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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회 창원대문학상/소설 장려-Closed to U

 

Close to U

   

 

이 정 효/미생물학과 2학년

프롤로그

 

2013년 봄

 10학번인 내가 창원 대학에 들어온 지도 어연 3년, 1학년에는 술에 취해, 그리고 군대에서 짬에 취해 지내던 우울한 나날에도 봄은 왔다. 2학년으로 복학 후에 처음 아라를 만났다. 아라는 같은 과의 13학번 후배로, 나와는 3살 차이이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그녀를 처음 보았다. 나에게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던 그 모습에 나는 아라에게 반해버렸다. 내가 이렇게 누군가에게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냥 보기만 해도 좋고, 아라가 나에게 미소라도 지어주면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라와 연락을 시작했고, 계속 연락만 하다가 용기를 내어 같이 영화를 보기로 약속을 잡았다. 오늘의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황급히 가방을 챙겨 강의실을 나섰다. 

"Why do birds suddenly appear every time you are near

 Just like me, they long to be close to you~."

난 언제나 기분이 좋아지면 Carpenters의 'Close to you'를 부르게 된다. 유년 시절에 언제나 이 노래를 불러주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언제나 같이 다니고, 날 챙겨주던 그 아이. 갑작스럽게 이사를 가게 된 그 아이는 저녁에 혼자 나를 찾아와서 사진 한 장을 주고 떠났다.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내의 놀이터에서 그 아이와 내가 손을 잡고 찍은 사진. 사진은 너무나도 따스하고 눈부셔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서 항상 지갑에 넣고 다닌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차, 약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둘러야겠다. 하늘은 높고 맑은 것이 오늘은 좋은 예감이 든다. 근데 왜 저 책들은 자꾸 내 쪽으로 오는 걸까?

 

1부 : Meet - 1. (우연히)만나다 2. (사교 목적을 위해 약속을 해서)만나다

 

1장 : 그녀 부딪치다, 그 부딪히다.

 

"아야!"

그렇게 나는 그녀에게 부딪혔다. 그녀는 책을 잔뜩 끌어안고,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있었는데, 책 때문에 비틀거리다가, 빠르게 걸어가던 나에게 그대로 와서 부딪친 것이다. 그녀의 손에 있던 책들이 떨어지고, 커피는 내 새하얀 와이셔츠에 쏟아졌다. 역시 내가 들고 있던 가방도 떨어지면서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떨어진 물건들을 가방에 넣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한 마디 하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커다란 눈망울로 날 보면서 죄송하단 말을 연발하는 그녀를 보니 화는 가라앉고, 오히려 내가 미안해졌다. 내 물건들을 가방에 다 넣고, 같이 책을 주워주면서 말을 건넸다.

"전 괜찮습니다. 그 쪽은 괜찮으세요?"

"아, 괜찮아요. 그나저나 그 쪽 옷이.."

"신경 안 쓰셔도 되요."

주섬주섬 책을 줍고 일어나며 보니 그녀의 키는 나보다 머리 하나정도 작다는 것을 알았다. 시계를 봤더니 어느 새 약속시간이 20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죄송합니다만, 전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될 것 같네요."

"예, 저기 세탁비라도.."

"아닙니다. 그럼 이만"

상황이 상황이었기에, 간단히 인사만 건네고, 자리를 떠났다. 약속시간은 어김없이 계속 다가오고 있었기에 바빠진 마음에 뛰기 시작했다. 약속장소에 가보니 아라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 첫 데이트인데 지각이라니.

"헉, 헉, 미안 아라야, 늦었지?"

"괜찮아요. 저도 방금 도착한 걸요."

하며 웃는 그녀는 정말이지 예쁘다. 

"미안해, 오다가 무슨 일이 좀 있어서 그럼 들어갈까?"

그렇게 미리 예매했던 영화를 보러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영화는 남자주인공이 자신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아버지를 통해 듣게 되고, 시간여행을 이용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잘 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에 따라 일어나는 나비효과에 대한 영화였다. 다들 재미있다고 해서 고른 영화인데, 나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냥 내 옆에 아라가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두근두근 거려서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왔다. 

