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 마을

                                                                                               장 은 정/법학과 3학년

1.

“우욱, 우으으악... 우우욱, 욱욱”

“엄마, 엄마 괜찮아?”

오늘은 정말 보이지 않으려고 참고 또 참았는데, 어느새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였다. 또렷했던 엄마의 모습이 또다시 흐려졌다. 코가 시큰거리고, 가슴이 먹먹해온다.

이제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귓가에 쟁쟁거린다.

“질리도록 먹어놓고도 이게 그렇게나 먹고 싶다면서! 이 까짓게 뭐라고 못 먹어! 먹지 말라고 할 때는 그렇게나 해달라더니, 지금은 왜 줘도 못 먹느냔 말이야!”

“우욱, 그러게나 말이다……. 욱욱...꼭 얼라를 가진 사람처럼 라면국물이 그렇게나..우우으악...먹고싶드마는...내가 아무래도 죽을 때가 됐는갑다…….”

“죽기는 누가 죽어? 천년만년 살 것처럼 뼈 빠지게 일해 놓고, 죽긴 왜 죽어!”

젊은 시절, 끼니 때우는 시간마저 아깝다며 매 끼니를 라면으로 해결하시던 어머니. 죽음이 가까워온 순간까지 그깟 라면국물이 먹고 싶다고 하신다. 그러나 지금은 물을 많이 넣어 맹맹해진 라면국물 한 숟갈조차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주룩주룩 흘려 내렸다. 이미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손주까지 본, 60에 가까워 온 할머니인 내가 80이 넘은 노모에게 대드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막 사춘기로 접어든 갈래머리 소녀가 젊디젊은 어머니에게 말대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지독했던 6․25전쟁이 끝나갈 무렵, 늦여름에 나를 낳았다. 사람들은 나를 유복자라고 하였지만, 아버지의 생사를 알 길이 없어 내가 정말 유복자인지 아닌 지 알 수 없다. 어머니는 내 위로 세 명의 아들을 더 두었는데, 두 명의 아들은 6․25전쟁 때 사라진 후,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내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인석이 오빠는 아주 어릴 적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어머니 곁에는 항상 나뿐이었다.

어머니는 우리가 살던 시골집이 댐으로 수용되고 난 후부터 억척스럽게도 일을 하셨다. 살길이 막막해서도 그랬었지만, 그보다는 행방불명된 남편을 잊으려고, 또 먼저 보낸 아들들을 가슴에 묻으려고 그랬었는지, 죽을힘을 다해서 일하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버지와 오빠들에 대해서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불쌍한 우리 어머니가 위암이라니…….큰 돌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아리고 아팠다.

“인혜야, 거기가 가고싶노!”

“그 몸을 해가지고 가긴 어딜 간단 말이야!”

“그러지 말고, 엄마가 죽기 전에 거기를 꼭 한번 댕겨와아긋따. 쫌 데려다도라”

“거기가 어딘데? 거기라 그러면 내가 어떻게 알아?”

“거기, 거기 안 있나, 우리 예~전에 살던데, 시골에, 기와집 있고 했던데 안 있나?”

“거기 지금 가면 물밖에 없어. 엄마도 알잖아.”

“그래도 쫌 데려다도라, 꼭 가봐야겠다.”

“오늘은 안 돼. 너무 늦었어! 가려면 내일 김 서방 차타고 가.”

“알겠다. 내일 꼭 가야된다, 꼭.”

몇 번의 다짐을 더 받고서야 어머니는 잠에 드셨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부터 어머니가 재촉하는 통에 우리는 서둘러서 병원에 외출허가를 받았다. 아침안개가 자욱한 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드디어 그곳에 도착했다. 강산이 수도 없이 바뀐 세월만큼이나 그곳은 몰라보게 달라져있었다.

푸른 하늘빛을 머금은 거대한 호수가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 우리 아버지가 대대로 살아온 고향이라고 한다. 호수의 가장 깊은 곳에, 우리 아버지가 살았던 흔적과 우리 오라버니와 내가 함께한 추억들, 그리고 우리 어머니의 청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습기가 가득한 찬바람을 맞으며, 어머니와 나는 한참이나 아무 말 없이 그곳을 내려다보았다.

“인혜야, 내 딸 인혜야, 참말로 고맙다.”

“엄마는 갑자기, 뭐가 그렇게 고마워?”

