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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 배움 그리고 관계오피니언

 관계가 어렵다. 왠지 나는 어렵다. 얼마 전,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붙들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나직이 물었다. “엄마의 장점이 뭐야?”, 즉각 답이 왔다. “시험 못 쳐도 야단 안치는 거”, “그러면 단점은?”, 아이 왈, “잘 생겼다. 남자 같다. ㅋ”, “또?”, “이중인격자!”, “이중인격자? 엥! 아하”,  집히는 게 있었다. 엄했다가 짧은 시간에 금방 나긋해지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속에 담아둔 아이의 입 밖의 말이다. 근데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보다. 고교에서 강의를 끝내고 만났던 한 선생님도 그랬다. 반 학생들이 본인을 이중인격자라고 부른다고 했다. 목소리로 보아 별로 기분 나쁘지 않은 듯했다. 그럼 여기서 이중인격자는 유머다. 그 선생님도 나도 기분 나쁘지 않은 유머. 유머는 좋은 관계에서 가능하다. 그들은 버겁지 않은 관계다.

 가르침과 배움은 둘 이상의 걸림이 있는 관계다. 끼어들어 아우르기가 쉽지 않다. 하나가 끼어들면 삼각관계가 된다. 어디서든 삼각관계는 어렵다. 그런데 둘 다를 위하는 뭉쳐주고 뒷받침하는 관계의 역할이라면 해볼 만하다. 수업은 가르침이 있고 배움이 있다. 지식이라는 공을 굴리는 경쟁의 도가니. 여기에 중재할 것이 제법 있다. 그래서 해볼 만하며 큰일이다.

 “안녕하세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를 자주 말한다. 얼굴도 보이지 않는 전화기에 대고 꾸벅 인사도 한다. 교수자와 학습자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곳이 아닌가. 교수지원 따로 학습지원 따로 바쁘지만 한 생각에 모여 있어 둘 다 아우를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다분히 전투적인 목소리도 만난다. 첫 대면이다. 그러나 전화를 끊을 때만은 부드럽다. 작은 움직임이다.

 움직임은 변화다. 센터는 수요자가 원하는 것을 낚아 움직임을 낳아서 물 흐르듯이 변화를 이끄는 곳이다. 남의 몸은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단지 변화에서 멀어지는 것이 어렵다. 그런 좌절을 몇 번이고 다시 겪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두렵지 않다.
 
사랑이 있는 수업이면 좋겠다. 상호 풀림이 있고 봉하여 잠그지 않는 공간이면 더 좋겠다. 마음에 차지 않아도 금방 풀릴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곳. 학문은 곧 자기수양의 길이라고 했는데 자기수양을 위한 내용의 학문이 주를 이루던 옛날에도 군자가 없던 것을 한탄했다.
아마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교육을 받는다. 예의를 갖춰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 강사는 답을 하면서 다르게 해석하여 비판 있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아는 만큼 알아듣고 알아들을 만큼만 반응한다. 

 더 앞서 배운 사람이 앞장서기 쉽다. 우수한 학생, 관계를 잘하는 사람대하기는 누구나 한다. 좀 안 되는 사람, 잘 못하는 사람, 덜 친근한 사람도 관계 맺기에 성공해보자. 공부 잘해서 성공한 학생 많이 봤지만 상호작용에 애쓰는 사람이나 성공한 사람 귀하다.

 이상적인 인격체인 군자는 잘은 몰라도 관계의 달인이다. 자기수양은 관계를 잘 만든다. 대학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학문이 널려있다. 어렵지만 군자를 만나기도 쉽다. 우리는 배움 안에 더 가까이 있는 사람이고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수양, 곧 좋은 관계하기에 물들기 쉽다.

임미경_교수학습지원센터 전임연구원

이 난은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표명하는 공간입니다. 의견을 개진하고 싶은 대학구성원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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