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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 이야기-20회 창원대문학상 소설 장려20회 창원대문학상 소설 장려

그 애 이야기

 

류 화 정(사회대․국제관계학과 3년)

 

 

아직도 신발 밑창을 보면 그 애가 생각난다. 그 때 우리는 가난했고 자주 우울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을 보며 우리는 각자의 집을 찾아 들어갔고 거기서 아침을 먹고 잠을 잤으며 그 곳에서 다시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방 안에 추운 공기를 느끼고 입김을 한 번 불어보며 달달 떨고는 어제 먹다 남은 라면국물에 밥을 말아먹고 차가운 물로 입을 한 번 헹군 후 집을 나선다. 그러고 끼익 거리는 대문을 열고서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딱 넷까지 세면 그 애는 내 코앞을 딱 두 걸음 만에 지나가곤 한다. 그 애는 아침마다 새벽 찬 공기를 마시며 빠른 걸음으로 종종거리며 뛰어갔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 날은 내가 조그만 신문사에 면접을 보는 날이었고 신문 돌리는 일을 그만 두는 날이었다. 그 애는 달동네에 사는 애 답지 않게 하얀 얼굴이었고 또 달동네에 사는 애답게 비쩍 말라있었다. 그 애를 제대로 본 건 몇 번 없다. 신문을 돌리러 밖에 나갈 때 그 애를 마주친 게 처음이었다.

그 마저도 바삐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왠지 나는 그 애의 달싹거리는 신발 밑창이 기억에 남는다. 신발은 헤져있었다. 만약 그 애가 바쁜 걸음을 하지 않는 날이면 그 애를 오래도록 쳐다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오래 쳐다보지 못하리라는 걸 안다. 그 애와 친해지게 된 건 신문사 면접이 발표 나는 날이었다. 면접을 본 며칠 후였을 것이다. 습관과도 같은 새벽공기가 나를 깨웠고 습관과도 같은 그 애의 잔상이 나를 눈뜨게 만들었다. 끼이익하는 대문 소리와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눈을 뜬다. 딱 넷까지 세면 보이는 그 애가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왼쪽, 오른쪽을 두리번 두리번 거리고 혹시 내가 잘 못 본 건 아닌지 눈곱 끼인 눈을 두 손으로 비비적댄다.

 

그 때 "얘. 누구 찾니? 나를 찾니?"

 

잠들기 전 그 애의 목소리를 상상하곤 했다. 어떤 목소리일까?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그 애는 내게 그저 하얗고 허름하고 또 볼품없이 깡마른 여자애였다. 나는 그 애의 빠른 걸음 소리를 좋아한다. 빠르지만 언제든지 따라잡을 수 있는 걸음속도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그 애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걸음이 빨라졌고 어쩔 때는

달리기선수가 꿈인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뛰곤 했다.

 

한 번은 그 애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싶어서 미리 나와 기다리곤 했다. 그날 역시 빠르게 뛰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세상 천지에 어떤 별도 이보단 빛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또 입술은 어찌나 붉던지 아름다운 그 애의 얼굴은 그 애의 헐떡이는 신발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 애는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더럽고 지저분한 이 동네에서 가장 반짝이는 존재였다. 그런 그 애가 내게 말을 건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토록 오래 그려왔던 그 애의 모습을 내 눈에 담았다. 내 마음에 담았다. 반짝반짝 빛나보이던 눈에는 눈물이 맺혔었던 흔적이 보였고 그 애의 몸 어딘가를 투-욱하고 건드리면 눈물이 그 애의 닳고 닳은 신발 앞코에 토-옥 하고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 애의 붉은 입술은 온통 피딱지로 덮여 만약 그 애가 환히 웃기라도 하면 입술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때 그 애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얗고 반짝이던 얼굴은 눈꽃송이가 입가에 번지듯 버짐 핀 모습이 대신해주었다.

 

"얘, 무슨 생각하니?" 그 애의 조그만 입술이 옴짝달싹 이야기를 내뱉는다.

