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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사랑보다 무거운-20회 창원대문학상 소설 당선20회 창원대문학상 소설 당선

이해, 사랑보다 무거운

 

최 윤 진(인문대․국어국문학과 2년)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더니 늦었다며 아침부터 집 안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아들녀석을, 나는 소파에 앉아 눈으로 쫓았다. 밥 먹고 가, 한마디 했더니 식탁에 정갈하게 올려진 밥상차림을 한번 눈으로 슥 훑고는 다시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안 먹으면 자기만 나중에 고생이지, 뭐. 아직도 졸리운 탓에 마른 세수를 하다, 못내 일어서서 주방으로 향했다. 방금 전 생각은 내가 생각해도 부모로서 철딱서니 없었던 생각이었다.

"이거 가져가."

어제 밤, 퇴근하는 길에 안이 사 온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샌드위치를 내민 내 손은 보이지도 않고,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 지 나를 철저히 무시하는 내 아들을 향해 덧붙였다. 아빠가 사 온 거야. 아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신발을 구겨 신었다. 자기 멋대로 쑤셔 넣느라 채 신기지도 않은 신발의 앞 코를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차던 아들이 오늘 처음으로 나의 눈을 쳐다봤다.

"싫어."

"아침 안 먹었잖아. 학교 가져가서 먹어."

있는 힘껏 짜증난다는 표정을 짓는 아들의 얼굴을 마주하자니, 또 저 안의 무언가가 아려와서 더 이상 자리를 지킬 힘이 없어졌다. 하지만 또 나는, 등교하는 아들의 뒷모습이 너무 보고파서, 그저 서서 아들의 곤두선 눈빛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정갈한 차분한 아들의 머리 정수리에 한 올 머리카락이 삐 져 나온 것이 보여, 정리해주려 나는 아들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내 손은 아들에게 채 닿기도 전에 아들의 손에 의해 내쳐졌다.

"엄마인 척 좀 그만해."

말을 멈추고 잠시간 나를 노려보던 아들은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아들이 나간 집 안에 남은 것은 나와, 아들에게 뿌리쳐진 내 손과, 샌드위치, 끊임없이 반복되는 아들의 말과 그리고 갈 곳 잃은 부정(父情) 이었다.

 

12년 전, 한국도 프랑스를 따라 동성결혼법안이 통과되면서 안과 나의 힘들고 인정받지 못했던 연애도 종지부를 찍었다. 동성결혼이 합법화 되던 날, 사랑하는 내 연인 안과 부둥켜 안으며 둘이었지만 온전히 둘만 일 수 없었던 날들을 생각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각고의 노력 끝에 성 소수자인 아들을 사랑으로 받아주신 나의 부모님은 아들의 결혼을 축하해주셨지만, 안은 나와 결혼을 하겠노라 선포함과 동시에 집과의 인연을 끊어버렸다.

우리는 법안이 통과되고 한달 하고도 8일 후, 혼인신고를 했다. 그 날이 안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바라지도 않았다) 우리가 법적인 부부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세상이 부정(不正)하는 사랑이 너무 힘들어 함께 죽고 싶었던 지옥 같은 나날이, 행복에 겨워 죽을 만큼 기쁜 나날로 변했다. 회사에서 제출하라던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러 동사무소에 갔을 때도 떡 하니 적혀있는 '배우자 안'이라는 글씨가 믿기지 않아서 한 부를 더 뽑아, 하나는 집안 서랍에 넣어놓기까지 했다. 안과 나는 여느 보통의 맞벌이 부부처럼 열심히 일하고, 아끼고 아껴 돈을 차곡차곡 모아 집도 장만했고, 둘 다 밥을 하기 싫을 때면 가끔 외식을 하기도 했으며, 둘이서 손을 꼭 잡고 야구경기를 보러 가기도 했다. 안과 나의 결혼생활은 남녀 보통 부부처럼 평범했다. 남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평범'했던 것이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