"아라야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따로 없으면 내가 자주 가는 식당으로 갈레?"

"오빠 정말 죄송한데요, 집에서 연락이 와서 가봐야 될 거 같아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어디로 가야돼? 내가 대려다 줄께."

그렇게 아라를 바래다주고 나니, 집에 들어가기엔 너무 아쉬워, 친구를 불러내기로 해, 전화를 들었다.

"어. 왜?"

정말 사내자식 아니랄까봐, 무뚝뚝하기는.

"야 치맥 콜?"

"사주면 감, 아님 안 가"

"그래 나와라"

이 친구는 정말 한결 같다. 통화를 마치고 만나기로 한 가게로 먼저 갔다. 지금 오는 친구는 이정효라고 대학교 때 처음 만나서 친해졌다. 나에게 둘도 없는 친구 중 한 명이다. 정효의 소개로 오기 시작해, 단골이 되어버린 가게에 도착해서 주문을 하고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정효가 도착했다. 

"너 오늘 아라랑 데이트 있지 않았냐?"

"아라가 집에서 연락이 와서 들어가야 된다고 해서, 바래다주고 왔지."

"그래? 좀 이상하긴 한데.."

하며 정효가 고개를 기웃거렸다. 왜 그런지 물어보려던 찰나 닭이 나왔다. 별 거 아니겠지. 저 식충이가 다 먹어치우기 전에 닭을 먹어야겠다. 그렇게 친구와 닭을 먹고 집에 오는 길에 아라 생각이 나서 메시지를 보냈다. 답을 기다리며 걷다보니 어느 새 집에 도착했고, 씻고 나와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답장은 없었다. 분명 메시지를 확인한 것 같은데, 왜 답이 없는 거지. 바쁜 걸까?

 

2장 : 책

 

  "우우우웅, 우우우웅"

누가 이렇게 전화를 하는 거야. 피곤해 죽겠는데. 

"예. 여보세요?"

"야! 이 정신머리 없는 놈아. 빨리 안 일어나? 벌써 8시 반이야!"

뭐야 정효였어? 아침부터 무슨 전화를 하는.. 뭐? 8시 반? 큰일이다!

"어우. 늦잠 잤네. 나 끊는다."

허겁지겁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 학교로 향했다. 아침 강의는 이래서 싫단 말이지. 

"헉, 헉, 교수님은?"

정효는 말없이 양 손으로 세이프 제스처를 취했다. 지각은 면했구나.

"야, 나 오늘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자야겠다. 나중에 필기 좀 보여주라."

"그럼 우유랑 빵, 콜?"

이게 진짜. 그래도 너무 졸리니까 어쩔 수 없지.

"콜. 난 잔다."

그렇게 엎드려서 잠을 청했다. 한참 잘 자고 있는 데 누가 계속 내 어깨를 톡톡 쳤다. 벌써 수업이 끝났나? 고개를 드니, 정효가 아닌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주뼛주뼛 서 있는 것이,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여성으로부터의 대시인가?!

"저, 저기요."

애써 설렌 가슴을 진정시키고 대답했다.

"예, 왜 그러시죠?"

"저, 기억 못하시겠어요?"

누구지? 낯익긴 한데, 기억이 나질 않네. 동창인가? 그렇게 망설이고 있으니 그녀가 말했다.

"어제 저랑 부딪혔잖아요. 그 때 책이 바뀐 것 같더라고요. 여기요."

역시 그럼 그렇지. 나 주제에 무슨 대시야. 그나저나 어제 책이 바뀌었던가. 가방에서 책을 꺼내서 확인해보니 내 꼬부랑글씨가 아닌 예쁜 손 글씨로 필기가 되어 있었다. 내가 어제 잘 못 챙겼나보네.

"죄송해요, 제가 어제 챙길 때 잘 못 챙겼나보네요."

"아니에요. 제가 부딪친걸요. 그럼 수업 잘 들으세요."

