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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환하게 불 켜진 포장마차. ‘불타는 짜장’ 가게“자식 같은 학생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우리대학 주변에서 맛집을 찾기란 원빈이랑 사귀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딱 한곳! 사람들에게 불타는 짜장면을 파는 곳이라고 하면 다 아는, 저녁에만 만날 수 있는 작은 포장마차가 하나 있다. 사장님이라고 부르며 들어가기 무섭게 “어유, 사장님은 무슨. 와서 얼른 순대나 먹어!”라며 엄마 같은 미소로 반긴다. 손님들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더 맛있는 것을 주고 싶어 하는 포장마차 ‘불타는 짜장’ 사장님 김정숙(60세)씨를 만나봤다.
‘불타는 짜장’ 집의 제일은 바로 불타는 짜장이다. “가게이름이 뭐긴 뭐야! 불타는 짜장이지” 길거리 노점 단속 때문에 낮에는 못하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장사 한다. 그는 학교 앞 포장마차 장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많은 일이 있었다. 세월 지나가기 무섭게 커가는 두 자녀를 키우기 위해서 그는 학원 차 운행에, 진해 군항제나 굴비 축제 등 지역 축제를 따라다니며 장사도 해봤다. 시내나 아파트 단지 안에서 분식집도 해봤다. 그러나 수입이 넉넉하지 않아서 금방 그만두곤 했다. 그렇게 꾸준히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던 중에 지금 자리에서 오래전부터 분식집을 하던 사장님과 인연이 닿아 지금의 포장마차를 이어받았다. “우리가게 맞은편에 떡하니 다른 분식집이 있어도 왜 계속 여기서 장사하는지 알아?  이 자리는 11년 된 자리야. 내가 일한지는 6년이지만 이 가게는 여기서  11년 된 가게야. 우리 손님들이 우리가게 찾으러 여기 왔다가 헷갈리면 안되잖아”라고 하며 같은 분식 포장마차가 나란히 마주보고 있지만 큰 마찰은 없다고 했다.
“이 가게를 물려받고 처음부터 장사가 잘 된 건 아니야. 사람도 바뀌고 맛도 바뀌었으니까. 그래서 오랫동안 장사하면서 손님들 입맛에 맞게 재료나 요리방법을 계속 바꿔봤지. 재료 받는 공장에서는 내가 너무 까다롭다고 자기들 물건 쓰지 말라면서 싸우기도 했어.”
그의 허리는 오랜 시간 동안 좁고 낮은 트럭에서 몇 시간을 일한 탓에 삐뚤어져 있다. 더 는 앉아서 일하면 안된다는 의사의 말에도 “난 일을 쉴 수가 없어. 내 음식 먹겠다고 몇 시간을 달려오는 손님도 있는데, 만약에 내가 없어 봐 얼마나 서운하겠어. 난 명절에도 일해!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어. 365일 일한다니까!” 삐뚤어진 허리를 부여잡고도 아프지 않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손님에게 순대와 떡볶이를 내주는 그다. 지금은 3개월 동안 꾸준한 치료 덕분에 많이 호전되었다고 한다.
새벽까지 장사하면 술에 취한 학생들이나 만취손님들이 민폐를 끼치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전혀, 정말 신기하게도 여기 오는 손님들은 다들 기분 좋게 먹고 잘 먹었다고 인사까지 하고 가. 저번에는 김해에서 술 먹고 이거(불타는 짜장) 먹겠다고 버스 타고 온 손님도 있었다니까”라고 말하며 그러나 가끔은 돈을 안 내고 가는 학생들도 있지만 밉지는 않다며 싱긋 웃는다. 그에게 학생들은 모두 친자식 같은 존재라고 한다. 누구든 오면 반갑고 더 챙겨주고 싶고 일할 맛이 난다고 했다. “학생들이 와서 자기 군대 간다고 하고, 외국으로 유학 간다고 이모 음식 못 먹어서 슬프다고 막 그러면, 내가 짠하고, 고맙고 그래. 내 자식 보내는 것 같다니까”
그는 지금까지 일하면서 혼자 일하기에 벅찰 때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을 구해서 일하기보다는 그 돈으로 차라리 학생들에게 더 많이 주자고 생각했다고 한다. “손님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내가 너무 많이 줘서 다 못 먹겠다고 난리야. 그래서 얼마나 줘야 할지 고민이야” 행복한 고민이라는 표정으로 털어놓는 김정숙 씨. 자세히 본 그의 얼굴에는 일에 치여 피곤하고 힘든 주름살은 없었다. “이모! 왜 이렇게 젊어요!”라고 할 정도로 아름답고 따뜻한 미소가 있었다.

양진 기자 didwls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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