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세계

                                                                                         이 은 혜/국문학과 4년

오빠가 고슴도치를 일곱 마리나 입양해오는 바람에, 엄마가 머리끝까지 화가 난 것은 어제 밤의 일이다. 학교에서 야자를 하다가 집으로 들어오던 나는, 바깥 공기보다 더 차가운 집안의 분위기를 감지했고, 재빨리 그 문제가 나와 관련이 되어 있는지를 살폈다.

“또 동물 데리고 들어와?!”

“잠깐만 맡아주는 거예요. 친구가 주말에 집에 올라가서...”

오빠는 엄마가 숨을 잠시 몰아쉬는 틈에 잽싸게 변명했다.

“너 저번에 그렇게 해서 상추랑 후추가 지금까지 집에 있잖아?!”

거실 구석에서 눈치를 살피고 있던 못생긴 시츄 형제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꼬리를 내리고 옷걸이 뒤에 몸을 숨겼다.

“그 친구는 알레르기가 너무 심해서 그렇죠!”

“니 동생도 알레르기 있어!”

“유빈이 이제 다 나았잖아요!”

“아직 안 나았어. 도로 갔다 줘!”

엄마는 들은 체도 안하셨다. 오빠는 고슴도치들을 내밀면서 동정 작전을 썼다.

“이틀 동안 굶으면 죽을 수도 있어요, 엄마. 이 애들을 죽이실 거예요?!”

유리 상자 안에는 손바닥만한 고슴도치 한 쌍과 자그마한 새끼 다섯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좀 더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에, 엄마가 좀 누그러졌는지를 살펴보려고 슬쩍 표정을 살피는데, 엄마는 왼쪽 눈썹만 조금 움직였을 뿐, 표정의 변화가 없다.

“당장 데리고 나가!”

이번에는 엄마가 이겼다. 오빠는 몇 번 더 시도를 해보려고 했으나 모두 무산되고, 고슴도치 상자와 함께 집밖으로 쫓겨났다. 비록 오빠가 일곱 마리의 고슴도치와 함께 퇴장했지만, 집안에는 여전히 오빠가 주워온 길고양이 세 마리, 토끼 두 마리, 강아지 두 마리와 두꺼비가 있다. 하지만, 우선 가장 살아남아야 하는 생명체는 바로 나다.

“다녀왔습니다.”

가능한 조그마하게 인사를 하고, 내 방까지 살금살금 걸어갔다. 엄마는 여전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엄마와 냉전 중이다.

내 방에 들어가는 구석에는 엄마의 옛날 사진이 걸려있다. 장난기 가득한 눈을 하고 활짝 웃고 있는 발랄한 여고생이 브이를 그리고 있다. 그 상큼함이 사진을 튀어나와 지금까지 전해질 정도로 엄마는 예쁘고 매력적이었다. 아빠는 같은 반에서 인기가 많았던 남학생이었는데, 연애를 하다가 덜컥 오빠를 만들어, 온 집안과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고 한다. 교사집안에서 사랑을 받고 자란 외동딸이었던 엄마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모양인지, 아직까지 나는 엄마의 부모님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리고 엄마도 잘 이야기하지 않았다. 부모님들의 마음에 못을 박았지만 결국 엄마와 아빠는 결혼했고 내가 일곱 살 때까지 화목하게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어느 날 밤 엄마와 아빠는 크게 싸웠고, 그 뒤로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와 오빠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엄마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의 모든 물건은 사라졌고,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의 기념품을 챙겼다. 오빠는 각종 동물들을 기르는 방법이 소개된 그림책이고, 나는 키티가 그려진 일곱 색깔의 핑크색 볼펜이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아빠를 만났는데, 그때 문방구에서 사주셨다. 엄마가 절대로 모르는 것이다. 아빠가 떠나 버린 지 십년이 되었지만, 그 볼펜은 아직도 남아있다. 왠지 다 써버리면 안될 것 같아서 조금씩 조금씩 쓰다가 뚜껑을 열어 남아있는 양을 보고 안심하곤 했었다. 중요한 사람에게 편지를 쓸 때 이것을 꺼내 썼다. 다른 색깔은 다 잘 나오는데 고동색은 유난히 잘 끊겨서 애를 먹인다.

