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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킬-20회 창원대문학상 소설 가작20회 창원대문학상 소설 가작

로드 킬

 

박 다 슬(인문대․국어국문학과 3년)

 

양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가 멈추며 내는 날카로운 소리가 차가운 아침을 가로질렀다. 모골이 송연해진 양은 핸들을 잡은 채로 몇 초간 얼음처럼 굳어 있다가 가까스로 자신을 추스르고, 안전벨트를 풀어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열고 나간 순간부터 차 안의 훈훈한 공기로 데워져 있던 양의 몸이 빠르게 식기 시작했다. 양은 추위에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팔짱을 끼고서는 자신의 자동차 앞을 바라보았다. 중고차이긴 하지만 얼마 전에야 겨우 다 할부 값을 갚은 소형 자동차는, 양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얼마 안 되는 자산 중 하나였다.

다행히, 자동차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양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안개처럼 퍼졌다가 사라졌다.

양은 뒤늦게 아래를 바라보았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은 차가운 흙바닥에, 지저분한 고양이 한 마리가 축 늘어져 있는 고양이는 마치 잘 만들어진 인형 같았다. 죽은 게 확실한가? 치워야 하나? 어디에 묻어야 하는 건가? 양은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며, 고양이 주위를 맴돌기만 했다.

그 때, 저 멀리서 탈탈 거리며 자동차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양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트럭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양이 있는 쪽으로 오고 있었다. 양이 서 있는 길은 잘 닦인 도로가 아닌, 한적한 시골에 나 있는 좁은 흙길이었기 때문에 양이 차를 여기에 세운 채로 어영부영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소심한 양은 운전 시작할 때 윽박을 종종 들었기 때문에, 다른 운전자와 마주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양은 울상을 지었다. 고양아, 미안해. 조용히 속삭인 양은 서둘러 운전석으로 돌아가 핸들을 잡았다. 고양이 시체가 있을 자리를 피해서, 양은 차를 몰았다. 시린 아침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고요해졌다.

차 안의 따뜻한 공기에 양의 몸은 다시 따뜻해져갔다. 그러나 양의 기분은 한껏 가라앉아 있었다. 양이 고의로 한 건 아니라지만, 출근길부터 동물을 치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자동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를 보니 잠시 잊고 살았던 옛날 일이 생각나기까지 한 것이었다.

양은 날 때부터 갖고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부모님이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었고, 얼굴이 예쁘거나 몸매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얼굴에서 유난히 큰 코 때문에 주먹코라며 놀림 받고 중 고등학교 때에는 왕따도 당했기 때문에, 학창 시절의 기억은 좋은 기억이 그다지 없었다. 뭘 말해도 비웃음만 샀기 때문에 성격은 더욱 소심하고 어두워져 갔다.

그 때문에 양이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뿐이었다. 모두가 철썩 같이 믿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양도 종교에 몸담은 신자처럼 그 사실에 매달려 공부에 매진했다. 마치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대학에 가기만 하면 양을 짓누르는 모든 고통이 사라질 거라고 믿는 듯이.

그러나 이번에야말로 양은 자신의 생이 아주 글러먹었다고 생각했다. 그 전까지는 사람에게는 행복과 불행의 양이 정해져있고, 자신에게는 불행이 조금 일찍부터 시작한 것뿐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자신의 생은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었고 앞으로도 그보다 더 나아질 리는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이었다. 그것은 양이 고등학교 3학년이 거의 마무리되는, 수학능력시험을 치루는 날의 일이었다.

양은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이 날만을 기다렸다. 양은 언제나 그랬듯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모든 준비를 끝마친 후,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그러나 양이 부지런히 나간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졌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적한 도로에서, 양은 불행히도 교통사고를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신호등이 설치되지 않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할머니였다.

양은 아연실색하여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할머니가 자동차에 세게 부딪혀 나가떨어지는 것을 잠시 멍하니 서서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급히 그리로 달려갔다. 자동차 운전자는 무척이나 놀랐는지 차를 세운 채로 안에서 나오지를 않고 있었다.

양은 일단 덜덜 떨리는 손으로 교복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을 들고 올지 말지 고민했었는데, 만약 들고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양은 더듬더듬 112에 전화해 이 상황을 알렸다. 신고를 하고 있는 양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건지 운전자도 겨우 자동차 문을 열고 나왔다. 차에서 나온 중년 남성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피를 쏟아내며 생명이 스러지고 있는 할머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화를 끊은 양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저도 모르게 죽어가는 할머니를 쳐다보았고 할머니와 눈이 마주쳐버린 것이었다. 온 몸이 떨려왔다. 그러나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의 핏발 선 흰자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양은 오싹했다. 죽음을 이렇게 생생하게 목도한 것은 처음이었다.

