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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향기를 따라 만난 사람빛바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시설과 이점균씨를 만나다
  • 김지원 수습기자
  • 승인 2012.04.0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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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을 펼쳐보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빛을 발하는 것은 많지만 그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기록일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거는 그저 지나간 일일지도 모르지만 지나간 날들을 기록한 것들은 지금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과 지혜를 안겨다 준다. 기록은 텍스트지만 과거를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은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 된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우리학교의 시작과 함께 했고 지금도 함께 하고 있는 시설과의 이점균씨다.
아직 봄비가 내리던 날에 만났던 그는 30년 동안 일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정열적인 모습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약간의 기다림 후에야 그와 마주 할 수 있었다.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몸을 녹이며 학교에 오게 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79년 우리대학에 처음 온 게 1월이었습니다. 당시는 마산대학이었고요. 여러 절차를 거친 후에 7월1일부터 정식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80년 1월에 군 입대를 해서 82년 10월에 전역하고 다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83년에 우리대학은 마산대 가포 캠퍼스에서 창원 캠퍼스로 이전을 하는 시기라 매우 바빴습니다. 저는 행정일 때문에 가포에 남아 일을 했고 이전이 완료된 후에 다시 창원대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2002년에서 2004년까지 경상대에 근무했고 그후로 지금까지 시설과에서 전기분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세월들을 회상하는 듯 그는 더듬거리지만 확신에 찬 어조로 이야기했다. 막연한 과거를 문자로 보는 것보다 말로 들으니 색다르게 느껴졌고 눈앞에 학교가 들어서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한 착각이 일었다. “학교에 있는 건물들이 거의 제 손을 거쳐 갔습니다. 전기 배선을 하는데 감독으로 있었으니 말이죠. 학교가 붉은 벽돌이라 사람들이 촌스럽다고들 하는데 사실 일관성 있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교육시설은 붉게 나머지는 다른 색으로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장점이자 단점이죠” 그렇게 말하면서 그의 시선은 학교 도면 끝을 향하고 있었는데 학교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지난 세월동안 겪은 일들이 도면 속에 담겨 있는 것 같아 단순한 선과 면의 집합이 아닌 열정의 지도처럼 보였다.

격동의 지난날을 회상하며
“80년대는 민주화 항쟁 시기였습니다. 정문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학생들과 경찰들이 충돌하고 유혈사태가 벌어졌었죠. 동생 같은 학생들이 그저 안 다쳤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사실 이시기에는 졸업정원제를 바꾸기 위한 시위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60만 정도지만 당시는 100만이 넘었습니다. 그래서 졸업정원제 같이 졸업생 숫자가 정해져 있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배움의 길에서 중도하차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러 번의 시위 끝에 입학생 숫자를 늘리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오늘날 같이 배움을 원하는 학생들은 모두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습니다”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역사의 현장을 직접 들으니 감회가 새롭게 느껴졌다. 오늘날처럼 배움을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베울 수 있게 한 것도 그때의 일들 덕분이라 하니 놀랍기도 했다. “요즘은 옛날과 달리 경제적으로 풍요하죠, 그것이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풍요 때문에 정신이 야위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모험심이나 자립성이 부족합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자동차면허를 따고 외국근로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모자라 그러지 못했죠. 젊음이 있다면 못할게 뭐가 있겠습니까” 경제의 풍요가 정신의 풍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말. 확실히 오늘날에는 대학원까지 부모의 힘을 빌리는 사람들이 많다. 성인이라는 자격이 단순히 나이가 차는 것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그의 뼈있는 말. 대학생인 우리들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는 말이었다.

이제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학교와 오랜 세월 동고동락하면서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던 일도 많았다. 이맘때쯤이면 새로운 도서관이 지어지는 자리의 뒷산에서 피어나는 아카시아 향기를 맡기 힘들어졌다든지, 우리 학교의 자연미를 돋보이게 했던 소나무공원이든지 말이다. “학교 전체에 애정이 있지만 특히나 있었던 곳은 지금은 사라진 정문 앞 소나무 공원입니다. 주차장이 들어서면서 사라졌지만 학교의 역사와 함께 한 소나무가 사라지니 많이 안타깝습니다. 학교에 애착이 가던 것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니 친구를 잃은 것 같네요”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함께해온 친구를 떠나보내는 빛이 어려 있었다. 발전이란 미명아래 사라지는 것들을 우리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오랜 세월 지켜온 학교를 떠나야만 했던 소나무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오랫동안 근무를 하다 보니 남들이 수구세력이라 하여 배척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 서운하긴 하지만 괜찮습니다. 현재의 그 자리에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알아주지 않겠습니까”고 말하면서 “70년대 말에 오일쇼크가 왔었죠, 당시 쌍용을 그만두고 국립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당시는 공무원 평판이 좋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렸지만 학교라는 젊음을 느끼게 해줘 참 좋았습니다. 현대중공업으로 갈 뻔한 적도 있었지만 학교가 좋아 계속 있게 됐습니다. 학생들이 우리대학을 지방대학이라는 열등감이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열심히만 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부심 넘치는 그의 말에 나는 우리학교가 진정 자랑스럽고 고마웠을까 하고 되물어 보았다. ‘이 사람처럼 대답하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문득 부끄러워졌다.

꿈을 쫓는 어른
“제 좌우명이 남을 속이지 마라, 양심껏 살라는 것입니다. 남을 속이는 것은 쉽지만 자신마저 속이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물경소사 소극침주라는 말도 항상 곁에 두는 말입니다. 작은 일을 경시하지 말라. 작은 틈새가 큰일을 망친다는 뜻이죠” 말을 들어보니 모두 맞는 말이다. 옛날 어른들이 하는 말씀들을 듣는 느낌이었다. 단순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그런 말들. 멋으로 쓰는 좌우명이 아닌 뜻 그대로 옆에 두고 나를 돌아보는데 쓰는 말, 내 좌우명을 떠올려 보니 그냥 기억만 하고 한 번도 새겨 본 적이 없었다.
“많은 학생들이 꿈을 버리고 사는 것 같아요. 자신이 품고 사는 것을 잊어버리죠. 하지만 꿈을 쫓다 보면 언젠가 꿈이 자신을 찾아오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저는 최고의 기술자가 되고 싶었죠. 공중생활을 하는 것을 만들고 싶었는데 좀 다르게 들리겠지만 결국 그게 실현되었습니다. 제 손은 아니지만 말이죠, 결국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결국에는 자신이 소망하는 것이 이뤄지는 것이죠. 꿈이 있다면 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존경받는 사람,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존경받는 것은 분명 모두가 인정할만한 일을 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드러나는 일만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조용한 곳에서 훌륭한 일들을 해온 사람도 많다.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일들을 자랑하지 않고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던 사람. 그러나 우리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 오늘 내가 만났던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맡았던 향기는 차향이 아닌 사람에게서 나는 향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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