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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마이 글로리데이
  • 구연진 편집국장
  • 승인 2016.05.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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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이 됐다. 비좁은 책상에서 자유를 갈구하기를 12년. 이 자유만 얻으면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날 것이라 철썩 같이 믿었던 시간들이 결코 헛된 날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 치고는 꽤 시시하고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의 연속이라, 어른이 이렇게 별 것 아니었나 허탈해있던 시점에서 반환점이 된 계기가 하나 있었다.

바로 한 달 전에 본 <글로리데이>라는 영화이다. 스물이 된 네 명의 친구가 입대하는 친구를 위해 포항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위험에 처한 여자를 구하면서 시비에 휘말리게 되고, 순식간에 사건의 주범으로 몰리게 되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뜨거웠던 우정을 지닌 친구였고, 여행을 떠난 하루는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날이었지만 ‘진실’을 묵인하고 ‘거짓’을 강요하는 어른과 사회로 인해 네 명의 스무 살은 잔뜩 구겨져버린다.

처음에 아이들은 잘못한 것이 없으니 당당한 모습을 취하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누군가 책임을 지기를 바라면서 점점 끔찍한 어른이 되어간다. 그 과정을 보면서 단순히 ‘어른들이 너무 나빠!’라는 생각보다는 그저 아이들을 꼭 안아주고 싶었다. 결국 영화는 마치 소설 ‘운수좋은 날’처럼 아이러니한 결말을 맺게 되는데, 이들을 보듬어 주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들은 one way trip(편도 여행_이 영화의 영문 제목이기도 하다)이 아니라, 돌아올 곳이 있는 멋진 여행을 다녀왔을 것이다. 그리고 진심을 들어주는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들의 글로리데이는 아이러니가 아니라 추억이 되어 남은 청춘을 함께 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성인이 돼서 본 것이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스무 살이 된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법적으로 증명된 ‘어른’이 됐고, 이제는 나보다 어린 아이들을 바른 세상으로 인도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하는 ‘어른다운 어른’이 돼야 할 의무가 생겼다. 정말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짐이 점점 무뎌지기도 하고, 세상이 이런데 어쩔 수 없지 라고 타협하며 생각으로만 그치는 보통 어른의 표상이 되지 않을까 점점 두려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아이로 살아갈 수는 없다. 나는 이미 성장했고, 이제는 이 시대를 책임 질 어른으로서 크고 단단하게 여물어야 할 시기에 접어들었다. 나는 내가 책임져야 할 ‘무언가’와 ‘누군가’를 멋지게 지켜내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리하여 좋은 어른이 되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그리하여 좋은 아이를 길러내는 부모가 되는 삶을 살 것이다.

이제는 나를 책임져 줄 이는 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로부터, 그리고 사회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았었던 미성년의 시간, 나의 글로리데이와 작별해야한다는 사실에 슬프기도 하지만, 영광스러운 날은 삶에서 단 한번으로 끝나진 않는 법이다. 어른의 출발기로에 있는 스물을 달리면서, 더 찬란한 글로리데이를 맞이 할 준비를 해야지. 굿바이 마이 글로리데이, 헬로 마이 글로리데이.

김도영/자연과학대·간호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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