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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20회 창원대문학상 수필 당선20회 창원대문학상 수필 당선

 

나 방

 

최 재 우(인문대 국어국문학과 1년)

 

나방이다.

감히 마주보기조차 힘든 모양새를 한 나방이다. 나방은 회색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책 위로 내려앉았다. 솜털이 가득한 날개를 더듬어 올라가 나방을 겨우겨우 들여다본다. 문득 나방이 할머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방에 할머니의 주름이, 얼굴이 담겨있는 것만 같다. 밝지도 않은 방안을 나방은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앉아 있다. 나방은 마치 할머니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집에서, 당신도 그렇게 죽고 싶다며 오래된 집에서 끝끝내 홀로 사셨던 할머니처럼, 그렇게 가만히 앉아있었다. 손이 나방에 닿을까 조심하며 책을 흔들었다. 먼지가 떠올랐다. 그렇게 지난 추억도 피어났다.

‘엄마는 울까?’라는 걱정에 뒤를 돌아보았지만, 엄마는 묵묵히 할머니의 옷가지를 개고 계셨다. 이제는 주인이 사라진 옷들이 가지런히 정리되고 있었다. 아무런 표정도 담기지 않은 엄마의 얼굴과는 달리 엄마의 등은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의 등이 보기 싫어 얼른 할머니의 서랍을 정리했다. 먼지가 쌓인 앨범을 들어 올리자 삭아버린 앨범 비닐 틈새로 할머니의 사진 한 장이 떨어졌다. ‘할머니는 이런 모습이셨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 나는 정말로 할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할머니가 어떤 옷을 자주 입으셨는지, 또 무슨 음식을 좋아하셨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하나쯤은 기억해낼 법도 한데 나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외로운 분이셨다.

“저 좋은 땅 위에 왜 저런 집이 있어?”

사람들이 할머니 집 근처를 지나가면 꼭 한 번씩은 내뱉고 가는 말이다. 그 말처럼 좋은 위치에 있지만, 낡고 엉성한 할머니 집은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식들로부터 철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그 땅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넘치는 그런 땅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신주가 듬성듬성 박혀있고, 집 옆으로는 기차가 지나다녀 달동네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변변한 학교도 없었고, 족집게 강사들이 즐비한 학원가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유명한 연예인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커다랗고 예쁜 집을 짓자, 재벌이나 연예인을 따라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많은 사람들이 따라나섰다. 그러더니 명문 사립 고등학교가 들어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이들의 교육을 최우선시 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상류층의 위력을 과시라도 하고 싶었을까? 한평생 있을 것만 같았던 고압전신주가 뽑혀나갔다. 그 자리엔 가로수가 심어지고, 가로등이 세워졌다. 이러한 프리미엄들로 할머니의 낡은 집 양옆에는 회색빛깔의 커다란 건물들이 지어졌다. 사람들은 높고 거창한 건물사이에 자리한 낮고 초라한 할머니의 집을 굳이 피해 다녔고, 할머니는 외로이 집을 지키셨다.

얼마 전부터 우리 가족은 나방 때문에 커다란 고민에 빠졌다. 집안 곳곳을 청소 해보고, 창문을 닫아놔도 이 지긋지긋한 나방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고, 책 위로, 국물 속으로 자꾸만 떨어졌다. 이 나방들은 마치 우리 가족에게, 한 통의 편지를 전하기 위해서 목숨 따위는 아끼지 않는 전쟁터의 전령 마냥, 불빛만 보면 불구덩이에도 뛰어드는 나방의 특성대로 우리 가족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날, 두고 온 스마트폰 때문에 버스도 못 타고 밤늦게 집으로 걸어간 적이 있었다. 어렴풋이 집의 대문이 보이고, 자연스레 옆에 있던, 이제는 더 이상 쓰지 않는 칠이 벗겨진 우체통에 눈길이 갔다. 익숙한 우체통의 윤곽이 들어왔을 때, 별안간 정말 희한한 광경을 보았다. 정말이지 수도 없는 나방들이 우체통에서 나와 우리 집 창문을 두드리는 모습이었다. 가로등 불빛에 비쳐진 그 모습은 무지개다리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또 시골 할머니 집에서 보았던 별이 총총한 은하수를 기억나게도 했다.

