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론 칼럼
기자일언
  • 강진주 수습기자
  • 승인 2012.05.07 16:48
  • 호수 0
  • 댓글 0

433호_기자일언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 공부를 하는 것,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몹시 지친다. 그러나 내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멈출 수 없는 숙명이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나의 은사님은 직업을 수행함에 있어 ‘소명의식’을 가져야한다고 하셨다. 은사님 스스로도 교사라는 직업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나태해지기 쉽고, 실제로 발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다. 그렇기에 진정 필요한 것은 내가 하는 직업의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고 싶은 직업을 찾는 것에서 ‘의미’에 대한 나의 집착은 시작됐다. 먼저 의미를 찾았던 것은 ‘공부’하는 것의 의미였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의 의미는 좋은 대학에 가서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공부를 하는 것의 의미는 ‘아하!’하는 기쁨이 컸기 때문이었다. 몰랐던 무언가를 알아가는 기쁨, 그것이 공부하게 하는 진짜 의미였다.

의미를 찾는 것은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도 크게 작용했다. 나는 마음을 쉽사리 열지 않았다. 그것은 나와 비슷한 친구를 찾는 것에만 매어있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친구는 쉽게 공감할 수 있고, 쉽게 마음을 열고, 안정적이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느낀 것은 친구를 사귐의 의미는 비슷함이 아닌 ‘좋아함’이었다. 그 친구를 진정으로 이해하며 간절히 좋아한다면 모든 차이는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매순간 의미부여를 하면서 항상 알 수 없는 의미가 하나있다. 그것은 바로 삶의 의미이다. 삶은 항상 선택과 후회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처절한 실패 전엔 모든 것이 다 쉽게 느껴졌고, 노력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삶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고, 무언가를 이룰 수 있게 하는 ‘노력’ 역시 그 일부분속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노력하는 걸 멈추기엔 내 삶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날개가 탈 것을 알면서도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흔들리는 삶 속에 뛰어드는 것뿐이다. 삶은 선택과 후회 그리고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돌아가는 것, 그걸 알면서 할 수 있는 건 불나방처럼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부여한 삶의 의미다. 강 진주 수습기자(jj_muse@)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진주 수습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