“니가 말을 안 해도, 엄마 맴 다칠까봐... 아부지도, 오라비들도 안 물어보고……. 니 맴을 이 엄마가 와 모르긋노. 다 알면서도... 그동안... 엄마가 맴이 너무 아파가꼬....미안 허다.”

“미안하기는 뭐가 미안해. 흐흑…….”

“오늘은, 엄마가 니한테 다~ 말해줄라꼬. 그리고 이 맴 속에 큰 가시같이 박혀있던 거, 그거 인재 저 물속에 확 내던져버릴라고.”

2.

일제의 위선적인 문화통치가 막을 내릴 무렵, 아직은 고요하기만 했던 산골마을의 훈장님 댁에 어여쁜 딸이 태어났다. 위로 아들만 줄줄이 셋이었던 집에 막내로 고명딸이 태어나자, 산모와 아이의 아버지는 물론, 집안의 웃어른들 모두가 무척이나 기뻐했다. 아이는 집 안과 밖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무럭무럭 자랐다. 새까만 머리카락에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반듯하게 타인 하얀 가르마, 잔머리 하나 삐치지 않고 단정하게 땋은 머리, 그리고 곱게 달린 불그스름한 댕기는 이 아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징표와도 같았다.

“아부지, 나 학교 보내 주세요오~ 소학교 가서 동무들이랑 공부할래요오~”

“안 된다, 소학교가 여기서 얼마나 먼지 알고나 하는 소리냐! 그리고 이 아비가 공부를 가르쳐 준다는데도 그러느냐!”

“싫어요오! 나 학교갈꺼에요!”

아이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아버지는 결국 아이가 소학교에 다니는 것을 허락했다. 그러나 아이가 걱정이 되었는지, 학교를 오갈 때는 수동이라는 머슴을 시켜서 아이를 업고 오도록 하였다. 아이는 널찍한 머슴의 등에 업혀 상쾌한 숲속공기를 마시며 등교하고, 정답게 지저귀는 산새소리를 들으며 돌아왔다. 그렇게 아이는 귀한 집 여식으로 곱게 자라났다.

그러나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괴뢰 만주국을 세움으로써 전쟁이 본격화되었다. 그러자 조그만 시골마을에서도 징집이 이루어졌다. 훈장님 댁에서도 둘째, 셋째 아들이 모두 징용으로 끌려갔고, 큰아들만이 운 좋게 징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전쟁의 소용돌이가 더욱 거세지며, 집집마다 식량과 쇠붙이들은 모조리 다 공출되었고, 심지어 마을에 살던 처녀들도 하나둘씩 정신대, 혹은 위안부로 끌려갔다. 그리고 곧이어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기 시작했다. 정신대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싸리나무단 뒤에 숨어있던 처녀가, 식량 공출반의 꼬챙이에 찔려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는 소문이었다.

아이는 어느새 아리따운 처녀가 되어있었고, 부모는 소중한 고명딸을 지키기 위해서 아이의 혼인을 서둘렀다. 그러나 수많은 청년들이 징집된 후였기 때문에 마땅한 혼처를 찾을 수 없어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이의 부모는 멀리 떨어진 마을에 외아들이 혼처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 후, 총각집 사람들이 아이의 집으로 선을 보러왔다. 아이의 부모는 총각이 여색을 밝힌다는 소문을 듣고 혼사를 결정하는 것을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보고 갔던 총각의 집에서 아이가 몹시도 마음에 들었던지, 혼사가 채 성사되기도 전에 아이의 집으로 외아들의 사주단자를 보내왔다.

“이 일을 어쩌누... 혼인이 성사된 것도 아닌 데, 이렇게 혼인할 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주는 사주단자를 보내다니…….”

“이미 신랑 사주단자를 받았는데 어쩌겄쏘. 그리고 요즘 같은 시기에 이것저것 따지다가 일본 놈들한테 끌려가면 어쩐단 말이오. 그냥 혼인시키도록 하십시다.”

“그래도 우리 딸, 우리가 금이야 옥이야 키운 우리 딸을...번갯불에 콩구어먹 듯 시집보내다니...으흐흐흑…….”

3.

“말도마라, 혼사 치르고 시집으로 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그때는 여자가 시집을 가면 출가외인이라고 해서 어무니, 아부지를 다시 뵐 기약도 할 수 없었는데, 징용나간 오라버니들도 눈에 밟히고……. 한 발짝 한 발짝 띄는 게 고역이었제.”

