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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청년 안중근 대학생 탐방기독립투사들의 혼과 함께한 6박 7일간의 여정


 꿈에 그리던 유럽은 아니었지만 내 생에 첫 해외여행...... 나는 순전히 그렇게 2010 청년 안중근 대학생 탐방에 참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청년 안중근이라는 이름으로 24명의 탐방단과 함께한 6박7일은 나를 진정한 탐방단의 일원으로 만들어 줬다.

 첫날, 탐방단은 인천공항에서 장춘행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여 동북3성 중 하나인 길림성에 첫 발을 내디뎠다. 탐방단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쉴 틈 없이 다음 날 있을 백두산 트래킹을 위해 백두산 바로 앞에 위치한 이도백하로 이동하였다.

 탐방단의 지도교수로 함께한 박민영 교수(독립기념관)는 이동 중 틈틈이 우리에게 역사와 독립 운동가들의 활약에 대해 강의를 해주었다. 예로부터 백두산은 우리민족의 영산으로 신성시되어 왔으며 고종의 서거 후에는 우리민족에게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해주었다고 한다. 단순히 백두산에 대한 동경심만 가지고 있던 나는  경외심마저 가지게 되었다.

 2일차, 탐방단은 새벽같이 일어나 백두산 트래킹을 위해 이동했다. 매표소를 지나 소천지로 들어서면서 허철호 가이드는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인 만큼 일초일목도 손대어선 안된다"고 경고를 해주었고 실제로 올라가면서 보게 된 일초일목 하나하나에 영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아 손을 댈 수 없었다.

 트래킹 코스는 △소천지 △용문봉 △천지물가 △천문봉 △장백폭포 순이었다. 일반 등산로가 막힌 관계로 힘들게 백두산 천지에 도착한 만큼 탐방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약 8시간에 걸쳐 백두산을 몸으로 느끼며 트래킹을 마쳤고, 무교인 나는 험난했던 트래킹코스를 25명 전부 무사히 마쳤다는 사실에 존재하는 모든 신께 감사를 드렸다.

 3일차, 백두산 트래킹으로 인한 피곤함은 잠시 제쳐두고 아침 일찍 윤동주 시인의 생가와 15만원 탈취사건 유적지, 대성중학교를 차례로 방문했다. 대성중학교는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주의 교육의 산실로서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를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건물 2층에는 전시관으로 윤동주 시인의 사진과 화보, 책자를 비롯하여 1900년대 초기부터 일제강점기 당시의 역사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이어서 연변대학교 학생들과의 문화교류시간을 가졌다. 먼저 '불사조'의 사물놀이 공연이 시작됐다. 구성지고 흥이 절로 나는 열정적인 무대였다. 이에 탐방단은 각 조별로 포크댄스, 소고 춤, 댄스로 답하며 즐거운 화합의 시간을 보냈다. 연변대학교 학생들과 함께한 짧은 시간은 국적만 다를 뿐 같은 민족임을 느낄 수 있었다. 곧 날은 저물었고 연변대학교 학생들과 헤어지는 순간은 아쉬움만 가득했다.

 4일차, 탐방단은 유람선을 타고 두만강을 답사한 후 봉오동 전투지로 이동했다. 봉오동 전투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박민영 교수의 강의를 통해 봉오동 전투의 승리로 인해 우리민족의 독립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이 커지게 되었고 그 결과 더욱 활발한 독립운동이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 일정을 위해 또 버스에 올랐다. 중국에서 버스를 탄 시간을 계산해보니 약 20시간이 넘었다. 한 번 이동하면 보통 3~4시간이 소요되었다. 버스도 좁은데다 도로 상태도 안 좋아서 일정이 진행될수록 몸은 지쳐만 갔다. 속으로 짜증도 부렸지만 박민영 교수의"우리가 지금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길을 독립 운동가들은 걸어다녔다"라는 말을 듣고 그저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김좌진장군 순국 장소로 이동한 탐방단은 김좌진장군에게 국민의례와 참배를 드렸다. 남의 나라에서 부르는 애국가에 목이 메었고 두 주먹은 불끈 쥐어졌다.
이어 한중우의공원으로 이동한 탐방단은 간단한 세미나를 가졌다. 1조는 백두산에 대해, 2조는 간도에 대해, 3조는 하얼빈에 대해 사전 스터디를 통해 알게 된 지식을 서로 공유할 수 있었다. 이수연(동국대 역사교육과07)학생은"전공 특성상 답사를 많이 다니는데 정말 아는 만큼만 보인다. 교수님의 강의를 귀담아 듣고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으며, 김지백(부산외대 영어학부09)학생은"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란 말이 있듯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라며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 피력했다.

 5일차, 탐방단은 독립투사들의 활약상을 전시해놓은 한중우의공원 2층과 3층을 견학한 다음 김좌진 장군이 설립한  조선족실험소학교를 방문했다. 마침 그곳에는 봉사활동을 나와 조선족 학생들과 우리민족의 문화체험 시간을 갖고 있는 홍익대 학생들도 볼 수 있었다. 이어 하얼빈으로 이동하여 성소피아성당을 방문했다. 빠듯한 일정에 지친 탐방단은 성소피아성당의 우아함과 화려함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었고 이어서 러시아거리에서 잠시 동안의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6일차, 탐방단이 답사한 곳은 731부대 유적지였다. 마루타라 불리는 생체실험 대상자들의 고통과 일본 제국주의의 잔학성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탐방단 모두의 얼굴에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분노가 서려있었다. 731부대 유적지를 답사 후 안중근 의사기념관에 들려 전시관을 관람하고 내일 비행기를 타게 될 대련으로 이동하기 위해 탐방단은 하얼빈 역으로 향했다. 기차에 탑승하기 전 안중근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의거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땅바닥에 네모와 세모로 표시해둔 것이 전부였다. 일본의 국력이 강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리나라가 더 강대국이었다면 그 정도는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에 약간의 죄책감도 들었다.

 탐방단이 탑승한 대련행 밤기차는 9시간이 소요되었고 기차 내부는 승객들이 잠을 잘 수 있게 침대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내일이면 정들었던 탐방단과 이별이라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마지막 날, 탐방단은 무사히 대련에 도착해 마지막으로 답사해야 될 여순감옥과 법원으로 이동했다. 안중근의사가 의거 후 남은 일생을 보낸 곳이라는 생각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숙연해지게 되었다. 가이드는 탐방단에게 여순감옥에서 안중근의사의 생활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대련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하여 인천공항으로 오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서 내가 얻어가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6박7일간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로 인해 전에 없던 역사에 대한 관심과 독립 운동가들이 힘겹게 지켜낸 우리나라에 대한 애국심이라고 답을 내린 순간 비행기는 무사히 인천공항으로 착륙했다. 탐방단은 비행기에서 내려 잠시 동안의 작별의 시간을 가졌고 중국으로 출발할 때 없었던 뜨거운 무언가를 가슴속에 가득 품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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