그렇게 그녀가 가자말자 정효가 왔다. 정효는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설마, 그럴 리 없어. 너 따위에게 저런 여성분이라니. 그럴 리 없다고!"

"아니야, 어제 부딪쳤었는데, 그 때 책이 바뀌었나봐."

"그럼 그렇지, 저런 외모의 여성이 너 따위에게 관심 있을 리 없지."

어이어이, 제가 옆에서 듣고 있다고요. 

"야 아직 쉬는 시간 남았으니까, 뭐 좀 마시러 가자 목말라."

"사주면 감"

항상 생각하지만 정말 이 친구는 한결 같단 말이지. 자판기로 가서 서로 마실 것을 고르고 음료를 꺼내는 데, 2개 나와야할 음료가 3개가 나와 있었다. 정효가 당연하다는 듯이 2개를 챙기면서 말했다.

“오! 오늘 운수 좋은 데? 내가 두 개 마셔야지."

갑자기 아까 그녀 생각이 났다. 이거 같다주면서 사과나 건네야지. 정효의 손에서 음료수 하나를 빼앗았다. 불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지만, 너에게 줄 생각은 없단다. 강의실에 들어가니 그녀는 책을 보고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니 그녀는 큰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근데 왜 이렇게 낯익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왜, 그러세요?"

"아, 이거 드세요. 말하자면 사과의 뜻이랄까요. 그럼 수업 잘 들으세요."

말하고 난 뒤 민망해서 자리를 피하는 데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뒤돌면 내 붉게 물든 얼굴이 들킬까봐. 손만 들어주었다. 내 자리로 돌아오니 정효가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언제는 아라 밖에 없다더니. 아라에게 말해줘야겠네?"

친구라는 놈이 도움이 안 돼요.

"야야, 그냥 저건 사과의 뜻이야. 교수님 오시네. 수업이나 듣자."

수업을 들으며 아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라야, 어제 많이 바빴어?]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답장이 왔다.

[아, 죄송해요 어제 일이 조금 있어서요.]

이런저런 메시지를 주고 받다보니 수업이 마칠 시간이 되었다.

"에헴, 중간고사는 조별과제로 대신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조는 4명으로 남자 2명, 여자 2명으로 구성됩니다. 1조..."

아, 조별과제라니 괜히 들었네. 이 수업. 같이 듣는 건 정효뿐인데, 정효랑 같은 조가 되겠지?

"5조 이정효, 윤준호, 강희민, 이윤정. 마지막 6조 금교빈, 이연주, 김남희, 나소영. 마지막 조는 남자 1명, 여자 3명입니다."

이런, 정효랑 갈라지는 건가. 그나저나 여자가 3명이네. 그냥 남자2명, 여자 2명이 좋은데.

"자 조원은 변경이 되지 않으니 따로 찾아오지 마시고, 발표까지 시간 많이 남았으니, 잘 조율해서 좋은 조별과제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정효가 짜증난 표정으로 날 보면서 이야기했다. 

"아오! 무슨 조별과제야. 괜히 수강 신청했네."

"그러게 말이다."

교수님이 나가고 나자 사람들은 서로의 조원들을 찾고 있었다. 우리도 각자의 조를 외치며 조원들을 찾았다. 마침내 6조를 다 찾아 서로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나와 부딪친 그녀는 6조에 편성이 되어 있었다. 

"반갑습니다. 미생물학과 금교빈입니다. 학년은 2학년이구요."

내가 말하자 옆에 있던 그녀가 말했다.

"반가워요, 저는 간호학과 이연주입니다. 4학년이요."

간호학과였구나, 4학년이면 동갑인걸까? 

"안녕하세요! 저흰 보의과(보건의학과)구요. 전 김남희구요."

"전 나소영이에요. 학년은 2학년이요."

활발하네, 둘은.

"제가 연강이 있어서요. 오늘은 연락처만 교환하고, 자세한 건 다음에 정하는 게 어떨까요?"나와 정효는 연강이 있었기에, 서로 번호만 교환하고, 헤어졌다.

