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버지와 나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그래서 극장에서 상영한다면 필요한 몇 몇 장면이 빠진 싱거운 영화가 상영되겠다고. 하고 싶은 말은 대부분 마음으로 삼켰기에 어쩌면 무성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고. 나는 서러워졌고, 그럴 때마다 더욱이 아버지에게서 발걸음을 돌렸다. 

 가정 내의 사정으로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살지 못하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물론, 그 시간들이 결코 불행하다고 말 할 수 없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들의 품 안에서 나를 따스하게 보듬어 주었고 그 곳에서 나는 자주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한 달에 몇 번 만나는 아버지는 늘 내게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고, 미안하다는 말을 직접 하지 못하여 늘 내 곁을 빙빙 돌기만 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보면 어지러웠고, 나도 함께 빙빙 돌았기에 우리는 22년의 시간 궤도 안에서 좀처럼 마주칠 수 없었다.
8월이었다. 참 덥지 않은 여름이었다. 술에 잔뜩 취한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고, 고민하며 받은 전화에는 한 동안 자동차 소리같은 도시의 소음만 들렸다.

 “... 아빠가 많이 미안해. 그리고 내가 너 사랑하는 거 알지? 아빠가 너무 강한 척만 하고 살아 온 거 같아. 이제 나도 늙었나봐. 점점 약해지려고 해. 그래도 이것만 알아둬. 내가 우리 딸은 꼭 지켜줄게.” 살면서 그러한 수줍은 고백은 처음이었다. 나는 어떤 말도 못하고 웃기만 하였다.

 분명 덥지 않은 여름밤이었다. 일기예보에서는 기온이 올라가지 않아 이상 기후 현상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그 날 밤, 나는 무척이나 더워 잠을 이루지 못 하였다. 살면서 그런 수줍고도 멋진 고백은 처음이었거니와 그러한 열대야는 또 처음이었다.
그 전화 때문만은 아니지만, 요즘 아버지는 전보다 덜 미안한 표정으로 그리고 더 다정스럽게 내게 말을 걸어온다. 더 이상 빙빙 돌지 않고 힘든 딸을 위로하는 여느 아버지들처럼 내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도 들어 준다. 여전히 나는 표현이 서툴지만, 아버지의 어색한 농담 속에 ‘우리들만의 표현’을 배운다. 

 오래 전부터 사실은 당신을 참 많이 사랑했다는 말을 하기에는 아직 나는 너무 수줍다. 하지만 언젠가 이 말을 하게 되는 날에는 우리의 영화가 결코 슬프지 않을 것임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되뇌이고 되뇌인다. 요즘 날씨가 참 춥다. 아버지께 감기 조심하시라고 안부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

김달님/사회대·신문방송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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