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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벚나무

 

                                                                                                   백 종 환(인문대․일어일문학과 4년)

 

 

벚꽃의 산뜻한 계절이 지나고 세상이 붉게 물드는 어느 시월의 일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기숙사 앞을 지나가야만 했다. 그날도 평소와 똑같이 땅거미 진 거리 위로 태양이 산릉선에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있었고, 저녁노을에 비친 가로수들이 붉은 빛에 반짝거리며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노을빛에 반사된 나뭇잎을 보다가 문득, 이 기숙사 앞 단풍으로 물든 가로수들이 봄에는 벚꽃이 만개했던 거리임을 깨달았다. 이파리가 붉게 물든 단풍나무라고만 생각했던 이 나무들은 사실 화려한 분홍빛 벚꽃을 자랑했던 벚나무였다. 똑같은 장소, 똑같은 나무지만 봄에는 벚나무였고 가을에는 단풍나무였다. 그 나무들은 변함없이 벚나무였지만 나는 서로 다른 나무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나는 착각하고 있었을까. 봄에 대한 벚꽃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던 것일까.

싱그러운 봄바람의 리듬에 맞춰 흩날리는 벚꽃은 단번에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버린다. 한 해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봄과, 봄을 노래하는 벚꽃에 우리는 두근거리며 설레어한다. 이러한 설렘은 단 몇 주 만에 우리를 들뜨게 하고는 사라진다. 찬란하게 빛나던 아름다움은 다시 1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야 찾아온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반짝 피었다 사라지는 애절함은 벚꽃을 더욱 아름답게 그려놓는다. 그렇게 첫사랑같이 상큼하던 벚꽃들은 봄이 지나면 금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간다.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 벚꽃은 사람들의 발에 짓눌려짐에 따라 벚나무로서의 기억은 희미해져간다.

벚나무는 벚꽃이 피었을 때만 사랑받는다. 벚꽃이 다 떨어진 벚나무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벚나무가 아니다. 그냥 나무에 불과하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푸른 나무, 가을에는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 겨울에는 추위를 견디는 앙상한 나무. 봄에는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가듯 그토록 벚나무를 찾아 헤맸으면서, 벚꽃이 다 떨어져 나감과 동시에 휙 하고 뒤돌아서 그 이름조차 부르지 않는다. 더 이상 화려하지 않고 다른 나무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너무 쉽게 믿는다. 다시 말하자면 세상 모든 존재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전체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벚나무가 봄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듯이 말이다. 흔히 만개한 벚나무를 청춘에 비유하곤 한다. 그리곤 화려한 벚꽃이 없는 자신과 만개한 벚나무를 비교하며 과거의 그리움과 현재의 아쉬움을 느낀다. 스스로를 벚꽃이 핀 벚나무와 다른 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기숙사 앞을 지키는 나무는 벚나무다. 뿌리 뽑아 바꾸지 않는 이상 바뀌지 않는다. 인간도 다르지 않다. 젊었을 때의 나와 중년이었을 때의 나, 노년이었을 때의 나는 결코 다른 인간이 아니다. 모습이 변한다고 ‘나’가 변하는 것이 아니다. 젊은 청년에서 한 가정의 부모로, 또 인생의 지혜를 꽃피울 노년이 되며 모습은 변한다. 세상의 모든 모습은 변하지만 ‘나’의 본질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붉게 채색하는 가을 속에 물들어도 스스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취업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가지고,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고 세상이 우리를 채색해 놓는다. 세상살이 때문이라는 변명에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단풍과 같이 붉게 물든 벚나무에서 벚꽃이 피던 벚나무였음을 기억하지 못하듯이 말이다. 모두 나무라는 이름을 갖지만 벚나무와 단풍나무, 소나무는 모두 다르다. 우리도 모두 같은 인간이지만 나와 너,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다. 세상과 비슷한 색깔이 칠해졌다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꽃이 피기도 하고, 이파리가 붉게 물들기도 한다. 계절의 변화, 세월의 변화에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변하는 모습 속에도 항상 ‘나’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잊고 있었다.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나 스스로에 대한 무관심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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