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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를 아나운서로 만들었나?[Inter+View] 마산MBC 아나운서 김형신(기계공학과 87) 동문을 만나다

 그를 만난 것은 24일 3시 15분 마산MBC 1층 로비였다. 기자는 약속시간 보다 40분 먼저 로비에 도착하였다. 만나기로 한 3시15분 되었다. 그때 뒤에서 기자의 이름을
 부르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그가 웃으며 다가왔다. 그렇게 마산MBC 로비에서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우리학교 기계설비공학과를 나온 그는 어떻게 아나운서가 된 것일까? 그의 대학시절 무엇이 그를 어떻게 아나운서의 길로 인도하게 된 것일까? 수없이 많은 물음들이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천리 길도 한걸음 부터'란 말이 있듯이기자는 그가 왜 아나운서라는 진로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앙라내기 위해, 우선 차근차근 머릿속 질문들에 대해 답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의 20대 대학시절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었다.

 연구원을 꿈꾸던 그...

 "나의 20대라.... 나의 20대는 많이 아팠었지..."

 뜬금없이 아팠다는 그의 말에 기자는 적잖이 당황했다. 도대체 무슨 뜻인걸까?
 
 "고등학교 다닐 때 내가 공부를 좀 잘했어. 서울에 있는 대학을 목표로 했지. 집, 학교, 도서관, 집, 학교, 도서관밖에 모르는 학생이었지. 그런데 시험성적이... 결국 목표한 대학은 고사하고 그나마 생각이 있었던 다른 대학에도 못갈 판이 된거야. 그래서 난 결국 재수를 하기로 마음먹었어."

 재수?! 그래서 20대 때 아팠던 건가? 생각했던 거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는듯 했다. 그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재수하기로 마음을 먹긴 먹었는데 재수 학원에 들어가서 다시 죽어라 공부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너무 괴롭고 억울했어. 그리고 대학생활이 어떤 건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창원대에 가서 한 학기 동안 생활해 보기로 했지. 그래서 우리대학에 그 당시에 제일 지원을 많이 해주던 이공계계열 쪽으로 진학을 하게 된거야. 내 꿈은 워래 유전학이나 생물학 연구원이 되는 것이었는데. 어차피 한 학기만 다니고 그만둘건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이었어."

 연구원이라니..... 도무지 아나운서와는 전~혀 맞지 않는 직업이 아닌가..? 그가 왜 아나운서가 되었는지는 점점 알 수 없어져 갔다. 나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입학을 했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고등핵교에서 대학교로 올라오니까 너무 자유롭고 신선했어. 처음 입학했을 때는 어차피 반수 할 거니까 이것저것 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공부보다는 동아리 생활에 집중을 했어. 그떄 시작한 동아리가 지금의 창원대학교 방송국이었지... 그렇게 방송국에서 아나운서 겸 보도기자로 활동을 하게 되었어. 내가 목소리가 좀 좋았거든. 방송국 아나운서로 일 하면서 뉴스 앵커들이 말하는 걸 모니터링 하면서 따라 하면서 연습도 많이 했지. 그런데 내 마음속에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어. 바로 한 학기만 하고 바로 자퇴를 할 생각이었는데... 이게 너무 재미있다 보니까... 그게 안되는거야... 많은 고민과 방황을
 했어. 주위에서는 '이미 대학에 왔는데 왜 그만 두려 하느냐' , '정 서울이 목표면 대학원을 그쪽으로 진학해라' 라며 내 결심을 흔들었지. 그래서 결국 학교를 계속 다니기로 했지. 그래도 후회같은건 없어. 학교 다니면서 많은 경험도 하고 사람도 사귀고 했으니까. 즐거웠지"

 그렇게 그의 20대 대학시절 이야기가 끝나갔다.... 아직 그가 왜 아낫운서가 되게 되었는지 알 만한 단서라곤 방송국활동을 했다는 것뿐이었다. 기자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나운서가 된 계기가 무엇이냐고.

