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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와 차별 사이

 ‘차이와 차별’ 이 얼마나 식상한 주제인가? 그러나 왜 이 주제가 식상하게 됐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자라면서 차별은 나쁜 것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많이 듣는다.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가릴 것 없이 차별을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우리는 차별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얼마 전 다문화 가정과 관련한 강의를 들으러 갔었다. 강당에는 아이들이 앉아있었고 강사는 한가인, 빅토리아, 로버트 할리 3명의 사진을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이 중에서 외국인은 누구인지 물었다. 아이들은 단순히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로버트 할리를 꼽았지만, 사실상 로버트 할리는 하일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엄연한 한국인이다. 진짜 외국인은 중국인인 빅토리아다. 강사는 또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각각의 사진으로 순차적으로 질문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인종을 물었더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흑인이라고 대답했다. 다음으로 안젤리나 졸리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물었더니 아이들은 황인과 백인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질문에도 비밀이 숨어있었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의 아버지는 흑인 어머니는 백인이다. 안젤리나 졸리 역시 아버지는 백인 어머니는 인디언계 미국인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은 혼란에 빠졌다.
어릴 적부터 아이들은 차별하면 안된다고 배우지만 TV를 통해 영화와 만화를 보면서 흰색은 착한 색 검정은 나쁜 색이라는 생각을 내면에 품게 된다. 이것이 흑백논리의 시작인 것이다. 또한 우리는 학교에서 인종의 종류를 백인, 황인, 흑인으로 분화해서 배운다. 분명히 어폐가 있다. 우리는 차별을 하지 말라면서 차별을 가르치고, 차별로 구성된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에 가면 학년 별로, 사회에 나가면 재산 혹은 지위에 따라 나뉘는 차별로 가득한 세상에서 산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말로만 차별을 못하게 할 뿐 차별을 가르치는 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인 것이다.
완전한 평등은 불가능할 것이다. 개개인의 노력여하에 따라 대우받을 수 있는 자본주의의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선척적으로 타고나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차별을 하는 것은 너무 비인간적이지 않은가? 한국의 크레파스를 보면 살색이라는 색깔이 있다. 살색은 상아색보다 조금 더 주황색을 띄는 한국인의 피부색과 비슷한 색이다. 흑인에게는 검정색이 살색이고, 백인에게는 흰색이 살색이다.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우리는 흑백논리를 점차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작은 것에서부터 차별을 차이로 인식하는 법을 가르치고 배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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