한국에 동성결혼법안이 합법화 되며‘과연 동성부부에게 입양의 권리를 주어야 하나’라는 입양문제가 큰 화두로 떠올랐다. 최근 들어, 고아가 증가하고, 더 이상 남녀 부부가 아이를 가지지 않으려 하는 추세가 나타나게 되자, 정부는 동성부부에게 입양권을 주어 고아원의 아이들을 더 나은 환경으로 보내고, 안정된 가족상을 독려하여 남녀부부에게 출산을 장려하고자 '혼인 3년이상, 경제력이 법에 제정된 기준치 이상이 되는 동성부부에게만 입양권이 주어진다.' 라는 법안을 내놓았다. 예상대로 동성애를 절대 인정할 수 없는 교회 단체와 몇몇 시민단체들이 들고 일어섰고 동성애자들과 끝 없는 투쟁을 벌였다. 장장 2년 간의 전쟁 끝에 법안은 통과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달 전, 안의 생일이자 우리의 3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했다. 안은 예전부터 나와 자신과 아이가 있는 가정을 꿈꿔왔다. 자기 전, 우리가 함께 아이를 키운다면 얼마나 좋을 지,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그 아이가 얼마나 우리 가정에 기쁨을 가져다 줄 지에 대해 들뜬 목소리로 얘기하며 잠들었고, 입양에 대해 부정적인 나를 근 3년동안 계속해서 설득시켜 왔다.

“우리 입양하자.”

“씁, 그 말 그만하기로 했지.”

“너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

“응, 없어. 생각도 하면 안돼.”

“이제 우리 같이 행복한 사람도 많아졌잖아. 그럼 아이들이랑 같이 행복할 사람들도 늘어 날 거고…… 나도 일 계속하고 있고, 너도 일 계속 하고 있잖아.”

“우리 결혼한 것도 충분히 행복하잖아.”

부정적인 나에게 안은, 이제 제법 동성부부도 많이 늘었기 때문에 나중이 되면 동성부부가 아이를 입양하는 수치도 많이 늘 것 이고, 현재 고아로 크며 불우하게 살고 있는 아이를 사랑으로 우리가 잘 키운다면 아이도 행복하게 클 수 있다, 라고 매일 매일 얘기했다. 나는 얘기를 들을 때 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꾸했다. 안, 이건 우리의 욕심이야. 우리만 마음의 준비를 해서 될 문제가 아닌 것을, 나중에 아이는 우리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이가 커서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에 우리의 존재는 크나큰 장애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평범한 부부처럼 살고 있다 해도, 우리는 어디까지나 ‘동성부부’이니까. 안은 단호한 나의 입장에 물러서지 않고 소파에 고쳐 앉아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 양육시설 한번 들려만 보자. 들리기만.”

간절한 안의 눈빛에 나는 결국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어디까지나 ‘들리기만’ 하는 거야, 라고.

 

다음 날, 우리는 동성부부가 자주 찾는다는 양육시설로 향했다. 푸른 산 입구에 위치해있는 양육시설에 도착하자 괜히 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안은 그런 나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문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나에게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거나 장난을 걸었다. 원장은 선하게 생긴 중년의 여자였다. 원장은 우리를 맞으며 '환영합니다,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라고 말했다. 우리는 응접실로 보이는 곳에 앉아 차를 대접받고 원장과 짧은 대화를 주고 받았다. 소득은 어떻게 되는 지, 집이 있는 지, 아이를 좋아하는 지 와 같은 질문이었는데, 원장은 가볍게 묻는 듯 했으나 우리의 대답을 진중하게 들으며 노트에 글을 써 내려갔다.

“아이는 왜 입양하려고 하나요?”

꽤 어려운 질문이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옆의 안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한 아이에게 행복한 삶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저희가요.”

“좋은 대답이네요.”

원장은 인자하게 웃으며 노트를 덮었다.