 

2부 : 조별과제 잔혹사

 

1장 : 잔혹사의 서막

 

 6조 인원들에게 단체 메시지로 수업 전 30분에 강의실에서 보자고 약속했기 때문에, 강의실로 일찍 출발했다.

"정효야, 요새 아라에게서 답장이 잘 안 온다. 왜 그럴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알고 싶은 건 왜 나까지 이 시간에 강의실에 가야만 되는 지야."

"음, 그건 네가 네 친구니까?"

정효가 한 숨을 푹 쉰다. 사실 정효는 늦게 와도 되지만, 혼자 가면 심심하기도 해서 같이 대리고 왔다. 

"그나저나 넌 조원들이랑 만났다면서, 어떻더냐? 5조는?"

"우리 조? 좋던데, 어느 정도냐 하면, 내가 발을 빼도 잘할 것 같은 정도로."

학점에 제일 민감한 정효가 저렇게 말할 정도라니, 부럽네. 우리 조도 그랬으면 좋겠다. 혹시나 답장이 왔을까 확인해보니, 메시지를 확인은 했는데 답장은 오지 않고 있었다. 

"음, 확인은 했는데, 답장이 없네. 확인만 했어도 좋다."

하고 웃으니, 정효가 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교빈아, 난 지금 금교빈이라는 사람의 밑바닥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메시지가 무시당했는데도 그런 바보 같은 웃음이라니. 너 정말 심각하다."

그런가, 내가 정말 아라에게 푹 빠져있구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건물에 도착했다. 강의실에 가니 연주만 와있었다. 연주가 나를 보더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교빈씨."

"안녕하세요. 연주씨, 늦어서 다들 와 있을 줄 알았는데, 연주씨 뿐이군요."

불안감이 엄습했다. 조별과제를 위해서 만나는 첫 자리부터 지각이라니. 안 온 인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가만히 앉아있기 민망해서 연주에게 여러 가지를 묻기 시작했다.

"연주씨, 저번에 4학년이라고 했죠. 그럼 23살인가요?"

"예. 23살이에요. 교빈씨는요?"

"저도 23살이에요. 동갑내기 친구네요. 말 편하게 하셔도 되요. 많이 바쁘시겠네요. 졸업도 해야 되니."

"아, 예. 이런저런 준비 때문에 조금 바쁘네요."

"말 편하게 해도 된다니까요. 불편하면 내가 먼저 편하게 할께. 취업 준비는 잘 되가?"

"나는 취업 말고 진학 쪽 생각하고 있어. 유학을 가보려고."

"정말? 대단하네. 유학이라, 나도 외국에 한 번 가보고 싶긴 한데, 유학가려면 어떤 것 준비해야 돼?"

"음, 보통 유학가려면..."

그 말을 시작으로 그녀가 대학 동안 준비한 것에 대해서 들었다. 그녀는 유학을 준비하고 있어서 토플과 GRE 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나도 선택지 중의 하나로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그러다보니 어느 새 수업시간이 다가왔다. 하지만 아직도 나머지 조원들은 오지 않았다.

"와 대단하다. 많이 준비했네? 나도 준비하기 시작해야겠다. 근데 왜 나머지 조원들은 안 올까?"

"그러게. 이제 강의 시작할 시간인데.."

"일단 강의 듣고 다시 이야기해봐야겠네. 마치고 혹시 다른 계획 있어? 난 오늘은 연강 아니라서 시간 되는데."

"나도 따로 계획은 없어 그럼 마치고 다시 이야기하자."

내 자리로 돌아와서 수업을 듣고 있으니 오지 않은 조원들에게 메시지가 와있었다.

[죄송해요, 오늘 바쁜 일이 있어서. 강의도 늦을 것 같아요.]

그녀들은 점점 더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조별과제인데 이러면 안 되는데.

[괜찮아요. 강의 마치고 이야기하죠.]