시집갈 때를 회상하는 어머니의 눈빛에서 그때의 슬픔과 괴로움이 떠올랐다.

“시집을 가서 바로 그해에, 느이 큰 오라비를 낳았제. 이름은 인혁이라고 지었었다. 어질 인에, 떨칠 혁. 집안에 장손이 태어났다고 시댁 어르신들이 무척이나 좋아하셨지. 느이 아부지는 갓 태어난 얼라가 그래 무서웠는지, 돌이 되도록 한번 안아 주도 못하더라.”

처음으로 들어보는 이름. ‘인혁’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인혁, 나의 오빠.’

“느이 큰 오라비를 낳고 나서 바로 해방이 됐었다. 그리고 바로 둘째 오라비를 가졌었지... 그런데 그때부터 느이 아부지가 집밖으로 돌기 시작하더라... 군대 끌려갔던 사람들도, 징용 끌려갔던 사람들도, 그리고 숨어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씩 마을로 돌아오고, 느이 아부지는 친구덜이랑 만날 기생집도 가고, 투전도 하고...외아들이어서 그랬던가, 나이가 어려서 그랬던가, 참 말도 못했었다.”

“난봉꾼, 난봉꾼해도 세상에 그런 난봉꾼은 없었을 끼라. 예전에는 저~기 보이는 산까지도 모두 우리집안 땅이었니라. 그런데 그 많던 재산, 반은 노름으로 말아먹고, 반은 기생 년들 치마폭으로 들어가고, 그리고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재산은 양조장 차린다고 이래저래 팔아치우드만... 장사도 사람하기 나름 이제...허구한 날 문 걸어 잠그고 서울에 갔따왔따 하드만은...그거조차도 말아 묵고…….”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어머니의 얼굴에는 슬픔이 어렸지만, 그와 동시에 이상하리만치 어머니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여위다 못해 앙상하리만치 푹 꺼진 볼만 아니었더라도 아무도 어머니를 환자로 보진 않았으리라. 어머니는 자신의 육체적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종국에는 예전에 우리가 살던 기와집하고 땅 몇 마지기만 남았더니라. 그거는 느이 할아버지께서 꽉 움켜지고 내놓지 않으셨거든...손자들 걱정이 돼서 그러셨을 꺼라.”

“그래도 돈 떨어지면 집에 와서 몇 푼 가져가고, 잊을 만하면 나타나서 몇 푼 가져가고……. 그러면서 느이 셋째 오라비를 낳았제. ‘어질 인’자 돌림에 큰 손자는 ‘인혁’이, 둘째는 ‘인준’이, 셋째는 ‘인석’이, 그리고 니 이름 ‘인혜’도 모두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거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의 아련한 추억은 없다. 오히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자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만 쓰러져가는 기와집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슬픈 눈으로 대문을 쳐다보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한 장의 사진처럼 어렴풋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어린 아이에 불과하였지만, 할아버지의 모습은 그때도 한없이 쓸쓸하고 외롭게 보였다.

4.

시집 온 후, 아이는 아들 세 명을 낳았다. 그리고 무더운 여름이 시작될 무렵,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입에 밥을 떠 넣더니 전쟁이 났다는 소리만 몇 번 되풀이 한 채 그 자리에 쓰러져 내리 사흘 밤낮을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울타리 밖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처음 며칠 동안은 일제강점기 때처럼 집집마다 장정들을 국군으로 차출하더니, 잠시 뒤에는 붉은 완장을 찬 한 무리의 군인들이 나타나서 또다시 마을의 장정들을 끌어 모았다.

아이의 남편도 곧 인민군 부대에 끌려갔다. 그동안 남편이 떠나는 것을 수동적으로 바라보기만 해왔던 아이도 이번만큼은 온몸을 사리지 않고 남편을 붙들었다.

“가지 마오, 가지 마오. 이놈들아! 차라리 나를 죽여라! 이놈들아! 내가 죽기 전에는 이 사람 못 데려간다! 이놈들아!”

그러나 집 안에서만 생활하던 아이에게 전쟁으로 잔뼈가 굵은 군인들은 버거운 상대였다. 아무리 발악을 해본들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때, 인민군들 사이에서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아씨, 서방님은 내가 잘 봐주겄습니다. 걱정마십시오.”