"너 찾는 거 아니다. 나가던 길이었다." "너 신문배달 그만두고 신문사 합격했다며? 출세했구나?" "내가 신문배달을 했던 건 어떻게 아니? 그리고 신문사 합격발표는 아직 안 났다."

"난 알 수 있어. 너 합격하면 서울로 가는 거라며? 아참! 너 서울 사람 아니니? 너희 집 쫄딱 망하고 여기 내려온 거라며? 근데 이제 다시 서울 올라가는 거니? 아예 가는 거니? 다시 돌아오긴 하니?" 그 애는 말이 많았다.

"너 모르는 게 뭐니?" "난 다 알아! 여기서 우리 집이 제일 오래됐거든! 난 모르는 거 없어! 아침마다 너가 날 기다리는 것도 다 알고 있어. 하나 둘 셋 넷까지 세는 것도!"

나는 얼굴이 빨개졌고 숨고 싶었다. 하지만 숨을 수 없었다. 숨을 만한 장소도 없었고 숨고 싶은 생각을 하는 것조차 그 애가 알고 놀릴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그 애와 오랫동안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 매일 널 봤다. 아니, 널 봤다기보다는 너 운동화. 그래. 너 운동화 밑창이 언제쯤이면 다 떨어지는지 궁금해서 봤다."

아아. 진심이란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미천한 것인가. 나는 나의 시시한 진심 따위를 숨기기위해서 내가 아는 그 애의 모습 중 가장 약점스러운 걸 끄집어 공격했다. 실은 그 말을 뱉자마자 아니, 그 단어가 입 속에서 만들어져 나의 충실한 입술이 오물오물 말 할 입모양을 준비하는 그 순간부터 후회했다. 그 애는 자신의 운동화를 힐끔 쳐다보더니 발바닥이 자신에게 오게끔 자세를 바꿔 신발 밑창을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언제 이렇게 닳았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그 애는 내게 말했다.

"그럼 신발 하나 사주렴."

"내가 왜?"

"우린 친구니깐."

 

우리 대화에 어떤 개연성이 있어서 우리가 친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애와 오래도록 보고 싶었고, 오래 이야기 하고 싶었고 궁금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그 애와 친구가 되어서 기쁘다고 생각했다. 그 날 이후로 우리는 자주 만났고 내가 하나 둘 셋 넷까지 세는 날은 없었다. 왜냐면 그 애가 숫자를 세기 전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주 만나서 걸으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신문사에 떨어졌다. 하지만 신문을 돌리러 가는 일은 없었다. 사업이 망해서 도망가듯 이곳에 왔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빠의 사업은 다시 활기를 찾게 되었다. 서울로 당장 돌아갈 수는 없지만 조만간 다시 서울로 가게 될 것이라고 부모님께서 하시는 이야기를 들었다. 입김이 나오던 방 안은 온기가 가득차기 시작했고 쇳소리처럼 날카롭게 들리던 부모님의 대화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방바닥에 두고 사용할 작은 상도 샀다. 반찬 수가 많아졌으니 상도 커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어머니의 생각이었다. 방이 따뜻하니 더 이상 새벽 공기를 마시던 순간들은 습관이 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종종 그 애가 생각났다. 그 애는 뭘 하고 있을지 궁금했고 혹시나 나를 기다리긴 했을지 알고 싶었다. 근데 방이 너무 따뜻해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 애가 원망하는 눈으로 나를 볼까봐 무서웠던 걸까. 아니면 내가 그 애를 볼 자신이 없어서일까.

