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기획
18회 창원대문학상/소설 가작-인간의 조건

인간의 조건

 

김 민 섭/일어일문학과 1학년 

 

하루는 믿을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이 어두운 밤바다 한 가운데 구명보트를 타고 앉아 있는 것을. 아니, 자신이 이 바다에 빠져 죽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해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이런 황당한 일을 겪게 되는 것을. 시꺼먼 바다를 넋 놓고 바라보던 그에 귀에 무겁고 낯 설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학생은 뭘 갖고 있나?” 이제야 정신이 든 하루는 새삼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더니 대답했다. “네..?” “네 가방에 뭐가 들어있냐고. 먹을 거라든지 마실 거라든지.”

하루는 가방을 열어 뒤지기 시작했다. 여벌의 옷과 세면도구 몇 봉지의 과자와 음료수가 다였다. 과자와 음료수를 확인한 그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배가 너무 순식간에 침몰해서 사람들이 많이 바다에 떨어졌어. 우리들은 구명보트를 탔지만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으면 바다에 떨어진 사람들이 보트를 잡고 날뛰어서 우리도 죽었을 거야. 일단 자리를 피하고 나중에 배가 침몰된 곳으로 돌아가서 구조대를 기다리자.”

그렇게 말한 그는 그의 친구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물을 주며 말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휴대폰으로 전화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아 여긴 통화권 밖이니까. 그리고 일단 물은 최대한 아끼는 게 좋을 것 같아. 구조대는 빨리 도착하겠지만 얼마나 있어야 할지 모르니까.”

물을 건네받은 하루는 물을 마시던 중 자신의 옆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세히 보니 70대 쯤 되어 보이는 노인이 누워있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배가 암초에 부딪혔을 때 계단에서 굴러 양 손목이 골절 되었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누워 계세요 할아버지. 손목 움직이지 마시고.”

“날이 밝으면 배가 침몰한 쪽으로 돌아 갈 테니 일단은 한숨 자 놓는 게 좋을 거야. 돌아가서 구조대를 기다려야 하니까.”

자신의 가방에서 음료수를 꺼내 마신 하루는 한 번 더 정신을 가다듬은 뒤 그에게 물었다.

“저기 정확히 어떻게 된 거죠? 진짜 기억이 없어서...” 하루에겐 정말 기억이 없었다. 사람들의 비명과 무엇인가가 바다에 빠지는 반복되는 소리가 기억날 듯 했지만 그조차 물에 넣은 솜사탕을 잡으려는 것처럼 사라지는 것 같았다.

“뭐 별거 없어. 배가 침몰하고 우리가 구명보트에 탔다는 거지. 할아버지는 먼저와 타있는 상태였고 너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우리가 타자마자 뛰어오더군. 그땐 정신이 없었는데 우리가 운이 좋은 모양이야. 보트에 타지 못하고 굴러다니는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니더라고.” 하루는 자신이 보트를 타지 못했더라면 아마 이 시커먼 바다에 떠다니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바닷물의 차가움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 했다.

“어쨌든 내일 배의 잔해를 보고 노를 저어 다시 거기로 가야 하니까 오늘은 이만 조금씩이라도 자 두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말한 그는 이미 자고 있는 그의 친구의 옆에 머리를 비스듬히 대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어딘지도 모르는 한 치 앞도 보이지도 않는 바다에서 잠이 올 리가 없었기에 뜬눈으로 밤을 새다시피 했다. 해가 반쯤 뜨고 나서야 잠이 들었던 하루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자 이제 슬슬 움직여 볼까요?” 해가 밝고 나서야 하루는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각이 진 얼굴에 짙은 눈썹 거무튀튀한 피부색을 가진 전체적으로 묵직하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옆에 있던 그의 친구는 갸름한 얼굴에 크지 않은 몸 찢어진 눈, 전체적으로 야리야리한 느낌, 옆에 있는 노인은 어느 동네를 가든 존재하는 푸근한 인상을 가진 할아버지였다.

