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론 칼럼
줏대가 없어, 줏대
전공 시간에 교수님이 의견과 교육을 잠깐 언급하셨다. ‘서양에서는 아이들에게 주관을 심어주는 교육을 시킨다’며, ‘너네는 어땠니?’하고 교수님께서 질문을 던지셨다. 개개인의 의견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옆의 사람과 같은 의견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덧붙이시면서. 그때 영화처럼 머릿속에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둘씩 짝을 지어 앉은 교실이었다. 붉은 커텐이 걸린 초등학교 3학년 교실은 온갖 미술용품으로 가득했다. 그날의 주제는 빈칸에 색깔 채우기였고 아이들은 수채물감이 묻은 붓을 하나씩 손에 쥐고 있었다. 나와 내 짝도 그 아이들과 같았다. 내 팔레트에 묻은 물감은 보라색과 파란색 쪽의 푸른 계열이었고 내 짝은 노랑색과 빨강색이었다.
아이들은 선생님 지시대로 프린트 된 a4용지에 색을 입혔고 선생님은 교실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코치했다. 선생님이 내 앞으로 왔을 때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너도 네 옆에 ○○이처럼 밝은 색으로 써라, 다른 애들들도 다 그래.” 난 부끄러워하며 내 팔레트에 노란색과 빨강색을 덜어냈다. 생각하면 정말 웃긴 상황이지만 그땐 왜 그렇게 부끄러웠던지. 선생님의 그 말 한마디에 그 아이와 다른 내가 정말 한심하고 창피했다. 어린 내 세상에서 선생님이란 존재는 단 하나밖에 없는 어른이었다. 그런 어른은 내게 그 아이와 같아져라 종용했다. 지금의 나라면 “거참, 이런 색 쓸 수도 있지, 별걸 다 주문하시네요”라고 대꾸해줬을 것 같다.
유치원에서 산을 그리랬더니 빨강색으로 세모를 만든 내 동생 얘기도 있다. 선생님은 혹시 동생의 정신에 이상이 있나 걱정했지만 동생은 그저 단풍이 물든 산을 그렸을 뿐이었다. 산을 무조건 초록색으로 칠하란 법이 있나. 동생은 선생님의 걱정 속에서도 꿋꿋이 빨강으로 산을 물들였다. 내 또래 아이들은 남들과 다르다고 무조건 맞추려 애쓰거나, 혹여 정신에 이상이 있는지 생각한 선생님들 밑에서 배웠다. 이런 우리들이 커서 어떤 사람이 됐을까?
야권에 안철수가 정계에 입문한 지 한 달도 안 됐을 무렵이다. 어쩌다 정치 얘기가 나왔고, 난 내 친구에게 대수롭지 않은 물음을 던졌다. “넌 왜 안철수를 지지하니?” 그 친구는 그저 눈만 끔뻑일 뿐이었다. 그리고 한참 있다 “‘남’들이 다 지지하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냥 좋아서, 야권이라서, 젊어서, 원래 존경하던 사람이어서…. 그 많은 이유 중에 친구가 하필 내놓은 답은 ‘남’이었다. 어려운 자리에서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 하나 자기 의견 없이 남을 따라가다니, 충격이었다.
줏대 없는 사람은 조종당하기 쉽다. 영유아기부터 줏대 없이 배워온 우리는 이 세상에게 얼마나 조종당하고 있는 걸까? 정말로 생각하기 싫은 물음이다. 부디 줏대 있는 대학생이 되길 바라며 안철수를 지지하는 그 친구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다. “‘네’가 좋아하니까 지지하는 거지!”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재흔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