 

악몽을 꿨다. 꿈에서 커다란 악어가 나왔다. 악어는 이빨이 하나도 없었고 내 몸보다 훨씬 큰 몸집을 자랑했다. 이따금씩 입을 쩌-억 하고 벌리면 온 세상은 어두워지고 나와 악어 둘만 남았다. 그렇게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가 반복하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걷는 방법조차 잊어버리고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악어가 오면 저 놈의 눈깔을 찔러서 앞이 보이지 않는 틈을 타 도망가야지. 근데 악어의 입이 너무나도 커서 악어의 눈깔은 어디 달려있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악어의 팔과 다리는 너무 길어서 마치 거미 같다고 생각했다. 입을 쩌-억 벌리고는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오는데 팔 다리가 몸집에 비해 너무나 가늘어서 순간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리고는 세 걸음. 네 걸음. 악어는 나를 벽에 몰아세우고 그 커다란 입 속으로 한 순간에 삼켜버렸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나는 이리저리 발버둥쳤지만 발버둥칠수록 갑갑해지는 주변 압력에 나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속으로 그래도 이빨이 없는 악어라서 다행이야.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한참을 괴로워하다가 숨이 막혀 꿈에서 깨어났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서는 식은땀을 소매로 훔치고 두리번거렸다. 머리맡에 놓인 새 운동화가 있었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엄마와 아빠는 사업 때문인지 어제 밤부터 서울에 가셨고 당시 최고 유행하던 브랜드는 아니었지만 그보다 한 단계 낮은 브랜드를 선물해주셨다. 나는 운동화를 발바닥에 대보았지만 신어보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 시간이다.

내가 그 애를 만나던 시간.

 

온 동네를 깨우는 비명과도 같은 대문소리를 넘기고 그 애를 찾았다.

"얘. 왜 이제 나오니?" "그동안 바빴다." "내가 널 얼마나 찾았는지 아니?" "나를 왜 찾았는데?" "왜긴? 나한텐 너밖에 친구가 없잖니."

그 애는 환하게 웃음 지었다. 환한 미소와 함께 그 애의 갈라진 입술에서는 피가 터져 나왔다. 얼굴 곳곳에 핀 초록색 노란색 꽃은 왠지 그 애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 애는 천천히 앞장서서 걸어갔다. 나란히 걷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어차피 골목은 너무 좁았다. 사실 그 애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싶었기도 했다. 앞에서 보면 난 그 애를 오래 볼 수 없으니깐.

 

그 애의 발자국을 쫓아갔다. 쩌-억. 쩌-억.

그 애의 신발 밑창이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나풀나풀거렸다.

한 걸음. 쩌-억. 그리고 한 걸음. 쩌-억

그 애의 신발이 아까 꾼 꿈같았다. 무서웠던 악어 입처럼 느껴졌다.

이빨 하나 없는 악어처럼.

 

온 동네 한 바퀴를 돌고서는 다시 우리 집 앞으로 왔다.

"아 참! 오늘 네 생일이지? 자. 선물이야." 그 애는 신문지 여러 장과 달력 뒷장을 포개어 포장한 선물을 내게 주었다.

"나도 줄 게 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라." 나는 선물 받은 운동화 한 켤레를 찾아서 그 애가 보지 못하는 틈을 타 바닥에 던져 이리저리 굴렸다. 아까보다 조금은 더 더러워진 운동화를 보니 만족스러웠다. "자. 이 신발 신어라." "얘. 이렇게 큰 신발을 어떻게 신니?" "아무리 커도 네 것보다는 훨씬 낫다." "아무튼 고마워." 그 애는 입을 삐죽거리며 신발이 크다고 투덜거렸지만 두 손으로 신발을 품에 꼬옥 안았다. 그러고는 이내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활짝 웃는 그 애의 붉은 앞니가 보였다. 입술이 터져 피가 맺힌 곳에서 피가 흘렀나보다. 아무렴 상관 없었다. 그 애가 웃는 걸 보니 왠지 마음이 불안했다. 나는 그 애가 웃기를 바랐지만 사실 웃는 얼굴이 싫기도 했다. 그 애가 웃을 일만 생기길 바랐지만 사실 웃으면 무서워지기도 했다. 그 애가 나 덕분에 웃을 일이 많길 바랐지만 사실 나 때문에 울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그 애의 웃는 얼굴이 싫었다. 그 애의 징그러운 터진 입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는 그 애가 웃는 게 두려웠던 거야.

