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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독립영화를 책임지는 ‘능력자들’
  • 김무경 기자
  • 승인 2015.03.0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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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소금은 사람들이 찾기 힘든 구석진 건물의 2층, 216호에 아담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소금의 감독이자 설립자인 이수지 씨는 택시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도착한 나를 반기며 말했다. “소금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꼭꼭 숨겨진 장소를 부러 찾아올 정도로 영화에 열정이 있으면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구석진 곳에 사무실을 차렸다”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차를 건네는 것으로 작고 귀여운 외모의 여 감독과 인터뷰가 시작됐다.

 

‘메가폰을 들기 까지’

많고 많은 직업 중에서 그는 어쩌다 영화감독이란 직업을 택하게 된 걸까. “원래는 작가가 꿈이었다”는 말을 시작으로 메가폰을 들기까지의 파란만장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그는 가사에 이야기를 덧붙여 쓰며 놀았다. 그가 제대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때는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였다. 재미로 쓴 소설에 친구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등 반응을 너무나 잘해줬다. 공책에 소설 읽을 대기자 목록을 쓰면 한 페이지가 가득 찰 정도였다고 하니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그와 참 잘 어울리는 것만 같다.

“글 쓰는 게 좋아서 작가가 되길 바랐는데 집에선 교사가 되길 원했다. 그래서 꿈을 쟁취하기 위해 일보 후퇴 하는 셈 치고 일단 집안에서 원하는 대로 유아교육과를 나와 유치원 선생님 일을 했다” 얼마간 유치원 선생님 일을 하며 부모님을 만족하게 하다 일을 그만두고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꿈을 이루기 위해 작가가 되기로 했다. 영화를 바로 시작하고 싶었지만, 곧바로 시작하기엔 엄두가 안 나 드라마 극본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모전 준비를 하며 지내고 있을 때 그의 아는 지인이 한 가지 조언을 해줬다. ‘수지야, 너는 발상을 보편적인 것보다 특이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으니까 보편적인 사람들이 공감하는 드라마 보다는 뮤지컬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말을 들은 그는 공모전 준비를 그만두고 ‘불과 얼음’이라는 창작 뮤지컬 극단에 들어가 작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동안 재밌게 뮤지컬 극단에서 일하다 보니 어느새 독특한 것에 지치기 시작했다. 이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삶을 다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돼서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영화를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곧바로 서울에서 진해로 내려왔다. 그때가 바로 독립영화사 소금이 만들어진 2011년이었다.

 

‘독립영화사 소금’

감독이란 직함을 달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삶을 듣다 보니 많고 많은 도시 중에서 왜 하필 진해를 택해 영화사를 차리고 자리 잡았느냔 궁금증이 일었다. 어떻게 서울에서 진해까지 오게 됐냐고 묻자 그는 설렘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이야기 “아주 우연히 진해를 만나게 됐다”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가 뮤지컬 극단에서 작가 일을 하던 2008년 도였다. 창원에 아는 지인이 있어 잠시 이곳을 들린 그는 안민터널을 빠져나와 왼쪽으로 난 길을 가다 바다를 보게 됐다. “아니 어떻게 창원에 바다가 있어? 했더니 친구가 진해라고 하더라. 정말 재밌고 신기해서 다음 날 진해를 쭉 구경했다” 진해 중원 로터리 근처를 쭉 둘러보던 그는 진해 곳곳에 있는 장소들이 꼭 영화 세트장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때 결심을 했다. 영화를 찍게 되면 진해를 꼭 와야겠다고. 그리고 진짜 2011년에 영화 찍게 되면서 진해에 오게 됐다”

그는 사실 처음에 장편영화 ‘여좌동 이중하’ 하나만 찍고 다시 서울로 돌아갈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두 시간 삼십 분이나 되는 긴긴 러닝 타임의 영화를 한 편 찍었는데도 진해의 예쁜 곳을 다 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 번째 장편 영화인 ‘스키조프레니아’도 진해에서 찍었는데 그래도 진해를 다 담지 못해 세 번째 장편 영화 ‘보청기를 끼워요’까지 여기서 작업을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진해에서 5년이란 시간을 보내게 됐다고 한다.

영화사 이름을 왜 소금으로 했느냐는 질문에 “소금은 왕도 먹고 거지도 먹는다. 거의 모든 음식에 다 들어가는 존재니까. 우리도 영화를 부유층의 사람들도 공감 하지만 정말 소외된 사람들마저도 공감하게끔 하고 싶었다. 또, 아무것도 합성되지 않은 소금처럼 순수한 결정체로 남아 있자, 계속해서 진심으로 영화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하자는 의미를 실어서 소금으로 영화사 이름을 짓게 됐다”며 진중한 모습으로 답을 했다.

소금에는 ‘청결’이라는 독특한 구호가 있다. 이름의 의미를 듣고 난 뒤 ‘때 묻지 말자’라는 뜻에서 청결이라는 구호를 만들게 됐냐고 묻자 그녀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남자 스텝들 때문에 붙이게 된 구호다. 숙소에 남자들이 묵고 있다 보니 더러워도 너무 더러웠거든. 촬영 감독님이 ‘앞으로 구호를 ‘청결’이라고 할 테니까, 너희 인사 하려면 진짜 구호대로 깨끗이 씻고 깨끗이 청소해 놓아야 한다’ 해서 청결, 청결하며 인사하게 됐다”

소금은 현재까지 장편으로 ‘여좌동 이중하’, ‘스키조프레니아’, ‘보청기를 끼워요’, 단편 영화로 ‘먼지’ 이렇게 총 네 개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 중에서 ‘먼지’만 진주 영화제, 경남 영화제를 통해서 상영됐다. “올해는 배급을 해볼까 한다. 소금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영화를 만드는 게 맞고, 이걸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니까. 또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보상을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올해 안에 영화관이 안 된다면 독립영화 극장에서라도 작품을 상영할 예정이라고 이야기했다.

 

‘청춘을 살고 있는 당신들에게’

“내 동생이 원타임 멤버로 제의받았었다” 혹시나 지금 20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의 동생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 당시 동생이 춤을 정말 잘 췄거든. 원타임 제의를 받고 한동안 고민을 하더니 그냥 군대에 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누나, 내가 뭘 해야 행복한지 모르는 이 상태로 원타임을 하게 되면 이 길만 계속 가야 할 것 같아’ 이거였다” 이어 “내 동생은 춤추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그걸로 영원히 행복할 것 같지는 않다고, 젊은 시절이 다 가면 뭘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제대하고 나서 공무원이 됐다. 지금은 안정적인 생활 하면서 하고 싶은 일 다 하며 살고 있다. 그러니까 동생에게 행복한 삶은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여유롭게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것인 거지. 그에 반해 나는 공무원을 하면서 찔끔찔끔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절대 만족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배고파 굶어 죽어도 좋으니 내가 하고 싶었던 글, 영화에 모든 걸 쏟아 부어야 행복을 느낄 수가 있다” 했다. 그는 사회에 나오기 전에 자신이 어떤 삶을 살 때 행복한지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좋겠다고 말을 이었다. “안정적인 삶을 살 때 가장 행복할 것 같다면 그렇게 사는 게 맞다. 하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그 목표를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 시간 남짓의 긴긴 인터뷰는 위의 말로 끝이 났다. 마지막 그의 말처럼 이 글을 읽는 당신들 모두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찾아가며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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