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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풍 씨를 만나다!

볕 좋은 평일 오후, 가슴에 금색 배지를 단 사람들이 주위를 바삐 걸어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뒤로 건물이 하나 강직하게 서 있다. 바로 ‘창원지방법원’이다.

오늘 이같이 법원에 들른 이유는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김기풍 판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김기풍 판사는 작년까지 민사사건을 담당하다 올해부터는 가사사건을 맡아 처리하고 있다. 또한, 공보판사 역할을 위임받아 대외적인 업무를 보고 있기도 하다.

이런 그와의 인터뷰는 잔잔하고 듣기 좋은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시작됐다.

 

모래시계

TV는 생각보다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나만 해도 첫 장래희망은 TV를 보다 정했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당당하게 지내는 모습이 무척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판사가 된 계기 또한 이와 비슷했다. 어쩌다 법복을 입고 재판장에 서게 됐냐고 했더니 “드라마의 영향이 컸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10대 후반이었을 무렵에 TV에서 고현정, 최민수, 박상원을 주연으로 세운 드라마 <모래시계>가 방영됐다” <모래시계>는 당시 64.5%의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대한민국 사람 대부분은 이 드라마를 시청했다는 말에 맞게, 그 또한 밤이면 TV 앞에 앉아 <모래시계>를 봤다고 한다. “그때 박상원이 맡은 검사의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다. 드라마를 본 뒤로 미래에 검사가 돼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지금 검사가 아니라 판사로 일을 하는 것은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군대에서 군법무관을 지내던 시절 때문이다. 군법무관을 하면서 내 적성은 검사가 아니라 판사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진로를 바꾸게 됐다.” 그와 같이 꿈을 이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연히 끝까지 꿈을 이뤄낸 그의 모습을 보며 대단하는 것과 함께 나 또한 그 꿈을 끝까지 지켜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만 4천명

일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이 언제냐고 했더니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 따로 있지는 않다”라는 이야기로 답을 시작했다.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매우 많기도 하지만, 그중에서 따로 중요한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크기가 작든 크든, 모든 사건이 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보람은 재판 준비를 철저히 하고, 절차적으로 당사자의 얘기를 충분히 들은 뒤, 당사자가 수긍하고 나 또한 만족스러운 결론을 내렸다는 생각이 들 때 느낀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 또한 따로 있지 않다고 말하며 “매 순간 판결을 하는 순간이 가장 고민되고 힘이 드는 것 같다”라고 했다. “이 사건을 다룰 땐 이 사건 속에 푹 빠져 시간을 보내고 다음 사건을 맡을 때는 또 그 사건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기 때문에 그런 순간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꼽자면 바로 ‘항공기 소음 피해 사건’이라고 했다. “당사자 수가 약 2만 4천여 명이 되는 사건으로 한 달 정도 이 사건에 매달렸다.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때이기도 했다.”

 

판사다운 판사

앞으로의 목표에 관해 묻자 그는 무척 진중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예전에 공부할 때는 ‘판사’가 되는 것이 목표였지만, 이제는 ‘판사다운 판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 이어 “어떤 것이 판사다운 것인지 뚜렷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모두가 어렴풋하게 생각하는 이상향과 같은 모습이 있다. 전문성을 갖추고, 당사자의 말을 경청하며, 기록을 꼼꼼히 보고, 정의와 법리, 상식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결론을 내리는 판사, 공정함과 성실함,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심을 갖춘 판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하나라도 해당하지 못하는 판사는 ‘판사답지 못한 판사’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판사다운 판사가 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 같다”라고 했다.

 

뒤이어 그는 판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잘 듣고, 잘 읽고, 이해한 생각을 정리하는 능력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판단은 이렇게 열심히 듣고 읽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듣고, 읽는 것을 통해 정확히 상황을 이해해야만 한다” 또한 “모든 사물과 현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관찰하는 것, 여러 입장에 대하여 균형감각을 갖고 고민하는 것, 자신이 내린 결정을 한 번 더 의심하고 되돌아보는 등의 태도가 꼭 필요하다. 물론 정의에 대한 관념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고민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이야기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공부의 신?

나는 그와 같은 사람들을 보면 천재라거나 공부의 신과 같은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곤 한다. 국가 3대 고시 중 하나에 합격한 것에 더불어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런 그는 어떤 식으로 공부했을지 무척 궁금했다. “특별한 방법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천재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 중 한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하는 데 있어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며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근거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법고시, 사법연수원에서의 계속되는 시험 등의 계속되는 경쟁은 어떤 힘으로 버틸 수 있었을까. 그는 치열한 경쟁을 버틴 방법을 두 가지로 꼽았다. “일단 주위 사람을 경쟁자라고 인식하면 안 된다. 공부 자체에 쏟는 에너지도 엄청난데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얼마나 더 힘들겠는가. 옆 사람과 내가 함께 시험에 붙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동반자처럼 느끼고 함께 하려 해야 한다” 또한 “‘언제까지 공부를 하겠다’는 마지노선과 기간 안에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다면 과감하게 다른 길로 접어들 수 있도록 차선책도 마련해 둬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다면 군대를 갔다 와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겠다’는 마지노선을 설정해두고 공부했다. 눈앞에 설정해둔 끝이 보였기 때문에 더욱 집중해서 공부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진인사대천명

그는 대학 시절부터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고 한다. “스스로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다. 자신이 꿈꾸던 것을 후회 없이 포기하는 것도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본 뒤에야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조정래 선생님이 하신 ‘최선을 다했다는 말 함부로 쓰지 마라. 최선이란 자기의 노력이 스스로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쓸 수 있는 말이다’라는 말씀 또한 참 좋아한다.”

그는 우리와 같은 청춘에게 “지금 세상은 내가 20대일 때와 많이 달라졌다. 점점 더 희망을 얘기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는 것만 같아 말하기가 조심스럽다”며 “세상에 대한 시각을 넓혀감과 동시에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해야 하는 절박한 시기이므로 많이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인생을 길게 보면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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