친구에게 노를 쥐어준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하루에게 말했다. “할아버지는 손목 때문에 못하시니까 3명이서 교대하면서 하자고.” 그러나 고개를 끄덕인 하루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이 노를 젓는 곳은 아무런 표시도 없는 곳이었던 것이다. 아니 애초에 바다는 사방이 뚫려있었고 하루가 보기에 저곳이 그곳이라고 할 만한 표시도 없었다. 이상하게 여긴 하루가 물었다.

“그런데 이쪽으로 가면 배가 침몰했던 곳이 나오나요?”

그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학생, 잠자코 노만 저어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중에 구조대가 오면 어떻게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릴지나 생각해 놔.”

얼마나 지났을까 3번 째 교대 후 쉬는 차례가 된 하루는 음료수를 꺼내 한 모금 들이킨 뒤 사방을 둘러보았다. 푸른 하늘은 하루가 구명보트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해 줄만큼 아름다웠고 빛을 반사시키며 가벼이 일렁거리는 바다는 언제든 자신을 감싸 줄 것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잠시 바다의 아름다움에 빠진 하루는 이때 까지만 해도 자신이 구조될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배가 침몰하면 구조대가 오는 것은 당연하며 자신은 지금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손목시계의 시침이 숫자 3개를 통과할 때까지 보트는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도착하지 않은 듯 보였고 점점 식은땀에 젖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하루는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하루가 물었다. “저기 얼마나 더 가면 되나요?”

그는 대답이 없었다. 아니 사실 대답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때 옆에 누워 있던 노인이 말했다. “학생 나 좀 일으켜 줄 수 있겠나?” 하루의 부축을 받고 일어난 노인은 힘겹게 말했다. “우리가 침몰된 곳으로 꼭 가지 않더라도 구조대가 주위를 둘러보며 찾을 수 있을 테니 그렇게 걱정 하지 않아도 될 걸세. 조금 지친 것 같은데 일단 물이라도 마시면서 쉬지 않겠나?”그들도 노인의 말에 동의하듯 끄덕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말했다. “그럼 구조대가 올 때까지 보트는 함부로 움직이지 말기로 합시다. 그리고 이제부터 중요한게 ...” 그는 자신의 가방에 들어있는 반쯤 차있는 1.5L페트병 하나와 가득 찬 페트병 하나를 보트 가운데로 꺼냈다. 그리고 말했다

“거기 학생 음료수랑 과자 좀 이쪽으로 모아줄래?”

하루가 2봉지의 과자와 몇 개의 초코바 그리고 500ml음료수 한 병을 모으자 그가 다시 말했다. “자 그럼 구조대가 오는데 길게 잡아 1주일이 걸린다고 가정하고 우리는 남은 시간동안 어떻게 해야 물을 먹을 수 있을까요?” 그의 친구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 하루에 두 번 한 모금씩 먹으면 되지 않을까?”그러자 그가 다소 권위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럼 먹을 것 같은 건 일단 물 마실 때 초코바 반개씩 하루 한 개. 아홉시와 여섯시에 먹는 걸로 합시다. 아 그리고 저녁엔 불침번을 서야 하니까 한 시간씩 번갈아 가면서 불침번을 서는 걸로.”

이렇게 그들은 구조대가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이 망망대해에 보트하나에 의지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끔찍했다. 하루의 머릿속에는 구조대가 오지 않는다면 이라는 가정을 한 온갖 결과들이 도출되고 있었다. 끔찍한 상상을 하지 않기 위해 생각을 돌린 하루는 왜 그때 침몰한 여객선 옆에 붙어 있지 않았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의 말 대로 바다에 떨어진 사람들이 보트를 잡아끌었으면 어떻게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쨌든 진부한 생각이지만 이런 상황이 일어나게 된 이상 살아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을 하루는 알고 있었다. 몇 시간 후 물 한모금과 초코바를 먹은 하루는 자신의 불침번 차례가 되기 전에 보트에 누웠다. 얼마쯤 잤을까. 큰 진동과 사람들의 긴박한 고함소리를 들은 하루는 벌떡 잠에서 깨었다 . “무슨...” “사람 있어요!” “저기요!!!” “살려주세요!!!” “사람 있어요!!!” 그들의 급박한 소리를 듣자마자 무엇인가를 직감하고 흠칫하는 느낌을 받은 하루는 앞 쪽의 바다에서 밝은 빛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조 수색대가 있었다. 틀림없는 헬리콥터였다. 라이트를 단 헬리콥터는 어두운 밤하늘을 날며 난초된 배에서 탈출한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한 수색 중 이었다.

