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부자 웃음

                                                                                 류 상 욱/전자공학과 2년

08년 국가통계포털 사이트에 조사된 국가별 행복지수 순위를 본 적이 있다. 민주주의가 지

배하는 지구촌에서 좀 더 선진국 일수록, 좀 더 부유할수록 행복지수가 높을 것 같지만

행복지수가 1위로 조사된 나라는 놀랍게도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와 뉴질랜드 사이에 있는

작은 섬나라인 바누아트이다. 바누아트는 1인당 GDP가 3000$이 되지않은 가난한 나라이다. 그 뒤를 이은 행복나라들은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도미니카공화국 등이고 이들 나라역시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할 수 없는 나라들이다. 반면에 홍콩, 일본, 한국, 영국 등 경제강국들의 행복성적은 100위 권 내외였다. 이 통계자료는 너무나 놀라운 것이어서, 국민들 대부분이 이 통계자료에 대하여 대충이나마 알고 있다. 아니 알고만 있다.

군입대를 앞둔 3년 전, 교회에서 진행하는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한 달 동안 필리핀에서 생활을 하였다. 그곳에서 배운 가난한 부자웃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여름방학동안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었던 나는 우연한 기회에 한 달간 필리핀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서른명 정도 되는 학생들과 함께 필리핀 세부공항에 내렸다. 동이트지 않은 새벽에 도착하여, 얼핏 든 잠이 깨기도 전에 버스를 타고 부두로 갔고 방카라는 필리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두마게티 라는 섬에 도착하였다. 8000개의 섬나라가 모여서 나라를 이루는 필리핀의 특성상 필리핀에서 배는 보편적인 이동수단이었다.

산호세호텔에 짐을 푼 학생들은 학년별로 팀을 만들었고, 홈스테이를 하면서 원어민 교사들에게 영어를 배웠다. 호텔에는 대부분이 외국 사람들이었고, 호텔에서 일하는 소수의 필리피노만 있었다. 호텔에서 지내면서 필리핀 사람들과 자주 대화를 하게 되었고, 음식을 맡고있던 마니, 종업원 안젤라, 카멜라 그리고 경비원 로날드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매우 수다스러웠는데, 처음엔 나와 친구들이 지나가면 우리가 모르는 그들만의 언어로 쑥덕였고, 항상 웃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그들의 언어와 스페인어, 어깨너머로 배운 영어를 사용하는데, 서툰영어와 몸짓 발짓을 섞으니 의사소통에 큰 무리는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가난한 그들이 몹시 수상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방을 비울때면 항상 안젤라가 방을 청소하였고, 카멜라가 우리 옷들을 세탁하였다. 그래서 고가의 귀중품들은 항상 서랍장에 숨겨두고 나오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안젤라가 내 지갑을 찾아주었다. 운동을 하다 정원에 지갑을 흘렸던 모양이다. 지갑에는 한화 30만원정도의 만오천 페소가 있었다. 그들 월급여의 세배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분명 욕심이 생겼을테다.

하지만 조심하라면서 내게 지갑을 돌려주는 안젤라가 너무나 고마웠고, 색안경을 끼고있던 나는 한없이 작아졌었다. 그날 밤, 나는 안젤라, 카멜라, 로날드와 함께 맥주를 마셨다. 모르는 단어를 전자사전에 찾아가면서 말하려는 내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쉬운 영어로 필리핀에 대해 말해주었고, 매일아침 굿모닝인사를 하던 내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한번은 배탈이 났었는데, 마니는 배탈이 난 날 위해 특별메뉴를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그들을 만나면서 굉장한 배려를 받았던 것 같다. 전문적인 호텔교육을 받은 인력들이 아니라, 그저 주변마을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항상 웃으면서 나와 학생들을 맞았고, 세탁물 하나하나에 신경 써 주었다.

나는 개인시간에는 스쿠버다이빙수업을 들었었는데 잠수를 하다 발견한 조개껍질들을 모아 안젤라와 카멜라에게 주었었다. 바닷가에 굴러다니는 볼품없는 선물을 너무도 좋아해주었다. 하루는 내 손을 덥썩 잡더니 그들이 쉬는 휴개실로 데려갔었는데, 내가 선물 한 조개껍질로 휴개실 한 켠을 꾸며 놓았었다. 독자들 중에 아무 생각없이 다른사람에 준 것들이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는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때 내가 느꼈던 감동을 조금이나마 알 지 않을까 싶다.

