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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

 우리가 문화 교양인이 되기 위해 알아볼 오늘의 문화인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새를 닮으라. 새는 날아가다가 잠시 앉은 나뭇가지가 너무나 연약해 발아래가 부서져 내리는 것 같이 느껴져도 자신에게 날개가 있음을 알고 노래 부른다.” 이처럼 새에 빗대어 우리에게 용기와 대담함을 가질 것을 주장하는 그의 정체는 바로 프랑스의 낭만파 작가 빅토르 위고다.

 빅토르 위고라고 하면 누군지 모를 수도 있을 테지만 아마 <레미제라블>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레미제라블은 불어로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빅토르 위고는 “단테가 시에서 지옥을 그려냈다면, 나는 현실을 가지고 지옥을 만들어내려 했다”며 레미제라블의 탄생 비화에 대해 설명했다. 그렇게 그가 그려낸 ‘불쌍한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유행했고, 우리 역시 귀에 매우 익다. 장발장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자주 봐왔던 동화책이고 2012년에 개봉한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 역시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쳤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는 <노트르담의 곱추>로 잘 알려져 있는 <파리의 노트르담>과 <세기의 전설>, <바다의 노동자>, <웃는 남자> 등 수많은 명작을 써냈다. 그래서 1881년 2월 26일, 위고의 80세 생일은 프랑스에서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이처럼 인기가 많았던 그는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국회의원으로서 정치 생활도 했었다. 그는 프랑스에서 굉장히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그를 ‘권력가’라고 칭하기보다는 자유와 정의를 섬기는 ‘사상가’였다고 칭한다.

 아마 프랑스는 물론이고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빅토르 위고만큼 생전에 큰 영예와 영향력을 누린 작가는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세기의 전설이자, 만인의 연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기의 결과로 그의 작품은 다른 예술 분야에서 수많은 각색을 낳았다. 예를 들면 리스트, 생상스, 라흐마니노프, 바그너 등의 유명 작곡가들 역시 빅토르 위고의 시에 곡을 붙였다고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베트맨의 숙적인 조커 역시 빅토르 위고의 소설 <웃는 남자>의 주인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소설 <웃는 남자>는 콤프라치코스에 관한 내용이다. 콤프라치코스는 스페인어로 ‘어린이 상인’을 뜻한다. 이들은 중세 17세기 무렵 유럽에서 유행처럼 번져나간 어린이 인신매매단을 말하는데, 어린 아이를 유괴하여 일부러 기형적으로 상처를 내거나 관절 마디마디를 밧줄로 묶어서 몸이 더는 자랄 수 없게 만들어 귀족들의 시종이나 서커스의 광대로 판매하곤 했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콤프라치코스에 해당하는데 그는 어린 시절에 얼굴에 난 칼자국 때문에 평생 웃는 얼굴로 살아가게 된다.

 빅토르 위고는 <웃는 남자>를 자신이 쓴 작품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자평했다. 그리고 이에 독자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고 실제로 작품의 평가 역시 좋았다. 때문에 2013년 3월 28일 프랑스에서는 이 소설을 영화로 개봉하여 <레미제라블>보다 더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웃는 남자>의 재도약을 위해 창작 뮤지컬화를 준비 중이다. 이번 뮤지컬은 국내 최대 종합 콘텐츠 기업인 CJ E&M이 만들고, 가수 정재형이 작곡가로 참여하는 등  대규모의 프로젝트에 속한다. 또한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제작된 것으로 국내에서 가장 먼저 선을 보일 것이다. 세부 공연 일정은 아직 미정이지만 내년 안에 개봉할 예정이다.

 그는 <웃는 남자>, <레미제라블>, <파리의 노트르담>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세상의 뼈아픔과 그에 대한 연민을 담았으며, 그의 실제 삶조차도 그러한 사랑과 약자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그의 인생이 어떻게 끝맺었느냐다.
 그의 유언장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5만 프랑을 전한다. 그들의 관 만드는 값으로 사용되길 바란다. 교회의 추도식은 거부한다. 영혼으로부터의 기도를 요구한다. 신을 믿는다.”
 그리고 그런 그의 마지막 음성은 “검은빛이 보인다”였다고 한다. 빅토르 위고는 정말 눈을 감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한 사람의 시인이었다. 그날 밤, 드라마틱하게도 하늘이 슬퍼하기라도 하듯이 파리에는 천둥과 우박을 동반한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는 소설가, 시인, 극작가, 정치인으로서 상당히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낸 사람이었다. 단지 우리에게 ‘레미제라블의 작가’라고만 칭해지기엔 아까울 만큼 말이다.
신빛나 기자 sin50050@ch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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