중년 남성은 양이 보이지도 않는지 할머니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뱉듯 연신 욕을 지껄이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자동차 몇 대, 사람들 몇 명인가가 스쳐지나갔지만 모두 끔찍한 것을 봤다는 듯 잠시 보다가도 서둘러 멀어지기 일쑤였다. 양은 자신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했기 때문에 가지 못하고 멍청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 때, 양은 할머니의 손가락이 꿈틀거리는 걸 봤다. 양은 깜짝 놀라 새된 목소리로 중년 남성에게 말했다.

 

“아저씨, 할머니가 살아 있어요.”

 

그 말에 중년 남성은 할머니를 내려다보았다. 할머니는 보란 듯이 다시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중년 남성은 한 발자국도 걸음을 떼지 않았다. 그는 망부석처럼 서서 양을 흘겨보며 말했다.

 

“그렇구나.”

“네?”

“그래서 어쩌란 거니? 곧 죽을 사람이잖아. 우리는, 구급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양은 중년 남성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멍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중년 남성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되어 있었다. 초점 없는 눈이 정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딘가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양은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할머니는 남자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정말 죽은 사람 같았다. 양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점점 할머니의 몸에서 나온 피 웅덩이가 커져서 양의 발끝에 닿을 듯하자 양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무정할 수가 있지? 양은 왠지 모를 두려움에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운동화 끝에 조금 묻어난 피를 바라보았다. 양은 발끝을 세워 바닥에 대고 문질렀다. 그러나 운동화 끝이 헤지기만 할 뿐 핏자국은 사라지지 않고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왔다. 구급대도 왔다. 신고자인 양이 수험생이란 것을 알자 경찰은 딱한 얼굴로 양을 바라보고는, 시험부터 치르는 게 좋겠다며 별다른 질문은 하지 않고 그녀를 수험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경찰이 데려다 준 덕에 제 시간에는 도착했다. 그러나 양의 심란한 마음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서 신발 끝에 묻은 핏자국을 완전히 씻어냈지만 머릿속에 고여 있는 기억만은, 시험이 시작할 때까지 머릿속에서 흘러 나가지 않았다.

결국 그 날 양이 칼을 갈던 시험은 목전에 다다라 엎어지고 말았다. 엉망진창으로 시작된 시험을 겨우 마무리하고, 양은 경찰서에 다시 소환되어 목격자 진술을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자신이 오늘 하루를 완전히 망쳐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 하루로 인해 자신의 인생 또한 낙오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양은 그간 했던 노력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결과를 받았다. 그렇다고 다시 한 번 수험을 칠 여건도, 여력도 없었던 양은 터무니없는 결과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잘난 것 하나 없는, 못생기고 소심하고 가난한 양은, 노력에 대한 보상도 받지 못했지만 자신의 불행에 억울함을 느낄 시간도 없이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았다.

왜 하는 지 이유도 잘 모른 채 먹고, 자고, 일어나고, 공부하고, 시험을 치르고, 졸업을 했다. 그리고 부모의 권유에 못 이겨 공무원 시험을 공부하고 합격해서 직장에 다닌 게 벌써 5년이나 된 이야기다.

양은 통계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통계직 공무원에 지원해 통계청에 다니고 있었다. 자신은 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애살맞은 성격도 아니었기 때문에, 취직해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열심히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녀가 일을 아무리 잘해도, 음침한 그녀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은 바닥이었고 묵묵하게 일을 잘할수록 일거리만 많아서 골치를 떠안을 뿐이었다.

그녀가 여태까지 겪은 사회는, 아닌 척 하면서 철저하게 이분법으로 나누어져 있는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행동이나 성격뿐만 아니라 외모조차도 맞다, 아니다로 평가 당하고, 계속 아니라는 판정을 받는 이른 바 약자들은 사회에서 도태되어 멸시당하기 일쑤였다. 실례로 양이 고등학교 때 본, 교통사고로 인해 죽은 할머니도, 약했기 때문에 그 중년 남자는 그렇게 잔인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일 터였다.

