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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예'할 때, '아니오'를?사림대

 얼마 전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 2관왕 이정수가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출전을 포기한 것이 발목부상 떄문이 아니라 코칭스태프의 강압에 따른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용기 있다'가 아니라 '앞으로 선수생활 어떡해?'라는 생각이었다. 내 눈에는 그의 행동이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니라 철없는 행동으로 비춰진 것이다.

 초등학교 때 영화배우 유호성씨가 나와서 모두가 '예'라고 외칠 때 '아니오'를 외치는 광고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아니란 걸 아니라고 하는것이 어려운 것인지 몰랐기 때문일까?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아니라고 말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 부턴가 옳은 말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려버렸다.

 이것은 내 개인적이고 쓸데없는 깨달음이 아니라 세월이 가르쳐 준 귀한 가르침이였다. 과거 독립투사 및 민주투사들이 흘렸을 피, 그리고 그 가족들이 흘려을 눈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아니오'를 외치다가 큰 곤욕을 치른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또 지하철이나 바다 등지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러 뛰어들었다 세상을 등지게 된 분의 가족들을 볼 때면 또 한 번 나는 다짐을 한다. 이들이 한 살 한 살 먹어갈 수록 주위의 더 많은 이해관계를 갖게 된 나에게 '섣불리 감정적으로 생동했다간 큰일 난다.'는 가르침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사실 그렇다. 몇번이고 '아니오'라는 말이 치밀어 올랐지만 나도 알수없는 엄청난 인내심으로 조용히 삼킨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내 스스로에게 실망해서 밤을 샌 기억이 있다. 그럴 때면 내게 본의 아니게 깨달음을 주신 그분들이 과연 나보다 생각이 짧아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 알면서도 틀린 것을 바로 잡는 것을 막을만한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목숨까지 내 놓았던 것이다.
 
 용기. 참 쉽게 쓰지만 생각보다 꽤 어려운 단어이다. 하지만 그들의 무모한 용기가 오늘날 우리를 살게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을 보며 다시 한 번 내 양심과 대면하게 되고, 그들을 보며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것을 느끼고, 그들을 보며 또 다시 용기를 내 본다.

 올해로 4.19 혁명 50주년이 되었다. 몇 주년이 뭐가 중요하겠냐마는 이것을 계기로 아닌 것을 아니라고 외쳤던 그들의 숭고한 뜻을 한번 더 되새겨 보는 건 어떨까. 판단은 스스로가 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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