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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희망이 있기에 가능한 일[Inter+View] 79학번 미술학과 김경미(경남대학교 겸임교수) 선배님을 만나다

 늦은 밤이었다. 기자는 인터뷰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성산아트홀로 향하고 있었다. 짙게 낀 구름 때문에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아 삭막한 사막과같아 우울해보였다. 이번 inther+view의 주인공은 현재 경남 대학교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신 미술학과 79학번 김경미 선배님이었다.

 인터뷰를 하러 가는 내내 마음은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차있었다. 오늘 인터뷰 상대가 우리학교 최초 여학생부장(현재 총여학생회장)님이라는 사실 때문에 또 미스경남 출신이라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예술가라는 그의 직업 때문이었다. 
 
 여학생부장이라는 직위의 '카리스마'와 미스경남이라는 '미' 그리고 예술가의 '영혼'을 가지신 분이라면 과연 어떤 분일까? 궁금증은 커져가기만 했다.

 성산아트홀에 도착하니 이미 그녀는 딸과 함께 공연을 보고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보자 반갑게 맞이해 주는 그녀와 처음 대면했을 때, 너무도 젊어보이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놀람을 뒤로하고 우리는 인터뷰를 하기 위해 자리를 옮겨 인터뷰를 시작했다.
 
 일단 그녀의 대학시절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로변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미술과다 보니까, 작품을 만드는 일이 많아. 그러다 보니 많은 날을 실기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지. 여름에는 모기장을 한쪽 구석에 치고 작업하다가 피곤하면 모기장에 들어가 모기들을 피해서 잠들곤 했어. 또 우리를 지도해 주시던 교수님이 댁이 서울인 분이셨는데 연구실에서 숙직을 하며 열정적으로 우리를 지도해 주셨지."

 교수님이나 학생들이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학생들은 시험기간이 아니면 학교에서 밤을 새는 일이 거의 없는데, 밤새는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역시 예술을 하는 건 힘든 일인가 보다.

 "이런 일도 있었지. 도로변에 보면 산을 깎아 놓은 곳이 많잖아? 그걸 그리겠다고 문짝만한 캔버스지를 친구 오토바이에 싣고 가서 도로변에서 앉아 그림을 그렸어.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건지 몰라. 그때는 그게 재미있었으니까 힘든 줄 몰랐어."

 도로변에서 그림을 그린다니 대단하다는 생각보다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주 어릴 적 할머니 댁을 다녀오면서 도로변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을 한 번 본 기억이 있다. 그때는 저기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생각을 했었다. 그 사람들도 그녀와 같았나 보다. 그림 그리는 것을 재미있어 했던 그래서 힘든 줄 몰랐던 대학생들이었나 보다.

 하지만 열정과 재미만으로는 지금의 그녀가 있기에는 부족한 듯 했다. 그렇다면 이것 이외에 어떤 노력을 했던 것일까?

 예술을 하는 사람이면 파리에 한 번은 가봐야 한다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갔어. 꿈과 젊음의 열정앞에는 돈이 없다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울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거든. 어딜 가든지 배울 것 뿐이었지.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지.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파리에 한 번은 가봐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왜 있는지 알겠더라구"

 파리...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유학을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그녀에게 힘든 일은 없었을까?

 "내가 결혼하고 내 남편하고 같이 파리에 갔어. 그래서 거기서 첫째 아이를 낳았지.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참 힘들었어. 오전에 베이비시터를 고용해서 아기를 보고 공부를 하러 갔어. 우는 아이를 뒤로 하고 지하철까지 가서 집에 전화를 했을 때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면 그 날은 공부가 잘 안되었지"

 유학을 가서 아기까지 돌보았다고 한다. 대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술의 본고장 파리, 분명 예술을 하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가보고 싶은 곳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가지는 못한다.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불어를 못해서 등등의 이유로. 그렇다 정말 이런 이유 때문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아주 조금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이 '핑계' 대문에 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프랑스로 갔고 힘겨운 시간을 이겨냈다. 그랬기에 그녀는 그 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를 미술을 위해 프랑스로 가도록 아니 갈 수 있도록 한 것은 무엇일까?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굳이 프랑스라는 험난한 여정을 택하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