내 방에는 토끼 두 마리가 있다. 고등학생이라서 오빠가 자신의 방을 내어주었지만, 이 두 마리는 미처 쫒아 낼 수 없었다. 안방에는 이 토끼들을 언제든지 잡아먹을 수 있는 길고양이 세 마리가 있고, 거실에는 이 고양이들과 앙숙인 강아지 두 마리가 있다. 그리고 베란다에는 오빠가 몇 주전에 주워서 키우고 있는 두꺼비 한 마리가 있다. 나는 토끼를 마땅히 베란다로 추방해야 한다고 본다. 원래 야산에 땅 파고 사는 동물이니까. 그러나 오빠는 이 추위에 절대로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오빠 본인은 동물을 귀여워만하고 정규적으로 밥을 주거나 똥을 치우거나 하지 않아서, 나는 그동안 동물 알레르기와 냄새로 고생했다. 비싼 치료를 받고 겨우 좋아졌지만 가끔 그 간지러움이 재발할 때면 그 녀석들을 죄다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심정이다.

알레르기가 좀 덜하려면 청소를 자주 해야 해서, 엄마가 밤늦게 돌아와서 이 잡일을 하신다. 나도 도와드리고 싶지만 지금은 공부해야 하는 학생이며, 사실 알레르기를 참고 이 많은 동물들과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나로서는 큰 희생인 셈이다. 그래도 나는 오빠가 고슴도치까지 데리고 들어온 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하는데, 오빠생각은 그게 아닌 듯, 조금 후에 얼굴이 부어서 집에 들어왔다.

“남자가 한번 약속을 했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했으면서.”

엄마는 이제 대답하지 않았지만, 나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분위기가 안 좋다. 나는 급히 외투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참고서를 살 일도 있었다.

“저 국어자습서 사고 올게요.”

밖에 나오니 바람이 찼다. 목도리를 하고 오지 않았다는 걸 알았지만, 되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 상가 안의 서점에서 국어자습서를 사고는 늘 가던 곳으로 향했다.

전통 찻집인 ‘참솔’이다. ‘참솔’을 운영하는 할머니는 덴마크에서 온 할머니인데, 오래전에 한국의 녹차에 빠져 전통 찻집을 운영한 지 이십년이 넘었다. 아빠와 엄마가 파릇파릇한 20세에 이곳으로 이사 올 때부터 알게 되어서, 지금까지도 종종 찾곤 한다. 지금은 한국 사람보다 한국어를 더 잘 하지만, 그 생각들은 개방적이어서 젊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참솔 할머니.”

새하얀 머리를 가진 키가 큰 서양 여자가 웃으면서 나를 맞아들인다.

“유빈아, 어서 와라.”

“중작으로 주세요.”

중작은 가격이 다른 것보다 싸기 때문에 어린 손님들의 단골 메뉴다. 맛의 차이를 거의 모르는 나로서는 우전이건 세작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고서를 사고 남은 돈을 지불하자, 참솔 할머니는 차와 간식을 내왔다. 물 리필은 정수기에서 언제든 하면 되지만, 간식은 한번만 리필이 된다. 단골이라고 싸게 해 주거나 더 주거나 하지도 않는다. 단지 더 반갑게 맞아주고 오랫동안 있어도 괜찮을 뿐이다.

“무언가 기대를 하고 서로 베푸는 것보다, 처음부터 분명한건 분명하게 하고, 돌려받을 기대 하지 않고 주는 게 더 속편해. 한국 사람들이 정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정이라는 게 나중에 돌아오지 않으면 몹시 섭섭해 하더라.”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참솔 할머니는 언제나 전통 찻집을 깨끗하고 아늑하게 관리하고 간혹 수리도 해서 단골 뿐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들도 만족스럽게 돈을 치르도록 한다. 할머니의 부지런한 삶과, 엄한 엄마와는 다른 개방적인 생각들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곤 했다. 참솔 할머니의 말들을 새겨 두었다가 학교 토론 대회에서 1등을 한 적도 있었다.

새로 산 국어 자습서 안에 있는 이야기 토막들을 읽어보고 있는데, 내가 앉은 쪽에 불을 지핀 참솔 할머니가 다가와서 옆에 앉았다. 할머니가 물어보기 전에 내가 먼저 대답했다.