 

사정이 좋아져 우리 집은 다시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됐다. 예전처럼 서울 한 복판에 살 수는 없어 서울 변두리에 작은 집을 얻은 게 전부지만 서울로 갈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 애에겐 말도 없이 떠났다. 새벽 아침부터 우리는 짐을 실었는데 그 날은 그 애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애를 만나지 않아서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필요 없는 짐은 전부 놔두고 떠나자고 했다. 다신 구질구질한 이곳에 살 일은 없을 것이라며 여기에서 쓰던 물건들이 마치 불행의 원인이었던 것처럼 경멸의 눈짓을 하고선 꼭 필요한 짐만 챙겼다. 엄마는 여기에서의 순간들이 없었던 순간들이었던 것처럼 하고 싶어 했다. 옆집에조차 알리지 않고 몰래 짐을 챙겨 떠나길 원했다. 우리는 그렇게 도망가듯 그 동네에서 벗어났다.

 

서울에 도착하고 꽤 오랜 시간 동안 아빠는 사업재개를 위해 힘썼고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은 날도 많았다. 엄마는 다시 회사를 다녔고 나는 작은 회사에 취직을 했다.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월급도 제때 들어오고 허름하지 않아서 만족스러웠다. 가족 모두 각자 자리를 잡아가는 듯 했다. 오랜만에 가족끼리 저녁식사를 하며 엄마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며 눈물지었다. 아빠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이따금씩 소주를 들이켰다. 외동아들은 무뚝뚝하기 마련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부모님의 대화 간간히 추임새를 넣으며 듣는 시늉을 하고 머릿속으로는 야구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때 부모님이 그 애 이야기를 꺼냈다.

 

"아 맞다! 어휴, 여보 우리 그 동네 살 때 그 얼굴 허옇고 삐쩍 곯은 여자 애 생각나요?"

"아! 그 맨 꼭대기에 살던 그 아가씨? 김 씨네 딸?"

"말도 마요. 그 집 김 씨가 오죽 애를 팼어요? 오죽하면 김 씨 부인이 갓난 애기만 데리고 둘이서 도망쳤겠어요. 김 씨 부인이 도망간 이후에 그 애가 눈에 띄기만 하면 개 패듯이 팼나 봐요. 근데 김 씨가 몇 달 전에 죽었나봐요. 그 날도 술이 떡이 될 만큼 마시고 트럭에 치였다던데. 뺑소니사고래요. 우리 이사 가기 전 날인가? 그 때 죽었다던데..."

"참... 잘 된 건지 뭐가 뭔지... 그 애는 어떻게 지낸대?"

"글쎄요. 그건 모르죠. 딱한 아이예요. 인사성 참 밝고 예뻤는데. 걔가 살 곳이 있겠어요? 아마 거기 계속 지내겠죠. 그 애도 참 불쌍해. 쯧쯧."

 

그 이후로 그 애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났다. 나는 한 번도 그 애가 맞고 다닐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다. 사실은 알았다. 아마 그 애의 얼굴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알아차렸으리라. 그 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그 애를 보호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다르다. 나는 그 애의 반짝이는 눈을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 애의 조근조근한 목소리를 좋아했지만 카랑카랑한 자신만만했던 목소리도 좋아했다. 나는 그 애를 보호해줄 수 있다. 가난에 찌든 그 애를 적어도 가난에서 벗어나게 만들 수는 있단 말이다.

 

나는 부모님께 며칠 집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메모를 남기고는 돌아갔다. 그 지긋지긋하지만 내가 사랑했던 동네로.

 

딱 한 번 그 애가 자기 집을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집이 정확히 어디라고 말해주진 않았지만 우리가 하늘의 별을 세어 보며 계단 위에 걸터앉아 있을 때 그 애는 고개를 뒤로 돌리며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제일 꼭대기 저 집이 자기 집이라고 말해줬다. 나는 그 기억 하나만을 가지고서 그 애의 집을 찾아갔다. 예전에 살던 우리 집을 지나고 한참 위로 올라갔지만 그 애의 집은 어딘지 찾을 수 없었다. 근처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할머니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그 애에 대해 물어봤다.

