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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 창원대문학상 수필 장려-Frame

Frame

김효진/공대 컴퓨터공학과 3학년

 

  학교의 정문으로 들어서면 항상 내 시선을 빼앗는, 마치 한 폭의 병풍처럼 펼쳐진 정병산이 보인다. 그러면 항상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넣고 항상 아래로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서 산기슭과 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을 보면서 등교한다. 한껏 숙여 있느라 뻐근한 목에서 뻣뻣한 소리가 나고 뭉쳐 있던 어깨가 아우성친다. 그러면 크게 기지개를 펴고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준비를 한다. 그렇게 조금은 느린 발걸음이지만 마음을 가볍게 가지며 걷는 시간이다. 그렇게 10분 남짓 걸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내 시선은 산과 하늘의 경계에 머무른다. 하늘과 별과 달과 해를 동경해 한때 천문학의 길을 걷고 싶어 했을 정도로 하늘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순간만이 유일하게 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때이다. 언젠가부터 그랬을까.

내가 군복무 시절의 이야기다. 대전의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서 군 복무를 하였다. 그래서 입대하면 질리도록 하늘의 별만 보다가 온다는 먼저 입대한 친구들의 넋두리를 듣고 입대했는데, 배부른 소리지만 막상 별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자 아쉬웠다. 그러다보니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그런 생각을 자주 하곤 했었다. 그날은 유난히 하늘이 맑고 청명한 어떤 가을 오후였다. 저녁시간이 다가와서 분대원들과 함께 오와 열을 대충 정렬하여 식당으로 가고 있었다. 하늘이 너무 깊고 푸르러서 고개를 최대한 뒤로 젖혀 한껏 가을향기를 눈으로 음미하고 있었다. 그때 눈에 익숙지 않는 것이 보였다. 푸른 도화지에 난 스크래치 마냥 창백한 낮달과 같은 색을 띄고 있는 그래 혜성이었다. 분명 처음 보는 혜성이었지만 말로 듣고 책으로 보고 머릿속으로 상상한 그것과 정말 똑같은데 훨씬 컸다. 정원대보름에 푸짐하게 뜬 달 마냥 큰 머리를 갖고 그 뒤로 길게 늘어진 꼬리가 마치 큰 붓으로 힘차게 휘갈겨 그린 붓 그림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압도적인 자연의 모습에 넋이 나가 멍하게 하늘을 처다 보았다. 그러고 있자 다들 눈치를 채고 ‘우와 지구 멸망하겠다!’와 같이 우려가 섞인 반응을 보여준다던지 ‘멋있다!’ 등등 다들 처음 목격한 경외로운 관경에 넋이 나갔었다. 그 혜성은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하늘의 반을 가로질러서 산 너머로 사라졌다. 모두들 그날 밤 들떠서 그 혜성이야기만 하였고 혜성을 보지 못한 다른 전우들에게 자랑과 과장을 가득 섞어서 이야기들 하는 그런 밤이었다. 나 역시도 그날 흥분을 해서 내가 본 혜성이 어떤 혜성인지, 그것이 예고되었는지, 되었다면 얼마나 지구에 가까이 있었는지 등을 찾아보기 위해 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 검색을 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혜성이라는 키워드로 찾아봐도 뉴스라던가 트위터 같은 마이크로블로그에서도 조차 비슷한 키워드 하나 나오지 않았다. 아니 하나 나왔었다. 대충 내용이 ‘대전 시내에서 폰 배터리가 나가서 하늘을 봤는데 혜성 같은 것을 본 듯한데... 아닌가? 내가 잘 못 봤나?’ 와 같은 글이었다. 너무 충격적 이었다. 그런 멋있는 장면을 본 것도 충격적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하늘을 다 덮으려는 큰 혜성을 왜 보지 못 한 것일까. 그래서 그 다음날도 다음다음날도 계속해서 뉴스라던가 마이크로블로그 등을 검색하면서 내가 본 것에 대해서 알고 싶었고 이리도 어찌 언급조차 없던지 내가 본 것이 사실 헛것인가 하고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혜성은 관심사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고 그렇게 무사히 전역을 하여 사회의 일원으로 섞여 버렸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려고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가 탈 버스가 오는지 확인을 한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나도 그렇고 내 앞의 사람도, 옆의 사람도, 방금 전 버스를 탄 사람도 그리고 지금 새로이 온 사람도 똑같이 행동한다.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언제든지 어디에 있는지 관계없이 전 세계의 정보를 볼 수 있었고 지구반대편의 사람에게 즉시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렸다. 인터넷 시대에서 시간과 거리의 제약을 초월했다면 스마트폰의 시대에는 공간의 제약마저 초월 하였다. 언제 어디든지 간에 어디에서나 접속 할 수 있다. 언제든지 세계가 손바닥 안의 자그마한 네모난 틀 안에 들어오는 시대가 되었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려 세상을 보는 작은 창문인 것이다. 그 조그마한 창문을 통하여 우리는 이 세상 구석구석을 내다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눈은 오직 그 창문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그마한 네모난 창틀을 통해서 우리는 이야기를 듣고 정보를 얻고 또 생산한다. 남들과의 소통마저 스마트폰을 통해서 하곤 한다. 그렇게 다들 조그마한 틀을 통해서만 활동을 하고 그러다 보니 그 틀에 가두어 져서 자신의 두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자그마한 창틀 사이로 보이는 것들만 여과되어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보일 것을 다들 작은 창에 눈이 묶여서 혜성을 보지 못한 것일까. 지금에 와서야 그 장면이 이해가 간다. 다들 작은 창틀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머리 위에 혜성이 지나간 지도 모른 채 손안의 작은 창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을까.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과학기술이 인간사이의 소통을 뛰어넘을 그날이 두렵다. 세상은 천지들이 시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손안의 작은 창틀 밖에 바라볼 줄 모르는 천치들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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