“엄마한테 들켰어요. 아빠 주소.”

며칠 전에 내 필통에서 볼펜을 꺼내던 엄마는, 내가 그곳에 숨겨놓은 아빠의 주소가 적힌 종이를 보고 말았다. 내 필통에서 꺼내가라고 무의식적으로 말하고 나서, 급하게 내방으로 왔지만, 엄마는 이미 그 종이를 읽고 있었다. 아빠의 이름이 적혀 있지는 않아도, 엄마는 주소만 보고도 그게 아빠의 것이라는 걸 알았다. 엄마가 떨리는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서울로 대학을 가겠다는 게 이 때문이었니?”

엄마의 목소리가 텅 빈 것처럼 들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쭉 우리지역에 있는 국립대를 가겠다고 하다가, 갑자기 서울로 가겠다고 한 것은 한 달 전, 이 쪽지를 받고 난 뒤였다. 서울로 대학을 가면, 아빠를 찾아가볼 생각이었다. 우리를 버린 아빠. 그 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빠.

그러나 내 기억 속에는 싱긋 웃으면서 “우리 딸”하고 나를 안아 올렸던 아빠가 있다. 다른 친구 아빠보다 훨씬 젊고 잘생겼었다. 엄마는 딱딱하고 엄격하고 나에게 화를 내곤 하지만, 아빠는 자유롭고 잘 웃고 나를 사랑했다. 아니, 사랑했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이렇게 버렸을까? 내가 찾아가면 당황할까? 싫어할까?

참솔 할머니를 설득해서 이 쪽지를 받긴 했지만, 당장 상경하기엔 용기가 부족했다. 나는 아빠의 집과 가까운 대학에 들어가서 우연히 아빠의 집 주위를 지나가는 건 몰라도, 직접 찾아가서 거절당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목표를 서울로 정하고, 공부하다가 안 될 때마다 이 쪽지를 보며 힘을 얻는다. 아빠를 만나는 거야. 그래, 아빠를 만나는 거야.

하지만 그 생각 중에서 어느 한 부분도 엄마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엄마는 한동안 침묵했다. 마치 내가 엄마의 머리를 커다란 쇠몽둥이로 때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엄마는 아빠의 주소를 떨어뜨리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 후로 엄마는 나와 냉전 중이다.

엄마는 어려서부터 우리를 엄격하게 키웠다.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오시긴 했지만, 우리가 맡은 집안일은 끝나있어야 했다. 학습지를 미룬다거나, 반찬을 편식하거나, 학원을 빼먹었다거나,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엄마 허락 없이 먹거나, 엄마가 하라고 한 일을 하지 않으면 엄마의 회초리를 맞아야 했다. 심지어 비타민과 약을 먹지 않거나, 씻지 않고 잠에 든 것이 들켰을 때 엄마가 회초리를 들은 적도 있다. 누군가를 때리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거짓말을 한 경우에는 더욱 매섭게 맞았다.

어렸을 때는 나나 오빠나 엄마의 이런 가르침들을 잠자코 따랐지만, 점점 크면서 수 백 가지 반항거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내 입으로는 뱉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두 살 위의 오빠 입으로 문제가 터지곤 했기 때문이다. 오빠는 한바탕 집을 뒤엎고 나서, 불쌍한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사과 했다. 또 가끔, 엄마가 슬플 때 위로하는 사람도 오빠였다.

2년 전 다홍이가 죽었을 때, 엄마는 처음으로 소리 내서 엉엉 울었다. 다홍이는 산에서 다리가 부러진 채 버려져 있었던 푸들이다. 그 후로 건강을 회복했고 우리와 함께 한동안 지내다가 어느 날 밤 갑자기 상태가 나빠졌다. 엄마는 밤 새워 간호를 했지만 그 손에서 싸늘하게 식어갔다. 동물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안방에 들어가 펑펑 울었다. 나는 아무것도 어쩌지 못하고 엄마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야간 자율학습을 다녀온 오빠가 옆에 앉아 같이 울면서 엄마를 위로 했다.

“엄마, 우리가 있잖아요. 기운 내세요.”

