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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의 폐해

짝의 탄생을 지켜보면서 가장 소중한 짝에 대한 희생과 배려와 그리고 사랑을 돌아보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존재의 이유라는 SBS 남녀 짝짓기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짝’. 하지만 지난 5일, 짝에 출연한 여성 출연자 한명이 화장실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짝 출연자들은 1인당 카메라가 한 대씩 따라붙는다. 화장실·샤워실을 제외하고는 고정 카메라가 있어 자유롭게 행동을 하지 못하다. 또한 촬영 첫날 방송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써야했다. 출연자들은‘각서’의 형태로 동의했다고 하지만 방송촬영 중 인권에 대한 보호장치가 없다. 이처럼 최근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인기만큼 많은 문제를 안고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탄생
 ‘빅 브라더’는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독재자 빅 브라더를 따서 만든 용어로, 소설 속 빅 브라더는 등장인물들의 집 안에서의 행동, 직장에서의 행동 등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여기서 이름을 따와 1999년 네덜란드 유선 텔레비전 채널인 베로니카에서 ‘빅 브라더 쇼’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이 제작됐다. 엄선된 남녀 출연자 9명이 외딴집에서 100일 동안 생활하는 모습을 24시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 프로그램은 ‘리얼리티 쇼’의 대명사이자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빅 브라더 쇼’는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고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많이 등장하게 되면서 리얼리티 쇼는 전 세계적인 선풍으로 이어졌다.
현재 빅 브라더는 긍정적 의미로 선의 목적으로 사회를 돌보는 보호적 감시, 부정적 의미로는 음모론에 입각한 권력자들의 사회통제의 수단을 일컫는다.

리얼리티와 현대인의 관음증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짜여진 대본에 따라 진행되는 방송이 아니다. 물론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도 방송을 위한 대본은 존재하지만, 대본과 상관없이 일어날 수 있는 가공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실제 상황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카메라 앞에서 꾸밈없이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친근감을 느낀다.
다른 이유로 몇몇 사람은 인간의 ‘관음의 욕구’가 답이라고 말한다. 즉 리얼리티란 시청자들은 철창에 갇힌 동물들을 구경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브라운관이라는 우리 안에 집어넣고, 카메라를 설치해 그들을 관찰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남들의 사생활을 훔쳐보기를 원하는 인간의 ‘관음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리얼리티의 속성이다.
우리는 이러한 리얼리티의 무시무시한 속성 속에서 시청자는 우리에 갇힌 관찰대상을 영웅의 위치에 놓기도 하지만 때론 마녀사냥으로 완전히 궁지에 몰기도 한다. 텔레비전이라는 가상 속에 리얼리티 현실 논리가 결합하게 되며 끊임없이 가상과 현실은 불일치의 관계가 발생하게 된다. 마치 벗어날 수 없는 매트릭스 같은 세상에 사는 것처럼 출연자나 시청자 모두 현실을 의심하게 된다는 말이다.

리얼 그것은 가학의 또 다른 이름
짝 출연여성 자살사건. 이것은 리얼리티가 만든 참극이 아닐 수 없다. 외국에서도 짝과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인해 자살하는 사건이 많았다. ‘헬스키친’에 출연했던 일반인이 자살하는 사건, ‘키친 나이트메어’에 출연한 사람도 자살을 했고 ‘베버리 힐즈의 주부’들 출연자도 자살했다. 그 외 ‘틴 맘’, ‘러브 서바이벌’ 등의 출연자들이 자살 기도를 했다. 폭스TV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마스터셰프’ 출연자는 방송 1년 후에 자살했는데 가족들은 고인이 방송 당시부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례들로 보았을 때 이번 짝 자살 사건은 언젠간 일어날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은 리얼리티 출연자를 하나의 예능 캐릭터로 인식하기 때문에 극단적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사람들을 경악시켰던 ‘윤후 안티카페’ 사건도 그 중 하나다. 
똑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드라마보다 내용을 통해 더 큰 쾌감과 짜릿함을 느끼게 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재미를 위해 보통 서바이벌 경쟁구도다. 짝 또한 연애 서바이벌로 짧은 시간의 압축적인 경쟁구도는 출연자들에게 심각한 압박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카메라는 출연자가 무참하게 마음의 상처를 당한 순간까지 담아낸다. 이런 일들을 며칠에 걸쳐 겪게 되면 스트레스로 현실감이 사라지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이 노출된다는 절망감까지 들게 된다. 프로그램이 ‘리얼’할수록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출연진들의 부담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출연자들이 감내해야 하는 노출의 범위가 더 크고, 결말도 미리 예상할 수가 없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이런 황폐한 구조 속에서 출연자의 심리적·육체적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이렇게 보면 ‘리얼’은 사실상 ‘가학’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시청자의 관음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악마의 편집으로 자극적인 영상을 만들어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과정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리얼리티 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무조건 제작진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자발적으로 프로그램 출연을 신청했고 재미를 위해 어느 정도의 연출은 불가피하다는 현실론이있다. 또한 관음증을 부추기는 동류의 프로그램이 꾸준히 인기를 끄는 건 시청자들의 수요가 그만큼 있기 때문이며 자극적인 소재의 방송에 깃들여진 시청자들의 과도한 관심 또한 가해자의 편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영국 같은 선진국에선 사라져가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우리도 개인 스스로 휩쓸리지 않으며 비판 의식을 가지고 자율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 윤리의식을 가져야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홍수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대중의 관음증을 유발하는 프로그램. 우리가 어떻게 해야 관음증을 탈피하고 재미를 느끼지 않을 수 있을지, 이런 프로그램들은 긍정적인 발전을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최진미 기자 chlwlsal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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