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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미안해사고 발생 20여 일째, 계속되는 기다림

넉넉하지 못한 집안 사정 때문에 수학여행비가 아까워 가기 싫다고 했던 딸, 사고 직후 빠져나왔지만 미처 나오지 못한 친구들을 구하러 다시 들어갔던 아들, 수석 졸업 후 교사가 돼 아빠의 자랑이었던 어린 선생님, 평생을 같이한 초등학교 동창들과 환갑 여행을 떠났던 엄마, 오는 가을 결혼을 앞두고 있던 연인들…. 바다는 꽃보다 아름다운, 너무 많은 꽃을 삼켜버렸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한 지 20여 일이 넘은 지금도 진도 팽목항에는 사랑하는 이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속보 경쟁 뒤에 남은 것
이번 사고는 유난히 오보로 인한 논란이 잦았다. 사고 당일 각 언론이 일제히 내보낸 ‘전원 구조’ 기사는 연이은 오보의 시작이었다. 언론은 “경기 안산단원고등학교 사고대책본부는 세월호에 타고 있던 2학년 학생과 교사 전원이 구조됐다고 오전 11시 5분 해경으로 통보받았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러나 오보였다. 오후 2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는 “탑승객 477명 중 368명을 구조했다”고 밝혔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그러나 이것도 오보였다. 수차례 수정 끝에 잠정 집계를 내렸다. 언론은 중대본의 발표가 나올 때마다 자막을 고치느라 바빴다.
사고가 발생하고 24시간이 흐른 뒤에도  오보는 이어졌다. YTN은 17일 “오늘 낮 12시 반쯤부터 공기주입이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보도했다. SBS는 “해경은 아침 7시 정도부터 전문업체가 세월호 선체에 산소공급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배 안의 생존자를 기다리던 가족들에게는 간절한 소식이었다. 하지만 이날 오후 해양수산부는 산소공급장치가 아직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 18일에는 인터뷰 오보로 심각한 사회적 혼란마저 발생했다. MBN은 이날 오전 자신을 민간 잠수부라고 밝힌 홍 모씨 인터뷰를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홍씨는 “현장 정부 관계자가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가라고 말했다”, “민간 잠수부 가운데 생존자와 대화를 시도했고 (생존) 신호도 확인했고 대화도 했다”는 등의 주장을 펼쳤다. 해당 인터뷰는 큰 파문을 낳으며 발언의 사실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이에 해경 측이 사실무근이라는 해명자료를 냈다. 홍씨는 현재 구속 송치된 상태다.
이에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은 커져 있는 상태다. 특히 SNS 등을 통해 퍼지는 현지 봉사자들의 증언이 방송에 나가는 장면과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진실은 무엇인가
1개의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에는 29개의 소형사고, 그 이전에 300개의 사소한 징후를 보인다고 한다. 이 법칙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하루가 멀다 하고 수많은 비리와 의혹들이 떠오르고 있다.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 중 이미 과적과 부실 화물 고정에 대해선 어느 정도 입증을 마친 상태다. 세월호가 사고 전날 화물 과적을 숨기려고, 평소 비우고 다니던 선수 쪽 탱크에 평형수를 주입해 만재흘수선(안전한 항해를 위해 물에 잠겨야 할 적정 수위를 선박 옆면에 표시한 선)을 맞추는 ‘꼼수’까지 동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평소보다 많은 양의 화물을 실어 선수가 들리자 앞부분 평형수 탱크만 보충해 선수를 잠기게 하고, 그러면서 화물은 더 실기 위해 선미 평형수 탱크는 비워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한, 세월호 침몰 사고를 낸 해운회사 청해진해운이 구난 업체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이하 언딘)와 계약을 맺은 주목적은 인명 구조가 아니라 선박 인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사고 현장에서는 해경이 주로 언딘과 구조 작업을 하고 ‘순수’ 민간 잠수부들을 배제한다는 논란이 제기돼왔다. 또 해경은 안전을 이유로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개인 자산을 들여 가져온 구조 장비인 다이빙벨을 투입하지 못하게 했는데, 언딘이 다시 한 대학에서 다이빙벨을 가져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실종자 가족들의 불만이 폭발하기도 했다. 청해진해운이 왜 언딘과 계약을 맺었는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언딘의 김윤상 대표는 최상환 해양경찰청 경비안전국장, 김용환 전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 등과 함께 한국해양구조협회 부총재직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언딘이 이번 구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경이 영향을 끼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전문가 없는 대책본부 
국민안전과 재해재난 예방관리를 통해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박근혜 정부는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고, ‘국민안전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자연재난은 방재청이, 인적·사회재난은 안전행정부가 담당하는 식의 이원 구조로 국민안전을 책임지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사고 당일 최초 신고가 접수된 것은 오전 8시 52분이었지만, 재난대응 지휘부인 안전행정부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가동된 건 53분이 지난 오전 9시 45분이었다. 재난대응이 이원화되면서 안행부 재난대응 지휘부는 대부분 전문 경험이 없는 행정관료 출신들로 채워졌다. 또 소방방재청의 재난 전문가들이 안행부로 옮겨 오지 않아 재난대응 전문성이 크게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예정된 인재였다. 구할 수 있던 목숨이었다. 사고가 발생하고 몇 시간이 지나도록 탑승자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허점투성이 시스템에서 책임 대신 엄벌을 논하는 최고 책임자의 모습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약속한 대한민국은 어디에도 없다.

세월호 참사 18일째인 5월 3일 서울 홍대입구역에 300여 명의 시민이 모였다. 시민들은 마스크를 쓰고 ‘가만히 있으라’는 피켓과 국화꽃 한 송이를 손에 들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믿고 목숨을 잃은 희생자를 추모하고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을 위해 ‘가만히 있지’ 않고 거리로 나온 것이다.
어떤 부분에서 삶은 죽음보다 참담하다. 악몽 같던 사고는 누군가의 평생에 걸쳐 깊은 손톱자국을 남길 것이다. 누군가의 시계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사랑하는 사람의 유해를 대면하던 그 날에 멈춰있다. 어쩌면 평생을 흘러가지 않을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또한, 사고는 우리 사회 전반에도 흔적을 남길 것이다. 사회적 신뢰가 사라지는 현실은 미래에 더 큰 사고를 이미 낸 것과 같다. 가만히 있어야만 안전한 상황이 와도 정말로 가만히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이미 사회적 불신을 학습해버렸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한 희생자 가족의 편지가 생각난다. ‘우리는 밥 세끼를 먹는 것보다 두 끼를 먹어도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나고 자란,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내 나라에서 ‘안전하고 싶다’라고 외치는 그 목소리가 너무나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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