“그 불쌍한 걸 키우지 말았어야 했을까.”

엄마는 흐느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기운을 완전히 회복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을 하러 나간 것이다.

“참솔 할머니, 우리엄마 첫인상은 어땠어요?”

나는 엄마의 소리치고 엄격한 모습과 무표정한 얼굴로 이것저것을 세심하게 챙겨주는 모습 말고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참솔 할머니는 20년이나 엄마를 봐왔다.

“네 엄마는 긴 머리에 정말 예쁜 여자였어. 그때는 네가 태어나기 전이었는데, 젊은 선남선녀가 아기였던 네 오빠를 데리고 이 찻집에 들어왔지.”

“머리가 길었다고요?”

“응, 길었지. 네가 어릴 때에도 줄곧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였어.”

참솔 할머니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한번은 그 예쁜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네 아빠와 이혼을 하겠다고 하더구나. 그 후 그 머리를 잘라버렸단다.”

나는 이 오래된 찻집에 들어오는 엄마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 긴 머리에 호리호리한 몸매의 엄마가 찻집에 들어와서 펑펑 우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그 모습을 긴 머리와 함께 잘라버렸던 것 같다.

“왜 아빠는 엄마와 우리를 버린 거예요?”

참솔 할머니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글쎄다. 누구나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거니까. 각자의 인생에 대해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 할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네 아빠도 엄마도 자신의 삶을 선택한 거란다.”

“하지만 우리들은요? 결국 우리는 아빠를 잃었어요.”

나는 나도 모르게 감정적으로 대답했다. 뭔지 모를 반항심이었다. 참솔 할머니는 이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말했다.

“내 아버지는 난봉꾼이었어. 술을 마시고 어머니를 때리곤 했지. 우리는 일곱 형제였는데, 나는 막내였어. 아버지가 돈을 많이 벌어오긴 했지만, 우린 행복하지 않았어. 특히 어머니는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단다. 그러나 어머니는 우리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참았어. 막내인 내가 다 클 때까지,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포기하고 살다가, 돌아가셨단다.”

할머니는 이어 말했다.

“나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단다. 나는 내 어머니와 같은 삶을, 결코 살고 싶지 않았어. 그리고 연애는 하되 결혼하지 않았단다. 네 어머니도, 아버지도 자식을 위해 결혼을 계속할 필요는 없는 거란다. 각 개인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만 한단다. 사람들을 보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야. 기대를 하면 실망할 수밖에 없어. 요즘엔 한국도 그렇지 않니? 부모들도 이젠 자식들에게 노년을 기댈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어. 좀 더 빨리 알았어야 했지. 수많은 노인네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니? 모든 걸 주고나면 발로 차버린단다.”

참솔 할머니의 목소리는 약간 격양이 되었다. 그러나 다시 안정을 찾고 천천히 말했다.

“너도 기억해두렴. 유빈아. 사람을 사랑하지만, 끝까지 사랑할 수는 없어. 알게 되는 건 바닥을 치는 더러움뿐이니까. 자신의 삶을 버린다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란다.”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나는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할머니가 살아왔던 서구사회의 교훈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 드러나지 않는 것, 인정받지 않는 것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칠 수 있을까? 그들은 그것을 거부했다. 아니, 진저리나게 싫어서 도망갔다. 그러나 이 머나먼 땅 한국에까지 온 참솔 할머니는 한국 사람들의 삶에서 자신이 떠나온 고국과 동일한 문제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저 이제 가볼게요. 참고서 사러 나간다고 했거든요.”

“그래, 유빈아. 또 오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많은 생각을 하느라 추위를 느낄 새가 없었다. 아빠의 주소를 참솔 할머니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할머니를 설득했을 때 참솔 할머니는 나와 같은 편에 서있었다. 할머니는 엄마가 십년동안이나 아빠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찬성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개별적인 인격을 가지고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나와 아빠의 사이를 막아선 방해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나는 지금 참솔 할머니의 생각에 순순히 동의할 수는 없었다. 내가 자식 된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그 대상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논리적으로는 참솔 할머니의 말이 옳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말에 수긍이 되지 않는다.

집에 돌아오니, 전쟁은 종결 되어 있었다. 엄마는 자고 있었고, 오빠는 내방에서 누워있었다.