양이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는 모두가 한 것처럼 좋은 대학을 목표로, 좋은 직장을 목표로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르는 흉내를 내며 바쁘게 살긴 했지만, 안정된 직장을 얻고 주변 사람들에 대해 알면 알수록 양의 이러한 비관적인 생각이 점점 양의 머릿속을 잠식해갔다.

양은 우울한 얼굴로 사무소 주차장에 차를 댔다. 그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사무소로 향했다. 양이 하는 일은 전국의 가구 수를 조사하고 혼인이나 이혼이 발생할 경우 그것을 세어서 데이터로 남기는 것이었다. 처음엔 헤맸지만, 이제 일도 꽤 익숙해져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은 사무소의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양은 조금 어수선한 사무실 분위기에 눈치를 살피며 자리로 들어왔다. 삼삼오오 모여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제법 심각한 분위기였다. 양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이 생긴 지 궁금하긴 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자신에게 사람들은 좀처럼 얘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양의 예상과는 달리, 다른 사람도 아닌 과장이 양에게 와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양 씨, 잠시 시간 괜찮아요?”

 

양은 처음 있는 일에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순순히 그의 뒤를 따랐다. 과장과 양은 자판기가 있는 휴게실로 향했다. 과장이 커피를 뽑아 양에게 건넸다. 과장에게 무언가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양은 조심스레 커피를 받아들었다. 과장은 말했다.

 

“양 씨, 오늘 봤겠지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좀 그렇죠?”

“네…….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음…….”

 

과장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무겁게 입을 뗐다.

 

“우리 과에서 사망 통계 맡고 있는 김 혁재 씨 알죠?”

“아…… 네.”

 

사실 잘 아는 건 아니었고 이름만 몇 번 들어본 정도였다. 그러나 양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과장도 그녀가 그 사람을 잘 알거라고 생각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과장은 말을 이었다.

 

“그 분이 돌아가셨어요, 어젯밤에. 교통사고라더군.”

 

양은 종이컵을 든 채로 딱딱하게 굳었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머릿속에 오늘 아침에 친 고양이가 떠올랐다. 양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리가 없는 과장은 계속해서 말했다.

 

“음주 운전을 했다나 봐요. 저도 오늘 아침에 소식을 듣고 급하게 장례식에 가려는 참입니다. 저희 과에서도 몇 명만 오전에 잠시 시간 내서 다녀올 생각이고요. 그 동안 부탁 좀 할까 싶어서 이렇게 따로 불러낸 겁니다.”

“무슨…….”

“어려운 건 아니고…….”

 

과장은 그렇게 시작해서 본론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과장의 말을 요약하자면, 그 사람을 대신해서 그에게 올 데이터를 정리해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양은 사망자 대신에 그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약간 꺼림칙하기도 했지만, 거절할 만한 구실도 없고 배짱도 없었기 때문에 그러마했다.

과장도 양이 거의 자신의 일을 마무리한 것을 알고 맡기는 것일 게 분명했다. 통계는 대부분 월말에 바빠지지만, 양은 항상 빠르게 일을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남의 일을 떠맡는 게 없던 일은 아니었다. 누가 월차나 병가를 내거나 휴가를 갈 때 양이 다른 사람의 일을 도와주는 일이 심심찮게 있었다. 누가 사망해서 일을 맡게 되는 건 처음이었지만.

과장은 그렇게 그 날 오전 몇 명의 직원들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러자 사무실도 점차 진정이 되어 이윽고는 다 평소와 같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양 역시도 일을 하기 시작했다. 과장의 말로는 다른 사망 통계원들에게 미리 말해놨기 때문에 양의 메일로 올 데이터를 잘 받아서 정리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양은 칸막이 너머로 흘깃 그 사람의 자리를 건너서 봤다. 그러나 조금 자리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다. 김 혁재라는 사람을 양은, 그 전에도 몇 년인가 같은 공간에 있긴 했지만 잘 알지는 못했다. 양은 밥도 직원 식당에서 혼자 먹었고, 정말 이따금씩 있는 회식이나 모임에도 일절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얼굴은 알음알음으로 해서 알고는 있었다. 나이는 삼십대 중후반으로 보였고, 풍채가 조금 있었다. 그래서 여름이 되면 꽉 낀 와이셔츠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그것 말고는 양이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보려고 해도 잘 안 봐지는 자리에 앉아 있는데다가, 사망 통계 쪽 사람들과는 인구 동향에 대해서 총 데이터를 내는 연말에도 잘 보지 않는데 무슨 수로 알 수가 있을까.