그리고 지금 보트에 있는 사람들은 온 몸을 흔들며 소리치고 있었다.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지 못하는 것은 곧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혼신을 다해 고함치고 있었다.

잠에서 깬 하루도 몸을 일으킨 뒤 황급히 소리치기 시작했다. “사람 있어요 !!!”

저 구조대를 놓쳐서는 안 된다. 놓치면 끝이다. 하루는 이 생각 뿐 이었다.

온 몸의 힘을 모아 소리 질렀다. 마치 힘 센 괴물이 목을 조르고 몸의 모든 피가 머리로 쏠리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소리쳤다.

그들에겐 지금 오로지 목소리 밖에 없었기에 계속 소리쳤다. 목에 피가 맺힐 듯 고함을 질렀다. “사람 있어요!!” “살려 주세요!!” “여기요!!!”

정말 신이 있다면 어떻게 이런 상황을 모른 척 할 수 있을까. 아무리 미개한 인간이더라도 어떻게 보트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불쌍한 네 사람의 생명을 무시할 수 있을까.

그러나 수색대는 그들의 황금 동아줄이 되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헬리콥터는 프로펠러 소리를 내며 그렇게 무심히 멀어져 가고 있었다.

결국 그렇게 수색대는 그들에게 구원의 빛을 주지 않았다. 도대체 왜? 하루는 생각했다.

수색대가 지나간 검은 하늘을 계속 바라본 탓에 허탈함에 보트에 앉았을 때 목의 근육이 그대로 굳은 듯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넋을 놓은 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노인이 말했다. “너무 실망들 하지 말게. 보통 수색대 같은 경우 한 번만 수색하고 하지 않을게야. 보통 낮에 수색을 하겠지만 상황이 상황 인만큼... 다시 올 테니 걱정하지 말고 다음에 올 땐 대처를 잘 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놓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네만...”

그러자 그가 약간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무슨 준비를 하시게요?”

그의 친구도 작은 목소리로 거들었다. “누워있는 주제에...”

그 다음에도 뭐라고 중얼 된 것 같았지만 하루는 듣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른 하루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보트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를 처음 보는 사람 마냥 쳐다보았다.

“어차피 배는 4시간만 있으면 도착할 예정이었으니까 육지가 어디인지만 안다면 그 쪽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래서 육지가 어디인지 어떻게 알 수 있다는 거지?” “어차피 배는 동쪽으로 가야 도착하잖아요. 제 가방에 나침반이 있거든요. 쓸 일이 좀 있어서 들고 왔는데 이런 데 쓰일 줄은...” 그 말이 끝나자 하루를 제외한 3명은 그럴 듯하다고 생각한 듯 동의하는 추임새를 보냈다. 그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럼 일단 잤다가 내일 아침 나침반으로 확인하고 가도록 합시다. 아저씨를 제외한 3명이서 번갈아가면서 노를 젓기로 하고...”

하루는 느낄 수 있었다. 그가 3명이서 라는 말을 아저씨를 겨냥한 말이라는 것을.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손목이 골절된 사람이 노를 저을 수 없는 것은.

 

시간이 흐르고 점점 해가 뜨기 시작했다. 수평선의 뒤에서 뜨는 해는 바다라는 이불을 덮고 나오기 싫어하는 듯 조금씩 눈부신 용안을 내밀었다. 해는 그들이 가야할 길을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일출을 확인한 그는 나침반을 확인한 뒤 아무 말 없이 양쪽 노를 잡고 젓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시간 쯤 흘렀을까. 그들이 잠시 초코바와 물을 먹으며 쉬기로 했을 때 아저씨가 말했다. “도와줄 수 없어서 미안하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수색대가 지나간 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이 노인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짐짝이라는 것을.

하루도 알고 있었다. 노인은 사실 지금 이런 상황에선 계륵 보다 못한 존재라는 것을.