“뭐야, 오빠. 잘 해결 됐어?”

“나보고 군대 갔다 오래.”

“맞는 말이네. 철 좀 들어.”

오빠는 화를 내지 않았다. 책상에 가방을 올려놓고, 오빠를 돌아보는데 그 표정에서 약간의 긴장 같은 게 읽혀졌다.

“유빈아. 아빠 주소 알고 있다며?”

나는 당황스러웠다. 엄마와 싸우면서 그 이야기를 들은 게 분명했다.

“왜?”

“줘봐.”

“싫어.”

내가 싫다고 하자 오빠의 얼굴이 굳어졌다.

“왜 니가 싫다고 하냐?”

“오빠, 아빠 찾아 가볼 거야?”

“네가 알 바 아냐.”

“만나기 싫어하면 어떻게 할 건데? 거절당하면 어떻게 할 건데?”

나는 결국 두려워하던 말을 꺼냈다.

“엄마는 어떻게 할 건데?”

그래, 오빠. 나에 이어서 오빠까지 아빠한테 가면, 엄마는 어떻게 할 건데?

그러나 오빠는 내 말을 들은 척도 안했다.

“유빈아. 나, 아빠한테 할 말이 있어. 아주 많아. 그리고 나 성인이야. 엄마가 막을 수 없어. 내 놔.”

오빠가 명령했다. 나는 필통 안에 넣어둔 종이를 오빠에게 줄 수밖에 없었다. 오빠는 그 길로 바깥에 나갔다. 그리고 그 다음 날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오빠와 아빠가 만났을까? 아빠가 오빠를 모른척했을까? 아빠는 이미 가정이 있을까? 아니면 없을까? 아빠가 우리를 기억할까? 아니면 기억하지 않을까? 아빠가 우리를 보고 싶었을까? 아니면 보고 싶지 않았을까?

나는 무서웠다. 그냥 무서웠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무서웠다. 왜 우리 부모님은 이혼하신 걸까. 왜 우리는 태어난 걸까. 왜 아빠는 우리를 버렸을까. 왜 엄마는 왜 아빠랑 이혼 했을까. 우리를 위해서 이혼하지 않았으면 안됐을까.

다음날 아침, 여느 때처럼 엄마는 밥을 차려 주셨다. 그러나 엄마는 비정상적인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몸을 떨고 있었고, 계속 나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말기도 하고 말도 갑자기 많아졌다가 헛 나오기도 했다. 엄마도 나처럼 밤에 잠을 자지 않았는지 초췌하게 보였다. 엄마는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뭔지 나도 알 것 같았다.

그건 내가 야자를 마치고 나올 때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가 나를 보고 손짓했다. 나와 오빠는 십 미터쯤 떨어져서 걸었다. 그리고 오빠는 ‘참솔’에 도착했다.

“차 한 잔, 오케이?”

오빠는 장난스럽게 씩 웃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찻집 앞에 섰다. 나는 그 안에 아빠가 있을까봐 두려웠다. 아직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안 들어갈래.”

오빠는 약간 망설이더니 말했다.

“아빠가 너 보고 싶어 하셔.”

오빠는 아빠라는 말을 썼다. 그리고 존대 말을 썼다. 그게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을 알았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오빠를 노려보았다. 오빠는 이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빠도 울었어, 유빈아. 정말 많이 울었어.”

그리고 오빠는 내 손을 잡고 문을 열었다. 찻집 안의 따뜻한 공기가 나의 얼굴을 마비시켜 버리는 것 같았다. 두려움과 야릇한 궁금함에 휩싸인 상태로, 내 눈동자엔 찻집 내부의 모습이 비쳤다. 거기엔 난처한 표정의 참솔 할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서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상태였다. 엄마가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섰다. 엄마가 말했다.

“이리와 앉아.”

우리는 그 맞은편에 앉았다. 오빠가 말했다.

“아빠는요?”

“그 사람은 갔어.”

엄마가 짧게 대답했다. 오빠가 화가 난 것 같았다.

“엄마.”

오빠는 이어서 말했다.

“왜 아빠를 용서해 주지 않았어요?”