 "화가 중에 모네라는 화가가 있어. 이 화가가 인상주의 창조한 화가야. 당시 초상화처럼 사물을 똑같이 그리는 그림이 유행할 때, 해가 뜰 때 자연이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그린 해돋이 인상이라는 그림을 그렸어. 당시 엄청난 비판을 받았지. 당시의 그림과는 완전히 다른 그림이었으니까. 한마디로 혁신이었지"

 사회의 통념에 반하는 일을 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녀가 프랑스로 간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일까?

 "예술가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만 해. 그러기 위해선 끊임 없이 보고 느끼고 새롭게 생각해야하지. 그래서 고뇌하는 직업이고 창조가 어려운거야. 나 또한 마찬가지였어. 당시 우리나라 그림은 파스텔 풍의 그림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지. 나는 나름대로 창조해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고 생각했는데 다 완성하고 보니까 다른 누군가의 작품과 너무 닮은거야. 나는 그게 싫었어."

 그래서 그녀는 프랑스로 간 것이었다. 배우고 느끼기 위해. 그리고 창조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그녀는 프랑스에 갔다와서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었을까?

 "내가 유럽에서 가장 크게 받은 충격은 '컬러'에 있었지. 고풍스런 도시에서 그토록 빨갛게, 파랗게, 원색의 진가를 보여주던 카페의 차양들... 그래서 선진국은 색이 역시 다르구나 라는 생각을 했고 그동안 내가 가진 색들을 비우고 인상파 화가들이 본 아름다운 태양의 색으로 채우기 시작했지. 그렇게 거기서 많은 것을 배우고 한국에 돌아왔지. 그런데 돌아와서 보니까 우리나라 고유의 색인 오방색이 내가 유학을 화폭에 담고자 했던 색들이랑 닮아있는 거야. 그 전까지 오방색은 그냥 촌스럽게만 생각했거든. 그 때 알게 되었어. 예술가는 새로운 경험 느낌도 중요하지만, 당연한 것을 새롭게 보는  시각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야. 프랑스에 다녀와서 얻은 가장 큰 것은 당연한 것을 새롭게 보는 시각이라고 생각해."

 당연한 것을 새롭게 보는 시각, 비단 예술인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녀가 프랑스에 갔다와서 얻은 가장 값진 것은 그 시각인 듯 했다.

 젊기 때문에 포기를 몰랐던 시절

 "생각해보면 내가 어떻기 이 일을 해왔나 싶을 때가 많아.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용케 지금까지 왔는지 궁금하기도 해, 정말 힘든 일이 많있거든. 하지만 그 때를 생각해 보면 정말로 힘든 줄 몰랐어. 내가 하는 일이 재미있었으니까. 또 당시에 내가 돈도 없고 아무런 배경도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꿈과 희망으로 포기하지 않고 해왔던 거 같아."

 즐겼기 때문에 힘들지 않았고 꿈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포기를 몰랐다. 그건 아마 그녀에게 젊음이 있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젊었던 시절을 지나 그 시절을 되돌아 보는 입장에서 그리고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지금의 그녀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자신의 롤 모델을 정하라는 거야. 꿈과 희망만으로는 너무나 추상적인 거야. 그래서 꿈과 희망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그렇기 때문에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을  롤 모델로 정하고 노력하라는 거야. 그리고 자신이 그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때 다시 다른 롤 모델을 정해서 다시 노력하는 거지. 이렇게 끊임 없이 노력해 나가다 보면 자신의 꿈과 희망을 이룰 수 있을거야."

 그렇게 인터뷰는 끝이 났다. 인터뷰를 마치고 신문사로 돌아오는 길 하늘은 삭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울하지 않았다. 그 구름 뒤에는 빛나는 별이 있음을 알고 있기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라는 이 삭막함 뒤에 희망이 빛나고 있음을 알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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