 

그 애는 죽었다. 승용차에 치여 죽은 거라고 했다. 운전자는 브레이크 고장을 깨닫고 그 애를 향해 클락션을 쉴 새 없이 눌렀고 그 애 또한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은 거라고 했다. 할머니는 운전자가 과실을 인정 안 하려고 죽은 애에게 뒤집어씌우는 거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그 애는 한 평생 불행했다며 혀를 끌끌거렸다.

 

우리는 겨우 22살이다. 그 애는 겨우 22살이다. 이런 곳에서만 살다가 죽기엔 너무 아까운 스물두 살이란 말이다. 그 애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아서 나는 한참을 그 애와 앉았던 계단에 걸터앉아 고개를 숙이고 생각했다. 그 애는 정말 차를 피하지 못한 걸까? 아니면 피할 생각이 없었던 걸까? 한참을 생각하던 끝에 나는 배가 고팠다. 이 와중에도 배가 고픈 내가 우스워 큰 소리로 웃었다. 하늘이 어둑어둑하더니 빗방울이 떨어졌다. 빗방울이 정수리에 꽂히더니 어깨에도 꽂히고 내 허벅다리에도 꽂혔다. 신발도 빗방울로 물들었다. 신발 앞코를 가만히 쳐다보니 죽은 그 애의 신발이 생각났다. 그 애의 반짝이던 눈에서 물기가 떨어지면 닦아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언젠가 그 애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려 어깨를 타고, 허벅다리를 타고, 그 애의 가는 발목을 지나 신발 앞코에 닿으면 신기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쏟아지는 빗방울에 개의치 않으리라. 지나가는 사람들은 비에 젖지 않아 보였다. 나만, 나만 이렇게 온 얼굴에 빗방울을 맞고 있다. 나만 이렇게 온 얼굴로 비를 받아 내고 있다. 나는 빗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진 건지 내 눈에서 떨어진 건지 알 길이 없었다.

 

나는 허기가 져서 근처 슈퍼를 찾다가 문득 예전 집이 생각났다. 귀신소리 같은 대문소리가 반가웠다. 예전 집은 변한 게 하나 없었다. 급하게 짐을 싸느라 버리고 온 가구들이 한가득 남아있었다. 어제라도 누군가 살던 집만 같았다. 나는 물로 배를 채우고 딱딱한 바닥위에 누웠다. 그 애와 함께하던 날들이 생각났다. 그 애의 흔적을 뭐라도 찾고 싶어서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옷장을 뒤적였다. 낡은 옷장에서 꼬깃꼬깃 접혀진 달력과 신문지 뭉치가 보였다. 그 애가 내게 준 처음이자 마지막 생일선물이다. 선물이 무엇인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신문지와 꼬깃꼬깃한 달력으로 포장된 그 애의 선물을 내 자켓 주머니에 넣었다. 더 이상 울 힘이 없었기에 선물을 열 수가 없었다. 그대로 눈을 감고 입을 꽉 다물었다. 어찌나 입을 꽉 다물었는지 아래 턱이 아팠다. 감은 눈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얼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난 소리 내 울 수 없었다. 그렇게 새벽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그 애를 좋아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곤 했다. 그 애는 엄마를 이해한다고 했다. 자기도 아빠 같은 남편이랑 살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자기는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지만 아빠가 불쌍해서 갈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 애가 언제든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애가 저렇게 사는 건 자기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 애를 좋아했지만 나는 그 애의 피멍까지 좋아하진 않았다.

그 애에 대해 궁금했지만 나는 그 애의 슬픔까지 궁금하진 않았다.

그 애와 오랫동안 함께 있고 싶었지만 그 애를 책임지고 싶진 않았다.

