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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테러의 흑역사

지난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한 남성으로 부터 얼굴과 손목 부위 등을 공격당했다.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를 공격한 이는 진보 성향 문화단체인 우리마당의 김기종 대표인 것으로 확인됐다. 공격당한 리퍼트 대사는 김씨가 휘두른 흉기에 오른쪽 볼 11cm의 자상과 왼팔, 손목 등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며 긴급 이송돼 봉합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남북은 통일되야 한다”고 외치며 습격했으며, 경찰서 앞에서 “30년 간 전쟁훈련에 반대해왔다”며 난동을 피웠다. 그는 2010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일본대사 초청 강연회에서 주한 일본대사를 향해 지름 10센티 크기의 시멘트 조각 2개를 던진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경력이 있다. 7번이나 북한에 방문한 기록이 있으며, 테러 전날에도 북한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에 접속한 것으로 보아 이념적 테러일 것이라는 추측이 우세하다.

이 사건을 비롯해 최근 전 세계에서는 많은 테러들이 일어난다. 한국은 테러의 위협이 적은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광복 이후 우리나라는 다양한 대립으로 인해 크고 작은 테러가 이어지고 있다.

 

광복, 좌우이념의 대립

정부 수립을 앞둔 우리나라는 좌우 이념의 대립이 심각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인사들이 공격당했다. 동아일보를 창립했던 송진우는 1945년 침실에서 한현우의 총을 맞고 사망했다. 범행 동기는 ‘송진우가 미국이 후견하는 것을 지지했다’는 이유였다.

또한 1949년에는 한국독립당의 김구가 안두희가 쏜 총에 맞았다. 안두희는 “한국 독립당 비밀당원으로서 김구와 정치문제에 대해 언쟁을 벌이다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라 밝혔지만 실제 범행동기와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다. 안두희는 은거생활을 지속하다 1996년 버스 운전기사 정의봉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정치인에 대한 테러

50~70년대엔 미숙한 정치 체제 사이에서 야당이나 반체제 인사에 대한 테러가 자주 일어났다. 1969년 김영삼 전 대통령 당시 신민당 원내 총무는 초산테러를 당했다. 또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3년 일본에서 괴한들에 의해 납치돼 약 130시간 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대통령에 대한 공격도

고 박정희 전 대통령도 테러에 시달렸다. 1974년 광복절, 경축행사 진행 중에 제일동포 문세광이 대통령을 향해 실탄을 발사했다. 총알은 옆자리에 있던 육영수 여사에게 향했고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당시 한국 측은 문세광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활동에 매진해 김일성의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키라는 명령을 받아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본 측은 문세광의 단독범행이라 주장했다. 그로부터 5년 후, 박대통령 또한 총격을 당해 숨지게 된다.

 

이번사건과 유사했던 박근혜 대통령 커터칼 테러

박근혜 대통령도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커터칼 정치테러를 당했다. 2006년 박대표는 서울시장 후보를 지원했다. 유세를 위해 단상에 올라선 순간 지충호가 10㎝가량 되는 커터칼로 박 대표 오른쪽 볼에 11㎝가량 상처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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