“물 한 병을 다 먹어버렸구나.”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첫 번째 페트병에 들어있던 물을 다 먹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페트병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 시간 쯤 시간이 지나고 이제 하루의 차례가 되었다. 노를 저어본 적이 없는 하루는 노를 젓는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팔과 어깨의 허리까지 모든 근육을 써야 하는 것 같았다. 노인도 하루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부담하고 싶은 듯 불편한 자세로 앉아 하루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삼십 분이 지났을 땐 팔의 모든 근육들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하루는 바다의 경치를 보며 감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고 했지만 팔에 있는 감각들은 그가 더 많은 고통을 받기를 원하는 듯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열 시간 같았던 한 시간이 지나고 하루는 노를 넘기고 구명보트에 누워버렸다.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루 혼자 있는 보트에 노를 젓는 다면 별로 힘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가능하지 않았다. 배가 도착하기 위해 얼마나 노를 저어야 하는지 모르기에 심리적인 압박감도 있었다. 노를 젓느라 심한 갈증과 배고픔이 생겼지만 물과 과자에는 손도 댈 수 없었다. 물을 먹지 못해 약간의 구토감과 침마저 끈적끈적 해 지는 느낌을 받은 하루는 새삼 물이 얼마나 인간에게 필요한지를 느끼며 갈증을 잊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배고픔도 참기 힘들었다.

배의 꼬르륵 소리는 마치 위에서 음식물을 넣으라고 하는 무언의 아우성인 것처럼 들렸다. 보트에 머문 시간은 채 이틀도 되지 않았지만 풀이라도 뜯어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갈증이라도 해결 하고 싶었던 하루가 바닷물을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을 때 아저씨가 말했다. “바닷물은 갈증을 해소시켜 줄 것 같지만 먹으면 안 된단다. 나중엔 더 심한 갈증을 일으킬 거야.” 하루가 말했다. “아... 마시면 안 된다는건 저도 알고 있어요.”물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먹지 못한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더 부담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을 먹지 못했지만 노는 시간에 맞춰 계속 저어야만 했다.

두 번째 세 번째 노를 저을 때도 노 젓는 것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해가 질 무렵 두 번째 생명수를 마시게 되었을 때 하루는 새삼 느꼈다.

이런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어느 정도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랬다. 앞으로 다른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런 상황을 적응 할 수 있다면 어떤 상황이라도 적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이나마 기분이 나아졌다.

하루가 문득 생각이 들어 말했다.

“저 그런데 어제처럼 계속 불침번은 세워 두는 게 낫지 않을까요?”그러자 그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수색대도 지나갔는데 굳이 불침번을 세워 둘 필요가 있으려나?”

그의 친구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거들었다. “그 힘을 아꼈다가 나중에 노 저을 때 쓰는 게 낫지.”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요. 혹시 모르니까 보트도 최대한 눈에 잘 띄도록 해놓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 놓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럼 그 때처럼 불침번을 세우도록 하자. 혹시 모르니까.”

바다엔 또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칠흑같이 어두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이었다.

사람의 눈이 아무리 어둠에 적응 된다 하더라도 익숙하지 않았다. 밤에 노를 저을 수 없는 것도 불이 없어 나침반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자신이 첫 번째로 불침번을 보기로 하고 어두운 하늘을 보며 불빛을 찾았다. 불침번을 보는 건 불편했지만 실낱같은 희망도 버릴 수 없었기에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불침번을 서고 잠이 든 하루는 누군가가 소곤거리는 목소리에 잠을 깼다.

그와 그의 친구였다. 자세히는 들리지 않았지만 바다가 너무 고요했기 때문에 조금씩은 들을 수 있었다. 먼저 그의 친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잖아. 너도 알다시피 저 사람은 아무 도움이 안 돼. 물도 얼마 안 남았고 이 보트로 계속 동쪽으로 간다 해도 대충 어림잡아 보면 일주일은 더 가야 할 텐데...”