면담 후,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원장은 우리를 데려갔다. 낮은 창문으로 보이는 교실 안에는 찰흙을 만지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들어오세요."

원장은 미닫이형식의 교실문을 열며 우리에게 손짓했다. 계속해서 내게 장난을 치던 안도 그 순간만큼은 긴장한 듯 손을 계속 쥐었다가 폈다. 우리는 조심스레 교실로 들어섰고, 아이들은 우리가 들어오든 말든 자기들끼리 열심히 찰흙놀이를 하는 데에 한창이었다. 원장은 편하게 아이들과 있어보라며 교실의 창문에 붙어 장난을 치고 있는 아이들을 창문에서 떼어 놓으러 갔다. 안은 어느새 한 자리를 차지해 아이들과 놀아주는 중이었다. 나는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바지자락을 만지 작 거리며 칠판을 쳐다봤다.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편이었는데, 그 날 따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멀뚱히 서서 안이 아이와 놀고 있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을 찰나, 작은 손이 내 소매를 부여잡았다. 경직된 고개를 내려봤을 땐, 조그만 남자아이가 내 소매를 잡고 있었다.

"뭐게!"

남자아이는 입을 오물거리며 물었다. 한글을 땐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보였다. ‘뭐게’하며 물어본 물체는 아이의 손에 들린 찰흙덩어리였다.

"......어......"

"맞춰!"

"그......"

나는 서둘러 쪼그려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아이는 계속해서 무엇인 지 알아 맞춰달라는 듯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며 내 눈앞에 형체를 알 수 없는 흰색의 덩어리를 내밀었다.

"뭐......뭘까."

아이의 표정이 점점 실망으로 얼룩져 가는 것이 보여 당황스러워졌다. 어떻게든 맞춰야 되는데 도저히 떠오르지가 않아 당혹스러움에 땀까지 났다. 그 때, 나를 따라 옆에 쪼그려 앉은 안이 아이를 향해 말했다.

"알겠다!"

아이는 금세 안의 눈 앞에 흰색 덩어리를 내밀며 눈을 반짝였다. ‘뭐게, 뭐게!’

"천사!"

"딩동댕!"

아이는 활짝 웃었다. 정말로 기쁜 듯이 웃는 모습에 내 경직되어있던 입 꼬리 마저 따라 올라갔다. 안은 '이 형이 보는 눈이 없어서 그래.'라고 말했고,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이는 더 활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다시 내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이거 형아 해. 천사."

"진짜 형 줘도 돼?"

"응."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는 아이가 주는 것을 아주 소중한 것을 받아 들 듯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아이는 만족스러운 듯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금세 자신의 친구들에게로 쪼르르 달려갔다. 안에게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응, 앉아있을 때 들었어.

“한이 참 예쁘죠?”

멍하니 아이를 쳐다보고 있는 내게 원장이 다가와서 물었다. 한이구나, 한이.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원장과 인사를 할 때도, 집에 가는 차 안에서도, 집에 와서도 그 아이, 한이가 준 흰 물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디에 둘까, 고심 끝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원상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아침마다, 점심마다, 저녁마다, 자기 전 탁자 위 아이의 선물을 보며 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나는 마음을 먹었다.

 