오빠는 엄마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나 그때 안자고 있었어요. 10년 전에, 아빠가 엄마한테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빌었을 때, 나 안자고 있었어요. 엄마 그때 아빠에게 소리치면서 나가라고 했잖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우리들 볼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잖아. 엄마가 그때 아빠를 쫓아냈어. 그리고, 지금도 엄마가 쫓아냈어요.”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의 입은 말라붙은 것 같았다. 아빠의 외도를 마침내 알게 되고, 아빠가 집을 떠난 날 그랬던 것처럼. 새까맣게 메마른, 그러나 냉정한 눈이었다.

“엄마는 우리한테, 아빠를 빼앗은 거야. 그리고 지금도 빼앗은 거 아니에요? 우리는 여태 아빠가 없었고, 지금도 아빠가 없어. 안 그래요? 아빠도 잘한 게 없지만, 엄마도 우릴 생각했던 건 아니잖아요?”

나는 오빠가 우리라는 말을 쓰면서 나를 포함시킨 것을 알고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울고 있는 것도 엄마가 어떻게 생각할지를 생각하면 무서웠다. 그러나 오빠의 입장에서는 사실이다. 오빠는 자기 자신이 엄마보다 더 중요하다. 그건 오빠가 아직도 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님이 이혼한 후 우리가 입은 상처는, 철이 든다고 해서 괜찮은 게 아니었다. 엄마는 그때, 우릴 생각한 게 아니었다. 조금은 생각했겠지만, 끝까지 사랑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가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말해봐. 성빈아. 네 아빠를 받아주었으면 했니? 계속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을 것 같았어? 나에게뿐 아니라, 너희에게 대한 사랑과 믿음을 저버린 건, 그 사람이야. 내가 아니라.”

엄마는 천천히 말했다. 엄마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나는 너희를 사랑해.”

“엄마, 나도 알아요. 하지만 아빠도 우리를 사랑한다고 했어요. 지나간 세월을 어떻게 해서든 보상하겠다고 해요.”

“뭘 로? 지나간 세월을 어떻게? 돈으로? 순간의 애정으로? 다정한 말로?”

엄마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이 너에게 사랑한다는 소리를 해? 그런 소리를 했어? 그 사람이 그럴 자격이 어디 있어!”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해요. 엄마는 아빠에게 기회를 줬어야 했어요.”

“네 아빠가 실수를 한 거라고? 기회를 줬어야 한다고?”

“아빠를 두둔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잖아요. 원래 사람은 부족한 것들을 참고 이해해가며 살아가야한다고요.”

오빠는 원래부터 솔직하고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그건 오빠가 특별히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일지도 모른다. 오빠는 속에 담아 두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간혹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엄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그런데 너는 나한테 완벽한 걸 바라는 구나.”

나는 우리의 머릿속에, 엄마가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왜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혹 엄마의 인생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마지막 피한방울까지 빨아먹는 것이 왜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빠의 요구와 무기는 그것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것을 원했다.

“잘 모르겠어요.”

나는 오빠가 곧이어 엄마에게 준 상처에 용서를 구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빠는 일어서서 문 쪽으로 갔다.

“엄마, 미안해요. 나는 아빠가 보고 싶어요.”

“성빈아!”

“미안합니다.”

오빠가 뛰쳐나갔다면, 나는 덜 걱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빠는 천천히 문을 열고 한걸음 한걸음을 디뎠다. 오빠가 딛는 각각의 걸음이 천천히, 그리고 분명하게 오빠의 결심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와 엄마는 똑같은 충격으로, 오빠가 나가버린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는 이제 성인이다. 하지만, 오빠의 아빠에 대한 그리움은 언제 부터였을까. 너덜너덜해진 동물그림책이 오빠의 빈 구멍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었을까. 시시때때로 데리고 들어오는 동물들에게 쏟아 붓는 애정이 아빠에 대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그 동물들을 먹여 살리는 건 엄마였다. 우리를 먹여 살리고, 키워낸 것도 엄마였다. 악역을 담당한 것도 엄마였다. 그리고 우리가 자라는 만큼 늙어버린 것도 엄마였다. 엄마의 지금 모습은 거실에 걸린 사진 속의 사랑스러운 여고생도, 참솔 할머니가 말했던 긴 머리의 예쁜 새댁도 보이지 않았다.

