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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제14회 창원대문학상 수상작수필부문

수필부문 당선작 2)

제목 : 구두수선가게 아저씨
                                                                                                      채호정/인문대 국어국문 06

 우리 동네에는 커다란 상가 앞에 마주한 작은 구두수선 집이 있다. 

 중 고등학교 때는 매일 운동화를 신고 다니느라 무심코 지나간 곳이지만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여대생의 로망인 하이힐에 입문하면서부터 구두수선 집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다. 처음에는 내 신발이 굽이 닳거나 밑창이 닳으면 이제 다 닳았구나..하고 폐수거함으로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신발장에서 부츠 한 켤레를 꺼내시더니 "이거 요 앞에 구두수선 가게에 좀 맡기고 와라"고 하셨다. 난 엄마의 그 부츠를 못난이 부츠라고 부른다. 앞코도 뭉툭하고 투박하게 생긴 것이 유행지난 옛날 신발 같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그래도 이것만큼 편한 것이 없어 하시며 늘 밑창만 갈아 신으신다. 

 못난이 부츠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뭘까? 그만큼 오랜 세월 그 신발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엄마친구들도 다 알정도의 부츠이고, 와인으로 따지면 7년산 정도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난 엄마신발과 함께 굽이 다 닳아서 버릴까 한 내 구두를 함께 가져갔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니 2평 남짓한 공간에서 아저씨가 라디오를 들으면서 구두 속에서 구두를 만지고 계셨다. 나는 아저씨에게 "구두는 밑에 굽만 갈아주시고 부츠는 전체 다 갈아주세요"했더니 아저씨는 친절하게 대답해주지는 않으셨지만 "네" 대답하며 나의 주문사항을 각각의 신발 밑창에 적고 계셨다. 그러고 바쁜 거 아니면 내일 오라는 말씀을 하셨고 나는 다음 날이 되어서 신발들을 찾으러 갔다. 

 "다 됐나요?" 했더니 무심코 나를 기억한다는 듯이 나의 신발을 가리켰다. 나는 속으로 되게 무뚝뚝한 아저씨구나 하면서도 내 신발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조금 감동하여 계산을 하고 "안녕히 계세요"하며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집에 와서 신발을 꺼내어 신어보는데, 구두수선이 다 비슷비슷 하겠지만 오히려 처음 그 구두를 신어봤을 때 보다 더 느낌이 좋았다. 신발은 이미 나의 발에 맞추어져 있었고 아저씨가 갈아주신 굽은 또각또각 경쾌하게 소리를 내어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엄마도 갈아온 굽을 보고 부츠를 신어보시더니 우리 동네에선 이 집만큼 야무지게 하는 집에 없다며 매우 만족해하시며 이제 좀 있으면 8년산이 될지도 모를 신발을 신발장에 넣어놓으셨다.

 나는 그 뒤로는 항상 아저씨의 구두수선 가게를 애용한다. 하루는 집을 나서다 구두굽이 부러진 적이 있었다. 친구들과의 약속에 들떠있었던 나는 갑작스런 일에 짜증이 났지만 일단 구두수선가게로 향했다. 아저씨에게 지금 바로 가야하니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하고, 고쳐달라고 부탁했다. 아저씨는 이번에도 무심하게 대답하시며 구두수선에만 집중하셨다.

그런데 그 순간 발견한 아저씨의 뒷모습이 꽤 멋있어 보이는 것이다. 뒤에서 아저씨를 보는데 편한 작업복 잠바에 약간은 허름한 양복바지를 입고 계셨고, 묵묵히 일하시는 모습이 점잖은 어르신 같았다. 나이는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쯤 되어 보이셨고 손에는 그 나이를 증명하듯 잔주름이 보였다. 그 손으로 말없이 내 구두를 두드리시는데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이렇게 말없이 두드림의 계속 해오셨을까?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무심코 지나쳤던 가게. 모르긴 몰라도 10년은 더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시간에 쫓기던 터라 느릿느릿 해보이던 아저씨의 손길도 이제는 한 손 한 손 꼼꼼히 내 구두를 손질하고 계시는 걸로 보였다. 나는 계속 말없이 쳐다보고 있는 게 민망해서 아저씨에게 말을 걸어볼까 잠깐 고민했다. 그런데 왠지 어설프게 말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괜히 민망해져서 "얼마에요?"하니 삼천 원이라고 하시며 작업을 계속 하셨다. 나는 "구두가 약간 헐렁한데 밑창 까는 건 얼마에요?" 했더니 "밑창은 뭐.."하시며 하던 일을 하셨다. 난 순간 당황했지만 그냥 말없이 일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 구두를 고치는 그 모습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저씨의 작업이 완성되면서 밑창을 끼워 넣고 내 구두를 새것처럼 광까지 내주셨다. 아저씨가 "신어봐"라는 말씀에 나는 얼른 신고 마음에 들어 "얼마에요?" 했더니 또 삼천 원이라고 하셨다. 

 나는 구두 굽 외에도 아저씨의 정성이 담긴 것에 대한 나의 마음을 담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계산하며 신발가게를 나서는데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부츠가 장수부츠가 되게 한 것과 좀 전의 짜증났던 내 상황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바뀌게 된 것은 모두 아저씨의 정성 때문이었다. 아저씨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모두 폐수거함으로 들어갔을 나의 신발들도 말이다. 아저씨는 어쩌면 수명이 다되어 포기하려는 내 신발에 새 희망을 불어넣어 준 것일지도 모른다. 아저씨의 2평 남짓한 가게 안에는 아저시의 손이 완벽한 로봇 기계보다도 더 튼튼하고 또 정성을 담은 세심함이 포함되어 아저씨만의 공장으로 새로운 나의 구두를 새롭게 생산해냈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좋은 구두는 여자를 좋은 곳으로 데려간다는 지미추의 명언이 떠올랐다. 비싼 구두는 아니지만 아저씨의 정성으로 내겐 더없이 편안하고 좋은 구두가 되었고 발걸음 또한 사뿐사뿐한 설렘으로 가득 찼다. '아저씨는 길에서 신발 때문에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길거리의 장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나 또한 작은 사건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구두를 고친 게 오히려 더 큰 편안함으로 돌아왔으니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앞으로 사소한 것이라도 갑작스러운 일이 생긴 상대방을 도와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작은 것에서 인생의 행복을 느낄 수도 있듯이 나 또한 내가 받은 도움들을 나눠가지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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