아침부터 한이에게 모진 말을 들었더니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집에 있으며 한이를 돌볼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한이가 집안 식구가 된 이후엔 비교적 업무가 자유로운 내가 프리랜서로 전향해서 집에서 일을 했다. 커피를 내려 거실에 소파에 앉는데 탁상에 놓인 천사가 보인다. 3살이었던 한이를 입양하고, 벌써 11년이 지났다. 자기가 만든 찰흙 마냥, 천사 같은 아이였다.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며 혹여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노라면 한이는 내게 다가와 '나는 아빠가 두 명이야.' 라고 말하며 천진하게 웃었다. 나는 어른들의 백마디 위로보다 한이의 그 한마디에 그 날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안과 나는 우리 아들이 누구에게도 손가락질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누구 못지 않게 사랑을 주고, 관심을 줬다. 한이가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를 가고, 중학교에 진학을 할 때 까지도 설령 한이에게 피해가 갈까, 우리는 우리의 ‘부모’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부모 노릇을 해왔다. 그것은 보통 '삼촌' 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였는데, 한이가 어릴 때는 사람들 앞에서 아빠, 아빠, 하고 불러버려서 난처한 경우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한이가 크고 우리가 '숨겨야 할 거리' 라는 걸 알게 됐을 때부터 직접 자기가 나서서 삼촌이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더 늘었다. 우리가 '숨겨야 할 거리'란 걸 깨닫게 된 자체가, 우리에겐 씁쓸하고 부모로서 견디기 힘든 것이었지만 집 안에서 한이는 다시 부모를 사랑하는 착한 아들로 돌아와주었다.

한이가 변한 것은 '숨겨야 할 거리' 를 들켜버리고 나서부터였다. 하교 후, 집으로 돌아와 보통 같았으면 내 옆의 의자를 당겨 그 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참을 얘기했을 한이가 입을 꼭 다물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내가 뒤따라 한이를 부르며 방으로 들어서려니 방문은 철컥철컥 소리만 낼 뿐 열리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며 몇 번 두드리자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고 얼굴이 빨개진 채 울고 있는 내 아들이 보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무슨 일이야, 응? 한아.”

떨리는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려는 내 손을 피한 한이는 울먹거리며 소리쳤다.

"들켰어!!!"

"무슨 소리야."

"엄마 없는 거 들켰다고!!"

"....."

"게이 아들인 거 들켰단 말이야!"

한이의 입에서 '게이' 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내 아들이 나에게 자신을 ‘게이아들’이라고 칭한, 그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정신이 어지러워 눈을 꾹 감았다. 한이는 계속해서 말을 토해냈다.

"애들이 나도 게이냐고 그랬어!!!"

눈을 감았는데도 울고 있는 한이가 보였다. 한이가 나를 혐오한다는 표정으로 소리친다. 계속, 계속.

"....한아."

"담임도 나 싫어하는 데 이유가 있었던 거야!!! 게이 아들이니까!! 오늘 따로 불러서 얘기 하는 거 반 애가 듣고 소문 다 냈어!! 게이 아들이라고!!"

아니, 대체, 왜.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때까지 우리가 한이의 부모임을 어쩔 수 없이 밝혀야 했던 사람들은 한이의 담임들이었다. 우리는 한이가 보이는, 보이지 않는 차별 받지 않게 하려고 담임들에게 간곡한 부탁과 물질적인 것들을 갖다 바쳤었고, 지금 한이의 담임은 가장 노골적으로 물질적은 것을 바랐던 사람이었다. 내 아들은 결국 주저 앉아 울었다. 나도 따라서 주저 앉았다. 나는 계속해서 내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되뇌었다. 손을 뻗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한이가 내 손을 피할까 너무나 겁이 났다. 내가 미안해, 내가 미안해. 내 아들은 무책임하고 힘 없는 부모의 늦은 사과를 들으며 끅끅 울음을 토했다. 우리 둘은 안이 퇴근을 해서 집에 올 때 까지 그 곳에 주저앉아 울기만 했다.

한이는 그 후로 안과 나에게 입을 닫았다. 우리와의 사이를 예전보다 더 철저히 감췄으며, 관여 자체를 못하게 막았다. 웬만한 일은 혼자서 다 처리했고, 안과 나는 중학생의 어린아이가 부모가 할 일을 혼자서 다 처리하는 모습을 보며 매일 울음을 삼켜냈다. 전학 간 학교에 친구가 있는 지, 담임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전혀 알 수 가 없었다. 부모인데, 자식에 대해 아는 게 정말 하나도 없었다. 아들이 우릴 남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두려워서 나는 한이에게 말을 걸었다. 매일 혼잣말이 될 지라도 말을 걸었다. 아니, 외쳤다.