답장을 보내고 휴대폰을 넣으려다 아라 생각이 나서 아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라야 오늘 저녁에 혹시 시간 되니?]

메시지를 보내고 수업에 다시 집중을 했다. 봄볕의 따스함은 교수님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자장가로 만들었다. 마치 마력을 가진 것 같은 교수님의 자장가에 눈은 점점 감겨만 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강의실의 반 이상이 졸거나, 자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다보니 연주가 보였다. 연주에게는 교수님의 자장가가 통하지 않는지,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었다.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 나도 열심히 해야지. 내 뺨을 스스로 때리고 다시 집중해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조별과제는 다 잘되고 있나요? 제가 학생들에게 내준 건 개인과제가 아닌 조별과제입니다. 그걸 꼭 유념해주세요.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수마의 유혹을 힘겹게 이겨내고 강의를 무사히 마쳤다. 저렇게나 조별과제를 강조하시다니, 분명 교수님도 학생 때 조별과제로 고통 받았을 거야. 정효는 먼저 그렇게 강의를 마치고 나서 드디어 6조원들이 다 모였다. 말을 꺼내려는 데, 지각했던 보의과 학생들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저기 죄송한데 저희 좀 빨리 가야돼서 오늘은 주제랑 역할만 정하면 안 될까요?"

늦은 주제에 또 일찍 가야된다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 마디 하려다가, 연주도 있고 해서 참았다.

"그럼 주제부터 정해보죠."

그렇게 주제를 정하고 역할을 정했다. 정보 수집을 연주와 남희가 하고, PPT작성은 소영이, 그리고 발표는 내가 맡기로 했다. 

"그럼 다 정했죠? 저흰 먼저 가볼게요. 따로 필요한 것 있으면 메신저나 메시지로 연락하죠?"

하고는 휑하니 가버렸다.    

"조금 당황스럽네."

연주가 이야기했다. 나도 당황스러웠다.

"그러네. 그러고 보니 저희 학교 앞에 점심 먹으러 갈 건데. 혹시 같이 갈레?"

"그래 그러자."

그렇게 나와 정효, 그리고 연주는 강의실에서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진동이 와서 확인 해보니 아라였다. 옆에서는 정효와 연주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웃고 있었다. 의외네, 정효는 은근 낯가리는 편인데.

[선배, 오늘 시간이 있긴 한데, 선약이 있어서요. 죄송해요]

선약이라, 이거 보기 힘드네. 자주 봐야 친해지는데.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다음에 보자]

라고 보내고 나니 둘은 아직까지도 재미있게 떠들고 있었다. 나는 우울한데 뭐가 그리 재미있냐. 식당에 도착해서 언제나 주문하던 걸로 주문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밥을 먹었다. 연주가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려하자 정효가 막으면서 말했다.

"어허! 우리가 불렀는데 네가 돈을 내면 안 되지. 이럴 땐 우리가 계산하는 거야. 자 교빈아 계산해. 난 화장실 좀"

신이시여, 정녕 제 옆의 이 사람이 제 친한 친구란 말입니까. 연주를 말리는 것까진 좋았는데, 왜 계산은 내가 해야 되는 건데. 계산을 하려고 지갑을 꺼냈다.

"교빈아 그 사진은 뭐야?"

연주가 내 지갑에 사진을 봤나보다. 그 아이와 찍은 사진을.

"아 이거? 어릴 적에 친하던 아이와 찍은 사진인데, 사실 기억은 잘 나질 않아."

계산을 하고 있는데 연주가 말했다.

"교빈아, 내가 갑자기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될 것 같아. 다음에 봐"

그러곤 연주는 식당을 뛰쳐나갔다. 정말 급한 일인가보네. 정효가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나에게 물었다.

"응? 연주는 어디 갔어?"

"바쁜 일이 있다고 하고 갔어."

정효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인사는 하고 가지. 아쉽네."

이 녀석, 연주가 마음에 든 걸까? 

"너 연주한데 마음 있냐? 낯도 많이 가리는 게, 연주랑은 잘 떠들더라?"