그러다 문득 양은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여기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을 알지 못하듯, 나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겠지? 몇 년이나 같은 공간에서 일했는데도. 그리고 알고 있어도, 좋은 이유는 아닐 것이다. 원래 좋은 소문은 잘 돌지 않는 법이니 말이다. 자신이 죽었을 때야 그런 사람이 있었군, 하며 한 번 돌이켜 볼 뿐일 것이다. 크게 미움 받은 것이 아닌 이상, 나이도 젊은데 안타깝게 됐군, 하는 동정도 좀 받으면서.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다시 일에 집중하던 양은 얼마 지나지 않아 키보드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췄다. 메일이 왔기 때문이었다. 메일을 열어보니 엊그제 일어난 사망을 엑셀 파일로 통계 낸 자료였다. 사망 원인과 함께 정리된 표는 끝이 없었다. 하루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나 싶을 정도로 많았다. 스크롤은 숫자가 세로로 200칸인가 됐을 쯤에 끝이 났다. 끝에는 총 사망 인원수가 적혀 있었다. 233명.

그 때 또 메일이 왔다. 역시나 엊그제 일어난 사망에 대한 엑셀 파일이 메일로 첨부되어 왔다. 그러나 원인이 달랐다. 아마 사망 원인 별로 분류를 한 뒤 사망 인원을 조사하고 그것을 모두 총망라해서 사망 인원을 통계 내는 것이 이 사람의 일이었던 모양이다.

양은 멍하게 모니터 화면에 나타나 있는 복잡한 엑셀 화면을 보았다. 두 번째 메일은 첫 번째 메일보다 그렇게 스크롤이 길지는 않았다. 총 인원수 34명, 원인은 자살이었다. 양은 어느새 자신의 일보다 메일로 온 엑셀 파일에 빠져 있었다.

죽음이 숫자로 카운트 되어 있고, 그것을 정리한 것을 보고 있다. 그건 정말 기묘한 느낌이었다. 양도 절망적인 삶을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진지하게 죽음에 대해 생각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술 취한 남자에게 아무 이유 없이 맞았을 때, 못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버지에게 이유 없이 맞았을 때, 수능을 망쳤을 때……. 그 외에도 정말 몇 번이고 있었다. 그러나 죽지 못했다. 막상 죽으려고 하면 항상 두려움이 발목을 잡았다. 자기 손으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 두려움을 넘어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사람들은, 정말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사는 것이 지옥보다 더 고통스러워서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근데 그런 사람들이 하루에 서른 여 명이나 된다는 것에 양은 놀랐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도 괴로운 죽음이 이 무감정하고 딱딱하며 객관적인 숫자라는 개념으로 기록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사람의 죽음을 숫자로 표시하니 너무도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양, 본인의 모습이었다. 이제 며칠 후에 정리될 오늘 자 통계에는, 이 사망 인원 데이터를 수집하던 이 남자의 목숨이 카운트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사람의 목숨이 별 것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쩌면 사람은 죽기 위해 태어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엑셀 파일을 보고 있자니, 이 데이터를 매번 통계 내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양이 자신의 일을 아무 생각, 아무 감정도 없이 하는 것처럼 저 사람들도 그렇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반대로 자신의 일에 막중함을 갖고 일할 지도 모른다. 양은 고개를 빼고 사망 통계 라인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모두 일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양은 그들의 굽은 등을 잠시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

 

양은 지친 발걸음을 이끌어 차에 타고 시동을 걸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오늘은 양에게 있어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평생을 합쳐 능동적으로 살아온 날이 얼마 없던 지난날에 비해 오늘은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에너지를 얻을 만한 긍정적인 생각이 아닌,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에 하루 온종일 머리를 굴렸기에 양은 녹초가 되었다.

양의 기분처럼 자동차도 우울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양은 기계처럼 집으로 차를 몰았다. 항상 해왔던 일이었기 때문에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의무처럼 차를 몰고 집에 가고는 있어도, 집은 휴식을 취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적어도 양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냉랭한 부모, 철딱서니 없는 남동생 한 명과 같이 사는 양은 집안일도 도맡아 했으며, 생계도 아버지와 양 두 사람의 돈으로 근근이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집에서 양의 입지는 크지 않았다. 그것은 양의 소심한 성격이 한 몫 했다. 가족들은 양의 돈을 받고, 양이 치워주는 집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그녀를 혐오하고 무시했다. 양은 그냥 집에서 딸이라는 이름을 한 노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가족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지내온 나날 동안 도망치고 싶은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양의 양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책임감과 죄책감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특히나 부모는 자신을 낳고 길러준 사람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어떻게 대했든, 자신을 내치지 않은 것에 감사하라는 말에 곧이곧대로 순응하며 살아온 것이었다. 항상 그랬고, 오늘도 아마 그럴 것이다.

