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론 칼럼
문화재는 어렵다!오피니언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고고학을 공부한지 십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문화재에 대한 인식은 많이 변한 것 같다. 최근에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어릴적부터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남긴 문화재를 소중히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고 배워왔으며 그렇게 알고 있다. 얼마 전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탔을때는 모든 국민들이 안타까워 하였다. 

 그러나 현실속의 문화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너무 다르다. 10여년전 처음 고고학을 접하고 발굴조사를 나갈 당시엔 마을 사람들이 우리 마을의 역사가 이렇게 오래되었구나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 조사원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그러나 요즘은 어떠한가? 

 자신의 소유지에 문화재가 있으면 땅값이 떨어진다고 한다. 개발의 저해요소라고 알고 있다. 2008년 충남 당진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문화재 발굴조사 때문에 반도체공장설립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시행업체 측이 중장비를 동원해 발굴조사 현장을 무단으로 파괴했던 것이다. 시행업체는 500억원 상당의 수출 계약이 체결되었는데 문화재 때문에 공장건설이 자꾸만 지연되고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그랬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는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창원·마산지역에서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창원시 동읍 다호리유적 주민은 2,000년전 조상들이 후대사람들을 못살게 한다고 한다. 다른 곳은 땅값이 오르고 개발이 잘 되는데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어 발전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마산 진동유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택지개발을 하려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청동기시대 고인돌유적이 확인되어 보존된 진동유적, 공원을 만들려다가 보존된 창원 서상동 남산유적, 조선시대 창원의 중심지였던 창원읍성이 있는 소답동 주민 역시 문화재가 개발을 방해하는 애물단지라고 한다. 

 성산패총은 어떠한가? 1970년대 국가산업단지 조성에 필요한 토취장부지로 사라지려고 했던 성산패총의 언덕은 야철지의 존재로 인해 살아났다. 당시 건설부에서는 반드시 없애서 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문화부에서는 보존하자고 하여 정부의 부처간 실력대결로 가는 등 큰 이슈였다. 당시 정부는 성산패총을 2000년전에 철을 제련하는 야철지였으므로 오늘날의 창원에 기계공업단지를 건설하는 것은 숙명이다는 정책홍보를 위한 존재로 이용되었다. 성산패총이 공장지대의 섬으로 남아 있지만 어쨌든 남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얼마 전 문화재조사차 갔을 때 일이다. 마을 회관에 모여 있는 어르신들께 ‘어르신 이 마을에 혹시 옛날 무덤이나 그릇조각 나오는 곳이 있나요’ 라고 물었더니 버럭 화를 내시며 ‘그런 것 이 마을에는 전혀 없으니 빨리 가라’ 고 했다. 한 할머니가 ‘마을 이장이 땅값 떨어진다고 절대 알려주지 말라’ 했다고 한다. 몇 년전에는 상상도 못했는데 무엇이 이렇게 변하게 했을까?

 이처럼 문화재는 너무 어렵다. 고인돌이 논 한가운데 있다. 기계로 농사를 짓는 요즘은 이 고인돌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문화재가 소중하고 아끼고 가꿔야 한다고 배웠지만 현실은 논 한가운데 있는 고인돌일 뿐이다. 아마 이 고인돌은 조만간 포크레인으로 사라질 것이다.  흔적도 없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수천명의 사람들이 책의 숲속을 거닐던 모습이란…. 수도에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기술과 경제를 얘기할 때 문화를 잊지 말자. 부동산을 논하더라도 정신적인 재산을 잊지 말자.


김주용_우리대학 박물관 학예연구사

이 난은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표명하는 공간입니다. 의견을 개진하고 싶은 대학구성원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주용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