그 옛날, 아이를 업어서 매일 학교에 데려다주었던 수동아재였다. 그가 입었던 입성은 예전 그대로인데, 어느새 머리에는 희끗희끗한 새치가 나있었다. 그리고 아재의 순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어깨 죽지에는 선 붉은 완장이 차있었다.

“수동아재!”

“아씨, 너무 걱정 마시오. 머지않아 인민군이 평화통일을 이룩하면 서방님을 곧 되돌려보내겄습니다.”

“아재...흐흑흑...우리 어무니랑 아부지는 잘 계십니까? 오라버니들은 어찌되었습니까?”

“잘 계십니다.”

“부모님 모두 건강하십니까? 오라버니들은 난리 통에 또 끌려가지나 않았소?”

“잘 계십니다.”

“형편은 어떻소? 끼니는 거르지 않고 드시오?”

“잘 계십니다.”

수동아재는 모든 질문에 대해 한 가지 말만을 되풀이 하였다. 그리고 남편을 포박한 채 산으로 올라가버렸다. 아이는 시아버지와, 어린 아들들과 함께 남편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뱃속에 또 하나의 생명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어린 아들들과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5.

어느 날은 총을 등에 멘 여자 인민군 서너 명이 들이 닥쳤다.

“동무, 이 쌀로 해질녘까지 떡을 만드시오!”

“아니, 불리지도 않은 생쌀을 우째 찧어서 떡을 만들랍니까!”

“동무, 말이 많소! 죽고 싶으시오!”

“아악! 하겠소, 만들겠소. 아이들이 있는 데 이러지 마시오.”

여자는 생쌀을 절구통에 넣고 미친 듯이 찧기 시작했다. 두 손이 짓무르고 팔이 저려왔다. 어린 시절에 마당에서 머슴들이 떡메 치던 소리, 아낙들이 즐겁게 재잘대던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리고 여자의 작은 입에 고소한 콩고물 묻힌 떡 한 점을 집어넣어주던 어머니의 모습도 흐릿하게 떠올랐다. 잠시 회상에 졌어있던 여자는 자신의 허리춤으로 바짝 다가온 총부리를 보았고,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 순간 그리운 어머니의 모습은 간데없이 사라져버렸고, 여자의 눈앞에는 거무스름한 쌀 조각들이 너저분하게 흩어져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산으로 들어갔던 인민군도, 마을을 통제하던 인민군도 갑작스럽게 북쪽을 향해 행군을 시작했다. 여자는 큰아들의 손을 꼭 잡고 인민군들 사이에서 남편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나 남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집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던 여자는 여자의 집 대문간에서 서성이고 있는 수동아재를 보았다. 그리고 그의 손에 있는 구멍 꿇린 남편의 저고리를 보는 순간, 다리에 힘이 스르르 풀리더니 그대로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수동아재의 말에 따르면 인민군은 부역을 시키기 위해 여자의 남편을 끌고갔었다고 했다. 그런데 귀한 집 외동아들로 자라 밥상 한 번 들어보지 않은 남편은 모든 일에 서툴렀다. 한번은 부잣집 광에서 썩고 있는 쌀가마니를 옮겨오는 일을 했었는데, 남편이 그만 개울을 건너다 쌀가마니를 물속에 빠뜨렸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부르주아계급이라며 남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인민군 대장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던 지, 다음 날 남편을 비롯한 몇 명을 나무하러 보낸 뒤 조용히 사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수동아재는 산으로 향하는 남편의 곁을 스치며 “저 죽을 줄도 모르고.” 라는 말을 무심한 듯 흘렸다고 한다. 죽는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남편은 감시가 소홀해질 때를 기다렸다가, 큰 나무에 여자가 정성들여 만든 저고리를 걸어놓고는 그대로 도망쳤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역자들을 사살하러 갔던 인민군은 바로 이 사실을 알았고, 총을 쏘며 그들을 추격했다.

수동아재는 남편과 함께 도망쳤던 몇 사람은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여자의 남편의 시신은 찾을 수 없었다고, 그래서 그 소식이라도 전해주려고 여자를 찾아왔다고 하였다. 그는 쫓기듯 여자에게 저고리를 건네주고는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고, 여자는 저고리를 움켜쥐고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6.