“이건 살기 위한 정당행위야.”하루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예상하고 잠이 확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여기서 끼어드는 것도 이상했기 때문에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져 잘 들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의 말을 대충 종합해보면 그는 노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하루는 그의 생각에 조금이나마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없다면 노를 젓는데도 훨씬 가벼워 질 것이고 물과 식량도 훨씬 아낄 수 있을 테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생각과 행동은 달랐다. 하루는 그가 여기서 무엇인가 행동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슨 행동을 할지 예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하루는 좀 더 겁이 나기 시작했지만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자신의 차례가 되어 첫 번째로 노를 잡은 하루는 타는 듯한 갈증과 배고픔, 쓰라린 손바닥 물집들의 거센 반발을 느끼며 힘겹게 노를 젓기 시작했다. 먹은 것이 없어서인지 계속되는 구토감에 노도 잘 저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올려다 본 하루는 처음 느꼈던 감정처럼 여전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경치를 두고 이렇게나 생존을 위해 힘겨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 약간의 위화감을 느끼며 묵묵히 노를 저었다.

3시간 뒤 녹초가 된 그들과 노인에게 꿀 맛 같은 식사시간이 다가왔다. 식사시간이라 해봐야 이미 봉지가 뜯겨 눅눅해진 과자 몇 개와 물 한 모금이었지만 하루가 느끼기엔 마치 먹으면 불사불로의 생을 산다는 신들의 음식과 음료인 암브로시아, 넥타르와 견줄 수 있을 만한 음식이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엔 무리였지만 입으로 먹을 것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맛을 천천히 느끼고 싶은 듯 최대한 천천히 과자와 물은 마신 하루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얼마 쯤 더 가면 도착할 것 같나요?”

“그런 걸 어떻게 알아. 그냥 가는 거지. 그리고 해안에 가까워지면 해안쓰레기들이 보일거야. 아마도. 그럼 그 땐 육지가 얼마 안 남았다는 증거니까, 그런데..”그는 노인을 한번 흘긴 뒤 말을 흐렸다.

하루는 그의 눈빛을 본 뒤 그의 뒷말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노인은 눈치 채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어느 때처럼 그들이 노를 젓고 있을 땐 최대한 불편한 자세로 앉아 먼 바다나 하늘을 보며 곧 있으면 수색대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 듯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가 지고 6시가 되어 미쳐 터져버릴 것 같은 갈증과 허기를 달래줄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먹은 후 잠시 동안의 휴식을 취하던 중 노인이 말했다. “오늘 부턴 밤엔 나 혼자 계속 불침번을 설 테니 걱정하지들 말고 주무시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자 그가 말했다. “아니에요. 그럼 저희들이 너무 미안하고 그냥 하던 대로 한 시간씩 번갈아가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의 친구도 거들었다. “그래요. 일부러 다친 것도 아닌데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나 하루는 의아했다. 노인이 불침번을 전부다 본다면 그들은 밤에 일어나지 않고 잘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제안을 거절 했을까. 하루가 아는 선에선 그와 그의 친구는 아저씨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식량을 축내는 것을 싫어한다. 전날 밤 그들의 대화가 그것을 방증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아저씨가 그들 몫까지 불침번을 선다는 제안을 거절한 것일까?

하루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 보트에선 언제든 아저씨가 있기 때문에 질문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하루 종일 노를 젓느라고 힘이 빠진 하루는 자신의 불침번 차례가 되기 전에 한숨 자기로 하고 보트에 비스듬히 누워 잠을 청했다.

얼마 쯤 지났을까 그가 하루를 깨우기 시작했다. “학생, 불침번 차례야. 일어나.”

잠에 취해 일어난 하루는 곧 부서질 것 같은 몸을 일으켜 앉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노인의 나지막이 코고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가 말했다. “ 학생 잠시 할 말이 있는데...” “무슨 이야기요?”

이야기를 다 듣고 약간의 충격에 빠진 하루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뭔가 오해 하고 있을 수도 있어서 미리 말하는데 이건 절대로 잘못된 것이 아니야.”

“정당행위란 말이야. 여기서 죽을 생각은 없잖아?”

물론 하루는 여기서 죽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산더미처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말한 다수의 행복을 위한 소수의 희생. 과연 그것이 정당화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하루는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저기 그럼 시간을 좀 주세요. 다음에 제가 불침번 차례가 되었을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루의 말이 끝나자 그는 탐탁지 않은 듯 말했다.