양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차를 몰았다. 차는 도심을 지나, 양의 집이 있는 시골로 점점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은 오늘 아침 고양이를 쳤던 길을 지났다. 너무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고양이에 대한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멈춰서서 고양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려 했지만 어느새 날이 어두워 져서, 바닥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양은 금세 고양이를 보는 걸 포기하고 계속해서 차를 몰았다.

벌써 도착했네. 아무 생각 없이 운전하던 양은 익숙한 풍경에 차 속도를 낮추었다. 양은 우울한 얼굴로 핸들을 잡은 채 집 앞에 능숙하게 주차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TV 소리가 새어나왔다. 양은 거실로 갔다. 양의 어머니와 동생이 이불이 깔린 바닥에 누워서 TV를 보고 있었다. 양이 온 걸 알고서도 양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TV 삼매경이었다. 양은 평소와 같이 아무 말 없이 방에 들어가려다가 입을 열었다.

 

“저 왔어요.”

 

양의 어머니와 동생은 그 소리에 동시에 양을 힐긋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대답도 뭣도 아닌 으응, 하는 소리를 대충 내고서 두 사람은 다시 TV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양은 다시 입을 열었다.

 

“밥 먹었어요?”

“먹었다.”

 

양은 그들의 대답을 듣고 그제야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옷장 하나만으로도 꽉 차는 작은 방에서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몸을 조여오던 바지와 셔츠를 벗자 살 것 같았다. 양은 잠시 바닥에 주저앉아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때 뱃속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났다. 점심도 먹지 않고 일했으니 배가 고플 만도 했다.

양은 옷장을 정리하고 부엌으로 갔다. 반찬을 펼칠 여력도 없어서 시래깃국에 밥이나 말아먹으려고 끓이기 시작했다. 불에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래깃국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양은 국그릇에 국과 밥을 말았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따뜻한 시래깃국의 냄새를 맡고 있으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베란다와 연결된 부엌은 유난히 추웠기 때문에 양은 그릇을 들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걸 본 양의 어머니는 말했다.

 

“밥 먹니?”

“네.”

“참……. 아빠 오면 같이 먹지 않고.”

“……죄송해요.”

 

당황한 양은 대충 그렇게 얼버무렸다. 사실 뭘 잘못했는지는 본인도 몰랐다. 아버지랑 밥을 자주 먹는 것도 아니었고 아버지가 올 때까지 기다리려면 적어도 두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냥 어머니의 죽 끓듯 한 변덕이었다. 양이 가지도 오지도 못하고 쭈뼛쭈뼛 서있자 어머니는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그거 먹고 음식물 쓰레기 좀 버려라.”

“……네.”

 

양은 서둘러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순식간에 허기가 사라지고 입맛이 떨어졌다. 양은 멍하게 시래깃국을 내려다보다가 한 입 떠서 먹었다. 고소하게 맛있었다. 그러나 좀처럼 목 아래로 넘어가지 않았다. 양은 가까스로 밥을 넘기고 한숨을 푹 쉬었다. 이렇게 먹다가는 분명히 체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하루 온종일 고생할 것이다. 양은 결국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벌러덩 바닥에 누운 양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얼룩덜룩한 천장이 보였다. 이게 현실이었다. 아무리 깨끗하게 하려고 해도, 얼룩은 좀처럼 잘 지워지지 않는다. 양의 삶이 그랬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양은 멍하니 천장을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까무룩 잠들고 말았다. 오늘 하루가 평소보다 더 피곤했던 탓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뜬 것은, 양의 남동생의 발길질로 인해서였다.

갑자기 다리에 울리는 둔탁한 아픔에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니, 남동생이 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동생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엄마가 음식물 쓰레기 버리고 오래.”

 

양은 멍청한 얼굴로 두 눈을 끔뻑였다. 너무 놀라서 말이 안 나왔다. 그러나 남동생은 그런 양이 싫다는 듯 얼굴을 찌푸린 채로 방에서 나가버렸다. 양은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먹던 국그릇을 들고 부엌에 가서 음식물 하수구를 보니 역시나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양은 한숨을 쉬고 비닐봉지를 꺼내 물을 뺀 음식물을 털어 넣었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양의 부모는 양의 남동생에게는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했다. 남자가 부엌에 가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집안일은 양이 도맡아서 할 수밖에 없었다. 양을 임신했을 때, 양이 여자라는 걸 알자 낙태시키려고 했던 부모이니만큼, 그리 놀랄 만한 교육 방식은 아니었다.