“느이 할아버지가 아부지를 참말로 많이도 기다렸더니라. 집 모양새가 바뀌면 느이 아부지가 넘의 집인 줄 알고 못 들어온다고...다 쓰러져가는 기와집을 그대로 해놓고 사셨제……. 그리고 매일매일 대청마루에 앉아서 느이 아부지 오시는지만 지켜보고 계셨제... 돌아가시는 날에도 한참을 그렇게 앉아 계셨느니라...그런데 느이 아부지는 그날 이후로 여직 감감 무소식이니께…….”

“그 뒤로 정말 아무런 소식도 없었던 거야?”

“모르겄다. 산짐승 먹이가 되어 뿌렸는가, 아니면 총소리 때문에 미쳐가꼬 집을 못 찾아 온 건가... ... . 한번은 동네 아낙이 새벽에 방송으로 느이 아부지 이름을 들은 거 같다고도 카더라. 그때는 새벽에 한번 월북한 사람들 이름을 라디오 방송으로 불러줬었는데, 느이 아부지가 물고 빨고 해쌓던 기생년 이름 허고, 느이 아부지 이름하고 그렇게 방송으로 나온 거 같다고 그 아지매가 그래 말하더라. 나중에 생각해보니께 그 말도 맞는 거 같더라... 서울에 있던 그 기생년 고향이 신의주인가...그렇다고 들었으니께…….”

“엄마는 그럼 그때부터 아..아..아버..지를 그렇게 미워했던 거야?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랑 도망가 버려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나에게 너무도 생소하게 다가왔다. 50이 넘도록 아버지에 대해서 들은 적도, 아버지를 느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일까.

“미웠지, 미워서 죽어버리고 싶었지...그게 참말이면 딴 년이랑 재미지게 사느라고 평생토록 소식 한 번 안한 무심한 사람이니께...그치만 그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잖냐…….”

“그럼 엄마는 왜 그렇게 아, 버...지를 미워한 거야?”

갑자기 어머니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어머니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괜한 것을 물어봤구나, 후회감이 밀려들 때 멀찍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김 서방이 다가와 자신의 외투를 어머니 어깨에 걸쳐주었다. 어머니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 괜찮다는 손짓을 보냈다.

7.

여자는 누더기가 다된 옷을 부여잡고 몇날며칠을 앓았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 또다시 벌어졌다. 여자의 큰아들과 둘째아들이 아버지를 찾아오겠다며 고사리 같은 손을 마주 잡고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여자와 그녀의 늙은 시아버지는 매일 밤낮을 아이들을 찾아 헤맸다. 그런데 난리 통에 인민군도 지나가고, 국군도 지나가고, 심지어 미군까지도 다녀간 탓에 마을은 너무도 어수선했다. 그리고 점점 늘어나는 피난민들 사이에서 아이들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자는 마치 성난 암사자처럼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여자는 아이들이 없어진 것이 모두 남편의 탓으로만 여겨졌다. 차라리 시신이 되어서라도 남편이 돌아왔다면 어린 아들들이 집을 나서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남편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사실 여자는 세상을 저주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매일 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했던 여자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넓고 막연했다. 그래서 여자는 남편을 미워하기로 했다. 그리고 남편의 눈을 닮은 큰아들과, 남편을 쏙 빼닮은 둘째아들도 미워하기로 했다. 미워해야만 여자는 사무치는 그리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뼈저리는 슬픔 속에서 숨을 쉴 수 있었으니까.

여자는 얼마 뒤 여자아이를 출산했다. 자신처럼 아들 많은 집에 어여쁜 고명딸이 태어났다. 여자에게 이 아이는 자식이기 보다는 분신에 가까웠다. 딸의 오라버니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 여자의 오라버니들이 돌아오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딸도 자기처럼 살까봐 덜컥 겁이 났다. 귀하디귀하게 자란 여자가 현실에 부딪혀 갈기갈기 찢긴 것처럼, 자신의 딸은 아프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여자는 딸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 자신의 사랑을 숨겼다.

