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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 창원대문학상 수싶 가작-생일전야

생일 전야

김 민 주/공대 토목공학과 4학년


오후 4시30분, 해가 사라진 하늘 저편에서 어스름이 밀려오기 시작하는 시간. 내일은 생일이니, 돈 걱정 말고 맛있는 것 사 먹으라는 엄마와의 인터넷 전화를 끊고, 방문 손잡이에 걸려있던 장바구니를 챙겨 집을 나섰다. 비행기로 12시간을 날아 도착한 그 곳 프랑스의 겨울은, 뼛속 깊이 파고드는 추위에 외로움이 더해져, 작은 나를 더욱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두 손을 호주머니에 깊숙이 찔러 넣고, MP3의 볼륨을 최대한 높여 걷기 시작했다. 차도 옆의 인도를 따라 차와 함께 나란히 걷다 보니, 왼편에 자리한 시립묘지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나에게 묘지는 무서운 곳이었지만, 그 곳 프랑스에서 묘지는 나에게 그저 햇볕이 잘 드는 산책공간이었다. 손질이 잘된 비석과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꽃바구니, 비석에 새겨놓은 추모의 글, 그리고 입구에 놓여진 벤치. 겨울에는 추워서 잘 들르지 않던 묘지로 발길을 옮긴 건, 아마도 다음 날인 나의 생일과 그 곳 프랑스의 뚜쌍 방학이 겹친 묘한 우연 때문이었다.

세계 제1차 대전 때, 숨지거나 전사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죽은 이들을 위한 날이라는 뚜쌍. 11월 15일이 생일인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기묘한 우연을 맛 볼 수 있는 걸까? 차의 경적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만큼 높였던 MP3의 볼륨을 낮추고 묘지로 들어섰다. 전에는 빈자리였던 곳에, 추모의 편지 글이 적힌 반들반들한 묘비가 새롭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직 시들지도 않은 형형색색의 꽃바구니를 보니,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은 ‘묘’라는 것이 실감되었다. 어스름이 색깔을 바꿔 어둠이 밀려오는 하늘에 떠밀려, 나도 느릿느릿하던 발걸음을 재촉해 묘지의 입구로 향했다. 어느덧 개방된 묘지 문을 닫을 시간이 된 건지, 묘지관리인이 어둠 속을 어슬렁어슬렁 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혼자서 무엇을 생각하며 걸었던 건지, MP3에서는 재생목록의 가장 마지막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MP3의 시계는 5시를 향하고 있었다. 다시 MP3의 볼륨을 높이며 묘지를 빠져 나왔다. 묘지를 빠져 나오자마자, 퇴근시간과 맞물린 혼잡한 교차로가 눈에 들어왔다. 교차로를 건너, 길 건너편의 슈퍼마켓에 들어서서도 혼잡함은 계속되었다. 뚜쌍에는 대부분의 슈퍼마켓이 문을 열지 않는 데다가, 버스마저 거의 다니지 않아, 슈퍼마켓 안은 장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생일에 빠져서는 안될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 쇠고기를 한 팩 사고, 또 큰맘 먹고 케이크를 집어 들었다. 10개 미만의 소량 계산대에서 계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작 30여분 사이에 완전히 색을 바꾸어버린 깜깜한 겨울 하늘에 길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아련하게 번져, 내 마음의 향수를 콕콕 찌르기 시작했다. 생일을 혼자 보낸 것이 벌써 2년째이지만, 몸이 아픈 날과 더불어, 생일을 혼자 보낸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 결코 적응할 수 없는 나날이었다. ‘생일 축하해’ 라고 인터넷 전화를 통해 들려오던 가족들의 목소리가 내 눈물샘을 자극한 건지, 매서운 겨울바람이 나를 울린 건지, 눈이 조금씩 시려왔다. ‘힘내’라고 입 속으로 버릇 같은 말을 되뇌며, 빠른 걸음으로 교차로와 묘지를 차례차례 지났다. 어스름 속에 한 시간 전쯤에 지나온 시립묘지의 문이 굳게 닫힌 채 어둠 속에 잠들어 있었다.

시립묘지를 지나 집으로 가는 길에 거치는 마지막 갈림길, 그 갈림길에 이제 막 문을 열고 불을 밝힌 PUB이 보였다. PUB안의 노란 불빛이 사람들이 뿜어내는 입김에 번져 따뜻하게 비춰졌다. 그 따뜻함이 증폭제가 되어, 향수와 함께 외로움마저 불러와, 나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집 앞에 도착해 안도의 숨을 몰아 쉬며 올려다본 2층의 내 방 창문에서, 노란빛 스탠드 불빛이 따뜻하게 흘러나왔다. 두 개의 열쇠로 두 개의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집 냄새와 더불어 따뜻한 온기가 밀려왔다. 방을 떠난 지 2시간 만에 다시 돌아온 나의 방. 2년 동안의 길고 긴 이방인으로의 삶. 그 삶 속에서 내가 유일하게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나의 방. 이방인으로의 삶에 지쳐, 외로움에 지쳐 자신이 마치 죽은 것처럼 느껴질 때, 나는 늘 장바구니를 챙겨 집을 나섰다. 무기력한 자신을 깨우고 싶어서 최대한 MP3의 볼륨을 높이고, 고요한 평온 속에 나보다 먼저간 이들이 잠든 묘를 보며 나의 과거를 곱씹고, 나의 미래를 정비해나갔다. 그리고 한결 개운해진 머리로 교차로를 건널 때면, 나는 늘 내가 죽음과 삶의 경계를 지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죽음의 저편을 지나 도착한 삶의 이편에서, 나는 생존을 위한 음식물과 생필품을 사고, 또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삶을 느끼곤 했다. 이렇게 길고 긴 장보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면, 나는 무기력과 외로움에서 벗어나 조금씩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날에 맞게 된 나의 생일. 장을 보러 가는 길에 우연히 들른 시립묘지. 하지만 기분 나쁘게도 느껴질 수 있는 이 기묘한 우연이 싫지만은 않았다. 죽음의 저편에서 삶의 이편에 이르는 길, 그 기묘한 산책길의 끝에는 나의 삶이 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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