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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인연-20회 창원대문학상 수필 가작20회 창원대문학상 수필 가작

시절인연

 

송 선 화(인문대․국어국문학과 2년)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이를 두고 불교에서는 때가 되어 인연이 합하게 됨을 일컫는 의미라고 하였다.

얼마 전 나는 이 시절인연에 관해 어느 스님께서 남긴 퍽 유명한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나지막이 읊조리는 방식으로 점철된 이 글은 사람뿐만 아니라 일체의 모든 만남에는 일정한 시기가 있으며, 그 시기가 무르익지 않으면 결코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말에 담긴 의미가 대상과의 만남을 그리는 이에게 있어 그 본질은 다분히 기원적이며 염원적인 성질이랄 만한 것, 곧 대상을 긍정하는 형태로 연관 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또 한편으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을 소망 할지라도 그 때라는 것에 이르게 되면 필연적인 만남으로 귀결되고 마는 숙명을 지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운명론적 사고를 지양하는 이들에게 있어 이 글은 다소 설득력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교적 담담한 필체로 써내려간 이 단편적인 글에서 나는 어쩌면 우리가 간과하고 있으나 보다 중요한 사실로 각인 되어야할 몇 가지 사실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흔히 인연에 관해 논한다면 모름지기 사람과의 관계로 결부시키는 편이 쉬우나, 비단 그것으로 한정하지 않고 때로는 사물과 깃든 인연에 대해 돌이켜 보는 것도 그 나름의 성찰의 방법이 되기도 한다.

몇 해 전 나는 ‘세렌디피티’ 라는 영화를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뜻밖의 발견 혹은 우연한 발견의 의미가 암시하고 있듯 인연을 믿는 여자 주인공과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남자 주인공이 갖은 우여곡절 끝에 조우하게 되는 조금은 시시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사뭇 교훈적 이랄만한 내용을 시사하고 있다.

예컨대 지폐에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적은 뒤 언젠가 그것이 자신에게 되돌아오면 연락을 하겠다는 것인데 좀체 실현되기 힘들어 보이는 것이 현실이 되는 모습을 보며 다소 우매하며 객쩍은 것처럼 느껴져 당시 맘껏 비웃어주곤 했다.

그런데 필자 또한 이와 유사한 체험을 겪은 후 이 장면은 몹시 뇌리에 남을만한 것이 된다. 언젠가 나는 흥미 있는 신문기사를 스크랩하며 종종 그것을 펼쳐 음미해보거나 곱씹기를 즐겨 하는 괴벽한 버릇을 가진 적이 있다. 그것은 권태로운 일상으로부터 작게나마 정신적 고양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는데 그만 그 스크랩북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 후 의욕을 상실한 탓인지 다시 신문기사를 스크랩하지 않았고 아울러 그 일은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온 후로는 이따금 도서관 자료실을 기웃거리며 관심을 자아낼만한 서적을 뒤적이곤 했는데 그러던 중 연도별로 한데 그러모아 빼곡히 수집해둔 신문을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혹여 신문을 배치해 둔 그 서가에 머물러 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스크랩북의 수가 상당히 풍부하고 다채로움을 알고 있으리라.

아무튼 나는 고심 끝에 한 권을 빼어 들고는 손길 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펼쳐보기를 반복하다가 곧 어느 기사를 마주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간 다시금 읽고 싶어지는 글을 떠올릴 때면 혼자서 말라붙어가는 기억을 조용히 반추해보다 궁극엔 접어두기에 이르렀는데 그렇게 잊고 지낸 기사 하나가 고스란히 약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뜻밖의 발견을 그야말로 사소하며 또 흔해빠진 우연에 지나지 않은 일로 간단히 치부해 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조금 달리 생각해본다면 대소를 막론하고 한 번 인연을 맺은 관계가 비록 종이 한 장일지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다시 해후하는 것에는 그 인연이 다 하지 않았기에 가능하다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이처럼 정답고 따사로운 인연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으레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을 테니 말이다.

최근 앞두고 있는 시험을 준비하며 필요한 서적을 구입하던 가운데는 지금은 절판된 책도 속해 있었다. 비슷한 책이 개정판으로 나오고 있었으나 왠지 초판에 마음이 이끌려 끝끝내 온갖 중고서점을 누빈 결과 마침내 발견 할 수 있었다.

나는 처음 접해본 이 책에 잔뜩 매료되었다. 그런데 책의 좀 독특한 표지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을 계기로 도사리고 있던 기억 하나가 환각처럼 살아나 떠오르게 되었다.

마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서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문 순간 어린 시절의 기억이 뭉개 뭉개 피어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때는 고등학교에 소속된 당시 상당히 난해하기로 소문난 책이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나 또한 그 유명세에 휩쓸린 일원으로서 내용이야 아무렴 어찌됐든 무작정 구입 해보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책을 읽고 있노라니 내용이 몹시 현학적일뿐더러 무척 심오하여 도무지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조차 없었다. 마음을 다 잡고 읽어보려 했으나 이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존재를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점차 부아가 치밀어 오르며 감정이 격양되어 다시는 이 책을 마주 하지 않겠다는 죄 될 소리를 하며 동댕이쳐버린 일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치기 어린 마음에서 몸서리치며 호언장담까지 했던 일을 천연스레 잊은 채 지금은 이 책을 마치 연인을 그리워하듯 찾아 헤매고 있었으니 스스로 참말 부끄럽고 웃음만 나왔다.

이와 같은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세상의 일이란 것에는 반드시라든가 절대적인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작별의 전환점을 돈 바로 다음 순간에는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듯이 어쩌면 확신하는 일에는 감내해야 할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울러 불교에서는 오백 겁의 연을 쌓아야 비로소 인연으로 맺어진다고 하는데 이 의미를 명심한다면 생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이 하등 미물일지라도 결코 함부로 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 들어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존엄성을 짓밟고 있으면서도 죄의식마저 엷어지고 있는 심각한 사회 현상을 바라보며 얼마 전 읽었던 글이 인연에 관해 새삼 새롭게 바라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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