여자의 출산으로 여자의 시아버지는 기력을 회복했다. 시아버지는 그 집과 자신의 가족들을 굳건히 지켰다. 시아버지는 여자와 그녀의 하나 남은 아들, 딸의 든든한 울타리였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났을 무렵, 갑자기 여자의 아들이 배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시아버지는 손자를 들쳐 업고 밤길을 정신없이 달려 의원 집에 당도했다. 의원은 아들의 맥을 찬찬히 짚어보더니 몇 군데 침을 놓고, 한약재를 챙겨주었다. 여자와 시아버지는 정성을 다해 아들을 돌보았다. 여자는 매일 밤 집안 감나무 아래에서 정안수를 떠놓고 신령님께 비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아들은 더욱 복통을 호소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은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 남은 아들마저 세상을 떠난 후, 시아버지는 정신을 놓았다고 한다. 그는 여자와 자신의 친손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자기가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사실은 잊지 않았는지, 매일매일 대청마루에 앉아 대문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난 후, 시아버지는 여자의 손을 꽉 움켜쥐고 아무 말 없이 숨을 거두었다.

든든한 버팀목이던 시아버지가 무너져버리자 여자의 모든 희망은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미쳐 감정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여자는 마을에 대규모 댐 공사가 진행된다는 통지를 받았다. 여자가 살고 있는 집과 땅은 댐건설을 위해 수용되었다. 어린 딸과 함께 마을을 떠나기 전날, 여자는 집안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했다. 여자는 집안 구석구석 남아있는 남편과 잃어버린 아이들, 그리고 그녀의 시아버지의 흔적까지 말끔히 닦아냈다. 여자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집과 함께 영원히 물속에 가라앉아 버리지 않길 바랐다.

어린 딸과 함께 여자는 이미 십 수 년 전에 떠나온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새신부가 되어 처음 집을 떠나올 때처럼, 되돌아갈 때도 여자는 하염없이 울었다.

그런데 발이 부르트도록 고생하며 찾아간 산골마을은 이미 폐허가 되어있었다.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던 나무들은 남김없이 재로 녹아내려있었고, 마을 어귀에 열렸던 큰 시장은 흔적조차 없었다. 다급해진 여자는 서둘러 집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여자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새까맣게 그을린 기둥 몇 개뿐이었다.

8.

“거뭇거뭇해진 산에서 내려와서 딴 마을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까...세상에나..한국전쟁 때 빨치산들 잡는다고...거기 사는 사람덜이 빨치산들 숨겨줄까봐 국군들이 마을 전체를 불태워버렸다데...우리 어무니, 아부지, 그리고 오라버니들...추운겨울에 얼마나 맴이 시렸을까...그래 생각하니 눈물이 나더라…….”

“그분들은 어떻게 됐어? 그 뒤로 소식은 들었어?”

“듣지 못한 거도 있고, 찾지 않은 거도 있제……. 딴 사람들 말 들어보니께, 산속에 마을 사람들은 이불보따리 하나 못 싸들고 쫓겨났다던데...찾아봐야 니랑 내랑 짐밖에 더 되긋나...그리고 그때는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바빴고…….”

그 뒤의 이야기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여자는 억척스럽게도 일했다. 여자는 서울 근처의 공장에서 옷을 만들기도 하고, 가발을 만들기도 하고, 가끔은 양공주들의 수발을 들어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나를 키웠다. 여자는 매일 어스레한 새벽에 집을 나섰고, 깜깜한 밤에야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항상 혼자였고, 어머니는 내게 멀기만 한 사람이었다. 동네 아이들에게 고아라고 놀림을 받고 들어와도 항상 혼자 눈물 닦아야 했고, 매일 밤 혼자 있는 게 무서워 오들오들 떨면서 잠들어야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오랜 시간 나를 외롭게 만들었던 엄마……. 50줄을 한참이나 넘어서야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 얼마나 아팠으면 머릿속을 마비시키리만치 일을 했을까, 그리고 자신을 숨겨왔을까…….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50년 가까이를 살았고, 그 결과 지금은 위에서 시작된 지독한 암세포가 온몸으로 퍼졌다.

“엄마, 바람이 너무 차. 감기 걸리겠어. 이제 병원으로 가자.”

“언제 또 나올 수 있을 지도 모르는데,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 그리고 이제 병원에는 안 있을 란다. 니가 해주는 따신 밥 먹고 니랑 조금 더 오순도순 살다가 갈란다.”

“엄마……. ”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남편과 아들들에게, 그리고 나는 그런 어머니에게 겹겹이 쌓여있던 해묵은 미움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다독거려주었다.

“인혜야. 그리고 혹시나 내가 잊어버릴까봐서 그러는 데... 내가 죽으믄... 묘소를 만들지 말고, 화장해서 저기다가 뿌려주라…….”

“그렇게 잊고 싶어 했으면서... 죽어서는 왜 저기로 가려는 건데?”