참솔 할머니가 다가와 엄마를 위로했다. 닫힌 문 뒤로, 꼿꼿하고 강인한 엄마의 모습은 없었다. 엄마는 다홍이가 죽었을 때처럼 울고 있었다. 참솔 할머니가 엄마의 등을 쓸며 휴지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혜원아. 울지 마렴. 이제 아이가 컸으니 놔줘야지. 언제까지 네 손에 붙들어 놓을 거니. 원래 인간이란 건 그런 거야. 그렇게 애쓴다고 돌아오는 게 없단다. 애 아빠를 보내줬던 것처럼 보내줘. 이제는 너를 위해 살렴.”

엄마는 울면서 말했다.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니에요! 난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 없어요. 난 내 아이를 잃었단 말이에요. 내 전부를 잃었다고요.”

엄마는 울면서 나갔다. 나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참솔 할머니에게 날카롭게, 그러나 분명히 말했다.

“난 할머니를 좋아했어요. 존경했어요. 하지만 이제 아니에요. 엄마의 인생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하지 마요. 할머니야 말로 이제 다 늙은 몸뚱아리 밖에 없잖아요! 할머니가 어떠한 것도 희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땅에는 할머니가 소중하게 여긴, 할머니 자신밖에 없는 거잖아요!”

나는 찻집의 문을 열고 집으로 달렸다. 집으로, 집으로, 단숨에 달려왔을 때, 엄마는 이미 안방에 들어가 엎드려 있었다. 엄마가 흐느끼는 모습을 보고 나는 엄마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엄마의 등을 안아주고 싶었다. 내가 엄마의 편에 서있다는 것을 전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엄마에게 ‘저는 떠나지 않을 거예요.’ 라고 말할 수 없었다. 다홍이가 죽은 날, 우는 엄마를 안아주며 오빠는 이와 똑같은 말을 했었다. ‘엄마, 우리가 있잖아요. 기운내세요.’ 그러나 오빠는 엄마를 떠났다.

다음날 엄마는 일하러 가지 않았다. 전화벨은 계속해서 울렸다가 끊어졌다. 나도 받지 않았다. 나도 보충수업을 가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죽을까봐 겁이 났다. 강아지들이 엄마 주위에서 끙끙거렸다. 고양이들이 잔뜩 웅크린 모습으로 엄마 근처에서 자리를 틀었다.

점심때가 되고, 내가 상추와 후추의 밥을 주려는데, 사료가 다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고양이 배설물 냄새도 지독하게 났다. 나는 그것을 치우면서, 고양이들이 우리와 4년 동안 있으면서 내가 한 번도 이것을 치운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 엄마가 하는 일이었다.

엄마는 이제 울지 않았다. 그러나 움직이지도 않았고, 자는 것도 아니었다. 전화벨 소리 속에 아무 미동이 없는 엄마의 모습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왜 내가 일을 하러 가야되지?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았던 거지? 성빈이는 떠났고, 유빈이도 마찬가지야. 나의 인생은 어디로 간 거지?’

나는 엄마 모습을 바라보며 그 뒤에 똑같이 웅크렸다. 나는 엄마를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엄마의 다친 마음이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내가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없었다.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나와 엄마가 똑같은 자세로 전화벨 소리를 듣고 있었다. 한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그때, 엄마가 웅크린 모습을 풀고 전화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여보세요? 아, 실장님, 미안해요. 제가 너무 아팠습니다. 네, 내일 다시 가겠습니다. 몸이요? 이제 많이 좋아졌어요. 네. 내일 뵐게요.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엄마는 잠깐 동안 고개를 숙이고, 다시 천천히 몸을 움직여 일으켰다. 엄마는 찬장에서 상추와 후추의 간식과 먹을 것을 찾아내서 주고, 고양이들에게도 먹을 것을 주었다. 엄마가 나와 눈이 마주쳤고, 살짝 웃었다.