 

나는 비겁하고 불쌍한 사람이다. 사랑이 내게 오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개 같은 놈인 걸 알고 피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애의 이야기>

 

새벽이 되면 난 달려야한다. 비틀거리는 아빠가 돌아오면 달려야 살 수 있다. 저 모습은 진짜 아빠가 아니다. 그는 술에 취하면 잡히는 모든 것을 제 작동을 하지 못하게 만들곤 했다. 언젠간 그 게 내가 될 것만 같아서 난 도망다니곤 한다. 엄마는 진작 도망갔다. 나를 품에 안기엔 너무 커서, 먹고 싸고 가끔 까무러치게 우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갓난 애기만 데리고 도망갔다. 내가 너무 커서 날 데려가지 못했을 것이다. 꼭 그래야만 한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이리저리 숨어 다니면 동이 트고 해가 밝아온다. 수다 떨기를 좋아하시는 슈퍼 집 할머니는 말동무를 해주면 먹을 것을 주시며 한참을 이야기해주곤 하셨다. 세상 사는 이야기, 할아버지 욕, 손녀 재롱, 동네 사람들 이야기 등등 모르는 게 없으셨다. 빨간 지붕 집 첫째 딸은 몇 주째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막내딸은 첫째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첫째 딸을 이제 걱정하는 눈치다. 빨간 지붕 집 맞은편에 있는 작은 집 큰 아들은 점점 건강이 안 좋아져 입원해야한다고 했다. 공장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서 며칠 집에서 쉬더니 아예 몸져누웠다고 한다. 동네에서 대문이 가장 큰 집 외동아들은 신문사에 면접을 봤다고 했다. 그 대문 앞에서 그 애를 처음 발견했다. 그 애는 새벽마다 신문배달을 했다. 그 애 집은 서울에서 꽤 괜찮게 살았던 것 같았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안 좋아져서 이곳에 와 있지만 그 애의 집은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큰 집이었다. 나는 그 애의 대문소리가 좋았다. 대문 있는 집이라서 신기했고 깜깜한 새벽에 내 발자국 소리 외에 들리는 유일한 가장 큰 소리였기에 나는 산만한 대문 소리를 좋아했다. 그 애는 나를 기다리곤 했다. 그 애의 대문소리와 함께 그 애는 눈을 감고 입모양으로 하나 두울 세엣 네엣까지 세곤 했다. 나는 그 애의 입모양이 참 예뻤다. 특히 세엣 그리고 네엣할 때의 입모양을 예뻐했다. ‘엣’을 발음 할 때는 특히 더 예뻤다. 그의 혀가 앞니와 아랫니 사이에 살짝 끼워졌다가 쏙하고 들어가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 애가 수를 세면 나는 그 애 앞을 지나가곤 했다. 빠른 걸음으로 아빠를 피할 수 있었던 날들이 분명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뛰지 않으면 안 되는 날들이 늘어갔다. 그 애 집이 보이기 시작하면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곤 했다.

 

그 애가 나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고 나는 용기를 내 말을 걸었다.

 

"얘. 누구 찾니? 나를 찾니?"

 

그 애는 담담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그의 정돈된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귀 끝이 빨갛게 물든 걸 알 수 있었다. 그 애는 나를 기다린 게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매일 그 애가 하나 둘 셋 넷까지 센 후 내 존재를 확인하고는 또 다시 하나 둘 셋 넷까지 세는 걸 봐왔기에 고개를 숙이고 미소지었다. 그 애는 내 신발 밑창이 언제 떨어지나 궁금해서 기다린 거라고 했다. 아아. 귀여운 그 애. 그 애에게 신발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사줘도 그만, 사주지 않아도 그만이다. 별 뜻 없이 한 말이었다.

 

우리는 친구가 됐다. 근래에 있었던 일 중 가장 행복했다. 어쩌면 근래가 아니라 내 생에 가장 기뻤던 날인 것 같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 애는 아빠 사업이 슬슬 풀리고 있어서 다시 서울에 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 서울로 아예 가는 거냐고,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꿀꺽 삼켰다. 내 진심이 너무나도 보잘 것 없어서 보여줄 수 없었다.