“내가 그 사람이 싫어서 그랬겠나, 내 새끼들이 미워서 그랬겠나...그때는 그냥 미워할 사람이 필요해서 그랬다. 그래야 나도 숨 쉬고 살지 않겠나……. 새벽에 집 나서면 불쑥 니 오라비들이 ‘옴마~’하고 달려올 꺼만 같고, 별이 총총한 밤에는 느이 아부지랑 같이 별도 보고, 달도 보고 했던 거도 하나하나 다~ 떠오르더라……. 느이 아부지가 맴이 너무 여린 사람이라 그랬을끼다. 다른 사람들한테 상처받을 까봐 더 강해보일려고 난봉꾼처럼 살았을 꺼라...본래 심성은 아주 착한 사람이었으니께……. 월북을 했어도 아부지랑 자식들이 눈에 밟혀서, 기생 년 따라서 월북 했을 사람은 아니었니라...그리고 산에서 죽었으면 죽었지, 이렇게 평생 소식 한 통 없을 사람도 아니었니라...그런데도 그 사람을 내가 마음속으로 그리도 못살게 굴었으니...얼마나 서운하겠노…….”

“그렇게 보고 싶으면서 어떻게 말 한마디 안하고 수 십 년을 살았어?”

“나도 느이 할아버지처럼 한순간에 무너져내릴까봐...겁이 났던 거라…….”

“난중에 내 죽으면 저~기 호수에다가 뼛가루 내서 뿌려도라……. 꼭 그렇게 해도라...느이 아부지가 사라진 저 땅에서, 죽어서는 느이 아부지 만나가꼬 그렇게 살고 잡다……. 그라고 북쪽에 남한포로들이 다 못 내려 왔다던데...늬 오라비들도 어디로 끌려가서 여직 못 돌아온거 아니긋나...살아서는 못 기다렸지만, 죽어서는 저기서 늬 오라비들 올 때까지 꼭 기다리고 있을란다. 느이 오라비들이 우리 집 찾아왔다가 슬퍼하지 않게 죽어서라도 엄마가 꼭 기다릴란다…….”

9.

어머니는 그날 이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몇 달 뒤 숨을 거두셨다. 그동안 온몸에 퍼진 암세포 때문에 내가 한 뜨신 밥 한 술 제대로 못 드시고 그렇게 가셨다. 마른 장작처럼 앙상하리만치 여윈 탓일까, 어머니의 시신은 유난히도 활활 타올랐고, 곧 거무스름한 재 한 줌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그 재를 호수에 뿌렸다.

그리고 오늘, 나는 내 남편과 내 딸, 그리고 어린 내 손녀를 데리고 어머니를 보러 이곳에 왔다. 내 딸은 그저 순수하기만한 아이가 지루해 하지 않도록 심청이가 다녀왔다는 용궁이 바로 저 호수 밑에 있다는 마냥, 저 물 속에 집도 있고 사람들도 살고 있다고 이야기를 지어내는데 여념이 없다. 아이는 신기했던지 커다란 눈망울을 끔뻑이며 나에게 다가왔다.

“할머니, 저기에 진짜로 집도 있고, 사람들도 살아요?”

“그럼~ 기와집도 있고, 감나무도 있고,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또 많~은 사람들이 아주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지~”

“우와! 그럼 나도 저기 갈 수 있어요?”

“저기는 착한 사람들이 죽으면 가는 곳이라서, 지금은 혜진이도 그렇고, 할머니도 그렇고 갈 수가 없어.”

“그럼 나중에 할머니가 먼저 가서 나 기다려줘요.”

“그래~ 할머니가 먼저 저리로 가서 할머니 아빠하고, 엄마하고, 오빠들하고 다 같이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고 있을 테니까, 혜진이는 나~~중에 오렴.”

아이는 신이 났는지 곧장 자기 엄마에게 뛰어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던 남편은, 그날 자신이 어머니께 그랬던 것처럼 나의 어깨도 자신의 외투로 따뜻하게 감싸줬다. 나는 그에게 미소로 고마움을 대신하고는 한참동안이나 호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문득 산허리로 둘러싸여 고여 있는 물이, 꼭 그날 어머니 눈에 맺혀 있던 눈물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 물 밑에 가라 앉아있는 어머니의 슬픔을, 이제 어머니가 스스로 당당하게 맞서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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