“그래.. 학생 잘 선택해야 해. 죽느냐 사느냐는 학생선택에 달렸어.”

그는 보트에 누웠고 하루는 보트 앞부분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만약 이 보트에 하루가 없었더라면 그는 아무런 제약 없이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에 하루가 반대를 한다면 그가 행동하기에 껄끄러워 지는 건 사실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감시카메라도 그런 행동을 막을 만한 사람도 부정을 신고할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냥 처음부터 아저씨가 없었다고 해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난초된 배에 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아저씨가 보트에 탔다는 것을 알고 신고할 확률은 극히 희박했다.

모든 상황은 하루가 그의 행동에 찬성 하도록 흘러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하루는 노인을 흔들어 깨웠다. “할아버지 불침번 서실 차례에요.”

몸을 한 번 흠칫 한 뒤 눈을 뜬 노인은 하루에게 말했다.

“고맙네. 자넨 이제 편히 누워 자게. 내가 책임지고 불침번을 설 테니.” 노인은 여느 때처럼 고맙다는 말을 하고 불편한 몸을 일으킨 뒤 바다를 바라보았다. 하루는 노인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자신이 노인을 계륵보다 못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약간의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보트에 누운 하루는 잠이 오지 않았다. 앞으로 2시간 후면 하루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그러던 중 하루는 할아버지가 불침번을 계속 하게 된다면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에 불침번을 도맡아 하겠다는 제안을 거절 한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순간 그가 얼마나 계획적인지에 까지 생각이 미치자 하루는 소름이 돋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말마따나 하루의 행동은 상황에 따라 정당행위가 될 수 있었다. 그가 말했던 다수의 행복을 위한 소수의 희생은 있을 수도 있다고 하루는 생각해 왔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하루가 그의 행동에 찬성을 한다고 하더라도 알 사람은 없다. 이대로 묻혀 자신은 어떤 책임도 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인간의 도리에 어긋난 짓은 하면 안 된다는 나지막한 마음의 소리도 있었다.

같이 살 방법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며 아저씨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이나 자식들을 생각하면 이런 짓을 저지르면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다. 결정하기 힘들었다. 언제까지나 결정 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이 하루의 마음속에서 계속 되고 있었다.

결정의 저울이 조금씩 기울 때마다 하루의 가슴은 덜컹거렸고 손에 땀을 쥐며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만 하루는 끝내 힘겨운 결정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하루를 깨우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서 결정은?”하루의 말이 끝나자 그가 약간 당황한 듯 말했다.

“학생의 생각이 그렇다면... 알겠다. 그렇게 하도록 하자.”그리고 그는 자신의 친구를 깨워 귓속말을 한 뒤 다시 하루에게 말했다. “그럼 나는 한숨 잘 테니까 불침번 잘 서도록 하고...” 하루는 다시 보트의 앞쪽에 다리를 쭈그리고 앉아 단조로운 바다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결정의 시비를 따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헛된 노력이었다. 그가 아무리 생각한들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날이 밝고 다음 날은 손에 물집이 터져 옷을 감고 움직여지지 않는 노를 저었다는 것, 오한을 느꼈다는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순식간에 밤이 찾아왔다. “툭...투둑..”

비였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루는 비를 맞아보는 사람처럼 하늘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곧 정신을 차린 하루는 마른 옷이 젖지 않게 가방에 잘 넣은 뒤 물 한 방울이라도 마시고 싶은 듯 하늘을 보고 입을 벌렸다. 그 사이 그는 페트병들의 뚜껑을 열어 빗물을 담으며 말했다. “물을 담을 수 있는 곳엔 전부다 물을 담아.”

비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그가 그의 친구에게 귓속말을 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다가와 하루에게 말했다. “학생말대로 학생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까 가만히 있어.”

슬슬 시작할 모양이었다. 하루의 말대로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와 친구가 벌떡 일어서는 걸 본 하루는 그들을 등지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마치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사람처럼. 빗소리에 묻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하루는 귀를 막았다. 눈도 감은 채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고 있었다.