 

꿈을 꿨다. 꿈에 그 애가 나왔다. 그 애는 내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작아져만 갔다. 나는 점점 커져만 가는데 그 애는 아주 작아졌다. 나중에는 너무 작아져서 내가 허리를 굽히고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으면 찾을 수조차 없었다. 나는 꿈속에서조차 그 애가 너무 그리웠다. 보고 있었지만 보고 싶었고 격렬히 그리워했다. 안으면 안을수록 그 애가 낙엽처럼 바스러지는 것 같았다. 혹여나 도망갈까 싶어 온 힘을 다 해 끌어안았다. 아. 너를 이렇게 안을 수 있다니 이건 꿈이로구나. 꿈인 걸 어렴풋이 깨닫고는 나는 왠지 씁쓸해졌다. 꿈에서조차 너는 내게 잡히지 않는구나. 그렇지만 꿈에서만큼은 나를 안아주길 바랐다. 그 애는 내가 꽉 껴안자 온 힘을 다 해 한참을 발버둥 치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그 애가 발버둥 칠 때는 온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 애가 잠잠해지자 온 세상이 무너졌다. 꿈에서 깼다. 눈을 떴다. 무너진 세상은 그대로이다. 내가 다가가면 그 애는 무너질 거야.

 

그 날은 아빠가 일찍 돌아왔지만 맞지 않았다. 때린다고 해도 피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만히 맞고만 있었을 것이다. 아빠는 술에 많이 취하지 않은 날이면 내게 미안하다고 말을 했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미안하다는 말만 대여섯 번 정도 했다. 그러고는 곧 엄마 욕을 시작했다.

 

엄마는 아빠가 밖에 나간 사이에 도망을 갔었다. 옷도 들고 가지 않고 신발도 들고 가지 않았다. 아기 감싸는 포대기와 간단한 용품만 가지고는 홀홀 떠나버렸다. 엄마의 운동화는 내가 신기에 너무 작았다. 엄마는 나보다 키도 작고 발도 작았다. 내가 엄마를 안으면 엄마는 내 귀 끝에 정수리가 간신히 닿았다. 엄마의 생각을 지워버리려고 다른 생각을 했다.

아! 그 애의 생일이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예쁜 돌멩이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어찌나 돌멩이들이 미운 모양만 있는지 예쁜 모양 찾기가 꽤 어려웠다. 그 때 하얀 운동화가 보였다. 엄마가 사줬던 운동화였는데 어찌나 작은 걸 사왔던지 내 발에 맞지 않았다. 엄마가 돈을 주고 샀을 리는 없고 아마 누군가에게 얻은 운동화였을 것이다. 엄마가 신으면 맞았을 텐데 엄마는 결국 한 번을 신지 않았다. 나 역시 신지 못했다.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새 것과 가까운 모양새를 했다. 하지만 이 운동화는 그 애에게 맞지 않을 거다. 그 애는 나보다 한 뼘이나 키가 더 크니깐 발도 더 클 거야. 나는 또 다시 돌멩이를 찾으러 다녔다. 결국 나는 운동화를 들고 꽁꽁 묶었던 운동화 끈을 풀어 신문지에 포장했다. 운동화 끈은 운동화 끈을 끼우는 구멍 위치마다 까만 자국이 있었지만 그래도 봐줄만 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어서 줄 수 있는 게 여의치 않았다. 그 애도 이해해 줄 것이다.

 

그 애를 만났다. 오랜만에 본 그 애는 한층 더 멀끔해졌다. 나는 곱게 포장한 운동화 끈을 그 애에게 선물했다.

 

"나도 줄 게 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라." 그 애는 내게 줄 게 있다고 하더니 새 운동화를 주었다. 아마 부모님께 선물 받은 것이거나 아니면 자신이 신으려고 샀던 거겠지.

"자. 이 신발 신어라." "얘. 이렇게 큰 신발을 어떻게 신니?" "아무리 커도 네 것보다는 훨씬 낫다." "아무튼 고마워."