"야, 시끄럽고. 그냥 가자."

그렇게 우리도 식당을 나섰다.

 

2장 : 조별과제 잔혹사

 

시간이란 놈은 당장은 느리게 느껴져도, 뒤돌아보면 정말 빠르게 느껴진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보니, 눈 깜짝할 새에 시험 기간이 다가왔다. 정효와 나는 PC방이나 술집에 가는 것보다 도서관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라도 시험공부로 바쁜지, 연락도 뜸해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과제 발표 날이 점점 다가왔다. 오늘 하루도 도서관에서 공부에 시달리고 집에 가기 위해서 나서면서 정효네 조는 어떤지 해서 물어보기로 했다.

"정효야 조별과제 다 했냐?"

안 그래도 덩치가 커서 곰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정효는 눈 밑에 검은 다크 서클을 가지더니, 사람이라기보다 판다로 변해갔다.

"어. 너넨 다했냐? 우린 한참 전에 끝냈지요."

"빠르네. 우리 조는 망한 것 같은데."

역시 조원의 차이인가. 발표가 2일 전으로 다가온 작금, 우리 조는 사실 PPT도 안 만들어진 상태였다. 문제는 보의과의 2명. 연예인도 아니고 뭘 그렇게 바쁘다는 건지. 원래 발표 3일 전에 PPT를 받기로 했다. 소영이가 잘 하고 있다고 해서, 진척사항을 확인 안하고 있었는데, 당일이 되어도 파일이 오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일인지 소영에게 물어보자, 자료가 아직 다 도착하지 않았단다. 자료 수집은 연주와 남희가 하기로 했는데, 연주는 이상 없이 자료를 수집해서 PPT 담당인 소영에게 보내주었는데, 남희는 바쁘다는 핑계로 자료를 보내지 않은 것이다. 같은 과인데 서로 조율해서 하던지.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거지? 그래서 내가 남희에게 재촉하니 남희는 그제야 자료를 수집해서 보냈다. 아직도 그 때 남희가 보낸 메시지가 기억에 남아있다.

[저기 자료 수집 아직 인가요? 아직 자료가 다 안 와서 PPT 작성이 안 된다던데.]

[지금 하고 있어요. 정 급하면 그 쪽에서 하시면 되잖아요. 제가 시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안하겠다는 것도 아닌 데. 그렇게 재촉하면 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지겠네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면 미리 하던가. 그리고 늦은 주제에 뭐 그렇게 당당한 건지. 하지만 이건 그저 시작일 뿐이었다. 자료를 다 받았으니 PPT 작성을 시작해야할 소영이 나에게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제가 오늘은 도저히 피곤해서 못 하겠어요.]

이제 3일, 아니 2일 밖에 안 남았는데?

[원래 오늘까지 하기로 했는데, 저도 미리 봐야 발표할 준비를 하죠.]

[발표 전까지만 해주면 되잖아요. 내일은 저 일도 해야 되고 바빠서 못해요.]

하아. 어떻게 저렇게 자기 자신만 생각할까. 누구는 안 바쁜가. 그리고 이렇게 할 거면 3일 전까지 완성해서 주겠다는 약속은 왜 한 거야.

[소영씨만 바쁜 게 아니잖아요. 다들 바쁜 와중에 한 건데, 조별과제인데 그러면 안 되죠.][그러면 직접 만드시던가요.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요?]

어릴 때 어떤 교육을 받으면 이렇게 성장하는 걸까.

[제가 왜 제 역할도 아닌 PPT 작성을 해야 되는 건데요?]

[그야, 조별과제니까요. 안하면 그 쪽도 피해보니까 할 수 밖에 없을걸요.]

정말로 주먹이 운다. 더 이상 보기도 싫어서 그냥 내가 직접 하기로 했다. 자료를 다시 받기 위해 연주와 남희에게 연락을 하고, PPT 작성을 위해 정효와 함께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앉아서 받은 자료를 확인하고 있자니, 연주에게 연락이 왔다.