보트가 조금씩 요동치기 시작했다. 누구의 소리인지 모를 고함소리와 비명소리가 귀를 막은 손을 뚫고 들리기 시작했다. 보트의 요동은 멈추지 않았다. 비는 더 거세게 내렸고 보트는 더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루의 귀를 뚫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도와달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자신의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는 모든 힘을 다해 귀를 막았다. 이빨을 꽉 깨물었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되뇌었다. 그리고 자신의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것을 부정하는 듯 쳐다보지 않았다. 사실 쳐다볼 수 없었다. 하루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자위하며 빨리 끝나길 빌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하루는 펄쩍 뛰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였다. 그의 친구는 빗물이 고인 보트에 뻗어 있었고 그가 빗소리를 뚫고 크게 말했다.

“끝났어!”

그의 말 대로였다. 보트엔 3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음 속 어딘가를 드릴로 후벼 파는 듯한 느낌을 느낀 하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죄책감에 둘러싸여 그대로 앉아 있었다.

모든 게 끝났다. 아니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늘에선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있었다. 보트에 타고 있던 세 사람은 페트병의 뚜껑을 잠그고 보트안의 물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물을 어느 정도 걷어낸 뒤 가방에서 몇 장의 수건을 꺼낸 하루는 보트를 닦은 뒤 옷을 갈아입었고 남은 옷은 그와 그의 친구에게도 옷을 빌려주었다.

 

해가 뜨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전 날의 소나기 덕분에 물은 2/3쯤 차있었다.

다시 노를 1시간 씩 저은 그들은 가방 안에 넣어 뒀던 과자와 물을 조금씩 먹은 후 30분 정도 쉬기로 결정했다.

그가 보트 모퉁이에 기대며 하루에게 말했다. “ 학생 너무 죄책감 가지지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 이해하지?”

하루가 한숨 쉬듯 말했다. “네...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에요.”

“정당 행위였어. 이 녀석도 처음엔 거절했었거든. 그런데 물도 떨어지고 있고 불필요한 입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하루는 생각했다. 그가 말했던 불필요한 입이라는 것에 대해. 그의 생각에 노인은 불필요한 입이었던 것일까?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 사실은 그냥 자신의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한 변명거리가 아닐까? 그러다 자신도 그의 생각에 결국 동참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괴감에 쌓였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30분을 보낸 하루는 그가 노를 잡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사실을. 즉 이기적이라는 것을. 자신도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가 앞을 보고 소리쳤다.

“저게 뭐야?”하루도 자신이 가는 방향을 보았다. 쓰레기들이었다. 생활쓰레기들이 그들이 가는 방향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플라스틱이 대부분이었으며 나무판자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하루의 눈에 비친 것은 햇빛을 반사해 자신의 눈을 비추는 칼날이었다. 다른 사람은 그 칼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한 하루는 순간적으로 칼을 잡아 자신의 뒤에 숨겼다. 왜 그랬는지 이해는 가지 않았다. 단지 칼을 보자마자 자신을 보호할 무기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밖에는 없었다.

가방에 넣어 만져보니 과도인 것 같았다. 하루는 가방 깊숙이 칼을 숨긴 후 말했다.

“쓰레기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걸 보니 육지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네요.”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노를 저을 때마다 물집이 거슬렸지만 그건 문제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인지 하루는 예전보다 심하게 팔이 떨리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좀 더 가벼워지긴 했지만 그건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6시가 되었다. 이미 과자는 다 떨어졌기 때문에 마실 건 물 밖에 없었다. 이쯤 되니 배고픔이라는 것을 잊은 듯 그렇게 배가 고픈 느낌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노를 저을수록 팔이 떨리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당장 내일부터 노를 저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하루는 불침번을 서기 시작했다. 여기선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면 안 되었기 때문에.

하루는 다음 날이 되자마자 아무렇지 않은 듯 노를 젓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두 번째로 자신의 차례가 되어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로 노를 젓던 하루는 어지럼증과 함께 메스꺼움을 느끼고 바다에 대고 토를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팔이 움직이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먹은 것이 없었기에 위산이 역류하는 쓰라린 맛만이 느껴졌다. “학생 괜찮아?” 그가 말했다. “네.. 괜찮습니다. 저 조금만 쉬어도 될까요?”

