈 비극을 이 곳 두만강에서 또 한 번 실감했다.

셋째날, 용정시에 있는 대성중학교에 갔다. 대성중학교는 학교가 아닌 박물관으로 남아있었다. 이 학교는 일제시절 독립투사들을 많이 배출한 곳 중 하나이다. 특히 민족시인 윤동주와 통일운동가였던 문익환 목사가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곳이기도 하다. 특히나 윤동주 시인의 요절은 정말 안타깝게 느껴졌다. 또, 대성중학교 앞의 시비에는 그의 대표작인 서시가 새겨져 있다. 윤동주는 시를 한 번에 적는 시인이 아니었다고 한다. 조금씩 오랜 시간을 거쳐서 시를 썼다고 한다. 그가 서시를 쓰면서 '나한테 주어진 길을 가야지’라고 적었을 때 얼마나 많은 불안과 고통과 맞서 싸워야만 했을까? 그리고 그것을 이기고 주어진 길을 가겠노라고 다짐하는 그의 모습을 그려보며 독립에 대한 윤동주의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넷째 날, 오늘은 백두산이 우리의 주 무대가 된다. 사진과 영상으로 본 아득한 계단이 벌써 눈앞에 있는 듯했다. 조선인 현지 가이드는 1박2일 촬영 팀이 백두산에 다녀가고 나서 강호동의 기운이 너무 세서 그런지 장백폭포에서 천지로 올라가는 계단이 무너져 그 쪽으로 올라갈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들은 짚차를 타고 천지에 올랐다. 하지만 백두산 천지는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고 짙은 안개만이 뿌옇게 끼어 있었다. 백두산 천지는 10번 올라가면 2번 정도 그 대단한 광경을 볼 수 있다고들 하는데 이번에는 그 때가 아니었다. 백두산 천지는 우리에게 좀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스스로를 감추고 있는 것이라 위로하며 천지를 내려왔다.

다섯째 날, 지금은 옥수수 밭으로 변해버린 신흥무관학교 터를 바라보니 씁쓸함이 밀려온다. 이렇게 잘 자란 중국의 옥수수들이 그간 우리가 얼마나 독립운동사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나마 청산리나 봉오동, 명동촌은 예전의 모습을 기리기 위해 비석이라도 세워져있었지만,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신흥무관학교나 경학사 같은 곳은 이를 기억하기 위한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렇게 찾아와서 실제로 이 지역을 살펴보니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누가 기억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역사를 되돌아보면 역사의 결정권자는 언제나 민중이었다. 앞으로 21세기를 이끌어나갈 역사의 주인공은 우리라는 생각으로 애국지사들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봤다.

해림-연길-용정-이도백하-류하-심양에 이르는 지역을 통해서 원정대는 중국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으며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원정대가 걸었던 그 길에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끈 김좌진 장군과,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우리 독립군의 뜨거운 함성이, 민족시인 윤동주의 비장한 다짐과 애국심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셨던 항일무명영웅들의 외침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뜨거웠던 여름보다 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조상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이동했던 우리 원정대는 이러한 애국선열들의 정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우근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