엄마도, 그 애도 맞지 않은 운동화만 선물해 주었다. 그 애의 신발은 너무나 하얘서 눈이 부셨다. 눈이 부셔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내가 받은 선물 중 가장 비싼 선물이었다. 난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입이 찢어지도록 환하게 웃었다. 웃지 않으면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아서 웃었다. 새 운동화를 꼬옥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이상했다.

 

그 애는 점점 보기가 어려워졌다. 신문배달을 하지 않으니 새벽에 나올 일이 없었던 거야. 그래도 나를 보려고 한 번쯤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애가 준 운동화를 신고 싶었다. 운동화에 발을 살짝 밀어 넣고는 운동화 끈을 있는 힘껏 하늘 위로 잡아 당겼다. 리본을 묶고도 운동화 끈이 한참 남아서 남은 끈으로 또 리본을 묶었다. 나는 신이 나서 이리 저리 걸어 다녔다. 운동화가 헐떡였고 발뒤꿈치가 벗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신나게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앞 집 할머니가 사색이 된 얼굴로 내게 뭐라 뭐라 말씀을 하셨다. 나는 헐떡이는 운동화를 신고서 한참동안 계단을 내려갔다. 아빠로부터 도망칠 때는 계단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에는 끝이 없는 계단을 내려가며 계단이 끝이 나지 않길 바랐다. 계속해서 계단이 이어지길 바랐다.

 

모든 일이 지나고 난 후 그 애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그 애의 집 앞을 기웃기웃 거려봤지만 어떤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그 때 지나가던 슈퍼 집 할머니께서 그 애는 며칠 전 서울로 떠났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울지 않았다.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떠난 그 애가 믿을 수 없어서 원망스러웠지만 결국 그 애를 이해했다. 이해를 했지만 아무래도 화가 났다. 화가 나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눈물을 참을 수 없어서 눈물을 흘렸다. 아무래도 좋으니 한 번만 다시 보고 싶었다. 한 번만 다시 볼 수 있다면 그 땐 가지 말라고 붙잡고 또 붙잡고 다시 붙잡고 또 한 번 붙잡고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붙잡을 테다. 그 애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엉엉 소리 내어 울어버렸다. 온 동네가 떠나가라 큰 소리로 울었다. 소리를 들은 옆집에서 우리 집을 기웃기웃거렸지만 김씨가 죽어서 그런 거라며 혀를 끌끌 차고는 이내 돌아갔다. 한참을 울고 나니 신발도 벗지 않은 게 보였다. 큼직한 신발을 한 번에 벗어서는 보이는 아무데나 집어던졌다. 그러고는 곧장 다시 신발을 주워왔다. 신발을 주워오는 내가 서러워서 또 다시 펑펑 울었다. 며칠 동안 한참을 울어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을 것 같은데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대로 몇날 며칠을 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울다보면 온 몸에 수분이 빠져 메말라 죽지 않을까. 저녁이 되고 새벽이 되었지만 집은 조용했다. 아무도 내게 욕설을 내뱉지 않았고 나는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됐다.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완벽하게 혼자가 되었다.

 

나는 그 애를 좋아했다. 나는 그 애에게 불행한 내 삶을 한탄했고 그 애는 아무 말 없이 들어줬다. 그 애는 많이 지쳤을 것이다. 그 애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 애는 나를 구해줄 수 없었고 나는 그 애까지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애는 내가 아는 것들 중 가장 빛나는 존재였고 내 불행이 그 애에게까지 전염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 가난이 그 애의 반짝반짝거리는 빛을 흐려지게 만들 순 없었다.

 

그 애를 좋아해서 나는 그 마음을 숨겼다.

그 애에게 다가갈수록 그 애가 흐려지는 것만 같아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 애와 오랫동안 함께 있고 싶어서 그 애에게 나를 구해 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나는 나약하고 힘없는 사람이다. 사랑이 내게 가까워질수록 내 불행이 그 애에게 전염될까봐 나는 애타는 내 마음을 삼켜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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