“응 그래 누워서 쉬어. 그럼 오늘은 여기서 그만하고 내일 다시 노를 젓자.”

그리고 그는 하루에게 페트병을 주었다. “먹어.”

고마움을 느낀 하루는 꿀 맛 같은 물을 마신 후 말했다. “죄송해요. 배가 고파서 힘이 없어서...” 그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일단 오늘 불침번을 쉬지 말고 푹 쉬어.”

“고맙습니다..”하루는 그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감정을 느꼈다.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목소리도 크게 나오지 않았지만 이 한마디로 자신의 진심이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보트에 누운 하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얼마 쯤 잤을까. 바닷소리에 잠을 깬 하루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무엇인가를 씹는 소리. 물을 들이키는 소리. 봉지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 순간 먹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하루는 벌떡 일어나려다 이상한 낌새가 들었다.

그의 친구가 말했다. “저 친구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던데 우리만 이렇게 계속 먹어도 될지 모르겠네.” 그가 말했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건데 일단 우리가 먼저 살아야 하지 않겠냐?”

하루는 그들에게서 느낀 배신감에 심한 충격에 빠졌다. 먹을 것이 있었다. 하루의 배는 심하게 요동치는 것 같았다. 당장 저기 있는 먹을 것을 가져와 입에 쑤셔 넣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일어날 수 없는 느낌에 계속 듣기로 했다. 그가 계속 말했다. “우리 물도 이제 이게 끝인데 이대로 계속 가야하나?” “무슨 소리야?”

“우리가 숨겨왔던 물을 다 먹어서 이제 진짜 저 물 밖에 안 남았다고. 한 사람의 몫이라도 아끼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또 하자고?” “뭐 그런 셈이지. 어차피 저 학생 힘도 없어서 반항하지도 못 할 것 같은데 지금 당장도 나쁘지 않고.”그의 친구는 생각에 빠진 듯 조용했다.

하루의 심장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칼. 하루는 생각했다. 쓰레기더미에서 건졌던. 그 방법 밖에 없었다. 바다는 컴컴했고 자신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안 하루는 조심스레 가방으로 손을 가져가 과도를 집었다.

여차하면 먼저 달려들 기세로 자신의 가슴 밑에 칼을 꼭 쥐고 한 마디 한 마디 흘려듣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말했다. “어떻게 할래?”하루의 심장은 터질 것 같이 뛰고 있었다.

심장박동소리가 그들에게 들릴 것만 같았다. “지금은 좀 그렇고... 내일 어때?”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그가 무언의 동의를 보인 것 같았다. 이때였다. 하루는 막 잠에서 깬 듯 부스스한 목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하루가 일어나자 그가 약간 당황한 듯 말했다. “이제 좀 괜찮아?” “네 고맙습니다. 덕분에 괜찮아 졌어요. 지금 부터는 제가 불침번 설 테니까 편하게 주무세요.”

그는 안심한 듯 말했다. “그래 그럼 수고하고. 우린 이제 좀 자야겠다.”

그들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웠다. 하루는 언제나처럼 보트 모퉁이에 앉아 혹여 답이 있지 않을까 바다를 바라보았다. 하루의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보트는 흡사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르는 야생의 세계인 것 같았다. 약하면 먹힌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무리를 만들거나 혹은 자신이 그 무리보다 강해야만 하였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일까. 아니면 그들이 악인인 것일까.

결론이 나지 않는 사색에 잠겨 있던 하루는 그들이 자신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라는 데에 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 한 쪽이 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은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를 덮칠 것이 분명해 보였다. 분명 아무리 무기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먼저 행동을 한다면 어쩔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들을 설득할 수도 없었다. 이런 야생 같은 울타리 안에서 방법은 하나라고 하루는 생각했다. 그의 말처럼 이것은 정당행위였고 살기 위함이었다. 그의 나지막한 잠꼬대 소리를 들은 하루는 숨겨놨던 칼을 꺼내었다. 달빛에 비친 칼은 날카로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라고 되뇌며 손에 칼을 꽉 쥐었다.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민영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