[교빈아, PPT 작성 소영씨가 하는 거 아니었어?][바쁘다고 못하겠데. 어쩔 수 있나. 내가 해야지.]

생각 할수록 화가 치미지만 어쩔 수 있는 가. 조별 과제인 것을.

[어디서 하고 있는 거야?]

[도서관에서 하고 있어.]

내 메시지를 끝으로 답변이 없어서. 다시 PPT에 집중했다. 옆에서는 정효가 왜 나까지 여기 있어야 되냐고 징징거리다가, 음료수를 사주니 조용히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5분 남짓 지났을 때, 연주가 나타났다.

"어? 연주야 여긴 왜 왔어?"

"네가 PPT 작성하고 있다기에 도와주러 왔어. 조별과제잖아."

그래 조별과제의 참 뜻은 이런 거라고. 정말 감동이 북받치네.

"괜찮은데, 밤늦게 괜히 오고 그래."

"어차피 기숙사 살아서 금방 오는데 뭘. 이럴 게 아니라 빨리 해버리자."

그렇게 나와 연주는 과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직접 자료를 수집한 연주가 같이 있으니 작성이 수월했다. 혼자였다면 2배는 걸릴 작업들이, 술술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PPT는 거의 다 완성이 되어가고, 우린 옆에서 엎드려 자는 정효를 놔두고 잠을 쫓아낼 겸 휴게실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진짜 너 덕분에 이렇게 빨리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이걸 혼자 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녀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잘 하던데 뭘."

양 손에 커피를 쥐고, 커다란 눈망울로 나를 올려보며 웃는 연주는 정말이지 귀여워 보였다. 연주가 이런 면이 있었구나. 

"교빈아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연주도 은근 인기가 많을 것 같단 말이지. 키도 작고, 귀엽게 생겼으니. 아 그걸 물어봐야겠다.

"연주야 나 하나만 물어봐도 돼?"

"응. 뭐야?"

"남자인 A와 여자인 B가 있어. A가 B를 보고 한 눈에 반해서, 계속 B에게 연락을 취해. 그런데 B는 A의 연락을 받기는 하는 데, 답장을 잘 안 해. 그래서 약속을 잡기도 힘들지. A는 그것 때문에 굉장히 답답해 하지만 B가 부담스러워 할까 봐 섣불리 다가가지도 못해. 이럴 때 B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까?"

연주는 듣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나에게 물었다.

"그거 네 이야기지?"

왠지 모르게 낮은 목소리였지만, 피곤해서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사실, 그래. 이게 뭔가 답답하네. 같은 여자 입장에선 어떤지 해서 물어봤어."

"B가 아직 생각을 정리하거나, 둔한 거 아닐까?"

내가 기대하던 대답이긴 하지만, 저건 연주가 나를 생각해서 해준 대답. 난 진실을 알고 싶다고!

"연주야, 솔직히 대답해줘. 진솔한 대답을 듣고 싶어."

"으응. 내 생각엔 B는 너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 근데 네가 연락을 계속하니 받아주긴 하는데, 발전할 생각이 없는 거지. 너, 너무 적나라한가? 미안해."

포, 포커페이스.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해.

"아니야. 괜찮아. 내가 원한 건데 뭘. 그럼 과제 마무리 지으러 들어갈까?"

충격도 충격이지만, 너무 민망해서 빨리 들어가고만 싶었다. 들어가려는 나를 연주가 불렀다.

"교빈아, 나도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

"당연하지. 뭐 궁금한 거 있어?"

"네 지갑 속 사진 말이야. 어디서 찍은 거야?"

사진? 아 그 아이와의 사진 말이구나."그거? 내가 어릴 적에 살던 동내에 있던 놀이터에서 찍은 거야."

"거, 거기가 어딘데?"

"대구, 나 원래 대구 출신이거든. 근데 왜?"

"아,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빨리 들어가서 과제 마무리 짓자."