 국어자선 김형신 '자결과 장녈 사이'

 "아나운서가 되게 된 계기? 그런 물음을 물을 때마다 난 항상 이렇게 이야기를 해. '내가 아나운서가 되게 된 계기는 고2 국어시간 때 있었다'고 말이야"

 솔직히 대학방송국 일을 하면서 이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던 기자였기에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고2 국어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가 서울에 살다가 이사를 왔거든? 그래서 쭉 표준말을 썼어. 고등학교 때도 그랬지. 고등학교 때 별명이 국어사전 김형신이었지. 고2 국어시간 이었어. 그때가 기행문을 배우는 첫 시간이었지. 마침 국어 선생님꼐서 나에게 들을 읽어보라고 하셨지. 난 자신 있게 읽었어. 지금도 그 문장이 생각나 '작열하는 태양....' 이었지. 문장을 읽는데 성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뭐어? 태양이 자결했다꼬? 그럼 세상이 어두워져서 어떻게 사노?' 라고... 일순간 교실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어버렸지. '작열'을 읽으면 '장렬'인데 내가 실수로 '자결'로 읽어 버린거야. 얼마나 부끄럽던지. 그 날 이후로 올바른 발음을 위해서국어사전을 찾는 습관이 생겼어. 뉴스 앵커들 발음도 유심히 듣는 버릇도 생겼지. 그래서 난 그 일을 내가 아나운서가 된 계기라고 생각해."

 전화위복. 한 순간의 부끄러움 떄문에 자신을 더욱 발전시켰다. 다른 사람들 같았다면 분명히 자신에게 읽으라고 시키신 선생님을 원망했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이야기에 빠져들면 들수록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는 왜 아나운서가 된 것일까? 결국 기자는 그에게 대놓고 묻기로 했다왜 아나운서가 되었나고...

 "어떻게 아나운사가 외었냐구? 굳이 꼭 아나운서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 솔직히 말해서 운이 좋아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라고 생각해. 내가 20대 때 아팠다고 했지? 20대 때 아팠던 것 중에 아마 가장 힘들었던게 어머니의 암 투병 이었을 거야. 그렇게 졸업을 하고 바로 취직을 해야 했어. 그래서 대기업들에 원서를 넣었지. 마침 그때 마신MBC에사 수습 국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았ㅈ지. 그래서 지원하게 된 거야. 그렇게 시험을 쳤어. 그런데 운 좋게 대기업 한 곳하고 마산MBC 둘 다 붙었지. 어디를 갈까 고민 끝에 아나운서가 되기로 한거야. 대학시절 방송국 활동의 영향이었지."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가 품었던 많은 의문들이 해소 되었다. 기자는 왠지 모를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들었다. 그가 그저 기계공학과를 나와서 어떻게 아나운서가 되었는지 만을 생각했다. 그가 왜 아나운서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기자는 그저 아나운서라는 직업의 단면만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가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서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이 길을 택했다고 생각해 버린 것이다.

 대학생만이 할 수 있는 일

 마지막으로 기자는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느냐고 물었다.

 "지금의 대학생들을 보면 너무나 슬퍼... 지금의 대학은 과거의 상아탑이 아니야. 이제 그저 취업을 위한 학원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대학생들도 취업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겨워하고 있는 것 같아. 대학이란 열정과 패기 그리고 끝없는 도전의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지. 대학 와서 취업준비와 공부만 한다면 그게 대학오기위새 자유를 내버린 고등학교와 뭐가 달라? 억울한 일이지 그래서 나는 대학생 때 많은 경험을 쌓으라고 말하고 싶어. 대학생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 대학생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으니까. 그러니까 대학생 때 다 해봐야하지 않겠어? 그렇다고 자신의 목표를 등한시 하라는건 아니야. 많은 경험들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확고히 하고 목표가 확고해졌을 때는 앞뒤 가리지 말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느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대학교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학의 이름에 얽매이지 말라는 거야. 어떻 대학을 나왔느냐가 중요 한게 아니지 어떤 학생이냐가 중요한거야."

 그렇게 느느 이야기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악수를 하고 기자는 로비를 나왔다. 여전히 바람은 불어 추웠다. 그러나 기자는 바람에게 고마웠다. 조금이나마 기자의 어리석음과 부끄러움을 나려 보내주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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