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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 그 진실
  • 김도연 기자
  • 승인 2016.05.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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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왕비님도 아름답지만, 백설 공주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쁩니다.”

거울의 말을 들은 왕비는 백설 공주를 죽여버리라고 사냥꾼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마음 약한 사냥꾼은 공주를 살려주고 일곱 난쟁이의 집으로 도망쳐 살게 됩니다. 왕비는 백설 공주가 없으니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한 번 거울에게 물었지만 “일곱 난쟁이 집에서 사는 백설 공주가 제일 예쁩니다”라는 대답에 백설 공주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안 왕비는 독 사과로 백설 공주를 죽이고 맙니다. 일곱 난쟁이는 공주의 죽음을 슬퍼하며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그곳을 지나가던 이웃 나라 왕자는 아름다운 백설 공주의 모습에 키스하는데, 공주의 목에 걸려있던 사과 조각이 튀어나오고 백설 공주는 깨어납니다. 그리고 왕자와 백설 공주는 결혼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백설 공주 이야기이다. 계모에게 괴롭힘을 받던 공주가 왕자님을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야기. 하지만, 이 동화가 원래는 잔인한 이야기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민담에서 동화로

백설 공주는 원래 독일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담이었다. 실존 인물의 실화와 독인 신화가 합쳐진 이야기인 백설 공주 이야기를 그림 형제가 각색해 동화로 만들었다.

그림 형제는 원래 동화작가가 아닌 언어학과 문헌학을 연구하는 독일의 연구자였다. 그림 형제는 언어학 연구를 하며 민담에도 관심을 가졌고 후대에 민담을 전해줄 이야기 집을 만들기로 한다. 그렇게 독일과 유럽 각지의 민담을 모아 각색해 1812년 12월 25일,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메르헨이라는 책을 출판한다.

원직인 그림 형제의 이야기를 보면 백설 공주가 난쟁이들의 오두막에서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 왕비는 결국 독 사과로 백설 공주를 죽인다. 난쟁이들은 공주의 죽음을 슬퍼하며 장례식을 치르는데 이때 이웃 나라 왕자가 백설 공주를 살려내고 그녀와 결혼 한다.

한편, 공주를 죽인 왕비는 이제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아름다울 것으로 생각하고 거울에게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아름다운지 묻는다. 하지만 거울은 “이웃 나라 왕자와 결혼한 백설 공주가 가장 아름답습니다”라는 대답을 한다. 이에 왕비는 이웃 나라로 찾아가고, 백설 공주에게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은 왕자는 왕비에게 쇠로 달군 구두를 신게 하는 벌을 내린다. 왕비는 그 신발을 신고 뜨거움에 춤추듯 뛰어다니게 된다.

초판에서는 왕비가 백설 공주의 친어머니였고, 숲 속에 데려간 것도 왕비였다. 각색한 이야기라고 해도 여전히 어린아이들이 듣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이것은 백설 공주뿐만 아니라 메르헨에 실린 헨젤과 그레텔, 라푼젤, 빨간 모자 등 다른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림 형제의 이야기가 많은 비난을 받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점점 순화하고, 6차례에 걸쳐 수정되며 최종판에서는 우리가 아는 동화가 된다.

 

그 시대, 힘겨웠던 삶

그럼 동화의 원작이 잔인한 이유, 이야기를 아름답게 각색한 이유는 무엇일까? 백설 공주뿐만 아니라 헨젤과 그레텔, 라푼젤, 빨간 모자 같은 다른 동화에서도 아동 학대 및 유기, 살해, 남녀 간의 동침 등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앞서, 그림 형제의 이야기는 유럽에서 전해오는 민담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이런 이야기가 익숙한 것이 아니었을까?

민담의 주요 전승자는 농민들이었다. 17, 18세기 농민들의 삶은 불행하고 가난했다. 당시 유럽사회에서 농민들은 자신의 땅이 없었다. 영주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나면 영주에게 세금과 각종 비용을 내야 했다.

농사를 짓느라 수고한 농민에게 공평하게 농산물을 배분하는 마음씨 좋은 영주가 얼마나 있었을까. 대부분 농민은 영주에게 착취당했다. 이것은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16세기 당시 독일에서는 자본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때 사람들은 유산계급(재산을 소유해 거기에서 이득을 생산해 내는 계급), 무산계급(재산이 없어 육체나 정신노동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계급)으로 나뉘었는데, 농민들은 무산계급에 속해있었으며 유산계급인 영주에게 소작료와 세금으로 착취 당했다. 농민들의 항쟁으로 1524년 농민전쟁이 이루어졌으나 농민전쟁에 가담한 30만 명 중 10만 명의 농민이 영주에게 학살당한다.

또한, 초토화된 농지가 회복되기 전 연이은 전쟁과 개혁의 바람 속에서 농민들의 삶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이 시대 농민들은 끝없는 가난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든 상황이었고, 부모들은 자식을 잘 보살필 수 없었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따듯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 보살핌을 받기보단 자신의 몫의 일을 하며 살아야 했고, 가난한 농촌에선 폭력과 학대, 위험 등에서 아이들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민담에도 이런 잔인하고 끔찍한 요소들이 들어가 전해진 것이다. 그렇기에 민담에 뿌리를 둔 그림 형제의 동화에도 이런 소재가 남아있다.

그림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 부모는 생활고에 자식을 버리며, 아이들은 마녀를 죽인다. 또한, 라푼젤, 빨간 모자 등의 이야기에서도 아이들이 읽기엔 적합하지 않은 소재가 나온다.

이런 이야기는 당시 살기 힘든 농민들의 삶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원래 민담은 18세기까지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이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이야기에 어른들의 욕심과 욕망이 비친 것이다.

권선징악은 다른 이야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요소이다. 그렇지만 그림 형제의 동화에서는 그 방법이 더욱 극단적이다.

현재 우리가 막장 드라마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얻듯, 이 시대 사람들도 민담으로 그 시대의 부조리와 삶의 힘듦을 이겨낸 것이 아니었나 싶다.

 

어린이들은 소중한 존재

중세시대에는 아동을 성인의 축소판으로 생각했으며 아이들은 젖을 떼자마자 성인들과 함께 자랐다. 또한, 아동은 ‘장차 장원을 위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라고만 생각했다.

중세시대는 인간보단, 신에 더욱 중요하던 시대였고 계몽주의 운동 이후 인간 중심의 사상이 생겼다. 이때 철학자 루소가 아동관을 성립함으로 아동의 인식이 바뀌었다.

현재의 인식(아이들은 소중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은 근대에 들어와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퍼져 아이를 보호하려는 태도가 생겼고 이에 어린이들에게 적합하게 교육적 차원에서 각색한 이야기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동화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동화와 그 원작에 대해 살펴보았다. 아름답기만 했던 동화의 이면. 원작이 잔인했던 이유. 동화의 뿌리가 된 민담 속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힘들었던 삶이 녹아 있었다.

흔히 동화를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이야기라고 한다. 이 동화가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과 현재의 힘듦을 이겨내고자 소망하지 않았을까. 그 마음이 모여 현재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동화가 되었다.

 

김도연 기자 kdoyeon0809@ch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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