한 가지 우리와 공유하고 있는 한 가지는 정신과 치료였다. 사실은 그 치료마저 한이와 함께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안과 나는 이것이 한이와의 유일한 소통 수단이었고, 이주에 한번 있는 부모 상담시간을 항상 마음 졸여가며 기다렸다. 담당의는 한이가 심한 충격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심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지금 정신치료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부모님들을 한이가 이해하는 것인데… 현재로썬 현이가 이해를 하려는 마음 조차 열지 않아서, 조금 힘드네요.”

잠시간 부담스런 접촉은 피하라는 말이 따라왔다. 나와 안은 그저 알겠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은 안과 내가 부모 상담이 있는 날이었다. 상담사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연상하기] 라는 제목에 활동하기 종이였다. 큰 동그라미에 남자와 여자가 손을 잡고 서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 동그라미를 중심으로 한이의 글씨가 가지처럼 쳐져 있었다.

사랑, 별이, 부끄럽다, 좋은 거, 정상.

"별이?"

"한이가 좋아하는 여자애 라네요."

상담사는 슬핏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었구나, 미소가 지어졌으나 속이 쓰렸다. 상담사랑은 이런 얘기 까지 하는 구나, 싶었다. 상담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뒷장을 보라고 했다. 뒷장에는 큰 동그라미에 여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가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친구, 이상하다, 징그럽다, 비정상.

옆의 안이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아마… 한이의 생각이라기 보단 주위에서 한이가 동성애자들에 대해 들은 말들을 적은 거 같아요.”

예쁜 한이의 글씨가 뿌옇게 흐려졌다. 웬만하면 상담하면서 감정을 억제하려고 하는데, 오늘은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무릎 위에 올려져 있던 손을 애써 쥐어 봤지만 그 꼭 쥔 주먹 위에 내 눈물이 투둑 투둑 떨어졌다.

"그럼 한이의 부모님의 사랑은 어때? 라고 물어보니 대답을 못했습니다."

"........."

"..한이는 동성애자를 인정하기 힘들어하는 거 같아요. 하지만 부모님 두 분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보여요. 어릴 때 얘기를 하면서 부모님이 얼마나 자신에게 사랑을 쏟았는지 자주 얘기하거든요. 자기가 사랑하는 부모님이 동성애자라는 걸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과, 세상의 시선이 너무나 힘든 겁니다. 지금으로써 학교생활은 무난하게 잘 해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어린 아이가 견딜 만한 상황은 아니에요. 위험한 상태입니다, 지금."

오늘 전문의의 처방은 한이를 나의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당분간 맡기는 것이었다. 상담 후 안과 집으로 가는 차 안. 나는 마른 입술을 열었다.

"한이, 보내자."

안은 아무 말도 않은 채 깊은 한숨만 쉬었다.

"나중에, 한이가, 우리."

자꾸 욱하고 치미는 무언가 때문에 말이 끊긴다. 그런 나를 잠깐 돌아본 안은 다시 앞을 보며 내 대신 말을 이었다.

"이해할 수 있을 때 같이 살자."

"아니."

나는 고개를 완강히 저었다. 이해가 아냐, 우리는 한이에게 이해를 바라서는 안돼. 안은 잠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용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한이의 이해가 아니라, 용서를 기다려야 해.

 

아들이 좋아하는 빵을 잔뜩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전문의가 몇 달 간 부담스런 접촉은 피하라고 해서 방문 근처도 못 갔었는데, 오늘은 안과 방문 앞까지 왔다. 웃는 얼굴 보여줘야지, 억지로 웃어 보이려 입 근육을 움직였더니 눈물 자욱이 마른 곳이 땅겨온다. 한아, 자? 나는 작게 말하며 방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나는 애원하듯 한이를 부르며 문을 두들겼다.

