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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교양인을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신빛나 기자
  • 승인 2015.03.0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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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까지 참 다양하고 수많은 사람이 이 지구라는 땅을 밟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단 한 명이 남다르게 거대한 문화를 창시하기도 하고, 이를 통해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는 한다. 때문에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그들의 이름은 전 세계적으로 저명하고, 우리 역시 그들의 이름을 들으면 ‘아~ 그 유명한 예술가? 나도 알지!’하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들은 멀기만 한 존재일 뿐이다. 그들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고자 어디 한 번 ‘얕고 넓은 지식’을 준비해봤다.

 우리가 파헤쳐볼 첫 번째 문화인은 유명 음악가 바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안토니오 살리에리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두 사람은 서로 라이벌 구도로 유명하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랬을까? 그 흥미진진한 부분은 잠시 뒤로 미루고 먼저 스펙대결을 통해 그들을 비교해보도록 하자.

위의 대사는 실제 모차르트가 내뱉은 말이다. 이러한 모차르트의 태도 때문인지 모차르트가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죽음을 둘러싼 온갖 소문들 가운데에는 살리에리에 의한 독살설도 떠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설이 더욱 확산된 것에는 푸시킨이라는 러시아의 문호의 힘이 컸는데, 그는 천재 음악가를 질투한 평범한 음악가를 부각시키며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단막극을 냈다. 이것이 1898년 림스코-코르사코프라는 인물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져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하게 살리에리를 질투의 화신으로 만들게 됐다. 그리고 1984년 개봉된 영화 <아마데우스> 역시 한몫했을 것이다.

 물론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지니지 못한 살리에리는 그를 부러워했을 것이다. 모차르트는 신동이라고 불렸고, 그 일화만 해도 상당했으니 말이다. 그 예로 모차르트가 시스티나 성당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 자리에서 모차르트가 ‘미제레레’라는 곡을 단 한 번 듣고는 악보에 그대로 옮겨 적었는데, 당시 그 곡은 외부 유출이 엄격하게 금지돼 있는 곡이었기 때문에 교황청이 발칵 뒤집혔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천재성은 물론 충분히 경쟁심리를 유도할 만했다. 오죽하면 베토벤이 7살 때 그의 아버지는 “누가 네 나이를 묻거든 5살이라고 대답해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당시 5살이었던 모차르트를 견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살리에리는 오늘날 잘못 알려져 있듯이 그런 치사한 소인배가 아니었다. 오히려 모차르트의 아들인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의 스승이 돼주기도 했고, 후배 음악가들의 연주회를 개최 및 후원하는 등 자선 활동에 적극적인 멋있는 선배 음악가였다. 그런 그가 본인의 음악보다 '살리에리 증후군'으로 더 이름을 알려지게 된 것은 크나큰 오명이 아닐 수 없다. 살리에리 증후군이란 주변의 뛰어난 인물 때문에 느끼는 열등감, 시기, 질투심 등의 증상을 일컫는 말이다. 그와는 참 어울리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한편 모차르트는 타인과의 융화를 어려워하는, 자유분방에, 천방지축이었다. 그런 모차르트와 관련된 책으로는 <모차르트 천 번의 입맞춤>이 있다. 이 책에서는 그가 직접 쓴 편지 속을 통해 인간 모차르트의 일생을 자세히 들어 볼 수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신빛나 기자 sin50050@ch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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