다음 날 아침,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우체국에 전화를 거셨다. 우체국은 아버지의 성화를 못 이겨 내일 그것도 아침까지 꼭 우체통을 치우기로 약속했지만, 아버지는 그때까지 기다리시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우체통을 여셨다. 통이 열리자 ‘우와’라는 탄성을 따라 우체통은 많고 많은 나방을 역겹게 뱉어냈다. 날기를 포기한 서너 마리 나방 아래에는 몇 겹으로 싸여진 검은 봉지 속에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어머니는 당장 그것을 가져다 버리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그것을 열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형은 그 봉지 안에 사람의 손이라던가 죽은 쥐 같은 것이 들어있을 것이라며 겁을 잔뜩 주었지만, 나는 몰래 그 봉지를 내 방으로 가져와 풀어보기로 작심을 했다. 엉성하게 매듭져있는 봉지는 굳이 힘을 들이지 않고, 몇 번 흔들자 쉽게 풀렸다. 풀려진 봉지 안에는 과자들이 녹아 원래의 모습을 잃고, 덩어리져 있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서 방학을 보낸 적이 있었다. 와이파이가 켜지지 않는 너무나도 따분한 시골에서 장난기 많은 형과 함께 있다는 것은 정말 나를 위해 만든 감옥 같았다. 어느 날인가, 밥이 먹기 싫어 할머니에게 만원을 얻어 빵집에 갔다. 케이크나 페스추리, 타르트 같은 것은 전혀 구경할 수조차 없는, 단팥빵이 가장 인기 있는 빵이자, 주된 빵인 빵집에서 나는 주인아저씨에게 과자를 선물 받았다. 과자 봉지를 뜯고, 꺼내려는 순간 갑자기 요란한 오토바이가 지나갔고, 나는 과자들을 우르르 쏟고 말았다. 과자들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먹어보려 했지만 흙이 잔뜩 묻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항상 형과 나를 차별하던 할머니에게 이 과자를 드렸다. 할머니는 과자를 몹시 좋아하시지만 돈이 아까워서 평소 과자를 사드시지 못하셨다. 그런 할머니가 다시 내게 건네는 과자를

“먹고 왔어.”

라며 끝끝내 사양했고, 할머니는 분명 모래가 씹혔을 텐데도 그저

“맛있구나.”

하시며 모두 드셨다.

검은 봉지 안에는 덩어리진 과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잔뜩 구겨지고, 무언가 가득 들어 옆구리가 터져버린, 과자가 녹아 아무렇게나 얼룩진 편지봉투가 들어있었다. 나는 그 봉투를 열어 보았다. 꾸깃꾸깃 접혀진 만 원짜리 몇 장과 오천 원, 천 원짜리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그리고 삐뚤삐뚤한 글씨로, ‘사랑하는 우리손주 재우야 니는 잘있냐 내는 잘있다 내가 돈이 없어가 마니 몬준다. 밥 잘 챙기무거라’ 라고 적혀 있었다.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항상 내 걱정을 하셨다.

”밥 좀 마니 무거라. 얼굴에 살이 읎다.“

”옷은 왜 그리 춥게 입고 댕기냐. 단추 좀 채아라.“

형을 많이 챙기는 것 같았지만, 항상 용돈은 똑같이 만원, 닭을 삶아도 닭다리는 각자 하나씩, 할머니는 드시지 않았다. 그런 할머니셨다.

손자의 야간자율학습시간이나 부모님의 퇴근시간을 알 수 없는 할머니는 검은 봉지만 남겨둔 채 다시 내려가실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부모님께

“스마트폰만 있으면 연락이 잘되잖아. 밤늦게 다니는 아들 걱정도 안 돼?”

라고 말하면서 스마트폰을 얻었다. 하지만 나의 스마트폰 단축번호 1번은 할머니도 아니고, 부모님도 아니다. 연락을 잘하겠다며 얻어낸 스마트폰 통화기록 속 많은 이들 중 할머니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나방을 보면 할머니가 생각난다. 그렇게 마주보기 힘든 나방을 봐야만 할머니가 떠오른다.

할머니는 외로운 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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