양은 자신이 먹은 시래깃국도 처리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기 위해 돌아섰다. 뒤를 돌아보자, 거실에서 나란히 누운 채로 TV를 보며 떠들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음식물 쓰레기를 치울 때보다 더 역한 기분이 들었다.

양은 정말 충동적으로,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식탁에 툭, 올려놓았다. 그러나 아무도 양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양 역시도 시선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양은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급하게 외투를 걸치고 차 키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서 벗어나, 집 밖으로 나갔다.

 

*

 

양은 헐레벌떡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뛰는 모습이 우습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은 이후로 뛰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런 것을 다 잊을 만큼 생애 가장 격렬하게 달렸다.

모든 게 다 이상하다. 애써 외면하고 있던 사실을 한 번 들춰내자 양을 무섭게 덮쳐왔다. 세상은 양에게 너무 이상한 것투성이였다. 영문도 모르고 양은 못생겼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고, 조용하기 때문에 직장에서 외톨이지만 필요할 때만 부르고, 가족들은 양을 괴롭히면서도 그녀가 없이는 살 수 없다. 맞다 생각했던 것이 틀린 것이라고 하고, 틀렸다고 생각한 것이 맞는 것이다. 종래에는 양은 양 본인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되어버렸다. 바람에 떠밀려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처럼 계속, 반복해서, 다른 것에 의해 움직이고 흘러갔다.

양은 어지러운 머릿속을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서 떨치려했다. 그녀는 겨우 차에 차키를 꽂아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출발은 하지 못했다. 머리가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핸들에 머리를 기대고 양은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려 했다.

 

왜 양은 일하고 있는가?

가족들을 위해서이다. 혹은 먹고 살기 위해서이다.

왜 가족들을 위해 일하는가?

가족이니까.

가족이 자신을 희생시킬 만큼 소중한 존재인가?

모든 사람들이 가족은 소중한 존재라고 말하니까, 그리고 가족을 미워하면 이상한 눈으로 보니까, 소중한 존재인 것 같다.

그렇다면 소중한 존재를 위해 희생하는 본인은 행복한가?

…….

양은, 왜 살고 있는가?

……….

양은, 누구인가?

………….

 

양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서른 살이 다 되어가도록, 양은 자신이 누구냐는 대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 사실을 그녀는 방금 깨달았다. 정신이 나갈 쯤이 되어서야 말이다.

양은 차를 몰았다. 그녀가 항상 가던 익숙한 길이었다. 변변한 가로등 하나 없는 흙길을 자동차는 달렸다. 늘 그랬듯. 그러나 핸들을 잡은 그녀의 표정은 평소와 달랐다. 급하게 집에서 뛰쳐나오느라 꼴은 엉망이었지만 항상 흐리멍덩하던 눈이 또렷했다. 양은 천천히 갓길에 자동차를 멈춰 세웠다. 갓길이라도 해도 양의 자동차가 길을 꽉 채우고 있었지만 양은 개의치 않았다. 양은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양이 온 곳은 바로, 오늘 아침에 고양이를 친 그 거리였다. 주변이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양은 핸드폰 플래시라이트를 땅에 비추며 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양이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양은 고양이에게 불빛을 비추었다. 고양이는 이미 몇 번이고 탈 것의 바퀴에 밟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고양이의 색깔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양조차 알아보지 못할 만큼 납작하게 깔려 있었다. 평소라면 징그럽다고 생각하고 지나쳤을 것이, 오늘은 하나도 징그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양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어쩐지 칠흑 같은 밤중에 플래시라이트를 고양이에게 비추고 있으니, 고양이가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았다. 고통스럽게 죽고, 밟혀서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후에야 받는 스포트라이트였다. 조금씩 눈물을 흘리던 양은 이내 섧게 울기 시작했다. 으으, 으……. 목을 누가 움켜쥔 상태에서 내는 듯한 소리는 울음소리가 아니라 고통에 찬 신음소리에 가까웠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양은 목에 핏대를 세운 채 울었다. 어깨가 들썩였다. 피와 가죽으로 엉망진창이 된 채 죽어있는 고양이는 그녀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눈물에 시야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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