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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역과 공정사회
어느 학교나 그렇듯 대부분의 대학가에는 유흥거리로 가득하다. 개강이고 새학기라 이런 저런 술자리를 가지다 보니 문득 ‘대학생이 뭔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됐다.

7, 80년대에는 대학생이라고 하면 학생운동의 주체로서 지식인으로 대우받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사회의 분위기상 대학이 의무교육과정처럼 돼 대학생이라는 신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게다가 대학생 스스로도 대학생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기를 포기한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생이란 가장 깨어있어서 올바른 것을 스스로 찾아 추구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가장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올바른 소비이다. 대학가의 어른들은 학생들을 돈벌이의 수단 정도로 취급하는데 이런 현상은 어쩌면 우리의 무의식적 소비 방식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비를 하기 전에 이것이 어떻게 나왔는가, 올바른 물건인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서 타인을 위하는 소비를 해야한다. 대표적인 올바른 소비로 불공평한 사회에 저항하는 착한 소비, 즉 공정무역이 있다.


공정무역

착한 소비라고도 불리는 이 거래 방법은 윤리적 소비 운동의 일종이다. 굳이 무역에 ‘공정(fair)’이란 단어가 붙은 이유는 그동안 무역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기존의 무역은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이윤을 최소화하고 최대의 이윤을 중간 유통단계에서 초국적 기업들이 획득하는 구조였다. 커피나 초콜렛 등은 아프리카, 남미 저개발국에서 생산되는데 그 지역 노동자들은 중간 유통단계에서 초국적 거대기업들에게 착취 당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생산자에게 선지불을 하거나 공동체 프리미엄 지급 등의 조치를 취해 일차로는 기업 위주의 거래 관행을 막고 장기적으로는 생산자와 소비자는 물론 환경에도 이로운 지속 가능한 개발을 취지하자는 운동이다.

가장 가까운 예로 아름다운 가게(중고 물품을 팔아서 불우이웃을 돕는 가게)의 ‘초코렛’이 있다. 이 초코렛은 식품첨가물을 넣지 않았을 뿐 아니라 농약과 비료를 최소화해서 재배한 카카오에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구매한 뒤 가공해서 만든 초콜릿이다. 뜻깊은 구매가 될 뿐 아니라 사회에도, 몸에도 이로운 초콜릿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100명의 사람들이 있다면

20명의 사람들은 하루 1000원 미만의 돈으로 끼니를 이어갑니다. 15명은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이 되었지만 25명은 영양실조를 앓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70명의 어른들과 30명의 아이들이 있는데 30명의 아이들 중 4명은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하고 1명의 아이는 매매춘, 전투군인으로 생계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16명의 사람은 끼니를 굶고 배가 고픈 채로 잠이 들었고 1명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식채널e, 세상에 100명의 사람들이 있다면-

대학생으로 지내면서 취업이나 인간관계 등의 여러 문제들로 스스로를 불행하다 여기며 현실을 외면하고 회피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위 글처럼 세상을 100명의 마을로 줄여보면 지금 현재 얼만큼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외면할 것인가? 함께라는 의미가 더욱 다가오는 이 세상. 한 번 더 타인을 위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다.

“오늘도 400개가 넘는 코코아를 땄다. 작년의 오늘도 400개가 넘는 코코아를 땄다. 재작년의 오늘도 400개가 넘는 코코아를 땄다.

하지만 아직도 난 초콜릿을 먹어본 적이 없다.”

-카카오 농장 아동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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