하고는 연주는 휴게실을 나갔다. 왜 물어본 거지? 하긴 다 큰 내가 어릴 적의 사진을 들고 있으면, 궁금하기도 하겠구나. 어우 피곤해. 빨리 마무리 지어버려야지. 연주 덕분에 PPT를 빠르게 마무리 짓고, 잠자고 있던 정효를 깨워 연주와 도서관에서 나왔다.

"어우, 피곤해. 연주야 정말 너 덕분에 살았다. 내가 다음에 밥 한 끼 살께."

"아냐, 괜찮아. 내가 돕고 싶어서 그런 건데 뭘."

연주는 다른 조원 2명에 비해선 천사나 다름없구나.

"아까 기숙사 산다고 그랬지? 대려다 줄게, 가자."

"혼자 가도 되는 데.."

옆에서 기지개를 피던 정효가 끼어들었다.

"어허, 무슨 소리! 이 늦은 밤에 아녀자 혼자 보내는 건 도리가 아니지. 같이 가자."

"괜찮은데, 대려다 준다니 고마워."

그렇게 우리는 연주를 기숙사에 바래다주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발표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PPT 작성이던 소영을 열외처리하고 싶었지만, 교수님이 그렇게나 조별과제를 강조했기 때문에 내 점수를 위해서라도 참았다. 누구는 고생해서 점수 받는 데, 누구는 아무것도 안하고 점수 받아가네. 조별과제라는 것이, 취지는 매우 좋다. 여러 명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어 보다 나은 과제물을 제출하며 조원끼리의 협동심과 책임감을 기른다.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게 대부분의 현실.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도 저런 사람들 만날까봐 두렵네.   

 

3부 : 각 자의 사정

 

1장 : 교빈의 사정

 

복학 후 첫 시험기간. 그 지옥 같던 시간이 지났다. 우리들의 눈 밑에 있던 다크 서클은 사라지고, 밤샘과 피로로 얼룩졌던 모습은 다시금 깔끔해지기 시작했다. 아라와의 관계에서 항상 을인 나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자칭, 타칭 연애의 고수라고 불리는 같은 학과의 이윤영선배를 찾아갔다.

"교빈아, 지금 네 상황은 굉장히 좋지 않아. 내 경험상으로는 포기를 권장하고 싶다."

포기라니, 절대 그럴 수 없다.

"형, 제발요. 저 진짜 아라가 좋아요. 제가 이런 적 처음이란 걸아시잖아요. 어떻게 해결 방법이 없을까요?"

윤영선배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말을 꺼냈다.

"진짜 궁지에 몰렸을 때, 쓰는 마지막 수인데, 선물 공세를 하는 거야."

"음, 제 연락도 잘 안 받아주는 데, 선물을 준다고 해도 부담스러워 하지 않을까요?"

"여자 치고 선물 싫어하는 사람 없다. 그리고 부담스러워한다고 해도, 선물을 주는 사이에서 계속 교류가 생기지. 너와 아라 사이의 가장 큰 문제는 교류가 없다는 점이잖아.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봤다. 무슨 선물을 줘야 아라가 부담스럽지 않고, 교류가 생기게 할 수 있을까. 이런 건 같은 여자에게 물어보는 게 빠르겠지. 알고 있는 여자 해봐야, 거의 없기 때문에, 연주에게 연락을 해서 학교 앞 카페에서 잠깐 보기로 했다. 

"연주야, 여기!"

부른지 얼마 되지 않아, 연주가 나타났다.

"교빈아, 잘 지냈어?"

"나야 뭐, 늘 그렇지. 너는?"

"시험은 끝났는데, 유학 준비 때문에 조금 바쁘네. 근데 오늘 왜 보자고 한 거야?"

확실히 연주는 4학년이라 많이 바쁘구나. 

"내가 저번에 내가 좋아하는 애 있다고 했잖아. 그 애한데 선물을 하고 싶은데, 부담스럽지 않고 적당한 게 뭐가 있을까?"

연주는 입을 꼭 다물고, 생각을 하더니 나에게 이야기했다.

"간단한 액세서리는 어때? 그 사람의 취미에 맞춘 선물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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