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기획
18회 창원대문학상/수필 당선-작은 날갯짓으로

작은 날갯짓으로

 

 이상원/건축학과 4학년 

 

6월25일 캄보디아의 어두운 밤, 생각보다 습하고 뜨거운 밤공기에 숨이 막히는 듯하다. 우리는 급히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한 뒤 신속히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내일을 준비한다. 설렘과 두려움 사이, 다른 이들도 잠이 잘 오지 않는가 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의 과거를 공유하고 서로의 미래를 나눈다. 생소한 사람들과 생소한 곳에서의 시간들, 무슨 용기가 생겨서일까. 스스럼없이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의 모습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우리는 캄보디아의 어두운 첫날밤을 환하게 밝혀갔다. 잠깐 눈을 붙이자 다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돈디우 마을로 향하는 버스 안, 근심스런 우리들과 대비되듯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는 마치 풍경화를 보는 듯 서정적이다. 흙길을 얼마나 지나왔을까. 풍경 속에 젖어있는 동안 어느새 버스는 멈추고 마을입구에 도착했다. 하나둘 내려 짐을 챙기고 우리는 그들의 삶속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삶 깊숙한 곳에 다다랐을 무렵, 내가 살아왔던 곳과는 조금은 다른 그들의 터무니에 나는 난색을 숨기지 못했다. 단장님은 그들의 삶을 간략히 대변하고 우리를 각자의 보금자리로 안내했다. 3인 1조로 나누어 그들이 거처하는 곳에 함께 머물도록 했다.

내가 지내게 될 집에 도착했다. 마당에 서서 집을 천천히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았다. 건축학도라서가 아니라 누구든 인상적인 그곳의 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집 자체가 그들의 삶을 대변하는 언어였던 것 같다. 필로티(1층이 기둥만 서있는 공간)로 지어진 건축물이 처음에 단순히 뱀과 같은 야생짐승을 피하는 방법론적인 수단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곳에 지내다 보니 그런 이유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주거공간 아래에 닭과 개들이 함께한다.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요소인 의식주 중에 가축은 옷을 입지 않으니 의를 제외한 식주를 같은 공간에 공유한다는 의미다. 그들은 공생하고 있다. 닭은 시계를 대신해 아침을 알리며, 개는 보안업체가 부럽지 않게 자기 집에 침입하는 것들을 경계하여 보호한다. 마당의 소 역시 가장과 함께 생업을 돕는다. 그렇게 그들의 집은 생존의 수단이라는 의미보다 공존의 의미가 더 강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집을 한동안 바라보고 서있으니 가족들이 반긴다. 뭐라 알아들을 순 없는 언어였지만 그들의 표정과 작은 손짓, 미소 목소리에서 그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는 걸 나는 느낄 수 있다. 조심스레 그들에게 다가가 내겐 어눌한 그들의 말로 인사를 했다. 나 역시 그들처럼 때 묻지 않은 표정과 손짓과 미소, 목소리로 그들에게 비춰졌을지 궁금하다.

그날 밤은 잠이 오지 않았다. 낯선 곳, 낯선 환경, 낯선 사람 모든 것이 새로웠지만 그것은 또한 불안정함을 뜻하기도 한다.

어둠이 걷히자 닭이 울기 시작했다. 새벽이 오기까지 잠들지 못 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예상치 못한 선선한 기운에 기분이 좋다. 캄보디아의 시원한 바람이 피부로 느껴진다. 향수와 같은 애틋함이 살결을 스치니 두려움도 불안정함도 사라지는 듯했다. 새벽녘 마을을 뛰었다. 뜨거운 공기도 뛰고 있으면 시원한 바람이 되어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돈디우 마을에서 뛰는 것이 내겐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던 것 같다. 뛰고 나면 우물물과 빗물을 받아놓은 큰 항아리에 있는 물을 퍼서 몸을 씻었다. 처음에는 그 물에 대해 이질적으로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들에게 이 물은 내게 한국에서의 물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알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해 가면서 나도 금세 거리낌 없이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그들의 삶속에서 식사, 잠자리, 생활패턴, 사고방식 등 많은 차이를 느꼈지만 그것이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이해하는 순간 나는 그들의 삶속에 동화되어 갔다.우리가 돈디우 마을로 간 목적은 그들에게 조금 더 윤택한 삶의 기회를 제공하는 시설물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하루를 화장실을 짓기 위한 벽돌을 쌓고, 벽돌위에 미장을 하고, 페인트마감을 하며 벽화를 그렸다. 그런데 날이 지날수록 주객이 전도 된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은 숨길 수 없었다. 내가 윤택한 삶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윤택한 삶의 기회를 제공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같이 화장실을 짓는 작업자, 마을 아이들, 집주인, 그리고 프놈펜의 대학생들. 그들 모두에게서 나는 진정한 의미의 윤택한 삶을 배웠다. 함께 일을 하던 작업자는 우리와 함께 땀을 흘리며 언제나 웃어주고 우리와 함께해 주었다.

마을아이들은 욕심 없이 순수했다. 음료를 건네면 모두와 다 같이 공평하게 나누고 그것에 대해 기뻐했다. 집주인들은 자기가 손수 나서서 화장실을 짓는데 돕기도 하고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우리와 함께 뛰어 놀기도 했다. 프놈펜의 대학생들 역시 우리의 통역사 역할을 하며 우리를 대변해 주었고 우리와 함께 웃고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진정한 의미의 윤택한 삶이란 공존하는 삶이라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공동체라는 조직체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단체주의나 개인주의로 자신들의 행동이 보편타당성을 가지는 것이라 정당화하며 진정한 삶의 윤택함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어느 유명작가의 소설처럼 달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사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많은 것들을 배우며 그들과 많은 추억들을 만들었고, 또한 내게도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갔다. 분명 나는 처음과 다른,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만든 시간들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에드워드 로렌츠는 “나비의 날개짓이 지구반대편에서는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보름동안 캄보디아에서 보낸 꿈같은 시간들이 그들과 함께한 작은 날갯짓이 되어 훗날 어딘가에서 큰 태풍과도 같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길 바란다.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민영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