“배고프지?”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으면서, 나는 눈치를 살폈다. 엄마가 날 위해 마음을 잡기로 한 걸까? 강아지와 고양이 때문이었을까? 내가 엄마를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 밥이 제대로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장롱 안에서 뭔가를 꺼내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 뒤적거리더니, 안방 문을 닫고 누군가와 오랫동안 통화했다. 나는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끝내고 나서 엄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엄마는 굉장히 빠른 목소리로 말하다가 아무 말도 안하다가, 울기도 하다가, 또 웃기도 했다. 한참 후, 통화를 마치고 나오는 엄마는 눈 주위에 눈물자국이 있었지만, 미소를 띠고 있었다.

“유빈아, 오늘 약속 있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랑 데이트 할까?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 있는데.”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하는 동안,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네 오빠를 가졌다고, 결혼하겠다고 내 부모님께 말하던 때가 생각나. 나는 할 말을 잃으신 두 분 앞에서 이렇게 말했단다. ‘잘 살 거예요, 정말 보란 듯이 잘 살 거예요!’ 그러나 나는 잘 살지 못했단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내 부모님이 만들어주셨는데, 나는 여기에서 정말 성공하고 나서 찾아가려고 했단다. 그런데 세상은 전혀 만만치 못했어. 아버지는 나로 인해 충격을 받아 병이 악화되셨고, 결국 돌아가셨단다. 나는 더욱 찾아갈 수 없었지. 좋은 모습으로 찾아가고 싶었어. 내 길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싶었어.”

엄마는 하늘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동안 계속 고집을 부렸지만, 지금은 내 부모님의 심정을 조금 알 거 같아. 두 분은 내가 이런 식으로 떠나서 잘 살아가는 것만을 바라셨던 게 아니었던 거야.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셨던 것 같아.”

“엄마, 지금 외할머니를 만나러 가요?”

“응.”

엄마가 활짝 웃었다. 여고생이었던 엄마의 웃음이 보이는 것 같았다. 엄마는 경쾌하게 걸어가면서 말을 이었다.

“이 세상을 생각해보면, 덧없고 가치 없는 것 투성이야. 아무리 노력해도 쟁취할 수 없는 것도 허다하고, 후회스러운 일도 많지. 네 아빠와 이혼했던 것도 그렇고 말이야... 그렇지만 그 한 순간 한순간, 내게 주어진 몫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 그러다보면, 다른 사람이나 보이는 것에서 상을 얻기보다는, 나 자신이 다듬어지고 성장해 가는 것일 거니까.”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셨다.

“나는 너희에게 정말로 내 모든 것을 바쳤단다. 그러나 이 대가로 내가 가지게 된 가치로운 건, 너희들이 나를 누구보다도 좋아하고, 나의 사랑을 깨닫고, 보답하는 게 아니었어. 내가 얻었던 건 너희들을 위해 내 모든 걸 헌신한 바로 그 순간들이었단다. 그것이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든 거란다. 성빈이와 유빈이 너희들의 행동으로 내가 위안을 얻는 게 아니라, 너희들을 아끼고 사랑했던 지난 십년간의 내 모습이 나의 삶을 풍성하게 만든 거란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란다. 유빈아. 네가 나중에 네 아빠에게 가더라도, 나는 너희들이 고맙단다.”

나는 엄마가 존경스러웠다. 엄마는 나와 오빠의 십년을 만들었고, 그 순간들 자체에 만족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 아빠를 생각했다. 아빠가 오빠와 잘 지낼 수 있을까? 아빠는 오빠와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이제 나와 오빠가 어떤 사람들인지 알게 될 것이다. 아빠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

엄마가 우리에게 했듯이, 사랑은 희생을 동반한다. 아빠나 우리가 희생을 거부하면, 사랑도 끝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의 순간들이 극복되면서 인간의 삶이 가치 있고 풍요롭게 이어져 왔던 것이 아닐까.

“엄마, 우리 두꺼비 풀어줘요.”

“왜? 성빈이가 없어서?”

“아니, 그거 사실 불법이에요. 오빠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두꺼비는 잡아서 키우면 안 된대요.”

엄마는 웃었다. 당분간 우리 집 동물들이 더 느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알레르기로 귀가 가려워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오빠가 도로 돌아오기 전에, 그 녀석들을 하나씩 하나씩 입양 보내겠다고 결심했다. 아니면 통째로 박스에 넣어서 아빠 집에 보내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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