호텔에서 10분정도 걸으면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친구들과 마을에 술을 사러갔을 때였다.

방과 후 였던 모양이다. 조개껍질, 전통 목걸이 등으로 한껏 치장한 이쁜 중학생들이 우리가 지나갈 때 마다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사진기를 들이대면 한껏 포즈를 취하며 웃어주었다. 나중에는 먼저 사진을 찍어달라며 찾아오기도 하였다. 사진기를 들이대면 무례라고 생각하는 한국사람들과는 달라서 조금 놀랬었다. 동네 신이 난 꼬마들은 우리 뒤를 따라다녔다. 구멍가게를 찾으려고 유독 우리 뒤를 쫒던 소년에게 길을 물었다. 우리가 길을 묻자 신나서 자기를 따라오라며 말하며 앞장서 뛰어갔다. 조그마한 가게로 우리를 안내했는데, 자기 동내에서 제일 큰 상점이라고 했다. 우리를 쫒아오던 소년에게 당연하게 1$ 팁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소년은 받지않았다. 당연히 팁을 바라고 우리를 열심히 안내해 주었다고 생각했었다. 아니었다. 그냥 외국인이 신기해서 따라다녔고, 길을 못 찾기에 찾아주었다는 것이다. 작은 마을을 방문했었지만 내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었다. 마을은 분명 풍요롭지 않았다. 필리피노 들의 옷은 늘어져 가슴팍이 보였고 씻지 못해 손은 꾀죄죄 하였다. 하지만 마을 한 켠 에서 농구를 하던 필리피노 학생들, 하교를 하던 여중생들, 우리를 안내해준 꼬마들 상인들 모두 하나같이 티 없이 맑게 웃고 있었다. 그날 밤 호텔에 돌아와 카메라 메모리에 찍힌 사진들을 보면서 한참을 미소짓고 있었다..

호텔경비를 맡고있던 로날도 집에 놀러갔었다. 바닷가에 있던 그의 집은 군대의 초소같은, 시멘트로 대충 지어진 집이었고, 그 작은집에는 아내와 6남매가 있었다. 로날도는 서른살이었는데, 벌써 여섯명의 아버지였다. 필리핀에서는 결혼을 빨리 한다고 한다. 부엌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서 대접을 하기위해 바쁘게 움직이던 그의 아내가 생각이 난다. 로날도는 바닷가로 가더니 순식간에 물고기 몇 마리를 잡아왔다. 필리핀 물가는 얼마 비싸지 않았기에 친구들과 새끼돼지 한 마리를 사갔었는데, 그날 밤 돼지통구이와 물고기구이를 해 먹었다. 여섯명의 아이들은 우리가 그저 신기한지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맥주를 마시며 늦은밤까지 내가 느낀 필리핀에 대해 연설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로날도와 특히나 친했던 나는 그에게 리바이스 청바지를 선물했는데, 매우 부담스러워 했다. 자기집에 있는 물건 중에 제일 비싼 물건일꺼라고 했다. 그날은 호텔을 쉬고 멀리 부두까지 우리를 배웅하러 나왔었다. 자기는 해 줄 수 있는 선물이 없다고 말하면서 미안해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있었다. 여행지에서 한 달간 만난 사람들과 너무나 많은 정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갔던 두마게티는 필리핀에서도 큰 도시가 아니어서 외국인들이 많이 없었다. 그만큼 순수 필리피노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가난한 그들에게는 우리에게는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교사들에게 돈을 주고 영어를 배웠고 스쿠버 다이빙을 배웠다. 맥주를 사 마시고 옷을 사 입었다. 하지만 여행의 추억과 사진, 웃음은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선물받은 것이었다. 한국의 1인 GDP는 2만불이 넘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만큼 행복해 졌는가? 잘살아 보자던 1970년대의 우리들보다 더 행복한가? 풍요해서 행복이 오는게 아니다. 행복에서 풍요가 오는 것이었다.

풍요롭지만 무언가 딱딱해져버린 내게 필리피노들은 리바이스 청바지보다 더 큰 선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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