“한아, 한아. 너 좋아하는 빵 사왔어.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 응?”

방 안은 기척도 없이 조용했다. 안은 현관에 가지런히 벗어져 있는 한이의 신발을 보며 다시 한 번 문을 두들겼다.

“한아, 할 얘기 있어. 잠시만 문 좀 열어봐.”

“한아.”

이상했다. 안에 있으면 제발 있다고 만이라도 대답해줘, 한아. 아무리 두들겨도 대답이 없자, 안은 다소 화가 난 듯 목소리에 힘을 주어 문에 대고 말했다.

“있으면 있다고 문이라도 두들겨 봐. 걱정 되잖아.”

나는 계속해서 내 몸을 덮쳐오는 불안한 기운을 애써 떨쳐버리려 한이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

한아, 한아.

한이의 이름을 부르는 틈새로 의사의 목소리가 겹쳐 들어온다.

위험한 상태입니다. 지금, 지금. 위험한 상태, 입니다.

안은 큰 방안에서 열쇠를 들고 왔다. 아니야, 열지마. 그냥 한이는 안에 있는데 우리 보기 싫어서 문 잠그고 대답도 안 하는 거야. 응? 열지마. 열지마. 안은 내 호소에 가까운 부탁에도 문고리에 열쇠를 꽂았다.

 

철컥.

철컥.

 

한아.

한아.

한아.

 

이윽고 침묵을 유지하던 사랑하는 아들의 방 문이 열렸다. 안과 나는 그렇게 열리길 바라던 문이 열렸는데도 방문 앞에 멈춰 섰다.

 

활짝 열린 방문의 끝에,

아들이 좋아했던 높은 천장에 끝에,

교복 넥타이의 끝에.

 

내 아들의 새하얀 발 끝.

 

불러도 대답 없는 내 아들은 혼자 견뎌야 하는 아픔을 삼키느라, 삼키느라, 우리에게 대답을 못했구나. 우리 아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픔에 터져 나오는 신음을 손으로 막았으나, 손 사이로 눈물이 줄줄 새어 나온다. 안은 입술을 꼭 깨물고 부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움직여 아들의 이름을 한없이 부르며 걸려진 목을 빼내 침대에 눕혔다. 나는 떨리는 손 끝으로 한이의 심장 부근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안, 119, 119. 불러. 안 뛰어, 한이 심장이 안 뛰어.

혼자 모든 것을 견뎌야 하는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 한이는 이 얇은 끈에 그 무게를 걸었을까. 얼마나 무거웠을까, 아아 우리 아들.

눈물 범벅인 손으로 한이의 얼굴을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얼굴이 너무 차갑다. 몸이 너무 차갑다. 나는 홀린 사람처럼 우리 한이의 몸을 계속해서 주물렀다. 너무 차갑다, 너무. 아들의 마른 팔을 주무르는데 그제서야 가슴께 에 고이 접힌 종이가 보였다. 나는 이제 부들거리는 오른손으로 종이를 집어 들었다.

 

「 사랑하는 부모님에게 아들을 많이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이해를 못 해줘서 미안해 미안해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

종이를 부여잡고 한참을 다시 읽고, 다시 읽었다. 자꾸 종이가 바닥으로 떨어져서 나도 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무책임하고 힘 없는 부모라, 한이 앞에서 주저 앉아 엉엉 우는 일 밖에 할 수 없다. 밖에서는 안이 우리 집 주소를 소리치다시피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우느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을 쉬기 싫었다. 한이는 쉬고 있지 않은 숨을 나 혼자 쉴 때마다 죽고 싶었다.

나는 한이의 옆에 누워 아들의 예쁜 글씨가 담긴 종이를 왼쪽 가슴에 얹었다. 우리 아들의 예쁜 글씨가, 마음이, 생각이 스며들어 못난 부모, 이 내 가슴에 새겨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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