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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의 창원대 산 증인 김해동 교수, 뒤를 돌아보다

궁금했다. 문득 ‘우리 학교에서 졸업하고 우리학교에서 근무해온 교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10년 넘게 근무해온 미술학과 김해동 교수를 연구실에서 만났다. 12년간 우리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젊었다.
어릴 때 그는 홍익대학교 유광역 교수의 동생을 만나게 됐다. 그는 “유교수의 동생을 본 순간 ‘저분을 만나면 내 인생이 달라지겠다’라는 생각을 한줄기 빛처럼 여기고 고1 때부터 그분에게 배우기 시작했죠”라고 말한다. 그는 그때부터 ‘교수가 될 거다’라고 생각하고 전략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 후 3년 반 만에 창원대 졸업을 하고 홍대를 가서 석사학위를 따고, 창원대학교 교수가 돼서 박사가 됐다. “저도 현실을 느끼니깐 학교를 선택할 때도 힘이 들었죠. 학부 생활을 할 때 ‘미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조금 더 큰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도전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지방이라는 한계적 상황이 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한국에서의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내가 시장을 섭렵하고 미국으로 가자고 생각했어요. 그러고는 벌써 12년간 창원대에 와서 근무를 쭉 하고 있죠.” 사실 김 교수는 박사가 되기까지 10번의 도전을 했다. 그는 꿈은 꾼대로 되지는 않지만 그 비슷한 상황까지는 도달하게 되니 자신이 원하는 목표보다 조금 더 꿈은 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는 원래 시인을 꿈꿨는데 최근 시집을 냈어요. 그리고 지금은 또 3년째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어요. 지금 이 나이 때 한번 해 보는 거예요. 저는 이렇게 살아왔어요.”
12년 동안 그에게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의 작품을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했을 때다. 제작자로서 작품의 개념이나 주제어를 도출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이 학생들에게 있어 역반응이 일어났을 때 속상해했다. “창원대하면 저한테 이 일이 가장 먼저 떠오르죠. 학생들이 그림만 그리면 되지 글쓰기 같은 것을 해서 굉장히 낯설어하고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는 학생들과 신뢰성을 먼저 쌓아 가는 것, 그리고 학생의 작품을 가지고 충분히 대화하고 학생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생각해주며 접목해 나아가고 있다. “그렇게 하니 과거보다 학생들이 그림에 대한 부담도 줄고 더 나아가서 조금 설득력 있게 접근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이 듭니다.”
“12년 동안 생활하면서 현재 창원대를 바라보면 교수보다도 학생을 먼저 보게 돼요. 창원대는 징검다리에요. 지나가는 과정에서 스쳐 지나가는 곳인데, 우리 학생들이 조금 더 큰 꿈을 가지고 더 도전할 수 있는 징검다리죠.” 하지만 그는 현재 학생들이 더 큰 꿈을 가지는 것에 대해 과거보다 더 막연해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꿈이라는 것은 컸어요. 진짜.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죠.” 요즘 학생들이 너무 결과만을 가지고 살아가, 처음부터 ‘난 저기 못 미칠 거야’라면서 미리 거부하는 경향이 요즘 젊은 친구들한테 많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려운 쪽으로 절대 가려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떻게 보면, 처음에 제가 창원대 왔을 때와 별다른 건 없어요. 그러나 열심히 하는 친구를 보니깐 상당히 학교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12년 전보다 현실은 더 어렵지만 우리 학생들도 긍정적인 마음과 더 어렵고 더 큰 꿈을 가지길 개인적으로 바랍니다”라고 속 깊은 말을 전했다.
“이제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거 같아요. 결국 학생수요를 놓고 싸우는 그런 지경에 이르렀죠.” 12년 전에 미래는 불안하고 힘들 것이라고 생각을 해왔지만 지금은 그 미래가 현실이 돼버렸다. 그는 “불안하리라 예측했던 것이 이제는 현실로 다가오니깐 교수들도 무척 힘들어하고, 내외적으로도 압박을 받고 있는 지경이 됐죠”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이미 취직을 했다’라고 생각하고 들어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현재 우리학교 학생들을 보면 진짜 그림이 좋아서 ‘평생 그림을 그릴 거야’라는 친구도 있어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 취업률이나 그런 지표들이 무슨 소용이냐 이거죠. 우선은 학생들이 즐기는 게 우선이거든요. 이것이 12년 전과 참 많이 다르다는 걸 느끼죠.”
“앞으로 음악이나 무용이나 문학이나 미술을 넘나들면서 하나의 새로운 텍스트를 창안해 내는 것이 꿈이죠. 일반인들이 조금 더 손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에 계속 노력하고 싶죠. 만약에 제 작품을 가지고 시어로 작곡으로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새로운 영역개척을 통해서, 새로운 어법을 만들어낸다고나 할까? 미술텍스트의 확산, 그런 것에 몰두하고 싶네요.”
“모두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되고 싶어서 음악하는 거 아니잖아요. 모두다 피카소가 되기 위해서 그림 그리는 거 아니거든요.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게 자기 삶의 만족을 위해서 살아가는 거죠.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것은 자신이 언젠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20대잖아요. 지금부터 피아노를 쳐봐요. 나중에 보면 가르쳐주고 있는 사람이 돼요. 그런 사람 많이 봤어요. 앞으로 30년을 바라보세요. 굉장히 멋진 일이 생길 겁니다.”
창원대를 다니던 그 학생은 자신의 전공에 몰두하고 그 일이 매우 좋아 큰 꿈을 가졌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일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돼 있었다. 마지막 연구실을 나가며 문득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람이 어디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 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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