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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의 올바른 시각과 의미

최근 ‘힐링’이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가 청춘에게 힐링을 불어넣자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한동안 인기를 누렸다. 미디어들도 이를 잘 반영한다. SBS의 ‘힐링캠프’와 JTBC의 ‘김제동의 톡투유’는 전형적인 힐링 프로그램이다. 특히 김제동의 톡투유는 대한민국 청춘들에게 진로, 연애, 면접 등 막막한 세상에 대한 해법 제시를 주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대부분의 청춘들은 “면접시험에서 떨어졌어요”, “데이트를 하려는데 돈이 없어요”, “세상이 저한테만 너무 박한 것 같아요” 등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힐링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말이 되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은 바람직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청춘들에게 삐뚤어진 시각을 그대로 옮기면서 해법과 관련된 단어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프로그램의 패널인 최진기 씨는 “연애는 결혼의 전제이고 결혼은 사회유지에 필수적이니 결국 연애부터 국가가 책임지라”고 이야기한다. 연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라고 주장하며 “연애비용을 국가에서 대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뱉어낸다. 그의 다음 논리도 어처구니가 없다. 세상의 모든 악이 자본주의로부터 출발한다며, ‘경쟁’ 그 자체의 의미를 상실감을 만들어내는 것, 취업에서 멀어지는 것, 연애와 결혼을 못하는 것 등 이 모두를 자본주의를 탓하는 결론으로 끝을 낸다.

자본주의와 경쟁은 약자에게도 똑같은 기회를 주는 체제임이 당연하다. 왜 모르는가? 경쟁이 치열하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하는 경쟁은 동물들의 경쟁이 아니다. 영합(Zero Sum)의 과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전남대 김영용 교수는 동물과 사람의 경쟁 차이를 혼동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동물 사회의 생물학적 경쟁은 먹이를 둘러싼 적자생존의 투쟁이며 패자는 곧바로 폐기된다. 그들의 경쟁은 목숨을 건 공격과 방어의 싸움이며, 승자가 얻은 몫과 패자가 잃은 몫을 합하면 영(Zero)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교환과 분업을 바탕으로 한 인간 사회의 경쟁은 상호의존적이며 사회구성원들을 협동으로 유도한다. 경쟁에서 패한 자는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차지하려고 의도했던 최선의 위치로부터 차선이나 차차선 등 자신에게 더 적합한 위치로 배치된다. 즉 경쟁으로 희소한 자원이 적재적소에 배분되는 양합(Positive Sum)의 게임이다. 이처럼 사회적 협동을 이뤄낸다는 점에서 동물 세계의 경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말이다. ‘정글’이 아니다. 인간 사회에서 양합의 게임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풍요함은 있을 수가 없다. 정글이라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고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와 경쟁이야말로 사람들을 공정한 룰에서 경쟁하도록 하는 체제다. 가장 많은 인류를 기아와 빈곤에서 구출해낸 것도 자본주의다.

더 웃긴 것은 자본주의를 맹렬히 물어뜯는 자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최대 수혜자라는 것이다. MC 김제동과 최진기 씨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논리대로라면 승자독식이야 말로 이들 스스로에게만 맞는 말이 아닐까.

더 이상 한 사람의 고민을 체제의 탓이니 국가의 탓으로 돌리지 마라. 반자본주의, 경쟁을 피하라는 식의 해법 함정은 한 사람을 패배의 수렁으로 빠뜨리기 마련이다. 그들 스스로가 짊어져야하는 무게를 더 무겁게 만들지 말라는 말이다.

김태완 편집국장 beeori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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