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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 창원대문학상 수필 당선-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고


이 주 원/경상대 경영학과 3학년
 

겨울에 찾아오는 손님 중 눈만큼 반갑고 여운을 남기는 것이 없다. 비는 다른 계절에도 자주 찾아와 눈만큼 각별하지 않고, 바람은 시원하고 신선한 기분을 실어주지만 겨울만큼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이에 비해 눈은 참으로 고요하게 내려와 세상을 어루만지며, 다정한 발자취를 남기고 간다.

눈은 다양한 모습으로 인사를 하며 내려온다. 잔잔한 눈송이가 파란 바탕을 수놓으며 바람결을 따라 흩날리기도 하고, 비를 만나 공기 속을 유영하지 않고 빠르게 떨어지기도 한다. 또한 한 떨기 박꽃의 자태로 탐스럽게 내려오기도 한다. 하늘을 뒤덮어도 부산스럽지 않고 따뜻한 몸짓으로 내려온다. 따라서 눈은 어떤 모습으로 내려오든 보는 이가 창 밖에 턱을 괴고,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대지와 만나는 순간은 또 어떠한가. 눈은 버선발로 마루를 내딛는 새색시처럼 인기척도 없이 사뿐하게 내려앉는다. 밖을 내다보지 않거나 누군가의 소식이 닿지 않으면 온 줄도 모르고 지나칠 만큼 조용하다.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소리치는 법이 없이 살랑살랑 자신만의 춤을 추며 떨어진다. 닿는 순간 더 이상 자유로운 몸짓을 보여주지 못하더라도 요란스럽게 뽐내는 법이 없다.

눈은 부드럽게 닿는 느낌 또한 우아하다. 잡힐 듯 잘 잡히지 않지만 손에 잡히면 닿는 순간 따뜻한 온도에 사르르 녹고, 우산을 쓰지 않고 길을 걸으면 면사포를 덮어쓴 듯 검은 머리를 덮는다.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곳을 찾아 사박사박 밟으면 도장이 인주에 살포시 담기듯, 나의 발자국도 부드럽게 눈에 찍힌다.

눈이 이토록 조용하게 찾아와 온 세상을 뒤덮으니, 만물도 따라 고요해진다. 눈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경이로움 속에 그 어떤 생명도 사물도 말이 없다. 하얗게, 하얗게 덮이는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고 지켜볼 뿐이다.

눈부신 은백색의 손님이 다녀가신 후 따스한 햇살이 찾아오면, 조용했던 세상이 다시 분주해진다. 빨간 벽돌집에 얹힌 두터운 이불이 사르르 녹고, 푸른 소나무도 장식품을 내리기 위해 어깨를 털어낸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밖으로 나와 집 앞의 눈을 치우고 가야할 곳을 향해 발걸음을 향한다. 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들며 서로에게 눈을 던지기 바쁘다.

이러한 수선스런 움직임에 눈이 오는지는 몰라도 눈을 치우는 것은 금세 알 수 있게 된다. 자동차가 조심스레 시동을 켜는 소리, 골목에 울려 퍼지는 장난꾸러기들의 목소리, 눈을 피해 숨어있던 길고양이가 야옹하며 지나가는 소리 등에 자연스레 바깥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햇빛에 녹고 사람들에게 밟힌 눈은 까맣게 때가 타고 물이 될지언정 그 자취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구석구석 남는다. 해가 닿지 않는 산 속 골짜기에서, 거리의 응달에서 꺼지지 않는 그 빛을 밝히며, 눈이 내렸다는 것을 한동안 잊혀 지지 않게 한다. 더 이상 내게 닿지는 않지만 가까운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게 하는 것이다.

눈이 오고 나면 내리지 않았던 그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눈이 떨어지는 동안은 잔잔하고 그윽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면서, 그 신비로움에 모든 존재가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눈이 그친 후, 세상은 다시 한 번 새로운 움직임을 준비하게 한다.

눈은 이처럼 손님의 모습으로 찾아와 온통 순백의 세상으로 만들어 놓고, 일상의 활력을 불어넣는다. 눈이 늘 오는 것이 아니라 이따금 들렀다 가는 것은, 잃어버린 순수를 느끼게 하였다가 다시금 우리의 삶과 세상의 빛깔을 되찾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나를 더욱 아름답게 채색하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캔버스에 아무런 채색을 하지 않거나, 칠했던 것을 다시 흰 색으로 칠할 수 없다. 우리는 눈이 주는 고요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나갈 힘을 얻어야 한다. 눈이 내리고, 마음 속엔 따뜻한 희망이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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